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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5장 미란 제철소(1)
북해도부의 수도 해가람시.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폭설로 겨우내 몸살을 앓던 도시, 흰 눈에 파묻힌 겨울 왕국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봄 햇살을 받으며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해가람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일양하(一陽河)―원 이름은 토요히라 강[豊平川]―는 물론, 꿈틀꿈틀 흐르는 모양새가 꼭 용을 닮았다고 해서 ‘미르’란 새로운 한국식 이름이 붙은 일양하의 본류인 미르강도 여러 지천의 상류에서 부쩍 불어난 유량으로 인해 강물을 넉넉하게 담고 있었다. 미르강의 일본식 이름은 이시카리[石狩]인데, 북해도에서 가장 크고 긴 물줄기이다.
삿포로란 도시 이름도, 그 주인도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지역 분위기는 기운이 생동하는, 봄다운 봄을 맞이한 듯했다. 잔류한 일본인 주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그들의 방식대로 바쁜 일상을 보냈고, 재작년부터 이곳에 대거 들어오기 시작한 한국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고자 촌분을 아껴가며 땀을 흘렸다.
시내 서남쪽 대고산(大庫山)―일본식 이름은 오쿠라 산[大倉山]―기슭에 자리를 잡은 북해도 총독부도 귀한 손님들을 맞느라 무척 부산스러웠다. 게다가 총독부는 전 북해도 주둔군의 총사령부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이번에 큰 군사적 현안까지 떠안게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캄차카 해역에 출현한 미해군 함선 문제로 북해도 주둔군도 비상이 걸렸다. 육군 제5군단은 물론, 세 개의 공군 비행단도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며 해안 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라온달항에서 귀빈들을 태우고 해가람 서쪽에 자리한 서창포(오타루)항에 입항한 해군 제1전대 함선들도 급히 남부의 마진(하코다테)항으로 이동했다.
육군 제5군단장이자 북해도 총독을 맡고 있는 홍범도 대장은 오랜 회의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휘하 육군의 일을 처결했다.
“휘란과 마진 주둔군은 당분간 최고로 높은 경계 상태를 유지하라고 하게. 일본군은 물론, 적성국인 미군도 언제든 침습해 올 수 있다는 걸 가정하고.”
“네.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현안과 관련해 북해도에 배치된 두 개의 폭격기 대대를 캄차카로 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게 처결할 일이었고, 그다음은 해군에 대한 조치였다. 이들에 비해 육군은 상대적으로 이번 국면에서 손쓸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과 미군의 동시 도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 휘란(네무로)에 사령부를 둔 제20사단과 마진(하코다테)의 제17사단에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홍범도는 회의를 마친 뒤, 다소 늦었지만 손님들이 만찬을 하고 있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와! 홍범도 총독님이시네요!”
“와아아! 반갑습니다, 장군님!”
짝짝짝짝!
귀빈들은 그가 모습을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해가람으로 들어온 이래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에 이들의 반가움이 더욱 큰 모양이었다.
“허허, 고맙소. 저녁은 맛있게 자셨소?”
대한제국군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으로 이름이 높아, 홍범도는 어디를 가든 존경을 받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럼요. 잘 들었습니다.”
평소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한 성영길 탁지부대신의 눈초리도 이미 활처럼 휘어져 있고, 광대뼈 또한 한껏 도드라져 보였다.
“어떻소, 이곳 해가람은?”
“하하, 상상 이상이었어요. 이 정도로 개발이 진행되었는지 몰랐네요. 게다가 이거… 크크크!”
성영길은 맥주를 가리키며 더 크게 웃었다.
맥주를 그리워하던 도래인들은 이곳 해가람에서 소위 ‘삿포로 맥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걸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1876년에 설립된 이 맥주 회사는 소유권의 변화를 여러 차례 겪은 뒤, 최종적으로 ‘대일본맥주회사’에 통합되었다. 이 회사는 삿포로와 에비스, 아사히 맥주의 생산 업체들이 하나로 통합해 만들어졌다. 물론 현재 삿포로 맥주는 ‘해가람 맥주’로 브랜드가 바뀐 상태였다.
