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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제4장 캄차카 해역(1)
캄차카 군정의 중심지인 지신(페트로파블로프스크) 지역.
이곳은 천혜의 항구도시로, 북태평양과 연결된 바다인 아바차(Avacha) 만 해역 안쪽에 자리해 있다.
아바차 만은 북태평양에서 들어오는 입구 부분이 매우 좁고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 생겨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지는 바다이다. 만의 입구 부분이 북태평양의 거친 파도로부터 해역 안쪽을 보호하는,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만 안쪽의 직경만 해도 약 20㎞에 달하다 보니, 아바차 만 내에 항구가 들어설 만한 곳이 꽤 많았다. 아울러 풍부한 어족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이 바다는 척박한 캄차카 지역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신항은 아바차 만 안쪽의 깊숙한 곳, 서쪽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지신은 아직 도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한적한 해변가 마을이었다. 러시아의 캄차카 총독부가 있던 곳이라 해도 인구는 고작 1,700명(1913년 기준)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 러시아인들도 대부분 아무르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현재 러시아인 거주지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이곳 또한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해병대와 해군, 공군 병력들과 더불어 직업군인의 가족들이 대거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민간 광산업자들도 드나들며 광산 개발을 위한 사전 탐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 포로 또한 일만 명 정도가 들어와 각종 공사에 투입되었다. 포로들 덕분에 벌써 지신항 증축 공사는 물론, 지신항에서 동남쪽으로 약 11㎞ 떨어진, 아바차 만 입구 쪽에 있는 군항 건설공사와 군항 구역 배후 산악 지대 너머 지역에 있는 공군 비행장도 벌써 완성되었다.
현재 포로들 일부는 지신에 인접한 자보이코(Zavoiko)―후세의 엘리조보(Elizovo)―를 지나, 그 이북의 내륙 쪽으로 나아가는 도로를 계속 건설하고 있고, 일부 인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군 시설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신항 남쪽의 군항 구역의 해변은 산악 지형이라 기울기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그래서 해군 관련 시설은 모두가 구릉지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해군 제1함대 제1전대장인 심동우 참장은 부관과 더불어 산기슭에 자리한 제1전대 본부 건물을 나와 항구가 잘 보이는 둔덕으로 나아갔다.
“언제 봐도 그림이란 말이야.”
군항이 자리한 바비야(Babiya) 만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연안인데도 물색은 파란빛을 띠었다. 아바차 만 해역에 속해 있는 작은 항만인 바비야 만은 산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 더욱 풍광이 수려했다.
현재 제1전대만이라도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서둘러 건설하다 보니 군항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그래도 하역 장비나 석탄과 같은 군수품 보관창고 등 필요한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전대장님, 함대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관은 항만 입구가 있는 북서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북쪽으로 뻗은 반도 지형에 가려져 있던 함선들이 하나둘 뱃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 제때 오는군. 그럼 가 보자고!”
심동우는 항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제1전대는 이곳 지신을 모항으로 삼아 캄차카반도와 그 부속 도서 주변 해역의 경계를 맡았다. 같은 제1함대에 속해 있는 제3전대는 성진항과 북해도의 항구들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일본 해군의 도발에 대비했다.
제31고속정 전대는 북주열도(쿠릴열도)의 대장도 관산진항에 전대본부를 두고, 주로 공군 비행장이 들어선 세 섬을 중심으로 초계 임무를 수행했다. 그 세 섬은 남쪽부터 우루도(우룹, Urup), 마두도(마투아, Matua), 노도(파라무시르, Paramushir)인데, 공군 전투기들의 항속거리를 고려해 선택한 섬들이었다.
이 세 섬에 건설된 비행장은 공군에게 있어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세 섬 이외에 북주열도의 중심지인 남부의 대장도에도 곧 공군 비행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배에서 내린 한강항 함장 배정환 참장이 심동우에게 다가왔다.
“필승! 잘 다녀왔습니다.”
“별일은 없었고?”
“네. 날씨도 도와줘 편하게 항해했죠.”
“거기 공사는 어때?”
“항구 건설이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거고, 공군 비행장은 곧 끝날 겁니다. 적당한 평지만 있으면 비행장 건설이야 어려운 게 아니니.”
“그런데 엄지진이라는 데는 사람이 살 만할 것 같아?”
“그럼요. 자급자족은 힘들어도 필수품만 제때 공급되면 충분히 살 만합니다.”
