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제3장 라온달 금광(3)
호서강(유베츠 강)이 남서쪽의 산간 계곡 지역을 빠져나와 해안 평야 지대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산둘레구였다. 그래서 이름도 ‘산의 가장자리’란 말뜻을 가진 ‘산둘레’라 지은 것이다.
일행은 산둘레역에서 열차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철도가 지나는 곳은 계곡 지형인데, 꽤 넓어 보였다.
“이곳에도 벌써 정착촌이 들어섰네요?”
“그렇습니다. 정착민들은 이곳에 마들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산둘레 남쪽에 있는 들이라 해서 남쪽을 뜻하는 순우리말 ‘마’와 들판의 ‘들’을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행정구역도 마들면이 되었죠.”
“아, 그래서 마들이라고…….”
“네. 다들 이주 농민들인데, 소수의 일본인도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죠.”
호서군청에서 나온 군 장교가 다시 일행의 안내를 맡아 대신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호서강이 만든 이 계곡 분지는 그 가로 폭이 약 3㎞ 정도이고, 다음 협곡 지형까지 거리가 약 12㎞에 달하는, 길쭉한 타원형의 평야 지대였다. 그래서 이곳에도 한국인 정착촌이 들어선 것이다.
사실 지금 지나고 있는 농촌 마을의 구성원은 바로 병급 부역자의 가족들이었다. 북해도 동북부 지역의 농촌 주민 상당수가 그랬다. 이들과 달리 북해도로 이주한 모든 어민은 자발적인 이주자들이었다.
“오, 그래요? 서로 잘 지내나요?”
성영길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각기 떨어져 살고 있어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뭐, 아직까지 싸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인 농민들은 우리 군정에 잘 협조해 주고 있는 편입니다. 주민등록도 모두 마쳤고요.”
“크크, 내 그럴 줄 알았지.”
성영길은 예상한 결과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부 관료들은 북해도의 민심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빠르게 안정될 것이란 전제하에 정책을 수립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실상 주민들도 전쟁 포로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저들의 문화적 습성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이들을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정책을 펼치자 북해도에 잔류한 일본인들은 군말 없이 따라왔다.
피점령지의 국민으로서 큰 고초를 겪을 걸 각오하고 잔류했는데, 대한제국 정부는 그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고, 근거만 제시하면 재산의 소유권도 모두 인정해 주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들면 지역을 지난 열차는 다소 좁은 계곡 지형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관문과 같은 골짜기를 빠져나오자 또다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일 정도로 넓은 평야 지대가 나타났다. 열차는 그 계곡을 빠져나오자마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푸실이란 곳입니다.”
푸실역은 호서강과 그 강의 지류인 푸실천(이쿠타하라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 두 물줄기가 만든 삼각형 형태의 너른 평야 지대가 모두 푸실면에 속했다. 이곳은 후세 일본의 엔가루 정[遠輕町]이란 곳이었다.
“어때요?”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성영길에게 물었다.
“와우, 놀랍네요. 꽤 커 보이는데요? 건물들 상태도 나쁘지 않군요. 완전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럼요. 여긴 대표적인 광업도시로, 최소 60년간 성세를 누리게 될 곳입니다. 그래서 면밀히 도시계획을 수립했죠.”
그는 손을 들어 호서강과 푸실천의 상류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농지가 조성되고 있죠. 그리고 여기 푸실 분지의 중앙부는 모두가 거주지와 상업지구이고.”
“음, 그런데 거주 구역에 단독 주택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네요?”
“다들 광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물론 정부가 무상으로 준 집이죠.”
“그럼 토지소유권은…….”
“토지에 대한 권한은 없습니다. 건물만 소유권을 주었죠. 농토는 가구별로 조금씩 배당해 줬습니다. 저 두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배분해 줄 만한 농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 중심부는 인구 밀집 지역이 될 곳이라 함부로 나눠 줄 수가 없죠. 게다가…….”
남이 들을세라 이태인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저들도 어쨌든 죄수 가족이라 그거죠?”
성영길의 목소리도 소곤거리듯 작아졌다.
