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7화 제3장 라온달 금광(2)
간도주 동간도 명월군 관내의 신합면 지역.
이 지역은 초기 간도 유민들의 정착지로 각광을 받던 곳이지만, 군청 소재지인 명월구(明月區)와 남쪽의 강진군(江鎭郡) 사이의 산악 지대에 자리해 있어 성장이 정체된 지역이다. 그래도 고동하가 이 지역을 관통해 흐르고, 하천 유역에 나름 기름진 농토가 펼쳐져 있어 농민들의 생활은 꽤나 윤택한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신합면 지역 중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여러 계곡마다 임시 거주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곳들이 임시 거주지로 보이는 이유가 제 모습을 갖춘 가옥은 없고, 모두가 천막이나 움막 같은 것들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처음에 명월구와 연결된 도로를 통해 차를 타고 들어왔다.
오늘도 큰 버스 몇 대가 마을 입구로 들어오더니 주민들을 토해냈다.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던 동료 주민들이 이들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뭐라… 해 줄 말이 없구먼.”
버스에서 내린 어느 사내의 품에 든 하얀 함을 본 주민은 사내와 똑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유골이나마 수습할 수 있으니 다행 아닌가.”
유골함을 든 이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임시 거주지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가 특급 부역자 가족이거나 그 죄수와 매우 가까운 자의 식솔들이었다. 조사 결과, 모두 부일 매국 행위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자들이지만, 이런 심심산골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도망자나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연좌제를 금한다고 공언했어도, 그 집안에 사적인 원한을 가진 이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을 방치해 두면 해코지를 당할 게 빤하고, 또 저들이 먼저 나서서 보호를 요청하자, 정부는 이 지역 곳곳에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임시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이곳에 머물며 죄수의 형이 집행되길 기다렸다.
재판 결과, 특급 부역자로 판결이 난 국사범들을 대상으로 거의 1년 동안 소위 ‘전시형’이 집행됐다. 당사자야 이 ‘전시형’을 무척 가혹한 형벌이라 느낄 테지만, 사회적으로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나라를 배신하고 매국하는 행위를 할 경우, 얼마나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명확히 알려 주었고, 국민들은 직접 형이 집행되는 걸 지켜보며 그간 맺힌 한과 울분을 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전시형이 모두 끝난 범죄자들을 상대로 여기서 멀지 않은 명월군 복흥면 지역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이렇게 형 집행이 마무리되면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수습해서 유족들에게 넘겨줬는데, 오늘이 바로 그 일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못 보던 사람이 들어왔네.”
그간 경계를 담당하는 무장 순검과 경무청 간부인 경관들만 드나들었는데, 오늘은 양복과 두루마기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관리들이 다른 버스에서 하차해 임시 수용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응. 뭔가 설명할 게 있다는군.”
유골을 든 이는 그 말을 하더니, 자신의 가족이 거주하는 천막으로 걸어갔다.
“설명? 뭔…….”
그의 반문이 끝나기도 전에 메가폰으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각 가장들은 저기 마을 공터로 모두 모여 주시오! 오늘 중앙정부의 내부 소속 관리분들이 와서 여러분께 할 말이 있다고 하오!”
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주민이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켕기는 게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꽤 많은 사람들이 공터로 모여들었다.
내부의 초간총국(招墾總局)에서 북방 2과를 맡고 있는 손일민(孫逸民, 1884년 밀양 출생) 과장은 주민들이 모이길 기다리며 마을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 이름난 독립운동가로, 국내와 만주 및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여기가 세 번째 마을이니, 앞으로 며칠은 더 돌아야겠군.”
“어휴, 한참을 더 돌아야 합니다. 특급 매국노 식솔만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배치가 안 된 갑급 부역자 가족도 꽤 많이 남아 있으니.”
하급 관리인 백규삼(白圭三) 주사가 서류를 꺼내 마을 배치도를 보여 주었다. 이런 임시 마을은 명월군과 강진군 일대에 여러 개 분포하고 있었다.