홍범도는 그 모습을 보고 엷게 웃었다. 자신은 아직 맥주에 맛을 들이지 못했는데, 중앙정부 대신들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일본인 양조 기술자 상당수가 북해도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이 공장을 다시 돌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네요. 그나마 잔류해 있던 일본인 직원도 모두 수소문해서 다시 채용했고요.”
손영일 공상부대신은 해가람 맥주 회사를 그간 되살리려 한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럼 지금은 정부가 운영 주체인가요?”
“일단 그래야죠. 기술자들이 육성될 때까지 정부에서 경영할 수밖에 없죠.”
맥주를 홀짝이며 궁금증을 해소해 가던 성영길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
“일본인과 한국인 수가 엇비슷하죠.”
“일본인이 그렇게 많아요?”
“네. 원 직원이었던 이도 있고, 해가람에 잔류한 일본인 중에 뽑은 이들도 있고.”
“허허, 새로 직원이 된 자들 중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포로 출신 일본인들이라오. 아니, 이제 우리 한국인이라고 해야지.”
홍범도 총독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중간에서 나름 역할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나도 깜짝 놀랐을 정도요. 열심히 하고 있지. 통역 일도 능숙하게 하고.”
그는 포로 출신의 귀화한 일본인, 즉 일본계 한국인에 대해 꽤 큰 호의를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재 귀화한 포로 수는 일만을 넘은 상태였다. 이들 중 초기의 토왜 작전에서 포로가 된 이가 반이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포로가 된 무리에서 나왔다.
“다들 열의도 있고, 충심도 남다르다오.”
“크크, 참 흥미롭네요.”
“요즘 떠도는 말이 있지 않소? 항왜가 토왜보다 백배 낫다고.”
그는 군인 신분이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때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요즘 심기가 꽤 불편한 모양인지 슬쩍 생각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을 만나면 거침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거, 정치판에 발을 디딘 떨거지들하고 언론인이랍시고 깝죽대는 자들의 꼬락서니 좀 보오. 그런 자들이야말로 토왜와 다를 바 없지 않소?’
이처럼 홍범도는 총선과 입헌의회 구성을 앞두고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정치판을 몹시 못마땅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는 특히 독립당 인사들을 싫어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각종 반역 사건과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루되곤 한 신문사와 기자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또한 그런 신문사들이 독립당의 지원군 역할을 보고 두 세력이 한통속이라고 보았다.
“하하! 뭐, 그런 자들도 다 제 역할이 있는 거잖아요?”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중앙정부 고위 관료답게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토착왜구’란 말만 듣고도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이내 유추해 낸 걸 보면, 그의 속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토착왜구는 1908년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역사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친일 부역자들의 망동과 그간의 행각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이 말이 화룡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들 우리한테 총부리를 들이대다 붙잡힌 일본군 포로들이 훨씬 낫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들이 노역을 통해 나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태인과 달리 성격이 까칠한 성영길은 그와 같은 인내심이 없었다.
“내 생각도 총독님과 같습니다. 그자들이란 게…….”
성영길은 무슨 얘길 하려다 급히 말끝을 흐리더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짜증 섞인 말투로 얘길 마무리했다.
“에잇! 아무튼 다 맘에 안 들어! 이번에 대거 솎아낸 부역자 토착왜구 놈들과 결이 같은 자들이라.”
손영일도 중립적 입장을 내다 버리고 성영길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좋게 본 적이 없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손영일의 눈빛이 깊어졌다. 홍범도 총독이 모르는, 어느 시점의 일을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직원을 뽑는 데 문제는 없었습니까?”
이태인 광무부대신이 화제를 돌릴 겸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다지 뭐, 워낙 여러 경로로 꽤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해가람 지방이 포함된 북해중도의 미르 대평원(이시카리 평야) 지역은 그간 급격한 변화에 휩싸였다. 북해도 최대 곡창이자 쌀농사 지대인 이곳은 대한제국 측이 보기에도 서둘러 개발해야 할 곳이었다.
