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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제3장 라온달 금광(4)



라온달 광산의 광부 숙소와 광업소 건물은 매우 비좁은 계곡의 양쪽 기슭에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광부들은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꽤 위태로운 모습으로 가파른 길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역시 이곳은 마을이 들어설 만한 곳이 아니네. 이렇게 비좁아서야…….”

성영길은 보기만 해도 답답한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이 계곡 형태의 지형은 라온달항의 동남쪽 바다로 흘러나가는 모베츠 강의 상류에 해당되는 작은 물줄기가 만든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을 향해 광산 관리자들이 다가와 이들을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이들이 북해도를 찾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라온달 광산의 개업식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대한광업공사 측은 일찌감치 강제 노역형이 확정된 병급 부역자 죄수들을 끌고 와서 광산을 개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 왔다. 푸실에서 라온달 광산까지 철도를 놓는 일은 물론, 광부 숙소를 짓고, 광구까지 진입로를 내고, 철도 레일을 까는 일도 그간 이들이 한 일이었다.

그사이, 광업소 측은 광산 주변 계곡에 선광장과 제련소도 건설해 두었다. 이 일이 모두 끝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갱도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행사는 간단히 끝났고, 행사에 동원된 광부들은 숙소로 들어갔다. 오늘은 이들에게 휴식을 부여함은 물론, 술과 고기도 내줄 것이라 했다.

“강제 노역을 하는 사람들치고 표정이 그리 어둡지는 않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영길이 현장 책임자에게 질문했다.

“굶지 말라고 소정의 급여를 제공하고 있으니, 완전한 강제 노역도 아닙니다. 가족들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다, 가구마다 넓진 않지만 먹고사는 데 충분할 정도의 농토도 제공했으니 걱정할 게 없죠. 이 정도면 죄수치고 호강하는 셈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수형자 광부들이 받는 월급은 4원 정도였다. 대한제국의 하급 공무원 초임이 15원, 기업체 직원은 10∼12원이고, 일반 광부는 18∼25원을 받는 상황이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 광부의 월급은 다른 직업에 비해 꽤 많은 편이었다. 특히 노동환경이 가장 열악한 탄광의 경우 25원까지 올라갔다. 그렇기 때문에 민영 광업소들은 러시아인이나 청국인과 같은 외국인, 혹은 아직 주민등록이 안 된 일본인 광부를 선호했다.

물론 이들도 10원 이상 주어야 고용할 수 있다. 광산 업체가 늘어나면서 임금 수준이 가파르게 상승한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노역자들이 받는 4원은 결코 큰 금액은 아니나, 기본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은 되기 때문에 강제 노역자란 처지를 감안하면 적은 액수도 아니었다.

“하하, 어쨌든 기분이 좋네요. 운산과 대유동 금광의 금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재정에 숨통이 좀 트였는데, 북해도의 두 광산에서 금이 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도움이 되겠네요. 요즘 이주민 정책에 관련된 예산이나 해군력 증강 사업 때문에 돈이 왕창 빠져나가고 있잖아요?”

“그러니 더 열심히 금광을 개발해야죠. 앞으로 개발할 금광은 지천으로 널려 있어요. 민간 기업들도 뛰어들었으니, 앞으로 볼만할 겁니다. 외국 금광 개발에 대한 투자도 그렇고.”

라온달 광산의 모습을 직접 확인해서 그런지, 세 사람의 표정은 날아갈 듯 가벼워 보였다.



* * *



북사할린의 중심 도시인 서평(瑞坪, 포로나이스크)은 항구도시이다. 사할린 강(포로나이 강) 하구에 건설된 항만이 북사할린 지역의 해상 관문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 측은 포로나이 강이 사할린에서 가장 큰 강 중의 하나라, 아예 ‘사할린 강’이란 명칭을 부여했다. 아울러 남사할린 한복판을 흐르는 수수야 강의 경우, 음을 그대로 살려 ‘수수’강이라 불렀다.

