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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제3장 라온달 금광(1)
북해도 동북부의 해상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라온달항.
이곳은 일본의 몬베츠 항[紋別港]이던 시절부터 이미 성세를 누리던 항구였다. 약 40년 전인 1876년에 처음 항구가 열린 이래 물동량이 계속 늘어나자, 일본 정부는 1906년에 다시 증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그 후에도 이 항구의 위상은 변함이 없었다. 광무 16년(1912년)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이곳은 짧은 기간에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변화보다 더 빠르게 변모했다.
노동자와 이주민은 물론, 장비와 물자가 대거 들어오고, 5천 톤급 이상 선박들도 너끈히 정박할 수 있을 정도로 항만 준설과 방파제 및 부두 증축 공사를 시행해 놓았다.
귀빈들은 하선하기 전, 두만함 갑판 위에서 항구 풍경을 일별했다. 관심사가 제각각인지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에 눈길을 주었다.
“와! 요즘 북해도에서 가장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곳이라더니, 정말 그런 느낌이 물씬 드네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성영길은 중앙의 항구 구역부터 훑어보더니, 북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두에는 이미 거대한 크기의 하역 작업용 크레인이 설치되었음은 물론, 철도 레일도 깔려 있는데다 거대한 물류 창고도 들어서 있었다.
어민들도 벌써 조업을 시작한 건지, 항구 한 켠에 작은 고깃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수심이 낮은 북쪽 구역을 어항으로 지정해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저 어민들은 일본인인가요?”
성영길이 어항을 가리키며 질문하자, 손영일 대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지난 전쟁 때 일본 어민들은 모두 떠났죠. 지금 여기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의 어촌 출신분들입니다. 농사지을 땅은 물론, 다섯 가구에 한 척씩 신식 어선을 제공해 준다는 제안에 과감히 이주를 결정한 거죠. 고향과 뱃길로 연결되어 있어 그 결심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언제든 고향에 오갈 수 있고, 심지어 수틀리면 언제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건 저들에게 보험과 같은 거니까요.”
한반도 동해안의 주요 항구와 북해도의 마진(하코다테), 서창포(西昌浦, 오타루), 윤슬포(루모이), 지밀(왓카나이), 라온달, 수호진(綏湖津, 아바시리), 흥인(구시로), 미란(美瀾, 무로란), 휘란(輝瀾, 네무로) 등의 항구들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여객선의 운항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북해도 이주민을 모으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의 어민들은 연해주 해안 지역이나 요동반도 쪽으로 이주하는 걸 선호했다. 고향과 너무 멀어지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손영일의 말을 들은 성영길은 어항 배후 지역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벌써 농토도 개간한 모양이네요. 어항 뒤쪽에 마을도 생겨났고.”
“그럼요. 초기 정착 과정에서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정부에서 식량 배급을 해 줬는데, 벌써 지원을 중단해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죠. 배후의 농지가 넓다 보니, 주민들은 서로 협업하거나 일을 나눠 반어반농 상태로 생업을 이어 가는 모양입니다. 그들 중에 시내로 들어가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고요.”
손영일은 항구 배후에 조성되기 시작한 시가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주변 산지에 광산촌들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저 시가지가 물류와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죠. 그래서 인구도 빠르게 늘어나고, 돈도 팽팽 돌고 있답니다.”
일행은 배에서 내린 뒤, 라온달 시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해안과 배후 산악 지역을 포함, 가로세로 각기 35㎞ 정도의 영역을 라온달군(郡)이라 명명하고, 군청 소재지가 있는 항만 지역은 자연스레 라온달구(區)가 되었다.
농어민 이주자들은 항구 북쪽 평야 지대에, 상인들과 노동자들은 중심가와 남부 평야 지대에 주로 거주했다. 이제 시가지가 항구를 중심으로 해서 북쪽과 남쪽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 * *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손님들은 이른 아침, 항구 근처에 자리한 라온달역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귀빈들을 수행하기 시작한 군청 관리, 즉 군정을 맡고 있는 장교들이 이들과 동행했다.
“이 철도는 라온달 시내와 부근의 광산촌 및 광산을 연결하는 노선입니다. 향후 해안을 따라 동남쪽 수호진항까지 노선을 연장할 예정입니다.”
