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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제4장 캄차카 해역(2)
공군 제6전비 소속 정보 대대 간부는 현장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지도에 표시해 나갔다. 그 간부는 미 해군 선단의 확인된 항로를 실선으로, 지난 시점의 추측 항로와 향후 예측 항로는 점선으로 그렸다. 그래서 크로노 반도와 그 너머 크로노 만의 중간 해역까지는 점선으로 표시되었고, 거기에서 시푼 반도 부근 해역까지 실선으로 그어졌다.
캄차카 동부 지역 중 대한제국의 속령에 해당되는 곳의 반도 지형은 크게 세 개였다. 그중 지신 북쪽에 자리한 뾰족한 형태의 반도를 시푼 반도라 불렀는데, 러시아어의 쉬푼스키(Shipunsky)에서 유래된 명칭이고, 두 번째는 크로노츠키(Kronotsky)인데, 이를 줄여 크로노 반도라 이름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최북단에 있는 엄지반도였다.
“아직 우리 배가 지나다니는 연안 해역까지 들어온 건 아니라 해도…….”
캄차카 부의 총독 겸 해병대 제8사단장을 맡고 있는 경태호 소장은 뚫어져라 지도를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군 제1전대와 공군 제6전투비행단과 더불어 현재 캄차카에 배치된 육상 병력은 해병 제2군단 산하 제8사단이었다.
해군에서 독립한 해병대 또한 총 8개 사단으로 늘어나, 2개 군단 체제로 재편되었다.
남한주에 배치되어 있는 다섯 개 사단이 바로 제1군단이고, 나머지 3개 사단은 모두 해외 영토를 지키는 부대로 제2군단에 속했다. 현재 제2군단을 구성하는 두 개 사단은 은파부를 구성하고 있는 파란도 및 은해도와 중남아 지역 주둔군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제8사단은 북주열도와 캄차카 부를 맡게 되었는데, 사단 사령부는 지신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캄차카 주둔군 부대들이 협의할 일이 많다 보니, 지신의 해병대 사령부에 합동작전본부를 설치했고, 제일 계급이 높은 해병대의 경태호 소장이 군정 총독과 더불어 작전본부의 최고 수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저들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경태호의 질문에 해군 제1전대장 심동우 참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분명 탐색전일 겁니다. 우리가 이곳 캄차카반도를 점유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여기가 우리 영토인 걸 모를 리가 없지요.”
“우리 공군기들과 조우한 직후, 미 해군 함선들이 조금 먼바다 쪽으로 움직이긴 했어도 경로를 볼 때, 분명 연안으로 접근할 태세였어요.”
제6전투비행단의 단장 홍순호 참장도 이견이 없는 모양이었다.
“놈들이 상륙할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경태호의 질문이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침략 행위죠. 그럼 즉시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는 건데, 미국이 설마 그런 선택을…….”
이 자리에 있는 고위 간부들 모두가 도래인 출신이라 현 국제 정세를 너무나 잘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알던 역사의 흐름은 앞으로 모조리 바뀔 게 분명하기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동맹국인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리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려 하는 걸 테고.”
경태호의 추론에 심동우 해군 제1전대장이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그게 아니라 해도 탐색전 정도는 걸어올 수 있죠.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알래스카와 알류산 열도를 따라 태평양을 횡단하는 북쪽 항로 중에 연안 항로가 우리로 인해 차단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으로 가는 경로상에서 기항지가 완전히 없어진 셈이죠.”
“하긴 답답하겠지. 그러니까 그간 알류산 열도 쪽에서 깔짝댔을 거고.”
이들은 미해군 함선들이 미국령 알류산 열도의 서쪽 끝에 있는 에투(Attu) 섬을 거쳐 왔거나 그곳에 배치된 해군 부대일 것이라 확신했다.
“에휴, 이래서 빨리 공군 비행장들을 완성해야 하는 건데.”
홍순호 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신 비행장을 포함해 캄차카 부 지역에서 공군 비행장이 들어설 곳은 모두 네 개였다. 그중 엄지진 비행장은 곧 완공될 예정이고, 그다음 건설 예정지는 바로 인동도(忍冬島)였다. 인동섬은 예전에 베링 섬이라 불린 곳으로, 엄지반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 거리에 있는 섬이다.