“그렇습니다. 다들 형량의 차이는 있지만 병급 부역자 가족들이라…….”
“먹고살려면 나머지 가족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겠네요. 응? 그런데 여긴 벌써 전기가 들어왔네?”
성영길은 전봇대를 가리켰다.
“임시로 여기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가온주의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왔어요. 광산에서 쓸 전기도 필요해서.”
“가온주에서요?”
“후후, 이래서 북해도 개발을 서둘러 착수하게 된 거죠.”
성영길의 궁금증을 손영일이 대신 해소시켜 주었다.
“현재 북해도 전체의 화력발전소 수는 무려 열 개나 됩니다. 수력발전소도 세 개나 있고요. 모두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거죠.”
“와, 대단하네요. 그럼 웬만한 도시에 다 있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손영일은 화력발전소가 있는 도시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해가람으로 이름이 바뀐 삿포로를 비롯해…….”
북해중도(北海中道) 지역의 경우, 해가람과 즈문주(지토세), 미란(무로란), 서창포(오타루), 윤슬포(루모이), 숭례(도마코마이) 등 총 여섯 곳, 북해남도 지역은 마진(하코다테), 북해북도는 가온주(아사히카와), 북해동도는 흥인(구시로)과 휘란(네무로), 이렇게 두 곳이 화력발전소를 보유한 도시였다.
수력발전소는 해가람과 마진 및 마진 북쪽에 인접한 오미―나나에 촌[七飯村町]의 오누마[大沼] 지역―에 건설되어 있었다.
“기존 화력발전소 규모를 조금 더 키우고, 최북단의 지밀과 라온달 정도에 발전소를 신설하면 북해도의 전력망은 어느 정도 완비된다고 봐야죠. 그래서 두 곳 다 곧 착공할 겁니다.”
손영일은 지밀 주변에 꽤 넓게 분포하고 있는 갈탄광을 개발해 화력발전소를 돌릴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수호진(아바시리)까지 연결되는 동북해안 철도 노선의 부설이 마무리될 시기에 즈음하여 라온달 발전소도 완공되어 남쪽의 흥인(구시로) 탄전 지대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석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 *
행정구역상 호서군이 아닌, 라온달군에 속해 ‘라온달 금광’이라 이름 붙인 이 광산 지역은 푸실에서 서북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정부는 이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이곳까지 서둘러 철도를 부설했다. 그 덕분에 광부들은 평소에 광산 주변의 광부 숙소에서 기거하며 일을 하다 휴식일을 맞으면 열차를 타고 푸실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곤 했다.
“와, 광부 숙소도 완비되어 있네? 상점들도 벌써 들어섰고?”
광산에 도착하자 성영길이 가장 즐거워했다. 드디어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한 그 전설의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태인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얘기했다.
“여기 원 이름이 뭔지는 알고 있어요?”
“알죠. 고노마이 아닙니까.”
이 광산의 일본식 이름은 고노마이[鴻之舞]였다. 원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일본은 1915년, 즉 내년에나 이 금광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광산은 동해 바다에 떠 있는 섬인 사도[佐渡] 광산이었다.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400년간 이 광산에서 금을 캤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광산이 바로 이 고노마이 광산이었다.
금이 고갈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이 금광상에 속한 여러 광구들이 속속 폐광되었지만, 채광이 시작된 이래 100톤가량 금을 캐냈다고 한다. 매장량으로 보면 평안도의 운산 광산에 훨씬 미치지 못하나, 생산성이 좋은 초대형 광산임에 분명했다.
“여긴 금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은 산출량도 어마어마하고, 덩달아 구리도 나온다고 합니다.”
“하하,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요.”
성영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제 유럽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면 대(對) 유럽 수출 실적은 크게 줄어들 게 분명했다. 대한제국은 당분간 동아시아 시장의 개척에 주력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금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았다.
이태인은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부 권역 중 이곳 이외에 숙정군에도 꽤 괜찮은 금광이 있죠. 그곳 역시 민간에 개발을 맡길 생각입니다.”
“숙정군이요?”
“네. 거기에 우타노보리 광산이 있어요. 이곳도 1929년에나 발견되는 곳입니다.”