수호진은 아바시리[網走]의 새로운 이름인데, 수호진군까지 철도를 부설하면 세키호쿠 선과 지호쿠 선을 거쳐 북해도 남부 해안까지 철도 노선이 하나로 연결된다.
철도청은 이 노선들을 하나로 합쳐 수한선이라 개칭했다. 수호진과 예전 구시로 철도 노선의 이케다[池田] 역이 있는 시보사무 촌[凋寒村]을 큰 하천이란 뜻을 가진 ‘한내’라 개명했는데, 두 행정구역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군수 대리를 맡고 있는 육군 제5군단 소속의 한필수 참령은 직접 나서서 손님들을 안내했다. 원래 북해도 지역의 경계를 대부분 해병대가 담당했는데, 민심이 안정되자 육군 제5군단 병력이 경계 임무를 승계하게 되었다. 북해도에 주둔했던 해병대 사단들은 얼마 전 모두 남한주로 건너가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차는 해안선을 따라 동남 방향으로 약 10㎞를 달린 뒤에야 멈춰 섰다.
“이곳이 첫 번째 광산촌으로, 시내동이라 합니다. 우린 이 마을을 포함, 주변 지역 전체를 시내면이라 이름했습니다. 물론 라온달군 관내에 속한 곳이죠.”
“시내? 시냇물의 시내?”
설명을 듣던 성영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한필수 참령은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시내입니다. 일본인 원주민들이 이 하천을 두고 ‘야쓰 시나이’니 뭐니 해서 그냥 시내라 이름 붙였죠.”
“하하, 그렇군요.”
한국인들이 제멋대로 시내라 붙인 이곳은 야소시 광산[八十士鉱山]과 가까운 곳으로, 그 광산은 이미 10여 년 전, 즉 1905년부터 일본 측에 의해 금광으로 개발되었다.
“사금광으로 유명해요. 저기 내륙 산지를 흐르는 하천을 따라 사금이 꽤 많이 매장되어 있죠.”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이태인 광무부대신이 직접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시내 금광은 현재 민간 기업이 운영하고 있어요. 화정주의 자본가들이 자금을 모아 ‘라온달 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자, 정부는 그들에게 라온달 지역의 금광 중 두 군데에 대한 사업권을 인가해 주었습니다.”
해외 영토에 한해 금광과 은광 일부의 개발권을 민간 기업에 나눠 주기로 한 정책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토지 소유권자인 정부 측에 납입해야 할 몫을 줄이기 위해 광물 산출량을 속여서 보고한다거나, 광부에게 불법 노동 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비위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정부 측 관리도 경영에 참여하게 했다.
또한 그 정부 관리가 부패해 업자들과 결탁할 경우를 대비해 감사원 소속 관리는 물론, 제국정보원 요원도 알게 모르게 움직였다. 그만큼 정부는 민간 금광과 은광에 대해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해 둔 상태였다.
“그럼 또 한 곳은 어디입니까?”
“여기서 동남쪽으로 7㎞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 일명 고무 광산이라고.”
고무 광산은 누마노우에[沼ノ上] 광산으로, 앞으로 2년 뒤에나 발견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일본 측은 금광상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라온달 군청 사람들이 이곳에 고무 광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광산촌 해안 쪽에 있는 ‘고무케(コムケ) 호수’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호수 이름을 따서 ‘고무면’이란 행정구역 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두 광산에 고용된 광부는 어떤 사람들이죠?”
성영길의 질문에 역시 이태인이 답했다.
“북해도 중서부와 남부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뽑아 온 일본인 광부들이 제일 많고, 연서주 출신의 만주족과 한족들, 또 우리 한인도 소수 있습니다.”
“그럼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광부 가족들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광부 가족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적게나마 우리 한인 이주민도 있어요. 해안가 평야 지대가 꽤 넓은 편이라, 농민 이주민들을 받기 시작했죠. 그곳에 마땅한 어항이 없어 어민들은 받지 않았고요.”