대한제국 군부는 이 인동섬 북쪽, 인동진―러시아 지명으로 니콜스코예(Nikolskoe)―지역에 공군기지와 군항을 건설하고, 민간인 거주지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들어설 민간인 거주지는 주로 어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해상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섬은 인동섬이 아니라 그 섬에서 동쪽으로 50㎞ 거리에 자리한 구리섬(메드니, Medny)이다. 하지만 이 섬의 지형이 꽤나 거친데다 환경도 척박해 소수의 알류트 족―알류산 열도에 두루 분포하는 종족―만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 군 기지를 건설하려던 계획은 일찌감치 폐기되고, 해병대 전초부대만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강치―러시아의 프레오브라젠스코예(Preobrazhenskoye)―란 지역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강치는 북방 바다사자를 가리키는 한국어로, 이 지역에 바다사자가 많이 서식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비행장 후보지 중 나머지 한 곳은 지신과 엄지진 중간 지점인 내륙 평원 지대로, 후세에 돌리노프카(Dolinovka)란 작은 러시아 마을이 들어설 곳이었다. 대한제국 측은 이 지역을 임시로 중평(仲坪)이라 이름했다.
“사단장님, 합참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통신 장교가 전문을 들고 와 경태호에게 건넸다.
워낙 시급하고 중요한 사항이라 합동작전본부는 곧바로 문제의 내용을 화룡―화룡에 주요 군 시설과 군 관련 기관이 밀집해 있어 군부와 그 산하기관은 서울로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화룡에 머물기로 결정이 난 상태였다―에 보고했다. 사안의 시급함을 잘 알고 있는 군부는 기대대로 즉시 명령문을 전신으로 타전해 주었다.
“음, 처음 받은 대응 매뉴얼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경태호의 말에 제6전비의 홍순호 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역시 강하게 나가자는 거군요.”
“후후, 그래야지.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틈을 비집고 계속 슬금슬금 파고들 테니까요.”
경태호는 비릿하게 웃더니, 홍순호에게 명령을 전달해 줬다.
“우리 함선들이 다니는 항로를 침범할 경우, 즉시 위협사격을 가해 쫓아내라네요. 그럼에도 불응하고 계속 해안 쪽으로 다가오거나 우리 공군기를 위협하면 곧바로 공격하라고.”
“그럼 대략 해안선에서 50㎞ 거리의 해상이 작전 경계가 되겠군요.”
홍순호 단장의 물음에 경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100㎞까지 잡으래요.”
“음, 쉽지 않겠네요. 우리 전투기들의 작전 반경이 겨우 크로노 만 해상 정도라…….”
지신 비행장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크로노 반도 이북의 해상 초계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북해도의 제11폭격비행단에서 2개 대대를 보내 준다고 하네요.”
“그럼 북해도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심동우 제1전대장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해군은 아직 전력이 약해 작전 중에 늘 공군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북해도를 오가는 민간 상선도 많기 때문에 북해도의 공군 전력을 빼는 건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북해도의 각 비행단마다 대대 하나씩 추가로 즉시 배치될 예정이라. 우리 제6전비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요? 벌써 새로운 전투기 부대의 배치 준비가 끝나 가는 모양이네요.”
공군력 증강 계획에 대해 홍순호 단장이 상기시켜 주자 심동우도 걱정을 거둬들였다.
현재 북해도에 배치되어 있는 공군 부대는 제7전비와 제8전비에, 제11폭격비행단까지 총 세 개였다. 제7전비는 안평(아비라)을 본부 기지로 삼고 지밀(왓카나이)과 마진(하코다테) 비행장도 골고루 활용했다.
전체적으로 북해도에 수직으로 가상의 선을 그어 그 서부에 해당되는 지역이 바로 제7전비, 그 이동 지역이 제8전비의 담당 구역이었다.
제8전비는 휘란(네무로)에 본부를 두되, 수호진(아바시리)과 우루도의 비행장도 관할하에 두어 북해도 동부 지역은 물론, 북주열도 남부 해상까지 작전 대상 지역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해군은 늘 하던 대로…….”
“그럼요. 지금 해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화물선을 호위하는 거니까. 군 기지를 차곡차곡 완성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난 전투비행대대에 이 명령을 즉시 전파하겠습니다.”
지금 내려온 명령부터 즉시 이행해야 하는 공군이었다. 홍순호는 마음이 급한지 먼저 일어났다.
“네, 그러십시오. 미해군 함선이 완전히 물러난 상황이 아니니 서둘러야 할 것 같군요. 그럼 다들 일어나죠.”
경태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를 파했다.
* * *
크로노 반도와 시푼 반도 사이에 자리한 크로노 만 해상.
제116전투비행대대의 이종승 대대장은 대대 전체를 이끌고 다시 이 바다로 날아왔다. 그사이, 다른 두 대대도 교대로 한 번씩 나와 미해군의 함선들을 감시했는데, 다시 그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어? 뭐야? 전달받은 것보다 놈들이 더 들어왔잖아?”
