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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나머지 다섯 곳의 보스 레이드를 마친 이현성이 마지막 보스 몬스터인 에이션트 놀을 바닥에 질질 끌며 입구 밖으로 나왔다.

“끝이네요, 형.”

마지막 던전.

레이드를 진행하기 전, 던전에 김춘아과 집행부 헌터들이 나와 있었다.

걱정이던 돌연변이 몬스터가 모두 처리되었으니, 공로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이현성의 앞에 서 있었다.

골치라 생각한 돌연변이 에이션트 놀을 홀로 독식한 이현성을 바라보며 김춘아가 고개를 저었다.

“고생했어. 오늘까지 네가 사냥한 보스들의 분배금은 곧 계산되어서 네 계좌로 들어갈 거다.”

“그것보단 내일부터 어인의 던전 레이드를 시작할 건데, 몬스터 시신을 처리하는 게 문제네요.”

헌터 협회를 끼고 몬스터 시신을 처리한다면 문제없이 이뤄질 일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시신 처리를 부탁할 만한 사람은 김춘아뿐이라 생각했다.

“어인의 시신은 헌터 협회에서 처리해 줄 거야. 경비를 제외하고 지급하면 되니까. 길드 계좌도 하나 만드는 게 좋을 걸? 그래야 세금이 조금이라도 감면될 테니.”

이현성 개인의 계좌로 돈이 들어가는 순간, 이중과세로 변하게 된다.

그럴 바엔 길드 계좌를 새롭게 만드는 게 나았으며, 또 다른 이유는 세금 감면 1%가 특권으로 주어졌다.

“오늘 가서 만들게요. 어차피 1인 길드라서 당장 돈을 사용할 곳은 없으니까요.”

현역 헌터들이 어린 이현성을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확인한 김춘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형 길드에서 바쁘게 뛰어다니겠네. 현성이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캐내려고 노력하겠지.’

그들 중에는 길드와 연관된 자들도 많았으며, 현역 헌터를 그저 지나가는 정류장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김춘아처럼 헌터 협회에 뿌리를 박는 헌터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경험을 위해 현역 헌터로서의 생활을 선택했고, 1년 정도 경험한 뒤에 길드로 이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현성이 에이션트 놀을 사냥했다는 사실이 다른 길드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새롭게 나타난 신성을 잡고자 대형 길드들이 움직일 기미를 보일 게 분명했다.

“우미혜.”

뒤에 선 우미혜를 부르자 그녀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대답했다.

“네, 집행부장님.”

“대형 길드에게 경고해 줘야 멋대로 움직이지 않겠지. 헬하운드 길드가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커.”

에이션트 놀을 사냥을 포기하고, 브레이크까지 터트려 버린 무능한 대형 길드.

아마 이현성을 귀찮게 할 가장 첫 번째 길드는 헬하운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현성을 위해 집행부를 움직인다는 말에도 집행부 헌터들은 그 어떠한 항명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현성에게 목숨을 한 번씩 빚진 적이 있으며, 특히 우미혜의 같은 경우엔 두 번이나 도움을 받았다.

“이현성 헌터님을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경고하고 오겠습니다.”

길드가 어떤 방식으로 이현성을 괴롭힐지 빤히 보였기에 우미혜가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걱정 말고 움직여. 협회장님께서도 허가한 사항이니까. 그리고 이현성 헌터에게 접근하는 길드에게 확실하게 전달해.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와서 말하라고.”

“예, 집행부장님.”



***



에이션트 놀을 사냥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현성이 골목에 나타나자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고급스러운 차에서 내렸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기에 자신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려 하자 사내가 다급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현성 헌터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내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나타난 사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제가 이현성입니다.”

담담하게 사내에게 말하자, 능글맞은 표정을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무려 한 시간 동안 이현성이 오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 헬하운드 길드의 영입부장 진아랑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 헬하운드 길드의 영입부장 진아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이현성의 나이는 어리지만, 돌연변이 보스를 협회의 요청을 받아 모조리 처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해야 했다.

진아랑의 정중한 말에 이현성이 의문을 드러냈다.

‘헬하운드 길드에서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잠시 속으로 중얼거리며 진아랑의 방문 목적을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헬하운드 길드에서 왜 저를 찾아오신 건지……?”

정중하게 자신을 대하는 상대에게 불편함을 드러낼 수는 없기에 이현성이 말끝을 흐리며 방문 이유를 직접적으로 물었다.

“헬하운드 길드에서 이현성 헌터님을 영입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겠지만, 현재 어떤 길드에도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맞기에 그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랑이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네자, 이현성은 그 명함을 받아 들며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전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움직일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단칼에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돌려 말하는 모습.

진아랑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헬하운드 길드는 전체 길드 서열 40위에 랭크된 곳으로 길드원들에게 상당한 복지와 대가를 지불하는 곳입니다. 너무 단칼에 거절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김춘아와 노건희에게 큰 도움을 받았지만, 협회에 소속되는 걸 거절한 상태였다.

만에 하나 진아랑의 설득에 넘어가 길드의 소속된다면, 노건희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이현성의 거취에 대한 방향성은 현재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김춘아와 노건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칼 같이 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화를 해도 제 선택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현성의 직접적인 거절 의사에 진아랑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어린 헌터를 설득하기 위해선 꽤 공을 들여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지만, 지금 헬하운드 길드는 시간적으로 촉박한 급한 상황이었다.

진아랑은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가 알고 있는 이현성의 개인 정보를 설득 요인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여동생분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현성 헌터님께서 헬하운드에 소속된다면 길드에선 여동생의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모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죠?”