시내 사금광은 예전부터 개발된 광산이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제련 시설도 있어 벌써 금을 생산하고 있었다. 더 남쪽에 자리한 고무 금광도 연결 철도 공사가 완료된데다, 광산 개발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 곧 금 생산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 * *
대한제국 정부는 사할린 섬을 연해주에 귀속시키고, 북해도와 쿠릴열도, 캄차카 반도 지역을 하나로 묶어 북양주(北洋州)라 명명한 후, 각 지역별로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결정 이후, 북양주를 구성하는 행정 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지역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쿠릴열도는 ‘북주(北珠) 열도’로 개명됐는데, 북쪽의 구슬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해외 영토에 ‘부(府)’란 행정 단위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북해도는 이제 ‘북해도부’가 되었고, 북해도의 ‘도(道)’를 섬이란 뜻의 ‘도(島)’로 한자 표기를 바꿔 몇 개의 도(道)로 분할했다.
쿠릴열도는 ‘북주부’, 캄차카반도는 ‘캄차카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방의 은해도와 파란도를 묶어 ‘은파부’라 명명했다. 그리고 ‘부’마다 총독부를 설치해 주둔군 최고 지휘관이 자연스레 총독 역할을 맡았다.
북해도부의 총독부는 해가람(삿포로)에 설치되었고, 북주부는 북주 열도에서 가장 크고 긴 섬인 대장도(大長島) 북부 지방에 있는 관산진(冠山津)―이투루프 섬[擇捉島]의 샤냐 촌[紗那村]―에 들어섰다. 캄차카부는 지신(智新), 즉 예전에 페트로파블로프스키라 불리던 곳에 있는 러시아 총독부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은파부의 경우, 총독부를 은해도의 은해시에 설치했다.
“크크, 그런데 북해도의 도 명칭을 너무 성의 없이 붙인 거 아닙니까?”
성영길은 새로 제작된 북해도부 행정지도를 보며 익살맞게 웃었다.
“동도, 중도, 북도, 남도… 거기에 아이누 자유도라니?”
“하하, 전 좋은데요? 위치가 쏙쏙 연상되잖아요?”
이태인 광무부대신도 웃으며 화답했다.
고무 광산까지 둘러본 방문객들은 라온달군 경계를 지나 호서군으로 넘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호서군은 과거 유베츠 촌[湧別村]이라 불리던 곳으로, 좌우 폭이 약 25㎞에 달하는, 사로마 호(サロマ湖)―아이누어로 갈대밭이 있는 호수라는 뜻인데, 정부는 이 명칭을 그대로 쓰기로 함―라는 거대한 석호의 서쪽에 자리해 있어 호서라 명명했다.
호서군은 호서강(유베츠 강)이 만들어 낸, 폭이 넓은 계곡 지형과 사로마호 서북쪽의 해안 지대에 큰 평야를 보유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곳이었다.
“이 지역도 놀라올 정도로 빠르게 개발될 겁니다. 보시다시피 농지로 전용할 만한 드넓은 해안평야가 있고, 바다처럼 넓은 사로마 호수의 존재로 인해 관광업이나 어업도 성할 테니까요. 또 무엇보다 이곳 때문이죠.”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지도에서 한 지점을 콕 짚어 주었다.
“응? 거기는 라온달군의 내륙 산악 지대인데요? 왜 호서군이 혜택을 본다는 겁니까?”
성영길은 북해도 개발계획의 상세한 내용까지 아직 꿰고 있지 못한 모양인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태인은 자신이 짚은 산악 지대에서 동남쪽에 자리한 두 계곡 분지 지형을 가리켰다.
“여기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호서군의 중심지로 성장할 곳이죠. 그리고 그보다 더 내륙 쪽으로 올라가면 여기… 푸실이란 곳.”
“푸실?”
“네. 그곳. 거기가 바로 일본에서 가장 큰 금광의 배후 도시 역할을 담당할 광산촌이 건설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태인의 깜짝 발언에 성영길이나 손영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두 사람은 구체적인 지역 개발계획만 몰랐지, 그런 금광상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한 군 장교들은 처음 들은 내용인지, 꽤 놀란 모양이었다. 요즘 한창 개발 중인 그 금광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란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정 기간 가장 많은 금 산출량을 자랑하던 광산, 그래서 한때 일본을 넘어 동양제일의 금광이란 평을 듣던 곳이 바로 이태인이 가리킨 그곳이었다.