우타노보리[歌登] 광산이 있는 숙정군(肅靖郡)은 일본 지명으로 에사시 촌[枝幸村]을 말하는데, 라온달에서 서북쪽으로 약 90㎞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이곳 역시 북해도의 동북 해안 지대에 자리해 있다.
대한제국 측은 북해도의 영구적인 영토화 작업의 일환으로 북해도의 도시에 한양 도성의 4대문 이름을 상징적으로 붙였다. 그래서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의 이름이 북도 지역의 에사시 촌에 붙은 것이다.
그 외에 동도의 구시로가 흥인, 즉 동대문에 해당하는 이름이 붙고, 중도의 남부 해안 지대에 자리한 도맛코마이에 남대문에 해당하는 이름인 ‘숭례’를, 남도 서남부의 에사시[江差]란 곳에 서대문에 해당하는 ‘돈의’란 이름을 부여했다.
그에 더해 북해도 최대의 평야 지대이자 쌀농사 지역인 이시카리 평야 중앙부의 에베츠[江別]―삿포로 동쪽에 붙어 있는 도시―를 보신(普信)이라 명명했다.
“숙정 바로 북쪽에 붙은 후세의 하마톤베츠란 곳에도 꽤 오래전에 발견된, 우소탄나이란 사금광이 있어요. 이곳 역시 민간에 넘길 예정입니다. 우린 그곳을 수풍군이라 이름했습니다.”
하마톤베츠 지방에 쌍둥이 호수인 굿차로 호가 있는데,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호’란 이름을 붙였다. 이 장구호에서 바다로 흘러나가는 물줄기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큰 강인 돈베츠 강이 하구 지역에서 합류하게 된다. 이처럼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 수풍군이라 개칭한 것이었다.
“오호, 알고 보니 북해도 동북부 지역 전체가 효자 동네였네요.”
“응? 원래 여기부터 개발하자고 한 분이 탁지부대신 아니었어요?”
“에이, 돈이나 셀 줄 하는 제가 뭘 알겠어요. 여기가 낙후된 곳이니까 그저 광산이라도 찾고, 그걸 빌미로 개발에 착수하자는 뜻이었죠.”
“하하하하, 다들 완전히 속았네요. 평소 워낙 명민한 분이라 북해도의 광물자원 현황까지 훤히 꿰고 있는 줄 알았죠.”
“에효, 금융 시스템에서 조세, 예산 문제까지…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하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북해남도 쪽이나 중도의 해가람 쪽 상황을 들어 보면 더 놀라실 텐데.”
“아니, 거기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영일 공상부대신이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요긴하게 쓸 만한 산업 시설들이 통째로 우리 수중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 얘길 듣긴 했는데…….”
“하하, 탁지부대신의 관심사는 오로지 황금에 가 있는 모양입니다?”
성영길이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태인이 다시 받았다.
“혹시 테이네 광산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테이네? 금시초문인데요?”
“해가람 근처에서 발견된 금광상인데, 거기도 매장량이 어마어마해요. 한때 일본에서 전체 2위에 해당될 정도의 산출량을 기록하기도 했죠.”
실제로 테이네 광산은 고노마이 광산 다음으로 금 산출량이 많은 광산이었다.
“헉! 그럼 일본 내 1위와 2위 금광이 북해도에 다 있단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태인은 해가람 금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테이네 광산[手稲鑛山]은 삿포로 경내 남부 야산에 자리한 금광상으로, 이미 일본 측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아직 미개발 상태였다. 이곳은 금 이외에 구리도 많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인데, 지금은 대한제국에 의해 ‘해가람 금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기 말고도 이미 개발된 광산이나 앞으로 개발할 광산이 꽤 많습니다. 즈믄주에 하나 있고, 미란 지역에도 여러 곳이 있어요. 이들 중에 해가람 광산만 우리 광업공사가 직영하고 나머지들 역시 민간에 개발권을 나눠 줄 겁니다.”
금 소식이 그렇게 듣기 좋은지, 성영길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는 이태인의 설명을 듣는 내내 바보처럼 헤실거렸다.