제1전대는 요즘 들어 이곳 지신과 엄지진을 오가며 건설자재와 장비를 잔뜩 실은 화물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현재 엄지진이란 지역은 캄차카에서 지신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이 진행되는 곳이었다. 해군과 공군은 이 지역을 군사적 요충지로 지정, 군 관련 시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엄지반도와 강 하구 일대를 직할 영토로 포함시켜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엄지진은 캄차카 강 하구 쪽에 자리한,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반도인데, 이곳에 해병대 병영은 물론, 공군 비행장과 해군 군항이 들어서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군 시설을 뒷받침할 민간인 정착촌도 건설하기로 했다. 군인 가족도 여기서 살아가야 하고, 주변 해역에 수산자원이 풍부해 어업 전진기지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날씨도 괜찮다고 했지?”
“그럼요. 여기보다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드는 정도죠. 꽤 북쪽에 있는데도 기후 조건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엄지진은 지신에서 약 450㎞나 더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의 기후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여전하고?”
“에휴,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거기서 그냥 눌러앉겠다고…….”
캄차카 강의 하구 쪽, 엄지진 주변의 지형은 매우 복잡하게 생겼다. 엄지반도 쪽에서 사취가 자라나 강 하구를 거의 막다시피 하는 바람에 엄지반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는데, 항구도 이 호수 안쪽에 자리했다.
이렇듯 어로에 좋은 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인 정착지도 일찌감치 캄차카 강 하구 지역에 생겨났다. 우스트 프리모르스키(Ust―Primorsky)란 마을인데, 훗날 우스트 캄차스크(Ust―Kamchask)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문제는 이 마을이 워낙 저지대에 자리해 있어 언제고 쓰나미나 홍수로 인해 큰 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해군은 이들과 접촉, 이주 지원을 해 줄 테니 안전한 엄지반도 쪽으로 거주지를 옮기라고 권했지만, 다들 듣지 않고 있었다.
“뭐,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인구도 백 명 남짓하고… 차후에 처리하기로 하지.”
쓰나미는 1920년대에 일어날 예정이라 대처할 시간은 충분했다. 러시아 사람이라도 이제 대한제국 국민이 되었으니 군 입장에서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전대장님!”
그때, 영산함 함장을 맡고 있는 홍양순 부령이 잰걸음으로 심동우에게 다가왔다.
홍범도 장군의 아들인 홍양순은 벌써 부령으로 승급, 경순양함(방호순양함)인 영산함의 함장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해군무관학교 1기생들 중에 벌써 함장 직위에 오른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좌진도 역시 부령으로 승진, 제2함대 제2전대의 기함인 전함 압록함의 부함장을 맡았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각 전대의 기함 정도만 도래인 출신의 장성급 장교들이 함장을 맡고 있는 실정이었다.
해군은 편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5천 톤에서 1만 톤 이하의 함선을 중순양함으로, 3천 톤에서 5천 톤 미만의 함선을 경순양함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갑순양함은 중순양함, 방호순양함은 경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심동우에게 다가오는 홍양순의 표정이 다소 무거워 보였다.
“왜?”
“방금 공군 측에서 우리 함으로 연락해 왔습니다. 동북쪽 해상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중 상황이 발생했답니다. 급히 3군 합동 회의를 하자고…….”
“상황?”
어떤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게 무엇인지 명약관화했다. 이들이 캄차카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 * *
제116전투비행대대의 이종승(李鍾乘, 1888년 함경도 북청 출생) 대대장은 오늘도 제1편대기들과 더불어 초계비행에 나섰다. 지신 비행장을 이륙해 근해 지역을 초계하는 임무인데, 제6전투비행단에 속한 세 비행대대들은 3교대로 돌아가며 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
아바차 만을 우측으로 끼고 단숨에 북태평양 해상으로 날아간 그는 탁 트인 바다를 보자 심호흡을 했다. 얼굴에 흔쾌한 기색이 역력한 걸 보면, 그는 이 임무 자체를 꽤나 즐기는 듯했다.
해상 초계 임무 외에 가끔 내륙 지역에 대한 정찰비행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건 주변 지역의 지형을 눈으로 익혀 두기 위한 시험비행에 가까웠다.
물론 바다 쪽도 형편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제6전비가 창설되고 캄차카반도에 배치된 이래 단 한 번도 경계할 만한 대상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전투기의 항속거리가 짧아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이들과 달리 북해도 석우평(후카가와) 비행장에 소속된 제11폭격비행단의 참수리―2 폭격기들이 가끔 파견 나와 먼바다를 대상으로 초계비행을 하면 간혹 알류산 열도 쪽에서 그 움직임을 감지하곤 했다.