한편, 실제 역사 속의 백규삼은 연해주에서 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안중근과 더불어 단지동맹에 참여한 인물이다.
“역시 여기도 분위기가 어둡군. 사람들 얼굴이 다 죽어가네.”
“나라에서 이렇게 먹여 살려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죠. 그냥 풀어놓으면 맞아 죽을 자들 아닙니까? 자그마치 을사오적과 같은 특급 매국노의 친족이나 인척이니… 관계가 먼 자들이라 해도 과연 저것들이 매국노 집안에 빌붙어 호의호식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드라진 혐의만 없을 뿐이지, 저들도 분명 뒷구멍에서 못된 짓깨나 했을 겁니다.”
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 백성이나 정부의 관리나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이들처럼 저들을 건사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조차도 그랬다.
매국노 집안의 사람들이나 관련자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는 순간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하게 될지, 능히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재산을 몰수당한 상황이라,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당장 굶어 죽을 형편이었다. 또한 다들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다 보니, 생존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백규삼 주사가 나서서 정부 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형 집행이 모두 끝난 죄수의 가족은 약속대로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하오.”
안 그래도 저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백규삼이 인상을 쓰며 차가운 음색으로 이야기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아, 안 되오.”
“아,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당장 굶어 죽으란 말이오?”
하나같이 우는소리를 하자 손일민 과장 일행과 동행한 경관들이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매국노 짓을 못하게 말렸어야지.”
“뭐, 같이 해 먹었는지도 모르지. 워낙 깨끗이 입을 닦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
“험험, 조용히 하시오!”
손일민 과장이 손짓을 하자, 백규삼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래서 여러분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하오. 그전에 관계자 아닌 분들은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오.”
백규삼의 발언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가족 대표들은 다소 놀라는 기색이지만, 경관들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모양이었다.
이제 공터에 가족 대표와 내부 소속 관리 이외의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백규삼은 누가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췄다.
“여러분은 정식 농어민 이주자가 아니니, 나라에서 토지를 내줄 일은 없소. 아울러 여러분에게 식량을 지급하지도 않을 것이오. 형 집행이 끝난 이상 나라의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오. 그러면 여러분이 갈 곳이 어디겠소?”
현실에 대해 정확히 짚어 주자 주민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도회지로 나가 공장에 취직하거나 광산, 벌목 현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사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도회지로 나갈 일은…….”
백규삼의 말에 사람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회지로 나가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크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자신들도 주민등록을 마친 상황이라 신상 정보를 속일 수도 없었다. 결국 광산이나 벌목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선뜻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정부는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소. 만약 여러분이 캄차카나 북주열도 같은 바다 건너편의 영토로 이주한다면, 일반 이주민처럼 꽤 넓은 농토를 제공할 것이오. 심지어 일반 이주민은 개간한 후 5년간 소작농에 준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을 내야 토지 소유를 인정해 주지만, 여러분은 이주 즉시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오. 아울러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식량도 무상으로 내주겠소.”
“헉!”
“가, 감자가로 가면 말이오?”
“아니, 감자가 아니라 캄차카요!”
“그럼 북주열도는 어디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내부 관리 하나가 큰 지도를 공고판에 붙여 주었다.
“솔직히 조금 춥긴 하나, 겨울에는 오히려 여기 간도 지방보다 훨씬 따뜻하오.”
백규삼의 말처럼 캄차카의 중심지인 지신시(페트로파블로프스크)의 1월 평균기온은 영하 7도 정도이나 이곳과 가까운 돈화시의 경우 영하 16도로, 캄차카반도가 훨씬 따뜻했다. 심지어 몹시 춥다고 하는 캄차카반도의 중부 내륙 지방도 만주의 겨울 날씨와 비슷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캄차카가 영상 12도 정도로 돈화보다 10도가 더 낮았다. 한마디로 캄차카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선선한 곳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길고 평균 기온이 낮아 만주나 한반도처럼 농사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므로 이주자 대부분은 농업과 목축업을 병행해야 한다. 농업의 경우, 감자와 채소류, 목축용 작물의 재배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목축에 필요한 가축도 일정 정도 지원해 줄 예정이었다.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여전히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유배지인가?”