정부는 북해도 전역은 물론, 사할린과 북주열도, 캄차카 지역의 쌀 수요량을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로 모두 충당할 계획이었다. 내륙 영토의 경우, 이와 비슷한 역할을 남한주의 호남 지역과 경기도, 한북주의 황해도 평야 지대, 연서주의 요하 하류 지역 등이 담당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국민 대다수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에 쌀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현재 미르 대평원에 잔류한 일본인 농민은 그대로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떠난 농가가 보유한 농토의 경우, 총독부가 모두 전수 조사한 다음 북해도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부역자 죄수 가족에게 조금씩 분배해 주었다.
그리고 해가람 서쪽의 동해와 맞닿은 해안 지역, 예전에 이시카리라 불렸던 ‘하늬나루’군(郡) 지역에 한국인 어민을 대거 이주시킨 뒤, 해안가 근방의 농지도 배정해 주었다. 아울러 향후 일본 제2의 금광으로 성장하게 될 해가람 금광(테이네 광산)에서 일하는 부역자 죄수의 가족은 해가람에 정착시켰다. 이들은 토지 대신 일본인 거주민이 떠나 비어 있는 주택과 일자리를 받게 되었는데, 그 일자리 중 하나가 바로 한가람 맥주 공장이었다.
“그래서 한국인 직원의 상당수는 그 가족들이죠. 물론 하늬나루 지역에서 일손이 남아 이곳으로 넘어온 사람도 있고요.”
아직 어선 수가 충분치 못하다 보니 남는 노동력의 일부는 배정받은 농지의 농사에 투입되어 있는 형편인데, 그럼에도 남는 일손이 있어 이곳으로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른 일자리도 많나요?”
“그럼요. 벌써 채광을 시작한 국영 및 민영 광업 회사도 있으니, 거기서 일해도 되고.”
“광산 일도 한다고요?”
성영길의 질문에 홍범도 총독이 답했다.
“물론이오. 임금이 무척 높아 한두 해만 일해도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자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광부 자리만 있는 게 아니오. 광업소가 운영하는 제련소에도 일자리가 있고, 광물질을 운송하는 일도 있소. 또 이들 광업 분야가 아니라도 시내에는 작은 공장도 많지요. 또한 우리 정부가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건설 일도 있소. 특히 도로와 철도 공사 말이오.”
그도 총독 직을 맡고 있다 보니 지역 현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 현재 민영 광산 사정은 어때요?”
“일본인에 의해 이미 개발된 시설이 꽤 많은 편인데, 그걸 모두 우리가 차지했죠. 그래서 일부는 민간 회사에 넘기고, 일부는 우리 광업공사가 직영하기로 했어요. 부역자 죄수를 투입해서.”
거듭되는 성영길의 질문에 다시 이태인 광무부 대신이 나서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잔류한 일본인 광산주는 없습니까?”
“모두 떠나고 없더라고요.”
“구도가 간단해서 좋네요. 하하하!”
이태인은 기존 광산 중 대표적인 광산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해가람의 서쪽 산악 지대 깊은 곳에 토요와 광산이란 곳이 있어요. 우리는 이곳을 백리 광산이라 부르죠.”
토요와[豊羽] 광산이 백리 광산이 된 건 이곳 총독부에서 백리, 즉 약 40㎞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직선거리로 재면 총독부에서 약 20㎞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일본인들이 이미 채굴을 시작한 곳이라 진입로나 광부들 편의 시설도 다 갖춰져 있더라고요. 우리는 광부 숙소와 선광 시설을 더 개선하거나 넓히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광물과 인력의 수송을 위한 철도도 놓고.”
“그곳을 콕 짚어 예를 든 이유가 있겠네요? 꽤 중요한 곳인 모양인데.”
