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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우미혜의 도움으로 진아랑에게 벗어난 이현성은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벨 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손으로 집었다.

― 집행부장님.

김춘아의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은 이현성의 목소리가 잠겼다.

“네, 형.”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를 확인한 김춘아가 가장 먼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이현성이 그를 생각하듯, 마찬가지로 일적인 부분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번 일은 이현성의 사생활에 관여한 것일 수도 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미혜를 네게 보낸 걸 오해할 것 같아서 설명하고자 전화를 했다. 전화 가능해?]

“가능해요. 형, 그전에 제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아직 김춘아의 설명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가 어떤 이유로 우미혜를 자신에게 붙였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회귀 전, 이현성은 헌터 사냥꾼으로 9년을 살아갔다.

물론, 헌터라는 직종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친해진 헌터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도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헌터로서 활동하기 위해선 길드의 상황을 파악하고 헌터계의 변화를 캐치해야 했지만, 헌터 승급을 하자마자 돌연변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니느라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말해.]

“솔직하게 말하면, 오해할 생각은 없어요. 형이 그동안 절 도와주신 것만 해도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듣는 형 서운하다? 내가 너한테 빚을 지우고자 도움을 준 건 아니었어.]

노건희는 헌터 협회를 위해서 관계를 유지하고자 돕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김춘아는 대가를 받을 목적으로 이현성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었다.

순수하게 이현성이 친동생처럼 느껴져서 그와 동질감이 느껴지는 녀석이기에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운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정확하게 말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전 형이 제게 도움을 준 걸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요. 돌연변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도 형에게 받은 도움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는 일이니까요.”

[…현성아. 내가 널 도와주는 게 부담스러운 거냐?]

“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형에게 매번 감사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형이 절 돕고자 한 행동을 제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거란 생각을 하지 말아 주세요. 서로 의심하고 불신할 정도로 저하고 형의 유대감이 떨어지는 거 아니잖아요.”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현성을 돕고자 한 행동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우려한다는 걸 알지만, 김춘아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심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헌터 생활에, 아니, 인생에 도움이 될 김춘아가 자신과의 관계를 경계하며 주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현성의 말에 긴장감이 풀렸는지 김춘아가 피식 웃으며 본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짜식, 그래. 너하고 내가 그 정도의 유대감도 없는 건 아니지. 그나저나 헬하운드 길드는 널 영입하는 걸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의 말이 맞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면 뒤를 캐 가족 관계를 가지고 협박하는 듯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현성은 헬하운드 길드가 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제게 왜 접근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에이션트 놀, 기억하냐?]

“…기억하죠. 백화점 일 때문에 형한테도 피해가 갔으니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했을 정도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김춘아가 집행부장으로 복귀한 이유도 그 사건 때문이었으며, 자칫하면 이은아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던 일이었다.

[브레이크 일어난 던전 소유권을 가진 곳이 헬하운드 길드였어.]

“네?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 윈드 길드와 충돌을 하는 바람에 헬하운드 길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

김춘아의 설명을 담담하게 듣고 있던 이현성이 회귀 전에 헬하운드 길드가 왜 무너졌는지 기억해 내곤 머리를 긁적였다.

윈드 길드와의 세력 다툼.

먼저 시비를 건 쪽은 헬하운드 길드라고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기엔 서열 40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그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크게 휘청이던 사건.

윈드 길드는 서열 50위에 랭크된 곳으로 길드원들의 숫자는 헬하운드 길드와 비교해 열세였지만, 질적으론 우세였다.

지금은 윈드 길드의 진가가 드러나기 전이지만, 헬하운드 길드를 잡고 길드 서열 20위까지 올라간 저력을 보여 주던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헬하운드 길드가 제게 관심을 가질 정도까지 급한 건 아니잖아요.”

[그건 네 생각이라고 생각하는데? 헬하운드 길드가 보유하고 있는 화령의 던전 보스가 돌연변이가 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웃긴 건 뭔지 아냐?]

“뭔데요?”

[헬하운드 길드가 신고한 게 아니라 윈드 길드가 신고했어. 돌연변이 보스가 나타났고, 그걸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헬하운드 길드와 충돌하고 있는 윈드 길드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소리에 이현성이 실소를 짓다가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브레이크 위험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요?”

[…그래서 골치 아프지. 헬하운드 길드가 지금 박박 우기고 있거든. 자신들의 능력으로 돌연변이 보스를 잡을 수 있다고,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협회의 도움의 손길을 모조리 거절하고 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곳.

괜히 헌터들에게 최악의 길드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헬하운드가 몰락했을 때,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헌터들이 대거 윈드 길드로 넘어갔다.