그런 상황이라 제6전비 소속의 파일럿들은 이런 초계 임무를 일상적인 비행 훈련 정도라 여겼다. 특히 세 비행대대가 같이 모여 있어, 사흘 단위로 교대해 초계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분위기도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
이종승은 편대원들에게 신호를 하고 기수를 북동쪽으로 틀었다. 그는 중앙평리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이준(李儁)―실제 역사에서 헤이그 밀사로 유명한―의 아들로, 그 역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은 인사였다. 그는 이용(李鏞)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랜만에 타 보는 것 같은 느낌이야.”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이종승은 본격적으로 초계 임무에 들어가기 앞서 가벼운 얘기로 편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제 보라매 전투기들도 상당 부분 개량되어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다. 초기 모델은 모두 공군무관학교와 해군 항공교육대로 보내져 훈련기로 사용되고 있고, 그다음 모델인 ‘보라매―1갑’도 모두 부분적인 성능 개선 작업을 실시해 ‘보라매―1을’형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그 결과, 항속거리도 150㎞가량 향상되어 약 550㎞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조종석에 캐노피를 씌운데다 기체 간 무전 송수신 시스템도 장착해 놓았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각 기체 간, 또 비행단 관제실과 기체 간에 매우 깨끗한 음질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어? 저거, 연기 아닙니까? 두 시 방향.”
편대원 하나가 먼저 함선의 연기를 발견하고 이종승에게 보고했다.
“응? 그렇군. 수평선 너머에 출현했다는 건데…….”
“어떻게 할까요?”
“가 봐야지.”
이종승은 이 상황을 기지에 보고하고 확인 차 항적에 접근하기로 했다.
“아, 전대 하나가 나온 것 같습니다. 방향으로 봐서.”
“그래. 미국 배겠지.”
미국 해군 함선들도 전투기들의 접근을 인지했는지, 대형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다.
“후후, 제법이네. 기함을 보호하는 형태로 보이는데?”
그때, 기지에서 더 이상 접근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돌아가자. 다음 출격을 비번이던 118대대가 맡을 모양이야. 우린 고작 편대 하나니까.”
편대 하나로 뭔가를 해 볼 수는 없었다. 이종승은 미련 없이 기지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캄차카 군정의 중심지인 지신(페트로파블로프스크) 지역.
이곳은 천혜의 항구도시로, 북태평양과 연결된 바다인 아바차(Avacha) 만 해역 안쪽에 자리해 있다.
아바차 만은 북태평양에서 들어오는 입구 부분이 매우 좁고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 생겨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지는 바다이다. 만의 입구 부분이 북태평양의 거친 파도로부터 해역 안쪽을 보호하는,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만 안쪽의 직경만 해도 약 20㎞에 달하다 보니, 아바차 만 내에 항구가 들어설 만한 곳이 꽤 많았다. 아울러 풍부한 어족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이 바다는 척박한 캄차카 지역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신항은 아바차 만 안쪽의 깊숙한 곳, 서쪽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지신은 아직 도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한적한 해변가 마을이었다. 러시아의 캄차카 총독부가 있던 곳이라 해도 인구는 고작 1,700명(1913년 기준)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 러시아인들도 대부분 아무르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현재 러시아인 거주지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이곳 또한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해병대와 해군, 공군 병력들과 더불어 직업군인의 가족들이 대거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민간 광산업자들도 드나들며 광산 개발을 위한 사전 탐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 포로 또한 일만 명 정도가 들어와 각종 공사에 투입되었다. 포로들 덕분에 벌써 지신항 증축 공사는 물론, 지신항에서 동남쪽으로 약 11㎞ 떨어진, 아바차 만 입구 쪽에 있는 군항 건설공사와 군항 구역 배후 산악 지대 너머 지역에 있는 공군 비행장도 벌써 완성되었다.
현재 포로들 일부는 지신에 인접한 자보이코(Zavoiko)―후세의 엘리조보(Elizovo)―를 지나, 그 이북의 내륙 쪽으로 나아가는 도로를 계속 건설하고 있고, 일부 인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군 시설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신항 남쪽의 군항 구역의 해변은 산악 지형이라 기울기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그래서 해군 관련 시설은 모두가 구릉지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해군 제1함대 제1전대장인 심동우 참장은 부관과 더불어 산기슭에 자리한 제1전대 본부 건물을 나와 항구가 잘 보이는 둔덕으로 나아갔다.
“언제 봐도 그림이란 말이야.”