“그런 것 같네. 저렇게 먼 곳이라면 귀양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본토에서 너무 멀어 마치 유배지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정부도 사람들의 이런 심리 상태를 예상해 다소 가까운 사할린을 을급, 캄차카나 북주열도를 특급 및 갑급 부역자 식솔들에게 이주 대상지로 제시하게 된 것이다.
“유배지? 허허, 꼭 그런 건 아니오. 거기에도 군 주둔지가 있으니 그 가족들이 사는 마을도 있고, 광산도 있소. 물론 어촌도 생겨날 것이오. 지금도 꽤 많은 이들이 들어가고 있소. 그들 모두가 정식 이주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들어올 이주민들도 점차 늘어나지 않겠소?”
“거기에 가더라도 변하는 건 없지 않소?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지 빤한데…….”
“그래서 또 하나의 조건이 더 붙게 되오.”
“조건?”
“원한다면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어 드리겠소. 여러분이 신청하는 이름으로.”
“아!”
“아울러 북주열도와 캄차카 지역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주했는지 극비에 부칠 것이오. 지금도 이 일은 중앙정부의 최고위급 관료와 여기에 있는 내부 소속 담당관만 알고 있소.”
백규삼은 손을 들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경관과 순검들을 가리켰다.
“저들도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소.”
특급과 갑급 죄수 가족의 내력에 대한 것은 얼마든지 감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지역으로 집단 이주했다는 사실은 언젠가 어떤 경로로든 새어 나와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대신 초기 단계만 잘 넘겨 일반 이주자도 많이 늘어나게 되면, 자신들이 나서서 밝히지 않는 한 이주자의 정체성을 특정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을급과 병급 가족 이주자는 형편이 조금 달랐다. 죄수가 살아서 강제 노역 형벌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대한 이 사실을 가려 주기로 했다.
또한 죄수 당사자와 달리 가족 구성원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초기의 집단 거주지에서 모은 재산을 팔아 버리고 주변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면 그만이었다.
정부가 이 일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 훗날 지역 차별 의식이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이 조건이 이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모양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먼 지역인 만큼 대외적으로 캄차카 이주민은 만주나 연해주, 북해도 이주민에 비해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이주한 것이라고 발표할 예정이오. 그러니 거기에서 터 잡고 열심히 살아 보시오. 또 자식이 장성하면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도 허용되오. 물론 여러분의 이주는 그 지역 내로 한정되나, 자식의 유학만은 막지 않을 것이오.”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흠, 당장 내일 끼니 걱정하게 생겼는데… 가기로 결정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나?”
“그렇지. 최소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 게다가 농지도 크게 떼준다고 하고.”
“자식 유학도 가능하다면야…….”
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럼 유학을 나간 자식은 이주가 가능하오?”
백규삼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오. 물론 다음 세대는 가능하오. 이런 제한이 붙게 된 게, 정부로부터 여러분이 큰 혜택을 받은 대가라 생각해 주시오.”
“그건… 그렇소. 받은 게 있으니 지켜야 할 게 있지.”
사람들 중 하나가 자조적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끝으로 다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한결 밝아진 상태였다.
그러자 백규삼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울러 여러분이 이주할 경우, 그 이주지는 우리 군의 주둔지와 가까운 곳으로 정해질 것이오. 그러니 외부의 위협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리고 이주하게 되면 다른 이들과 섞여 사시길 바라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상회 소속 직원들이나 광부 가족, 상인들도 대거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아울러 어느 정도 마을이 형성되면 학교도 지어 줄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고개가 동시에 들썩거렸다.