역시 눈치가 빠른 성영길이 먼저 뭔가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북해도부의 수도 해가람시.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폭설로 겨우내 몸살을 앓던 도시, 흰 눈에 파묻힌 겨울 왕국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봄 햇살을 받으며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해가람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일양하(一陽河)―원 이름은 토요히라 강[豊平川]―는 물론, 꿈틀꿈틀 흐르는 모양새가 꼭 용을 닮았다고 해서 ‘미르’란 새로운 한국식 이름이 붙은 일양하의 본류인 미르강도 여러 지천의 상류에서 부쩍 불어난 유량으로 인해 강물을 넉넉하게 담고 있었다. 미르강의 일본식 이름은 이시카리[石狩]인데, 북해도에서 가장 크고 긴 물줄기이다.
삿포로란 도시 이름도, 그 주인도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지역 분위기는 기운이 생동하는, 봄다운 봄을 맞이한 듯했다. 잔류한 일본인 주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그들의 방식대로 바쁜 일상을 보냈고, 재작년부터 이곳에 대거 들어오기 시작한 한국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고자 촌분을 아껴가며 땀을 흘렸다.
시내 서남쪽 대고산(大庫山)―일본식 이름은 오쿠라 산[大倉山]―기슭에 자리를 잡은 북해도 총독부도 귀한 손님들을 맞느라 무척 부산스러웠다. 게다가 총독부는 전 북해도 주둔군의 총사령부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이번에 큰 군사적 현안까지 떠안게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캄차카 해역에 출현한 미해군 함선 문제로 북해도 주둔군도 비상이 걸렸다. 육군 제5군단은 물론, 세 개의 공군 비행단도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며 해안 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라온달항에서 귀빈들을 태우고 해가람 서쪽에 자리한 서창포(오타루)항에 입항한 해군 제1전대 함선들도 급히 남부의 마진(하코다테)항으로 이동했다.
육군 제5군단장이자 북해도 총독을 맡고 있는 홍범도 대장은 오랜 회의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휘하 육군의 일을 처결했다.
“휘란과 마진 주둔군은 당분간 최고로 높은 경계 상태를 유지하라고 하게. 일본군은 물론, 적성국인 미군도 언제든 침습해 올 수 있다는 걸 가정하고.”
“네.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현안과 관련해 북해도에 배치된 두 개의 폭격기 대대를 캄차카로 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게 처결할 일이었고, 그다음은 해군에 대한 조치였다. 이들에 비해 육군은 상대적으로 이번 국면에서 손쓸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과 미군의 동시 도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 휘란(네무로)에 사령부를 둔 제20사단과 마진(하코다테)의 제17사단에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홍범도는 회의를 마친 뒤, 다소 늦었지만 손님들이 만찬을 하고 있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와! 홍범도 총독님이시네요!”
“와아아! 반갑습니다, 장군님!”
짝짝짝짝!
귀빈들은 그가 모습을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해가람으로 들어온 이래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에 이들의 반가움이 더욱 큰 모양이었다.
“허허, 고맙소. 저녁은 맛있게 자셨소?”
대한제국군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으로 이름이 높아, 홍범도는 어디를 가든 존경을 받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럼요. 잘 들었습니다.”
평소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한 성영길 탁지부대신의 눈초리도 이미 활처럼 휘어져 있고, 광대뼈 또한 한껏 도드라져 보였다.
“어떻소, 이곳 해가람은?”
“하하, 상상 이상이었어요. 이 정도로 개발이 진행되었는지 몰랐네요. 게다가 이거… 크크크!”
성영길은 맥주를 가리키며 더 크게 웃었다.
맥주를 그리워하던 도래인들은 이곳 해가람에서 소위 ‘삿포로 맥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걸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1876년에 설립된 이 맥주 회사는 소유권의 변화를 여러 차례 겪은 뒤, 최종적으로 ‘대일본맥주회사’에 통합되었다. 이 회사는 삿포로와 에비스, 아사히 맥주의 생산 업체들이 하나로 통합해 만들어졌다. 물론 현재 삿포로 맥주는 ‘해가람 맥주’로 브랜드가 바뀐 상태였다.