호서강(유베츠 강)이 남서쪽의 산간 계곡 지역을 빠져나와 해안 평야 지대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산둘레구였다. 그래서 이름도 ‘산의 가장자리’란 말뜻을 가진 ‘산둘레’라 지은 것이다.
일행은 산둘레역에서 열차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철도가 지나는 곳은 계곡 지형인데, 꽤 넓어 보였다.
“이곳에도 벌써 정착촌이 들어섰네요?”
“그렇습니다. 정착민들은 이곳에 마들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산둘레 남쪽에 있는 들이라 해서 남쪽을 뜻하는 순우리말 ‘마’와 들판의 ‘들’을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행정구역도 마들면이 되었죠.”
“아, 그래서 마들이라고…….”
“네. 다들 이주 농민들인데, 소수의 일본인도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죠.”
호서군청에서 나온 군 장교가 다시 일행의 안내를 맡아 대신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호서강이 만든 이 계곡 분지는 그 가로 폭이 약 3㎞ 정도이고, 다음 협곡 지형까지 거리가 약 12㎞에 달하는, 길쭉한 타원형의 평야 지대였다. 그래서 이곳에도 한국인 정착촌이 들어선 것이다.
사실 지금 지나고 있는 농촌 마을의 구성원은 바로 병급 부역자의 가족들이었다. 북해도 동북부 지역의 농촌 주민 상당수가 그랬다. 이들과 달리 북해도로 이주한 모든 어민은 자발적인 이주자들이었다.
“오, 그래요? 서로 잘 지내나요?”
성영길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각기 떨어져 살고 있어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뭐, 아직까지 싸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인 농민들은 우리 군정에 잘 협조해 주고 있는 편입니다. 주민등록도 모두 마쳤고요.”
“크크, 내 그럴 줄 알았지.”
성영길은 예상한 결과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부 관료들은 북해도의 민심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빠르게 안정될 것이란 전제하에 정책을 수립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실상 주민들도 전쟁 포로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저들의 문화적 습성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이들을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정책을 펼치자 북해도에 잔류한 일본인들은 군말 없이 따라왔다.
피점령지의 국민으로서 큰 고초를 겪을 걸 각오하고 잔류했는데, 대한제국 정부는 그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고, 근거만 제시하면 재산의 소유권도 모두 인정해 주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들면 지역을 지난 열차는 다소 좁은 계곡 지형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관문과 같은 골짜기를 빠져나오자 또다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일 정도로 넓은 평야 지대가 나타났다. 열차는 그 계곡을 빠져나오자마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푸실이란 곳입니다.”
푸실역은 호서강과 그 강의 지류인 푸실천(이쿠타하라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 두 물줄기가 만든 삼각형 형태의 너른 평야 지대가 모두 푸실면에 속했다. 이곳은 후세 일본의 엔가루 정[遠輕町]이란 곳이었다.
“어때요?”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성영길에게 물었다.
“와우, 놀랍네요. 꽤 커 보이는데요? 건물들 상태도 나쁘지 않군요. 완전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럼요. 여긴 대표적인 광업도시로, 최소 60년간 성세를 누리게 될 곳입니다. 그래서 면밀히 도시계획을 수립했죠.”
그는 손을 들어 호서강과 푸실천의 상류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농지가 조성되고 있죠. 그리고 여기 푸실 분지의 중앙부는 모두가 거주지와 상업지구이고.”
“음, 그런데 거주 구역에 단독 주택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네요?”
“다들 광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물론 정부가 무상으로 준 집이죠.”
“그럼 토지소유권은…….”
“토지에 대한 권한은 없습니다. 건물만 소유권을 주었죠. 농토는 가구별로 조금씩 배당해 줬습니다. 저 두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배분해 줄 만한 농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 중심부는 인구 밀집 지역이 될 곳이라 함부로 나눠 줄 수가 없죠. 게다가…….”
남이 들을세라 이태인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저들도 어쨌든 죄수 가족이라 그거죠?”
성영길의 목소리도 소곤거리듯 작아졌다.