간도주 동간도 명월군 관내의 신합면 지역.
이 지역은 초기 간도 유민들의 정착지로 각광을 받던 곳이지만, 군청 소재지인 명월구(明月區)와 남쪽의 강진군(江鎭郡) 사이의 산악 지대에 자리해 있어 성장이 정체된 지역이다. 그래도 고동하가 이 지역을 관통해 흐르고, 하천 유역에 나름 기름진 농토가 펼쳐져 있어 농민들의 생활은 꽤나 윤택한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신합면 지역 중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여러 계곡마다 임시 거주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곳들이 임시 거주지로 보이는 이유가 제 모습을 갖춘 가옥은 없고, 모두가 천막이나 움막 같은 것들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처음에 명월구와 연결된 도로를 통해 차를 타고 들어왔다.
오늘도 큰 버스 몇 대가 마을 입구로 들어오더니 주민들을 토해냈다.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던 동료 주민들이 이들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뭐라… 해 줄 말이 없구먼.”
버스에서 내린 어느 사내의 품에 든 하얀 함을 본 주민은 사내와 똑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유골이나마 수습할 수 있으니 다행 아닌가.”
유골함을 든 이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임시 거주지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가 특급 부역자 가족이거나 그 죄수와 매우 가까운 자의 식솔들이었다. 조사 결과, 모두 부일 매국 행위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자들이지만, 이런 심심산골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도망자나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연좌제를 금한다고 공언했어도, 그 집안에 사적인 원한을 가진 이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을 방치해 두면 해코지를 당할 게 빤하고, 또 저들이 먼저 나서서 보호를 요청하자, 정부는 이 지역 곳곳에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임시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이곳에 머물며 죄수의 형이 집행되길 기다렸다.
재판 결과, 특급 부역자로 판결이 난 국사범들을 대상으로 거의 1년 동안 소위 ‘전시형’이 집행됐다. 당사자야 이 ‘전시형’을 무척 가혹한 형벌이라 느낄 테지만, 사회적으로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나라를 배신하고 매국하는 행위를 할 경우, 얼마나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명확히 알려 주었고, 국민들은 직접 형이 집행되는 걸 지켜보며 그간 맺힌 한과 울분을 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전시형이 모두 끝난 범죄자들을 상대로 여기서 멀지 않은 명월군 복흥면 지역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이렇게 형 집행이 마무리되면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수습해서 유족들에게 넘겨줬는데, 오늘이 바로 그 일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못 보던 사람이 들어왔네.”
그간 경계를 담당하는 무장 순검과 경무청 간부인 경관들만 드나들었는데, 오늘은 양복과 두루마기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관리들이 다른 버스에서 하차해 임시 수용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응. 뭔가 설명할 게 있다는군.”
유골을 든 이는 그 말을 하더니, 자신의 가족이 거주하는 천막으로 걸어갔다.
“설명? 뭔…….”
그의 반문이 끝나기도 전에 메가폰으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각 가장들은 저기 마을 공터로 모두 모여 주시오! 오늘 중앙정부의 내부 소속 관리분들이 와서 여러분께 할 말이 있다고 하오!”
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주민이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켕기는 게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꽤 많은 사람들이 공터로 모여들었다.
내부의 초간총국(招墾總局)에서 북방 2과를 맡고 있는 손일민(孫逸民, 1884년 밀양 출생) 과장은 주민들이 모이길 기다리며 마을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 이름난 독립운동가로, 국내와 만주 및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여기가 세 번째 마을이니, 앞으로 며칠은 더 돌아야겠군.”
“어휴, 한참을 더 돌아야 합니다. 특급 매국노 식솔만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배치가 안 된 갑급 부역자 가족도 꽤 많이 남아 있으니.”
하급 관리인 백규삼(白圭三) 주사가 서류를 꺼내 마을 배치도를 보여 주었다. 이런 임시 마을은 명월군과 강진군 일대에 여러 개 분포하고 있었다.