날이 풀려 오호츠크해가 해빙되자 서평항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죄수와 그 가족들이 배를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평 지역의 책임을 맡고 있는 육군 제12사단 산하 제48연대장 백보용(白普鏞) 정령은 서평항(瑞坪港)에 직접 나와 사람들이 하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12사단은 사할린을 담당하는 부대로, 남부에 사령부와 제39연대가, 중부에 제42연대, 북부에 제45연대와 48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북부의 2개 연대 중 제45연대는 광곡(티몹스코예)에 본부를 두고 그 이북 지역, 특히 아무르 공화국 영토와 가까운, 포히비와 같은 타타르해협의 해안 지대에 배치되었다.

현재 대한제국 육군은 총 23개 사단과 서울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는 1개의 근위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년 전에 비해 네 개 사단이 더 늘어난 셈이다.

육군 측은 이들을 6개 군단으로 편성했다. 그래서 제1군단은 남한주, 제2군단은 산동반도의 위영도를 포함한 한북주, 북서부군이란 별칭이 붙은 제3군단은 연서주와 동몽골주, 대흥주, 송강주에 배치되었다.

북동부군이라 불리고 있는 제4군단은 간도주와 화정주, 연해주를 담당했고, 북해도는 제5군단의 몫이었다. 그리고 티베트를 비롯해 카자흐 왕국의 아랄스크, 세미팔라딘스크, 동북아연맹의 하카스와 쿨툭 등지에 파병 나가 있는 부대들을 모두 제6군단으로 묶어 놓았다.

이들 중 연해주에 속하게 된, 사할린을 담당하고 있는 부대는 당연히 제4군단이었다. 연해주 지역 전체는 이미 민정으로 이양되어 최재형(崔在亨) 주지사가 부임해 행정을 이끌고 있지만, 연해주에 속한 사할린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보다 이민족이 많아 여전히 군정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강제 노역형을 받은 을급 부역자 죄수와 그 가족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면서 군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이번에 오는 죄수들 중에 탄광으로 갈 자들도 있다고 했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백보용 연대장과 부관은 부쩍 부산해진 부두 쪽 풍경을 보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음, 이번엔 이주민도 꽤 많이 들어왔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죠. 이런 오지에 와서 개척을 하겠다니.”

백보용과 같은 고위급 군 간부도 사할린으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의 정체에 대해 아직 잘 몰랐다. 그저 좋은 조건으로 들어오는 일반 이주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관리해야 할 강제 노역을 하는 죄수들에 대한 정보는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이들을 직접 인솔해 온 내부 소속 관리들에 의해 모두 세 무리로 분류되었다. 이들 중 죄수는 두 무리로 나눠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무리가 바로 가족들인데, 죄수와 그의 가족들을 한 배에 태우지 않는 원칙 덕분에 항구에서 사람들이 엉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이, 거기! 입 다물어!”

“야! 빨리 좀 움직여라!”

“저걸 확! 어디 눈을 흘겨?”

관리를 돕고 있는 병사들의 입담은 꽤나 거칠었다. 하도 험악해 손찌검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

을급 부역자도 꽤나 죄질이 안 좋은 자들이란 걸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사형당해도 마땅한 자들인데, 정부가 물러 터져서 살려 두는 것이라 수군대던 터였다.

내부 관리 하나가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 그에게 다가오더니 명단을 건넸다.

“음, 탄광과 금광이 반반이군요.”

“그렇습니다. 다음 배엔 더 많이 타고 올 겁니다.”

“탄광 갈 자들이?”

“네.”

현재 북사할린 지역에서 제1호 탄광으로 개발되고 있는 곳은 형안 탄광이었다. 탄광이 자리한 형안군(炯岸郡)은 서평 남쪽 약 30㎞ 지점에 있는 해안가 지방으로 일본식 이름은 토마리기시[泊岸]인데, 훗날 러시아에 의해 레르몬토브카(Lermontovka)의 바흐루셰프(Vakhrushev) 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정부는 형안 탄광을 개발함은 물론, 화력발전소도 그곳에 세울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오는 석탄으로 서평과 그 주변 거주지의 난방과 전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제12사단 병력은 내륙 영토에서 노역을 하다 이곳으로 이동해 온 일본군 포로를 관리하는 일도 맡았다. 대한제국 측은 바다 건너 영토가 크게 늘어나자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지역 영토를 ‘내륙’ 영토라 했고, 그 이외에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땅을 ‘해외’ 영토라 구분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포로들은 2년간 사할린 곳곳에서 도로와 철도 공사를 담당해 왔는데, 북사할린 지역의 경우 형안에서 서평, 광곡에 이르는 구간의 도로 공사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특히 철도도 일부 구간이 개통되었다. 바로 서평에서 형안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현재 포로들은 광곡에서 서부 해안가 거점 지역인 현의군(알렉산드롭스키)까지 연결되는, 약 60㎞에 이르는 구간의 도로 공사에 투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도로가 건설되어야 사할린 북서부 해안 지역에 대한 군 보급로가 뚫리게 된다.