싸늘하게 변해 버린 이현성의 목소리와 표정을 바라보던 진아랑이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제 가족 말입니다. 뒷조사를 한 겁니까?”

“그게…….”

뒷조사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사실.

“그리고 뒷조사가 부족하군요. 저도 제 가족을 부양할 정도는 벌고 있습니다.”

정보가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 거기서 끝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진아랑은 협박을 해서라도 끌고 오라는 길드 수뇌부의 명령 때문에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길드장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을 터.

부장 직책을 단 그로서는 그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

말이 없는 이현성을 보며 자신의 말이 먹힌다고 생각했는지 한층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다음 말을 뱉었다.

“저희는 대형 길드입니다. 그게 무슨 뜻일지는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그 말에 이현성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으나 진아랑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대형 길드라 해도 선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이현성의 생각이었으며 어떤 의도로 자신의 개인 정보를 뒷조사를 했는지 대충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모르는 척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모르면 알려 드려야죠. 저희 길드에서는 이현성 씨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딱 그 정도라는 겁니다. 프리랜서 헌터라는 건 언제든지 손댈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아, 협박으로 듣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건 저희 길드뿐만 아니라 대형 길드라면 비슷한 생각이니까요.”

이현성은 단순한 어리숙한 20대가 아니었다.

헬하운드 길드에서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몰랐으나, 확실하게 경고해 주고 가야 할 일이었다.

‘다른 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가족을 들먹이는 상대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겠지.’

그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던 이현성이 싸늘한 시선을 드러내며 그를 뿌리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진아랑의 뒤에 우미혜가 나타났다.

불쾌한 기세를 드러내는 그의 표정에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알아서 잘 말해 돌려보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하자 이현성이 하려던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형이 조취를 했구나.’

진아랑의 설득에 넘어가 제안이라도 들었다면 김춘아가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경각심이 몰려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우미혜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진아랑을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그가 당황을 드러내며 이현성의 팔을 잡으려 했다.

“거기까지입니다.”

그때, 우미혜가 진아랑의 팔을 잡으며 그를 제지했다.

진아랑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입술을 깨물며 불쾌한 감정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집행부?’

뜬금없이 나타나 자신을 막아서는 여인의 가슴팍에 수놓아진 문양을 확인한 진아랑의 속으로 중얼거렸다.

헬하운드 길드의 정보원에 따르면, 집행부장과 이현성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적힌 사항을 기억한 진아랑이 실소를 지었다.

“집행부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군. 고작 헌터 하나를 위해 집행부원 하나가 움직이며 따까리짓을 하는 거 보면.”

정중함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며 본래의 성격을 드러낸 진아랑의 모습을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현성이 ‘고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제삼자에게 그는 그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게만 보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헬하운드 길드가 상황이 어렵나 봅니다. 고작 헌터 하나를 영입하고자 영입부장까지 움직인 거 보면. 그만큼 급하고 여유가 없다는 뜻 아닙니까?”

집행부를 비하하는 그의 언사를 참을 필요는 없었다.

우미혜가 불쾌하다는 심기를 여실 없이 드러내며 정곡을 찌르자, 진아랑이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하하, 이렇게 명확한 명분 없이 저희 헬하운드 길드의 행보를 막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실 분들이 많으신데… 감당 가능하신지?”

집행부를 상대로 기죽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우미혜가 씁쓸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냈다.

김춘아가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있던 시절엔 그 어떤 길드도 집행부의 행보를 막지는 못했다.

하나 지금은 고작 서열 40위인 헬하운드가 책임을 질 수 있냐는 뜻을 드러내며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의 모토는 ‘걸어오는 싸움을 절대 피하지 않는다’입니다.”

일절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진아랑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경멸 어린 시선을 드러내며 소매를 손으로 턴 그가 짜증이 섞인 말투로 경고를 전했다.

“집행부장이 돌아왔다고 해서 2년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지.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자고. 우리가 먼저 집행부에게 싸움을 건 게 아니라 집행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걸 명심해.”

진아랑이 차에 오르며 시동을 켜고 길목을 벗어났다.

그의 차가 길목을 완전히 빠져 나갔을 때, 우미혜가 이 사항을 김춘아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벌써 움직인 건가?]

“네. 집행부장님의 예상대로 헬하운드 길드가 움직였습니다.”

[돌연변이의 등장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길드가 헬하운드라는 걸 부정은 할 수 없으니까.]

“제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에 헬하운드 길드에서 나온 사람에게 집행부의 모토를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도 약간 무례한 언사라는 걸 자각한 우미혜가 면목이 없다는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녀의 보고를 듣고 있던 김춘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어찌 보면 갑질인 것 같지만, 집행부의 권위를 찾아올 사건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분명 그녀가 길드의 간부를 대상으로 다소 무례한 언사를 사용한 것은 맞으나, 피차일반이었다.

게다가 헬하운드 길드는 이번 상황뿐만 여기저기서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중소 길드에게 갑질을 하는 것은 물론, 교묘하게 계약서에 장난을 치는 등 길드의 지위를 이용하는 악질로 유명했다.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집행부가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과거, 김춘아가 있던 시절이면 이런 사소한 걱정은 하지 않았을 터.

그만큼 집행부의 위신과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헬하운드 길드보다 우미혜는 이현성이 자신의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걱정을 드러내는 그녀의 목소리에 김춘아가 잠시 침묵한 뒤, 말을 했다.

[현성이의 반응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 넌 한 가지만 생각해. 집행부의 행동이 불합리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현성이를 다른 길드에 절대 빼앗기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