한편, 실제 역사 속의 백규삼은 연해주에서 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안중근과 더불어 단지동맹에 참여한 인물이다.
“역시 여기도 분위기가 어둡군. 사람들 얼굴이 다 죽어가네.”
“나라에서 이렇게 먹여 살려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죠. 그냥 풀어놓으면 맞아 죽을 자들 아닙니까? 자그마치 을사오적과 같은 특급 매국노의 친족이나 인척이니… 관계가 먼 자들이라 해도 과연 저것들이 매국노 집안에 빌붙어 호의호식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드라진 혐의만 없을 뿐이지, 저들도 분명 뒷구멍에서 못된 짓깨나 했을 겁니다.”
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 백성이나 정부의 관리나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이들처럼 저들을 건사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조차도 그랬다.
매국노 집안의 사람들이나 관련자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는 순간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하게 될지, 능히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재산을 몰수당한 상황이라,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당장 굶어 죽을 형편이었다. 또한 다들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다 보니, 생존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백규삼 주사가 나서서 정부 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형 집행이 모두 끝난 죄수의 가족은 약속대로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하오.”
안 그래도 저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백규삼이 인상을 쓰며 차가운 음색으로 이야기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아, 안 되오.”
“아,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당장 굶어 죽으란 말이오?”
하나같이 우는소리를 하자 손일민 과장 일행과 동행한 경관들이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매국노 짓을 못하게 말렸어야지.”
“뭐, 같이 해 먹었는지도 모르지. 워낙 깨끗이 입을 닦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
“험험, 조용히 하시오!”
손일민 과장이 손짓을 하자, 백규삼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래서 여러분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하오. 그전에 관계자 아닌 분들은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오.”
백규삼의 발언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가족 대표들은 다소 놀라는 기색이지만, 경관들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모양이었다.
이제 공터에 가족 대표와 내부 소속 관리 이외의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백규삼은 누가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췄다.
“여러분은 정식 농어민 이주자가 아니니, 나라에서 토지를 내줄 일은 없소. 아울러 여러분에게 식량을 지급하지도 않을 것이오. 형 집행이 끝난 이상 나라의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오. 그러면 여러분이 갈 곳이 어디겠소?”
현실에 대해 정확히 짚어 주자 주민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도회지로 나가 공장에 취직하거나 광산, 벌목 현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사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도회지로 나갈 일은…….”
백규삼의 말에 사람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회지로 나가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크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자신들도 주민등록을 마친 상황이라 신상 정보를 속일 수도 없었다. 결국 광산이나 벌목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선뜻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정부는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소. 만약 여러분이 캄차카나 북주열도 같은 바다 건너편의 영토로 이주한다면, 일반 이주민처럼 꽤 넓은 농토를 제공할 것이오. 심지어 일반 이주민은 개간한 후 5년간 소작농에 준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을 내야 토지 소유를 인정해 주지만, 여러분은 이주 즉시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오. 아울러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식량도 무상으로 내주겠소.”
“헉!”
“가, 감자가로 가면 말이오?”
“아니, 감자가 아니라 캄차카요!”
“그럼 북주열도는 어디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내부 관리 하나가 큰 지도를 공고판에 붙여 주었다.
“솔직히 조금 춥긴 하나, 겨울에는 오히려 여기 간도 지방보다 훨씬 따뜻하오.”
백규삼의 말처럼 캄차카의 중심지인 지신시(페트로파블로프스크)의 1월 평균기온은 영하 7도 정도이나 이곳과 가까운 돈화시의 경우 영하 16도로, 캄차카반도가 훨씬 따뜻했다. 심지어 몹시 춥다고 하는 캄차카반도의 중부 내륙 지방도 만주의 겨울 날씨와 비슷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캄차카가 영상 12도 정도로 돈화보다 10도가 더 낮았다. 한마디로 캄차카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선선한 곳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길고 평균 기온이 낮아 만주나 한반도처럼 농사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므로 이주자 대부분은 농업과 목축업을 병행해야 한다. 농업의 경우, 감자와 채소류, 목축용 작물의 재배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목축에 필요한 가축도 일정 정도 지원해 줄 예정이었다.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여전히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유배지인가?”