북해도 동북부의 해상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라온달항.
이곳은 일본의 몬베츠 항[紋別港]이던 시절부터 이미 성세를 누리던 항구였다. 약 40년 전인 1876년에 처음 항구가 열린 이래 물동량이 계속 늘어나자, 일본 정부는 1906년에 다시 증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그 후에도 이 항구의 위상은 변함이 없었다. 광무 16년(1912년)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이곳은 짧은 기간에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변화보다 더 빠르게 변모했다.
노동자와 이주민은 물론, 장비와 물자가 대거 들어오고, 5천 톤급 이상 선박들도 너끈히 정박할 수 있을 정도로 항만 준설과 방파제 및 부두 증축 공사를 시행해 놓았다.
귀빈들은 하선하기 전, 두만함 갑판 위에서 항구 풍경을 일별했다. 관심사가 제각각인지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에 눈길을 주었다.
“와! 요즘 북해도에서 가장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곳이라더니, 정말 그런 느낌이 물씬 드네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성영길은 중앙의 항구 구역부터 훑어보더니, 북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두에는 이미 거대한 크기의 하역 작업용 크레인이 설치되었음은 물론, 철도 레일도 깔려 있는데다 거대한 물류 창고도 들어서 있었다.
어민들도 벌써 조업을 시작한 건지, 항구 한 켠에 작은 고깃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수심이 낮은 북쪽 구역을 어항으로 지정해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저 어민들은 일본인인가요?”
성영길이 어항을 가리키며 질문하자, 손영일 대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지난 전쟁 때 일본 어민들은 모두 떠났죠. 지금 여기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의 어촌 출신분들입니다. 농사지을 땅은 물론, 다섯 가구에 한 척씩 신식 어선을 제공해 준다는 제안에 과감히 이주를 결정한 거죠. 고향과 뱃길로 연결되어 있어 그 결심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언제든 고향에 오갈 수 있고, 심지어 수틀리면 언제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건 저들에게 보험과 같은 거니까요.”
한반도 동해안의 주요 항구와 북해도의 마진(하코다테), 서창포(西昌浦, 오타루), 윤슬포(루모이), 지밀(왓카나이), 라온달, 수호진(綏湖津, 아바시리), 흥인(구시로), 미란(美瀾, 무로란), 휘란(輝瀾, 네무로) 등의 항구들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여객선의 운항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북해도 이주민을 모으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의 어민들은 연해주 해안 지역이나 요동반도 쪽으로 이주하는 걸 선호했다. 고향과 너무 멀어지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손영일의 말을 들은 성영길은 어항 배후 지역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벌써 농토도 개간한 모양이네요. 어항 뒤쪽에 마을도 생겨났고.”
“그럼요. 초기 정착 과정에서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정부에서 식량 배급을 해 줬는데, 벌써 지원을 중단해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죠. 배후의 농지가 넓다 보니, 주민들은 서로 협업하거나 일을 나눠 반어반농 상태로 생업을 이어 가는 모양입니다. 그들 중에 시내로 들어가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고요.”
손영일은 항구 배후에 조성되기 시작한 시가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주변 산지에 광산촌들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저 시가지가 물류와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죠. 그래서 인구도 빠르게 늘어나고, 돈도 팽팽 돌고 있답니다.”
일행은 배에서 내린 뒤, 라온달 시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해안과 배후 산악 지역을 포함, 가로세로 각기 35㎞ 정도의 영역을 라온달군(郡)이라 명명하고, 군청 소재지가 있는 항만 지역은 자연스레 라온달구(區)가 되었다.
농어민 이주자들은 항구 북쪽 평야 지대에, 상인들과 노동자들은 중심가와 남부 평야 지대에 주로 거주했다. 이제 시가지가 항구를 중심으로 해서 북쪽과 남쪽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 * *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손님들은 이른 아침, 항구 근처에 자리한 라온달역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귀빈들을 수행하기 시작한 군청 관리, 즉 군정을 맡고 있는 장교들이 이들과 동행했다.
“이 철도는 라온달 시내와 부근의 광산촌 및 광산을 연결하는 노선입니다. 향후 해안을 따라 동남쪽 수호진항까지 노선을 연장할 예정입니다.”