홍범도는 그 모습을 보고 엷게 웃었다. 자신은 아직 맥주에 맛을 들이지 못했는데, 중앙정부 대신들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일본인 양조 기술자 상당수가 북해도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이 공장을 다시 돌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네요. 그나마 잔류해 있던 일본인 직원도 모두 수소문해서 다시 채용했고요.”
손영일 공상부대신은 해가람 맥주 회사를 그간 되살리려 한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럼 지금은 정부가 운영 주체인가요?”
“일단 그래야죠. 기술자들이 육성될 때까지 정부에서 경영할 수밖에 없죠.”
맥주를 홀짝이며 궁금증을 해소해 가던 성영길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
“일본인과 한국인 수가 엇비슷하죠.”
“일본인이 그렇게 많아요?”
“네. 원 직원이었던 이도 있고, 해가람에 잔류한 일본인 중에 뽑은 이들도 있고.”
“허허, 새로 직원이 된 자들 중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포로 출신 일본인들이라오. 아니, 이제 우리 한국인이라고 해야지.”
홍범도 총독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중간에서 나름 역할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나도 깜짝 놀랐을 정도요. 열심히 하고 있지. 통역 일도 능숙하게 하고.”
그는 포로 출신의 귀화한 일본인, 즉 일본계 한국인에 대해 꽤 큰 호의를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재 귀화한 포로 수는 일만을 넘은 상태였다. 이들 중 초기의 토왜 작전에서 포로가 된 이가 반이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포로가 된 무리에서 나왔다.
“다들 열의도 있고, 충심도 남다르다오.”
“크크, 참 흥미롭네요.”
“요즘 떠도는 말이 있지 않소? 항왜가 토왜보다 백배 낫다고.”
그는 군인 신분이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때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요즘 심기가 꽤 불편한 모양인지 슬쩍 생각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을 만나면 거침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거, 정치판에 발을 디딘 떨거지들하고 언론인이랍시고 깝죽대는 자들의 꼬락서니 좀 보오. 그런 자들이야말로 토왜와 다를 바 없지 않소?’
이처럼 홍범도는 총선과 입헌의회 구성을 앞두고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정치판을 몹시 못마땅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는 특히 독립당 인사들을 싫어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각종 반역 사건과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루되곤 한 신문사와 기자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또한 그런 신문사들이 독립당의 지원군 역할을 보고 두 세력이 한통속이라고 보았다.
“하하! 뭐, 그런 자들도 다 제 역할이 있는 거잖아요?”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중앙정부 고위 관료답게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토착왜구’란 말만 듣고도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이내 유추해 낸 걸 보면, 그의 속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토착왜구는 1908년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역사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친일 부역자들의 망동과 그간의 행각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이 말이 화룡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들 우리한테 총부리를 들이대다 붙잡힌 일본군 포로들이 훨씬 낫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들이 노역을 통해 나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태인과 달리 성격이 까칠한 성영길은 그와 같은 인내심이 없었다.
“내 생각도 총독님과 같습니다. 그자들이란 게…….”
성영길은 무슨 얘길 하려다 급히 말끝을 흐리더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짜증 섞인 말투로 얘길 마무리했다.
“에잇! 아무튼 다 맘에 안 들어! 이번에 대거 솎아낸 부역자 토착왜구 놈들과 결이 같은 자들이라.”
손영일도 중립적 입장을 내다 버리고 성영길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좋게 본 적이 없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손영일의 눈빛이 깊어졌다. 홍범도 총독이 모르는, 어느 시점의 일을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직원을 뽑는 데 문제는 없었습니까?”
이태인 광무부대신이 화제를 돌릴 겸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다지 뭐, 워낙 여러 경로로 꽤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해가람 지방이 포함된 북해중도의 미르 대평원(이시카리 평야) 지역은 그간 급격한 변화에 휩싸였다. 북해도 최대 곡창이자 쌀농사 지대인 이곳은 대한제국 측이 보기에도 서둘러 개발해야 할 곳이었다.