이종승의 말에 제2편대장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지금 항적도 연안 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대장의 말을 듣고 보니 미해군 함선들이 바다에 하얗게 그리고 있는 항적 방향이 연안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종승은 즉시 무전으로 이 사실을 기지에 알렸다. 그러자 기지는 명령받은 바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란 지시를 내려 주었다.
“좋아. 그럼 접근해 보자.”
그는 두 개 편대는 상공을 선회하며 대기하게 하고, 나머지 두 개 편대를 이끌고 함선들을 향해 하강하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망원경을 들어 미군 함선들을 살폈다.
“후후, 갑판 상황이 분주한 걸 보니, 꽤 놀란 모양인데?”
“이렇게 바짝 고도를 낮추고 접근하는 건 처음 봤을 겁니다. 다른 대대들은 공중에서 선회만 했답니다.”
편대장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종승은 다시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자, 우린 여기서 돌자.”
그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기수를 들고 북쪽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그 움직임에 맞춰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편대도 그와 똑같은 동작으로 미군 함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격만 하지 않았지, 축차적으로 공격하는 기동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종승은 다시 미국 함선들의 상황을 살폈다. 미해군 전대의 기함이라 추정되는 전함의 대공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중순양함과 경순양함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종승은 보다 과감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대 전투기들을 인솔해 미해군 선단들의 선미 방향으로 열을 짓게 한 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선들의 진행 방향과 평행하게 비행하며 자신들의 기수 쪽 바다에 위협사격을 가했다.
다시 기수를 들어 올려 상승한 다음, 미국 함선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후후, 좋아. 그래야지.”
미해군 함선들이 동쪽을 향해 대각도로 전타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저런 움직임이라면 돌아가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로 보아야 했다.
“와! 돌아가네.”
“좋았어! 성공했군.”
대대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헬멧에 장착된 무전기를 통해 대원들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해군의 태도가 조심스럽네요. 아직 우리랑 전쟁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제2편대장도 한마디 보탰다.
“그것까진 알 수 없지. 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랑 교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빤하니까, 돌아갈 수밖에 없었겠지.”
“음, 그렇겠군요. 아직 저들의 의도를 읽긴 어렵겠네요.”
이종승은 기지에 귀환하겠다고 알리고 기수를 돌렸다.
공군 제6전비 소속 정보 대대 간부는 현장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지도에 표시해 나갔다. 그 간부는 미 해군 선단의 확인된 항로를 실선으로, 지난 시점의 추측 항로와 향후 예측 항로는 점선으로 그렸다. 그래서 크로노 반도와 그 너머 크로노 만의 중간 해역까지는 점선으로 표시되었고, 거기에서 시푼 반도 부근 해역까지 실선으로 그어졌다.
캄차카 동부 지역 중 대한제국의 속령에 해당되는 곳의 반도 지형은 크게 세 개였다. 그중 지신 북쪽에 자리한 뾰족한 형태의 반도를 시푼 반도라 불렀는데, 러시아어의 쉬푼스키(Shipunsky)에서 유래된 명칭이고, 두 번째는 크로노츠키(Kronotsky)인데, 이를 줄여 크로노 반도라 이름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최북단에 있는 엄지반도였다.
“아직 우리 배가 지나다니는 연안 해역까지 들어온 건 아니라 해도…….”
캄차카 부의 총독 겸 해병대 제8사단장을 맡고 있는 경태호 소장은 뚫어져라 지도를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군 제1전대와 공군 제6전투비행단과 더불어 현재 캄차카에 배치된 육상 병력은 해병 제2군단 산하 제8사단이었다.
해군에서 독립한 해병대 또한 총 8개 사단으로 늘어나, 2개 군단 체제로 재편되었다.
남한주에 배치되어 있는 다섯 개 사단이 바로 제1군단이고, 나머지 3개 사단은 모두 해외 영토를 지키는 부대로 제2군단에 속했다. 현재 제2군단을 구성하는 두 개 사단은 은파부를 구성하고 있는 파란도 및 은해도와 중남아 지역 주둔군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제8사단은 북주열도와 캄차카 부를 맡게 되었는데, 사단 사령부는 지신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캄차카 주둔군 부대들이 협의할 일이 많다 보니, 지신의 해병대 사령부에 합동작전본부를 설치했고, 제일 계급이 높은 해병대의 경태호 소장이 군정 총독과 더불어 작전본부의 최고 수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저들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경태호의 질문에 해군 제1전대장 심동우 참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분명 탐색전일 겁니다. 우리가 이곳 캄차카반도를 점유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여기가 우리 영토인 걸 모를 리가 없지요.”