“그렇습니다. 다들 형량의 차이는 있지만 병급 부역자 가족들이라…….”
“먹고살려면 나머지 가족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겠네요. 응? 그런데 여긴 벌써 전기가 들어왔네?”
성영길은 전봇대를 가리켰다.
“임시로 여기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가온주의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왔어요. 광산에서 쓸 전기도 필요해서.”
“가온주에서요?”
“후후, 이래서 북해도 개발을 서둘러 착수하게 된 거죠.”
성영길의 궁금증을 손영일이 대신 해소시켜 주었다.
“현재 북해도 전체의 화력발전소 수는 무려 열 개나 됩니다. 수력발전소도 세 개나 있고요. 모두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거죠.”
“와, 대단하네요. 그럼 웬만한 도시에 다 있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손영일은 화력발전소가 있는 도시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해가람으로 이름이 바뀐 삿포로를 비롯해…….”
북해중도(北海中道) 지역의 경우, 해가람과 즈문주(지토세), 미란(무로란), 서창포(오타루), 윤슬포(루모이), 숭례(도마코마이) 등 총 여섯 곳, 북해남도 지역은 마진(하코다테), 북해북도는 가온주(아사히카와), 북해동도는 흥인(구시로)과 휘란(네무로), 이렇게 두 곳이 화력발전소를 보유한 도시였다.
수력발전소는 해가람과 마진 및 마진 북쪽에 인접한 오미―나나에 촌[七飯村町]의 오누마[大沼] 지역―에 건설되어 있었다.
“기존 화력발전소 규모를 조금 더 키우고, 최북단의 지밀과 라온달 정도에 발전소를 신설하면 북해도의 전력망은 어느 정도 완비된다고 봐야죠. 그래서 두 곳 다 곧 착공할 겁니다.”
손영일은 지밀 주변에 꽤 넓게 분포하고 있는 갈탄광을 개발해 화력발전소를 돌릴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수호진(아바시리)까지 연결되는 동북해안 철도 노선의 부설이 마무리될 시기에 즈음하여 라온달 발전소도 완공되어 남쪽의 흥인(구시로) 탄전 지대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석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 *
행정구역상 호서군이 아닌, 라온달군에 속해 ‘라온달 금광’이라 이름 붙인 이 광산 지역은 푸실에서 서북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정부는 이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이곳까지 서둘러 철도를 부설했다. 그 덕분에 광부들은 평소에 광산 주변의 광부 숙소에서 기거하며 일을 하다 휴식일을 맞으면 열차를 타고 푸실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곤 했다.
“와, 광부 숙소도 완비되어 있네? 상점들도 벌써 들어섰고?”
광산에 도착하자 성영길이 가장 즐거워했다. 드디어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한 그 전설의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태인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얘기했다.
“여기 원 이름이 뭔지는 알고 있어요?”
“알죠. 고노마이 아닙니까.”
이 광산의 일본식 이름은 고노마이[鴻之舞]였다. 원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일본은 1915년, 즉 내년에나 이 금광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광산은 동해 바다에 떠 있는 섬인 사도[佐渡] 광산이었다.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400년간 이 광산에서 금을 캤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광산이 바로 이 고노마이 광산이었다.
금이 고갈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이 금광상에 속한 여러 광구들이 속속 폐광되었지만, 채광이 시작된 이래 100톤가량 금을 캐냈다고 한다. 매장량으로 보면 평안도의 운산 광산에 훨씬 미치지 못하나, 생산성이 좋은 초대형 광산임에 분명했다.
“여긴 금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은 산출량도 어마어마하고, 덩달아 구리도 나온다고 합니다.”
“하하,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요.”
성영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제 유럽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면 대(對) 유럽 수출 실적은 크게 줄어들 게 분명했다. 대한제국은 당분간 동아시아 시장의 개척에 주력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금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았다.
이태인은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부 권역 중 이곳 이외에 숙정군에도 꽤 괜찮은 금광이 있죠. 그곳 역시 민간에 개발을 맡길 생각입니다.”
“숙정군이요?”
“네. 거기에 우타노보리 광산이 있어요. 이곳도 1929년에나 발견되는 곳입니다.”