군항이 자리한 바비야(Babiya) 만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연안인데도 물색은 파란빛을 띠었다. 아바차 만 해역에 속해 있는 작은 항만인 바비야 만은 산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 더욱 풍광이 수려했다.
현재 제1전대만이라도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서둘러 건설하다 보니 군항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그래도 하역 장비나 석탄과 같은 군수품 보관창고 등 필요한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전대장님, 함대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관은 항만 입구가 있는 북서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북쪽으로 뻗은 반도 지형에 가려져 있던 함선들이 하나둘 뱃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 제때 오는군. 그럼 가 보자고!”
심동우는 항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제1전대는 이곳 지신을 모항으로 삼아 캄차카반도와 그 부속 도서 주변 해역의 경계를 맡았다. 같은 제1함대에 속해 있는 제3전대는 성진항과 북해도의 항구들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일본 해군의 도발에 대비했다.
제31고속정 전대는 북주열도(쿠릴열도)의 대장도 관산진항에 전대본부를 두고, 주로 공군 비행장이 들어선 세 섬을 중심으로 초계 임무를 수행했다. 그 세 섬은 남쪽부터 우루도(우룹, Urup), 마두도(마투아, Matua), 노도(파라무시르, Paramushir)인데, 공군 전투기들의 항속거리를 고려해 선택한 섬들이었다.
이 세 섬에 건설된 비행장은 공군에게 있어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세 섬 이외에 북주열도의 중심지인 남부의 대장도에도 곧 공군 비행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배에서 내린 한강항 함장 배정환 참장이 심동우에게 다가왔다.
“필승! 잘 다녀왔습니다.”
“별일은 없었고?”
“네. 날씨도 도와줘 편하게 항해했죠.”
“거기 공사는 어때?”
“항구 건설이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거고, 공군 비행장은 곧 끝날 겁니다. 적당한 평지만 있으면 비행장 건설이야 어려운 게 아니니.”
“그런데 엄지진이라는 데는 사람이 살 만할 것 같아?”
“그럼요. 자급자족은 힘들어도 필수품만 제때 공급되면 충분히 살 만합니다.”
제1전대는 요즘 들어 이곳 지신과 엄지진을 오가며 건설자재와 장비를 잔뜩 실은 화물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현재 엄지진이란 지역은 캄차카에서 지신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이 진행되는 곳이었다. 해군과 공군은 이 지역을 군사적 요충지로 지정, 군 관련 시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엄지반도와 강 하구 일대를 직할 영토로 포함시켜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엄지진은 캄차카 강 하구 쪽에 자리한,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반도인데, 이곳에 해병대 병영은 물론, 공군 비행장과 해군 군항이 들어서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군 시설을 뒷받침할 민간인 정착촌도 건설하기로 했다. 군인 가족도 여기서 살아가야 하고, 주변 해역에 수산자원이 풍부해 어업 전진기지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날씨도 괜찮다고 했지?”
“그럼요. 여기보다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드는 정도죠. 꽤 북쪽에 있는데도 기후 조건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엄지진은 지신에서 약 450㎞나 더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의 기후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여전하고?”
“에휴,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거기서 그냥 눌러앉겠다고…….”
캄차카 강의 하구 쪽, 엄지진 주변의 지형은 매우 복잡하게 생겼다. 엄지반도 쪽에서 사취가 자라나 강 하구를 거의 막다시피 하는 바람에 엄지반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는데, 항구도 이 호수 안쪽에 자리했다.
이렇듯 어로에 좋은 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인 정착지도 일찌감치 캄차카 강 하구 지역에 생겨났다. 우스트 프리모르스키(Ust―Primorsky)란 마을인데, 훗날 우스트 캄차스크(Ust―Kamchask)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문제는 이 마을이 워낙 저지대에 자리해 있어 언제고 쓰나미나 홍수로 인해 큰 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해군은 이들과 접촉, 이주 지원을 해 줄 테니 안전한 엄지반도 쪽으로 거주지를 옮기라고 권했지만, 다들 듣지 않고 있었다.
“뭐,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인구도 백 명 남짓하고… 차후에 처리하기로 하지.”
쓰나미는 1920년대에 일어날 예정이라 대처할 시간은 충분했다. 러시아 사람이라도 이제 대한제국 국민이 되었으니 군 입장에서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전대장님!”
그때, 영산함 함장을 맡고 있는 홍양순 부령이 잰걸음으로 심동우에게 다가왔다.