“그런 것 같네. 저렇게 먼 곳이라면 귀양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본토에서 너무 멀어 마치 유배지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정부도 사람들의 이런 심리 상태를 예상해 다소 가까운 사할린을 을급, 캄차카나 북주열도를 특급 및 갑급 부역자 식솔들에게 이주 대상지로 제시하게 된 것이다.
“유배지? 허허, 꼭 그런 건 아니오. 거기에도 군 주둔지가 있으니 그 가족들이 사는 마을도 있고, 광산도 있소. 물론 어촌도 생겨날 것이오. 지금도 꽤 많은 이들이 들어가고 있소. 그들 모두가 정식 이주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들어올 이주민들도 점차 늘어나지 않겠소?”
“거기에 가더라도 변하는 건 없지 않소?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지 빤한데…….”
“그래서 또 하나의 조건이 더 붙게 되오.”
“조건?”
“원한다면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어 드리겠소. 여러분이 신청하는 이름으로.”
“아!”
“아울러 북주열도와 캄차카 지역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주했는지 극비에 부칠 것이오. 지금도 이 일은 중앙정부의 최고위급 관료와 여기에 있는 내부 소속 담당관만 알고 있소.”
백규삼은 손을 들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경관과 순검들을 가리켰다.
“저들도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소.”
특급과 갑급 죄수 가족의 내력에 대한 것은 얼마든지 감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지역으로 집단 이주했다는 사실은 언젠가 어떤 경로로든 새어 나와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대신 초기 단계만 잘 넘겨 일반 이주자도 많이 늘어나게 되면, 자신들이 나서서 밝히지 않는 한 이주자의 정체성을 특정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을급과 병급 가족 이주자는 형편이 조금 달랐다. 죄수가 살아서 강제 노역 형벌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대한 이 사실을 가려 주기로 했다.
또한 죄수 당사자와 달리 가족 구성원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초기의 집단 거주지에서 모은 재산을 팔아 버리고 주변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면 그만이었다.
정부가 이 일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 훗날 지역 차별 의식이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이 조건이 이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모양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먼 지역인 만큼 대외적으로 캄차카 이주민은 만주나 연해주, 북해도 이주민에 비해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이주한 것이라고 발표할 예정이오. 그러니 거기에서 터 잡고 열심히 살아 보시오. 또 자식이 장성하면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도 허용되오. 물론 여러분의 이주는 그 지역 내로 한정되나, 자식의 유학만은 막지 않을 것이오.”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흠, 당장 내일 끼니 걱정하게 생겼는데… 가기로 결정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나?”
“그렇지. 최소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 게다가 농지도 크게 떼준다고 하고.”
“자식 유학도 가능하다면야…….”
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럼 유학을 나간 자식은 이주가 가능하오?”
백규삼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오. 물론 다음 세대는 가능하오. 이런 제한이 붙게 된 게, 정부로부터 여러분이 큰 혜택을 받은 대가라 생각해 주시오.”
“그건… 그렇소. 받은 게 있으니 지켜야 할 게 있지.”
사람들 중 하나가 자조적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끝으로 다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한결 밝아진 상태였다.
그러자 백규삼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울러 여러분이 이주할 경우, 그 이주지는 우리 군의 주둔지와 가까운 곳으로 정해질 것이오. 그러니 외부의 위협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리고 이주하게 되면 다른 이들과 섞여 사시길 바라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상회 소속 직원들이나 광부 가족, 상인들도 대거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아울러 어느 정도 마을이 형성되면 학교도 지어 줄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고개가 동시에 들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