수호진은 아바시리[網走]의 새로운 이름인데, 수호진군까지 철도를 부설하면 세키호쿠 선과 지호쿠 선을 거쳐 북해도 남부 해안까지 철도 노선이 하나로 연결된다.
철도청은 이 노선들을 하나로 합쳐 수한선이라 개칭했다. 수호진과 예전 구시로 철도 노선의 이케다[池田] 역이 있는 시보사무 촌[凋寒村]을 큰 하천이란 뜻을 가진 ‘한내’라 개명했는데, 두 행정구역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군수 대리를 맡고 있는 육군 제5군단 소속의 한필수 참령은 직접 나서서 손님들을 안내했다. 원래 북해도 지역의 경계를 대부분 해병대가 담당했는데, 민심이 안정되자 육군 제5군단 병력이 경계 임무를 승계하게 되었다. 북해도에 주둔했던 해병대 사단들은 얼마 전 모두 남한주로 건너가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차는 해안선을 따라 동남 방향으로 약 10㎞를 달린 뒤에야 멈춰 섰다.
“이곳이 첫 번째 광산촌으로, 시내동이라 합니다. 우린 이 마을을 포함, 주변 지역 전체를 시내면이라 이름했습니다. 물론 라온달군 관내에 속한 곳이죠.”
“시내? 시냇물의 시내?”
설명을 듣던 성영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한필수 참령은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시내입니다. 일본인 원주민들이 이 하천을 두고 ‘야쓰 시나이’니 뭐니 해서 그냥 시내라 이름 붙였죠.”
“하하, 그렇군요.”
한국인들이 제멋대로 시내라 붙인 이곳은 야소시 광산[八十士鉱山]과 가까운 곳으로, 그 광산은 이미 10여 년 전, 즉 1905년부터 일본 측에 의해 금광으로 개발되었다.
“사금광으로 유명해요. 저기 내륙 산지를 흐르는 하천을 따라 사금이 꽤 많이 매장되어 있죠.”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이태인 광무부대신이 직접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시내 금광은 현재 민간 기업이 운영하고 있어요. 화정주의 자본가들이 자금을 모아 ‘라온달 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자, 정부는 그들에게 라온달 지역의 금광 중 두 군데에 대한 사업권을 인가해 주었습니다.”
해외 영토에 한해 금광과 은광 일부의 개발권을 민간 기업에 나눠 주기로 한 정책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토지 소유권자인 정부 측에 납입해야 할 몫을 줄이기 위해 광물 산출량을 속여서 보고한다거나, 광부에게 불법 노동 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비위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정부 측 관리도 경영에 참여하게 했다.
또한 그 정부 관리가 부패해 업자들과 결탁할 경우를 대비해 감사원 소속 관리는 물론, 제국정보원 요원도 알게 모르게 움직였다. 그만큼 정부는 민간 금광과 은광에 대해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해 둔 상태였다.
“그럼 또 한 곳은 어디입니까?”
“여기서 동남쪽으로 7㎞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 일명 고무 광산이라고.”
고무 광산은 누마노우에[沼ノ上] 광산으로, 앞으로 2년 뒤에나 발견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일본 측은 금광상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라온달 군청 사람들이 이곳에 고무 광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광산촌 해안 쪽에 있는 ‘고무케(コムケ) 호수’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호수 이름을 따서 ‘고무면’이란 행정구역 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두 광산에 고용된 광부는 어떤 사람들이죠?”
성영길의 질문에 역시 이태인이 답했다.
“북해도 중서부와 남부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뽑아 온 일본인 광부들이 제일 많고, 연서주 출신의 만주족과 한족들, 또 우리 한인도 소수 있습니다.”
“그럼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광부 가족들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광부 가족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적게나마 우리 한인 이주민도 있어요. 해안가 평야 지대가 꽤 넓은 편이라, 농민 이주민들을 받기 시작했죠. 그곳에 마땅한 어항이 없어 어민들은 받지 않았고요.”