헌터들을 단순한 도구로만 대해 주던 길드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화령의 던전 위치가 어딘데요?”

[…위치를 듣고 화내지 마라.]

위치를 묻는 이현성의 말에 김춘아가 움찔하는 목소리로 당부를 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이현성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인천 쪽이겠네요. 그리고 형의 반응을 보니 저희 집과 꽤 가까운 거리일 것 같은데요?”

가족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아는 김춘아의 입장에선 이 소식을 곧바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말하려니 고민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이현성이 앞뒤 가리지 않고 화령의 던전으로 쳐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 화령의 던전은 B급이야. 만만치 않은 곳이니, 아무리 너라도 보스를 사냥할 수는 없을 거다.]

당부의 당부를 하는 그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지켜볼게요, 형. 이제 끊을게요.”

[그래, 푹 쉬어라.]



***



다음 날, 아침 일찍 밖으로 나온 이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자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던 우미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현성 헌터님.”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에 이현성이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적절한 때에 우미혜가 나서 주지 않았더라면 이현성은 헬하운드 길드와 걷잡을 수 없이 관계가 악화될 뻔했다.

“아닙니다. 근데 아침 일찍 어디를 가시는 길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목적지를 묻는 그녀의 모습에 김춘아에게 당부를 들었을 것이라 확신한 이현성이 실소를 지으며 손에 든 백야를 바라보았다.

“도마뱀 사냥이나 좀 해보려고요.”

“예?”

어제 김춘아와 전화를 끊고 화령에 던전에 대해 알아본 결과,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샐러맨더로 화염의 도마뱀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그곳에 보스 살라스트는 용의 형태를 지닌 도마뱀이라는 것도 파악되었다.

“집행부장님께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밀로 해 주실 수 있나요?”

무단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진행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김춘아에게 이현성이 화령의 던전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상태, 그녀는 지금 큰 갈등을 하는 중이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집행부장님께서 이현성 헌터님이 화령의 던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바로 보고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며 앞으로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그녀의 행동에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속이동을 사용해서 우미혜를 따돌릴 수는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춘아 다음으로 집행부 헌터들 중에서 이현성과 친근하게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에 숨기지 않고 화령의 던전으로 갈 거라는 뜻을 전했다.

“…막지는 못하겠지만, 절 두고 홀로 움직이신다면 집행부장님께서 왜 막지 못했냐고 혼날 겁니다.”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모습.

항상 딱딱하게 이현성을 대하던 그녀가 보인 의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 갈 겁니다.”

그녀는 그를 막을 방법을 고민했지만, 김춘아가 나타나 막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김춘아 역시 이현성이 화령의 던전으로 움직여 주기를 오히려 바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재량껏 막아 보라고 하신 것을 보면, 이현성 헌터를 딱히 막을 생각은 없으신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현성이 손에 들린 백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등에 메고 있던 아실로테를 손으로 쥐었다.

‘유설화 헌터가 아닌 우미혜 헌터에게 반응을 했고, 분명 그 이유가 있을 있을 거야. 아실로테의 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유설화 헌터와 인연이 닿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어인 보스가 당황하며 우미혜를 공격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아실로테가 우미혜에게 반응하여 보스 어인이 이성을 잃고 공격했을 거라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한 번 알아보고 싶었다.

“받으세요.”

푸른색의 활.

어인 보스가 들고 있던 무기라는 걸 기억해 낸 우미혜가 의문을 드러내며 이현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걸 왜 저에게… 아니, 그보다 이 무기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 전 이 녀석들이 있어서 활을 따로 사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녀는 어렵게 어인 보스를 사냥하고 그가 얻은 전리품을 자신에게 주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선의로 받아들이기엔 아실로테라는 활은 범상치 않아 보였으며 그녀가 사용할 만한 무기는 아닌 것 같았다.

“받을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녀의 의사에 이현성도 딱 잘라 말했다.

“받아야 합니다.”

선의로 그녀에게 아실로테 장궁을 주는 건 아니었다.

만약 아실로테가 그녀의 손에 들렸음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고민을 해 봐야 할 일이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였다.

왜냐하면 이미 아실로테가 진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현성이 백야를 쥐었을 때처럼 우미혜의 앞에 있음에도 반응을 하는 녀석.

아실로테의 활의 주인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격렬하게 반응하는 아실로테를 바라보던 이현성이 억지로라도 우미혜에게 쥐여 주려 했다.

‘빛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장궁이 푸른빛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이현성의 손에 쥐여진 아실로테를 강하게 쥐었다.

우우우우웅―!

보다 더 격하게 떨리는 녀석.

우미혜의 손에 들어간 아실로테의 반응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실로테, 이 녀석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