현재 현의군(玄義郡)의 인구는 이천 정도인데, 그 구성원 대부분은 일본인이고, 소수의 러시아인도 있었다. 원래 오천을 넘는 꽤 큰 도시였는데, 대한제국이 점령한 이후 삼천가량의 주민들이 아무르 공화국과 일본으로 각기 돌아갔다.

현의군은 그 이북의 므가치(Mgachi) 지역과 더불어 석탄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므가치 탄광의 경우, 이미 1907년부터 러시아 측에 의해 채굴이 시작되었을 정도로 일찍 발견된 곳이다. 하지만 역사가 바뀌어 사할린 전체가 잠시 일본 영토가 되는 바람에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후, 그럼 저 탄광으로 갈 자들은 죄질이 제일 나쁜 자들이겠네요?”

백보용의 질문에 내부 관리 또한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을 중에서도 가급 부역자들이죠. 감형 없는 종신 노역형을 받은 자들.”

특급이나 갑급 죄수들은 모두 사형당했거나 당할 예정이기 때문에 살아서 형벌을 받는 이들 중 가장 중벌에 처해진 게 바로 이들이었다.

“어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네요.”

“끔찍하죠. 하지만 정부는 저들의 건강을 관리해 주고, 약간의 노임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일할 맛도 날 테고, 자진할 생각도 하지 않겠죠.”

관리의 말대로 이들의 건강을 위해 안전 장비와 고성능 마스크 등을 지급하고, 탄광 노동 기간도 3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기간이 끝나면 다른 종류의 노역을 하게 된다.

“좋은 정책이네요. 빨리 죽으면 종신 노역형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관리는 다른 죄수 무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에 비해 금광 쪽으로 갈 자들은 한 등급 낮은 자들입니다. 한결 좋은 조건으로.”

현재 사할린에서 개발되고 있는 금광은 후세 러시아의 페르보마이스크(Pervomaysk)란 지역에 있는데, 대한제국 측은 이곳을 ‘금곡’이라 불렀다. 금곡 지역은 서평과 광곡 중간 지점에서 동부 산악 지대로 약간 들어간 곳에 자리해 있었다.

서평―광곡 간 간선도로의 중간 지점에서 금곡까지 약 30㎞에 이르는 진입로 또한 이미 완성되어 있어, 장비와 관리자 및 엔지니어들은 이미 들어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금곡 금광 역시 정부 소유 광산이었다.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관리 문제 때문에 민간에 넘겨줄 수 없었다.

“그럼 저 이주민들은 어느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까?”

“광곡 남부 지역이죠. 금광 진입로 분기점 주변의… 또 일부는 형안으로 가죠. 탄광 동쪽의 해안 평야 지대도 꽤 넓지 않습니까? 고깃배가 있으면 어로도 가능한 곳이죠.”

“역시…….”

백보용은 예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자들 대부분은 광곡에서 서평에 이르는 북사할린 대평원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사할린 강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저지대 벌판이 바로 그 이주 대상지였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인 탄광 노역자 가족은 형안에 정착할 예정이었다.

백보용은 이런 속사정을 모른 채 그저 광산 배후 지역을 개발할 생각이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이주민들은 캄차카반도 지역처럼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게 될 예정이라, 목축용 사료 식물을 주로 재배하게 된다. 물론 감자와 채소류, 호밀과 귀리의 재배도 가능하다고 한다. 남사할린의 기후 조건은 이곳보다 훨씬 더 좋아 이들 작물에 더해 밀과 보리농사도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음, 탄광에 배정된 자들은 벌써 떠날 준비를 하는군요.”

백보용의 말대로 세 무리 중 하나가 줄을 지어 항구 역내에 대기하고 있던 기차로 다가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