“우리 공군기들과 조우한 직후, 미 해군 함선들이 조금 먼바다 쪽으로 움직이긴 했어도 경로를 볼 때, 분명 연안으로 접근할 태세였어요.”
제6전투비행단의 단장 홍순호 참장도 이견이 없는 모양이었다.
“놈들이 상륙할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경태호의 질문이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침략 행위죠. 그럼 즉시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는 건데, 미국이 설마 그런 선택을…….”
이 자리에 있는 고위 간부들 모두가 도래인 출신이라 현 국제 정세를 너무나 잘 읽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알던 역사의 흐름은 앞으로 모조리 바뀔 게 분명하기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동맹국인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리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려 하는 걸 테고.”
경태호의 추론에 심동우 해군 제1전대장이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그게 아니라 해도 탐색전 정도는 걸어올 수 있죠.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알래스카와 알류산 열도를 따라 태평양을 횡단하는 북쪽 항로 중에 연안 항로가 우리로 인해 차단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으로 가는 경로상에서 기항지가 완전히 없어진 셈이죠.”
“하긴 답답하겠지. 그러니까 그간 알류산 열도 쪽에서 깔짝댔을 거고.”
이들은 미해군 함선들이 미국령 알류산 열도의 서쪽 끝에 있는 에투(Attu) 섬을 거쳐 왔거나 그곳에 배치된 해군 부대일 것이라 확신했다.
“에휴, 이래서 빨리 공군 비행장들을 완성해야 하는 건데.”
홍순호 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신 비행장을 포함해 캄차카 부 지역에서 공군 비행장이 들어설 곳은 모두 네 개였다. 그중 엄지진 비행장은 곧 완공될 예정이고, 그다음 건설 예정지는 바로 인동도(忍冬島)였다. 인동섬은 예전에 베링 섬이라 불린 곳으로, 엄지반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 거리에 있는 섬이다.
대한제국 군부는 이 인동섬 북쪽, 인동진―러시아 지명으로 니콜스코예(Nikolskoe)―지역에 공군기지와 군항을 건설하고, 민간인 거주지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들어설 민간인 거주지는 주로 어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해상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섬은 인동섬이 아니라 그 섬에서 동쪽으로 50㎞ 거리에 자리한 구리섬(메드니, Medny)이다. 하지만 이 섬의 지형이 꽤나 거친데다 환경도 척박해 소수의 알류트 족―알류산 열도에 두루 분포하는 종족―만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 군 기지를 건설하려던 계획은 일찌감치 폐기되고, 해병대 전초부대만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강치―러시아의 프레오브라젠스코예(Preobrazhenskoye)―란 지역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강치는 북방 바다사자를 가리키는 한국어로, 이 지역에 바다사자가 많이 서식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비행장 후보지 중 나머지 한 곳은 지신과 엄지진 중간 지점인 내륙 평원 지대로, 후세에 돌리노프카(Dolinovka)란 작은 러시아 마을이 들어설 곳이었다. 대한제국 측은 이 지역을 임시로 중평(仲坪)이라 이름했다.
“사단장님, 합참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통신 장교가 전문을 들고 와 경태호에게 건넸다.
워낙 시급하고 중요한 사항이라 합동작전본부는 곧바로 문제의 내용을 화룡―화룡에 주요 군 시설과 군 관련 기관이 밀집해 있어 군부와 그 산하기관은 서울로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화룡에 머물기로 결정이 난 상태였다―에 보고했다. 사안의 시급함을 잘 알고 있는 군부는 기대대로 즉시 명령문을 전신으로 타전해 주었다.
“음, 처음 받은 대응 매뉴얼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경태호의 말에 제6전비의 홍순호 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역시 강하게 나가자는 거군요.”
“후후, 그래야지.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틈을 비집고 계속 슬금슬금 파고들 테니까요.”
경태호는 비릿하게 웃더니, 홍순호에게 명령을 전달해 줬다.
“우리 함선들이 다니는 항로를 침범할 경우, 즉시 위협사격을 가해 쫓아내라네요. 그럼에도 불응하고 계속 해안 쪽으로 다가오거나 우리 공군기를 위협하면 곧바로 공격하라고.”
“그럼 대략 해안선에서 50㎞ 거리의 해상이 작전 경계가 되겠군요.”
홍순호 단장의 물음에 경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100㎞까지 잡으래요.”
“음, 쉽지 않겠네요. 우리 전투기들의 작전 반경이 겨우 크로노 만 해상 정도라…….”