우타노보리[歌登] 광산이 있는 숙정군(肅靖郡)은 일본 지명으로 에사시 촌[枝幸村]을 말하는데, 라온달에서 서북쪽으로 약 90㎞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이곳 역시 북해도의 동북 해안 지대에 자리해 있다.
대한제국 측은 북해도의 영구적인 영토화 작업의 일환으로 북해도의 도시에 한양 도성의 4대문 이름을 상징적으로 붙였다. 그래서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의 이름이 북도 지역의 에사시 촌에 붙은 것이다.
그 외에 동도의 구시로가 흥인, 즉 동대문에 해당하는 이름이 붙고, 중도의 남부 해안 지대에 자리한 도맛코마이에 남대문에 해당하는 이름인 ‘숭례’를, 남도 서남부의 에사시[江差]란 곳에 서대문에 해당하는 ‘돈의’란 이름을 부여했다.
그에 더해 북해도 최대의 평야 지대이자 쌀농사 지역인 이시카리 평야 중앙부의 에베츠[江別]―삿포로 동쪽에 붙어 있는 도시―를 보신(普信)이라 명명했다.
“숙정 바로 북쪽에 붙은 후세의 하마톤베츠란 곳에도 꽤 오래전에 발견된, 우소탄나이란 사금광이 있어요. 이곳 역시 민간에 넘길 예정입니다. 우린 그곳을 수풍군이라 이름했습니다.”
하마톤베츠 지방에 쌍둥이 호수인 굿차로 호가 있는데,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호’란 이름을 붙였다. 이 장구호에서 바다로 흘러나가는 물줄기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큰 강인 돈베츠 강이 하구 지역에서 합류하게 된다. 이처럼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 수풍군이라 개칭한 것이었다.
“오호, 알고 보니 북해도 동북부 지역 전체가 효자 동네였네요.”
“응? 원래 여기부터 개발하자고 한 분이 탁지부대신 아니었어요?”
“에이, 돈이나 셀 줄 하는 제가 뭘 알겠어요. 여기가 낙후된 곳이니까 그저 광산이라도 찾고, 그걸 빌미로 개발에 착수하자는 뜻이었죠.”
“하하하하, 다들 완전히 속았네요. 평소 워낙 명민한 분이라 북해도의 광물자원 현황까지 훤히 꿰고 있는 줄 알았죠.”
“에효, 금융 시스템에서 조세, 예산 문제까지…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하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북해남도 쪽이나 중도의 해가람 쪽 상황을 들어 보면 더 놀라실 텐데.”
“아니, 거기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영일 공상부대신이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요긴하게 쓸 만한 산업 시설들이 통째로 우리 수중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 얘길 듣긴 했는데…….”
“하하, 탁지부대신의 관심사는 오로지 황금에 가 있는 모양입니다?”
성영길이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태인이 다시 받았다.
“혹시 테이네 광산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테이네? 금시초문인데요?”
“해가람 근처에서 발견된 금광상인데, 거기도 매장량이 어마어마해요. 한때 일본에서 전체 2위에 해당될 정도의 산출량을 기록하기도 했죠.”
실제로 테이네 광산은 고노마이 광산 다음으로 금 산출량이 많은 광산이었다.
“헉! 그럼 일본 내 1위와 2위 금광이 북해도에 다 있단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태인은 해가람 금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테이네 광산[手稲鑛山]은 삿포로 경내 남부 야산에 자리한 금광상으로, 이미 일본 측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아직 미개발 상태였다. 이곳은 금 이외에 구리도 많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인데, 지금은 대한제국에 의해 ‘해가람 금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기 말고도 이미 개발된 광산이나 앞으로 개발할 광산이 꽤 많습니다. 즈믄주에 하나 있고, 미란 지역에도 여러 곳이 있어요. 이들 중에 해가람 광산만 우리 광업공사가 직영하고 나머지들 역시 민간에 개발권을 나눠 줄 겁니다.”
금 소식이 그렇게 듣기 좋은지, 성영길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는 이태인의 설명을 듣는 내내 바보처럼 헤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