정부는 북해도 전역은 물론, 사할린과 북주열도, 캄차카 지역의 쌀 수요량을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로 모두 충당할 계획이었다. 내륙 영토의 경우, 이와 비슷한 역할을 남한주의 호남 지역과 경기도, 한북주의 황해도 평야 지대, 연서주의 요하 하류 지역 등이 담당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국민 대다수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에 쌀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현재 미르 대평원에 잔류한 일본인 농민은 그대로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떠난 농가가 보유한 농토의 경우, 총독부가 모두 전수 조사한 다음 북해도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부역자 죄수 가족에게 조금씩 분배해 주었다.
그리고 해가람 서쪽의 동해와 맞닿은 해안 지역, 예전에 이시카리라 불렸던 ‘하늬나루’군(郡) 지역에 한국인 어민을 대거 이주시킨 뒤, 해안가 근방의 농지도 배정해 주었다. 아울러 향후 일본 제2의 금광으로 성장하게 될 해가람 금광(테이네 광산)에서 일하는 부역자 죄수의 가족은 해가람에 정착시켰다. 이들은 토지 대신 일본인 거주민이 떠나 비어 있는 주택과 일자리를 받게 되었는데, 그 일자리 중 하나가 바로 한가람 맥주 공장이었다.
“그래서 한국인 직원의 상당수는 그 가족들이죠. 물론 하늬나루 지역에서 일손이 남아 이곳으로 넘어온 사람도 있고요.”
아직 어선 수가 충분치 못하다 보니 남는 노동력의 일부는 배정받은 농지의 농사에 투입되어 있는 형편인데, 그럼에도 남는 일손이 있어 이곳으로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른 일자리도 많나요?”
“그럼요. 벌써 채광을 시작한 국영 및 민영 광업 회사도 있으니, 거기서 일해도 되고.”
“광산 일도 한다고요?”
성영길의 질문에 홍범도 총독이 답했다.
“물론이오. 임금이 무척 높아 한두 해만 일해도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자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광부 자리만 있는 게 아니오. 광업소가 운영하는 제련소에도 일자리가 있고, 광물질을 운송하는 일도 있소. 또 이들 광업 분야가 아니라도 시내에는 작은 공장도 많지요. 또한 우리 정부가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건설 일도 있소. 특히 도로와 철도 공사 말이오.”
그도 총독 직을 맡고 있다 보니 지역 현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 현재 민영 광산 사정은 어때요?”
“일본인에 의해 이미 개발된 시설이 꽤 많은 편인데, 그걸 모두 우리가 차지했죠. 그래서 일부는 민간 회사에 넘기고, 일부는 우리 광업공사가 직영하기로 했어요. 부역자 죄수를 투입해서.”
거듭되는 성영길의 질문에 다시 이태인 광무부 대신이 나서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잔류한 일본인 광산주는 없습니까?”
“모두 떠나고 없더라고요.”
“구도가 간단해서 좋네요. 하하하!”
이태인은 기존 광산 중 대표적인 광산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해가람의 서쪽 산악 지대 깊은 곳에 토요와 광산이란 곳이 있어요. 우리는 이곳을 백리 광산이라 부르죠.”
토요와[豊羽] 광산이 백리 광산이 된 건 이곳 총독부에서 백리, 즉 약 40㎞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직선거리로 재면 총독부에서 약 20㎞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일본인들이 이미 채굴을 시작한 곳이라 진입로나 광부들 편의 시설도 다 갖춰져 있더라고요. 우리는 광부 숙소와 선광 시설을 더 개선하거나 넓히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광물과 인력의 수송을 위한 철도도 놓고.”
“그곳을 콕 짚어 예를 든 이유가 있겠네요? 꽤 중요한 곳인 모양인데.”
역시 눈치가 빠른 성영길이 먼저 뭔가를 알아챈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