홍범도 장군의 아들인 홍양순은 벌써 부령으로 승급, 경순양함(방호순양함)인 영산함의 함장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해군무관학교 1기생들 중에 벌써 함장 직위에 오른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좌진도 역시 부령으로 승진, 제2함대 제2전대의 기함인 전함 압록함의 부함장을 맡았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각 전대의 기함 정도만 도래인 출신의 장성급 장교들이 함장을 맡고 있는 실정이었다.
해군은 편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5천 톤에서 1만 톤 이하의 함선을 중순양함으로, 3천 톤에서 5천 톤 미만의 함선을 경순양함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갑순양함은 중순양함, 방호순양함은 경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심동우에게 다가오는 홍양순의 표정이 다소 무거워 보였다.
“왜?”
“방금 공군 측에서 우리 함으로 연락해 왔습니다. 동북쪽 해상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중 상황이 발생했답니다. 급히 3군 합동 회의를 하자고…….”
“상황?”
어떤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게 무엇인지 명약관화했다. 이들이 캄차카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 * *
제116전투비행대대의 이종승(李鍾乘, 1888년 함경도 북청 출생) 대대장은 오늘도 제1편대기들과 더불어 초계비행에 나섰다. 지신 비행장을 이륙해 근해 지역을 초계하는 임무인데, 제6전투비행단에 속한 세 비행대대들은 3교대로 돌아가며 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
아바차 만을 우측으로 끼고 단숨에 북태평양 해상으로 날아간 그는 탁 트인 바다를 보자 심호흡을 했다. 얼굴에 흔쾌한 기색이 역력한 걸 보면, 그는 이 임무 자체를 꽤나 즐기는 듯했다.
해상 초계 임무 외에 가끔 내륙 지역에 대한 정찰비행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건 주변 지역의 지형을 눈으로 익혀 두기 위한 시험비행에 가까웠다.
물론 바다 쪽도 형편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제6전비가 창설되고 캄차카반도에 배치된 이래 단 한 번도 경계할 만한 대상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전투기의 항속거리가 짧아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이들과 달리 북해도 석우평(후카가와) 비행장에 소속된 제11폭격비행단의 참수리―2 폭격기들이 가끔 파견 나와 먼바다를 대상으로 초계비행을 하면 간혹 알류산 열도 쪽에서 그 움직임을 감지하곤 했다.
그런 상황이라 제6전비 소속의 파일럿들은 이런 초계 임무를 일상적인 비행 훈련 정도라 여겼다. 특히 세 비행대대가 같이 모여 있어, 사흘 단위로 교대해 초계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분위기도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
이종승은 편대원들에게 신호를 하고 기수를 북동쪽으로 틀었다. 그는 중앙평리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이준(李儁)―실제 역사에서 헤이그 밀사로 유명한―의 아들로, 그 역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은 인사였다. 그는 이용(李鏞)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랜만에 타 보는 것 같은 느낌이야.”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이종승은 본격적으로 초계 임무에 들어가기 앞서 가벼운 얘기로 편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제 보라매 전투기들도 상당 부분 개량되어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다. 초기 모델은 모두 공군무관학교와 해군 항공교육대로 보내져 훈련기로 사용되고 있고, 그다음 모델인 ‘보라매―1갑’도 모두 부분적인 성능 개선 작업을 실시해 ‘보라매―1을’형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그 결과, 항속거리도 150㎞가량 향상되어 약 550㎞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조종석에 캐노피를 씌운데다 기체 간 무전 송수신 시스템도 장착해 놓았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각 기체 간, 또 비행단 관제실과 기체 간에 매우 깨끗한 음질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어? 저거, 연기 아닙니까? 두 시 방향.”
편대원 하나가 먼저 함선의 연기를 발견하고 이종승에게 보고했다.
“응? 그렇군. 수평선 너머에 출현했다는 건데…….”
“어떻게 할까요?”
“가 봐야지.”
이종승은 이 상황을 기지에 보고하고 확인 차 항적에 접근하기로 했다.
“아, 전대 하나가 나온 것 같습니다. 방향으로 봐서.”
“그래. 미국 배겠지.”
미국 해군 함선들도 전투기들의 접근을 인지했는지, 대형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다.
“후후, 제법이네. 기함을 보호하는 형태로 보이는데?”
그때, 기지에서 더 이상 접근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돌아가자. 다음 출격을 비번이던 118대대가 맡을 모양이야. 우린 고작 편대 하나니까.”
편대 하나로 뭔가를 해 볼 수는 없었다. 이종승은 미련 없이 기지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