지신 비행장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크로노 반도 이북의 해상 초계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북해도의 제11폭격비행단에서 2개 대대를 보내 준다고 하네요.”
“그럼 북해도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심동우 제1전대장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해군은 아직 전력이 약해 작전 중에 늘 공군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북해도를 오가는 민간 상선도 많기 때문에 북해도의 공군 전력을 빼는 건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북해도의 각 비행단마다 대대 하나씩 추가로 즉시 배치될 예정이라. 우리 제6전비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요? 벌써 새로운 전투기 부대의 배치 준비가 끝나 가는 모양이네요.”
공군력 증강 계획에 대해 홍순호 단장이 상기시켜 주자 심동우도 걱정을 거둬들였다.
현재 북해도에 배치되어 있는 공군 부대는 제7전비와 제8전비에, 제11폭격비행단까지 총 세 개였다. 제7전비는 안평(아비라)을 본부 기지로 삼고 지밀(왓카나이)과 마진(하코다테) 비행장도 골고루 활용했다.
전체적으로 북해도에 수직으로 가상의 선을 그어 그 서부에 해당되는 지역이 바로 제7전비, 그 이동 지역이 제8전비의 담당 구역이었다.
제8전비는 휘란(네무로)에 본부를 두되, 수호진(아바시리)과 우루도의 비행장도 관할하에 두어 북해도 동부 지역은 물론, 북주열도 남부 해상까지 작전 대상 지역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해군은 늘 하던 대로…….”
“그럼요. 지금 해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화물선을 호위하는 거니까. 군 기지를 차곡차곡 완성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난 전투비행대대에 이 명령을 즉시 전파하겠습니다.”
지금 내려온 명령부터 즉시 이행해야 하는 공군이었다. 홍순호는 마음이 급한지 먼저 일어났다.
“네, 그러십시오. 미해군 함선이 완전히 물러난 상황이 아니니 서둘러야 할 것 같군요. 그럼 다들 일어나죠.”
경태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를 파했다.
* * *
크로노 반도와 시푼 반도 사이에 자리한 크로노 만 해상.
제116전투비행대대의 이종승 대대장은 대대 전체를 이끌고 다시 이 바다로 날아왔다. 그사이, 다른 두 대대도 교대로 한 번씩 나와 미해군의 함선들을 감시했는데, 다시 그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어? 뭐야? 전달받은 것보다 놈들이 더 들어왔잖아?”
이종승의 말에 제2편대장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지금 항적도 연안 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대장의 말을 듣고 보니 미해군 함선들이 바다에 하얗게 그리고 있는 항적 방향이 연안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종승은 즉시 무전으로 이 사실을 기지에 알렸다. 그러자 기지는 명령받은 바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란 지시를 내려 주었다.
“좋아. 그럼 접근해 보자.”
그는 두 개 편대는 상공을 선회하며 대기하게 하고, 나머지 두 개 편대를 이끌고 함선들을 향해 하강하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망원경을 들어 미군 함선들을 살폈다.
“후후, 갑판 상황이 분주한 걸 보니, 꽤 놀란 모양인데?”
“이렇게 바짝 고도를 낮추고 접근하는 건 처음 봤을 겁니다. 다른 대대들은 공중에서 선회만 했답니다.”
편대장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종승은 다시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자, 우린 여기서 돌자.”
그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기수를 들고 북쪽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그 움직임에 맞춰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편대도 그와 똑같은 동작으로 미군 함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격만 하지 않았지, 축차적으로 공격하는 기동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종승은 다시 미국 함선들의 상황을 살폈다. 미해군 전대의 기함이라 추정되는 전함의 대공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중순양함과 경순양함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종승은 보다 과감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대 전투기들을 인솔해 미해군 선단들의 선미 방향으로 열을 짓게 한 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선들의 진행 방향과 평행하게 비행하며 자신들의 기수 쪽 바다에 위협사격을 가했다.
다시 기수를 들어 올려 상승한 다음, 미국 함선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후후, 좋아. 그래야지.”
미해군 함선들이 동쪽을 향해 대각도로 전타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저런 움직임이라면 돌아가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로 보아야 했다.
“와! 돌아가네.”
“좋았어! 성공했군.”
대대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헬멧에 장착된 무전기를 통해 대원들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해군의 태도가 조심스럽네요. 아직 우리랑 전쟁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제2편대장도 한마디 보탰다.
“그것까진 알 수 없지. 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랑 교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빤하니까, 돌아갈 수밖에 없었겠지.”
“음, 그렇겠군요. 아직 저들의 의도를 읽긴 어렵겠네요.”
이종승은 기지에 귀환하겠다고 알리고 기수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