시내 사금광은 예전부터 개발된 광산이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제련 시설도 있어 벌써 금을 생산하고 있었다. 더 남쪽에 자리한 고무 금광도 연결 철도 공사가 완료된데다, 광산 개발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 곧 금 생산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 * *
대한제국 정부는 사할린 섬을 연해주에 귀속시키고, 북해도와 쿠릴열도, 캄차카 반도 지역을 하나로 묶어 북양주(北洋州)라 명명한 후, 각 지역별로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결정 이후, 북양주를 구성하는 행정 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지역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쿠릴열도는 ‘북주(北珠) 열도’로 개명됐는데, 북쪽의 구슬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해외 영토에 ‘부(府)’란 행정 단위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북해도는 이제 ‘북해도부’가 되었고, 북해도의 ‘도(道)’를 섬이란 뜻의 ‘도(島)’로 한자 표기를 바꿔 몇 개의 도(道)로 분할했다.
쿠릴열도는 ‘북주부’, 캄차카반도는 ‘캄차카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방의 은해도와 파란도를 묶어 ‘은파부’라 명명했다. 그리고 ‘부’마다 총독부를 설치해 주둔군 최고 지휘관이 자연스레 총독 역할을 맡았다.
북해도부의 총독부는 해가람(삿포로)에 설치되었고, 북주부는 북주 열도에서 가장 크고 긴 섬인 대장도(大長島) 북부 지방에 있는 관산진(冠山津)―이투루프 섬[擇捉島]의 샤냐 촌[紗那村]―에 들어섰다. 캄차카부는 지신(智新), 즉 예전에 페트로파블로프스키라 불리던 곳에 있는 러시아 총독부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은파부의 경우, 총독부를 은해도의 은해시에 설치했다.
“크크, 그런데 북해도의 도 명칭을 너무 성의 없이 붙인 거 아닙니까?”
성영길은 새로 제작된 북해도부 행정지도를 보며 익살맞게 웃었다.
“동도, 중도, 북도, 남도… 거기에 아이누 자유도라니?”
“하하, 전 좋은데요? 위치가 쏙쏙 연상되잖아요?”
이태인 광무부대신도 웃으며 화답했다.
고무 광산까지 둘러본 방문객들은 라온달군 경계를 지나 호서군으로 넘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호서군은 과거 유베츠 촌[湧別村]이라 불리던 곳으로, 좌우 폭이 약 25㎞에 달하는, 사로마 호(サロマ湖)―아이누어로 갈대밭이 있는 호수라는 뜻인데, 정부는 이 명칭을 그대로 쓰기로 함―라는 거대한 석호의 서쪽에 자리해 있어 호서라 명명했다.
호서군은 호서강(유베츠 강)이 만들어 낸, 폭이 넓은 계곡 지형과 사로마호 서북쪽의 해안 지대에 큰 평야를 보유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곳이었다.
“이 지역도 놀라올 정도로 빠르게 개발될 겁니다. 보시다시피 농지로 전용할 만한 드넓은 해안평야가 있고, 바다처럼 넓은 사로마 호수의 존재로 인해 관광업이나 어업도 성할 테니까요. 또 무엇보다 이곳 때문이죠.”
이태인 광무부대신은 지도에서 한 지점을 콕 짚어 주었다.
“응? 거기는 라온달군의 내륙 산악 지대인데요? 왜 호서군이 혜택을 본다는 겁니까?”
성영길은 북해도 개발계획의 상세한 내용까지 아직 꿰고 있지 못한 모양인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태인은 자신이 짚은 산악 지대에서 동남쪽에 자리한 두 계곡 분지 지형을 가리켰다.
“여기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호서군의 중심지로 성장할 곳이죠. 그리고 그보다 더 내륙 쪽으로 올라가면 여기… 푸실이란 곳.”
“푸실?”
“네. 그곳. 거기가 바로 일본에서 가장 큰 금광의 배후 도시 역할을 담당할 광산촌이 건설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태인의 깜짝 발언에 성영길이나 손영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두 사람은 구체적인 지역 개발계획만 몰랐지, 그런 금광상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한 군 장교들은 처음 들은 내용인지, 꽤 놀란 모양이었다. 요즘 한창 개발 중인 그 금광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란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정 기간 가장 많은 금 산출량을 자랑하던 광산, 그래서 한때 일본을 넘어 동양제일의 금광이란 평을 듣던 곳이 바로 이태인이 가리킨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