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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김춘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검귀의 뿔을 열심히 모아 나중에 가격이 오르면 대량으로 매물로 내놓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서 돈을 벌긴 싫었다.

돈에 대한 집착은 이제 버려야 할 때였으니까.

돈과 성장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돈을 포기하는 게 맞았다.

지금 이현성이 해야 할 건 악마를 막아야 할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었다.

비록 회귀 후 운반꾼을 할 때는 대적하지 못할 힘이라 생각했지만, 성장을 지속하면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꾸준하게 능력을 성장시키고 힘을 갖게 된다면 악마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어차피 제 소유도 아닌 던전이었잖아요.”

헌터 협회에 보고하라는 이현성의 말에 김춘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떤 생각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겠냐?”

“헌터 협회에서 검귀들을 사냥할 수 있다면 제가 양보하는 게 맞겠죠. 지금까지 제가 가져간 뿔에 대한 소유권만 인정해 준다면 굳이 항의할 생각은 없어요.”

이현성의 담담한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장 이겨 내기 힘든 유혹이 돈에 관련된 유혹인데…….”

여전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김춘아의 모습에 이현성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죠. 이 던전의 소유권을 가져온다면 돈 문제는 해결될 테니까요.”

어인의 시신은 한 구당 300만 원이라는 시세가 유지되고 있었다.

C급 몬스터인 어인의 시신의 가격이 낮지는 않았고, 혼자 레이드를 진행한다면 인건비도 들지 않았다.

하루에 서른만 잡아도 9,000만 원이라는 돈을 벌게 될 터.

김춘아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건희의 성격상 검귀의 뿔이 귀중한 물품이라 하더라도 이현성이 검령의 던전에 들어가는 걸 막지 않을 사람이었다.

“검귀의 뿔 효능이 보고된다고 해도 협회장님께서 던전 입장 허가를 철회하진 않으실 거다.”

”그러면 됐어요. 협회장님께서 판단하실 부분이라 생각하니까요.”

던전 소유권뿐만 아니라 아실로테 장궁을 얻었기에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사냥이 수월하게 끝내서 다행이었다.

만약 어인이 방어막의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이기기 힘든 전투가 됐을지도 몰랐다.

‘화살을 고속이동처럼 순간이동한다라… 유설화 헌터도 그런 식으로는 사용하지 못했는데… 뭐, 그건 본인만 알고 있겠지.’

회귀 전, 이현성이 유설화 헌터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건 인터넷이었고, 편집된 동영상도 상당수 존재했다.

확정 지어 말하지 못하는 건 비장의 수를 헌터들이 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푸른색으로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아실로테의 장궁을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본 주인에게 억지로 돌려줘야 할 지, 아니면 인연이 가는 대로 아실로테의 장궁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문제가 된 C급 던전의 레이드가 마무리되었다.

던전에서 돌아온 김춘아의 보고를 들은 노건희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뒤에 적혀 있는 검귀의 뿔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이게 진짜인가, 집행부장?”

마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에 노건희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실제로 이현성 헌터가 검귀의 뿔을 다린 물을 집행 1팀에 내어 주었고, 확인 결과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희미하게 마력이 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현성은 콕 집어서 던령의 던전을 선택했고, 검귀의 뿔을 가져갔다.

아직 검귀의 뿔 효과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실을 알고 검령의 던전을 선택했다는 것을 확인한 노건희가 그에게 중얼거렸다.

“예언 능력이라는 예측이 맞는 것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현성 헌터가 가진 허가권도 회수할 필요도 없겠지. 이현성 헌터와의 관계를 망가트릴 필요는 없을 테니.”

노건희의 말대로 이현성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굳이 검령의 던전 입장 허가를 회수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나타나는 이상 현상은 전 세계에서 진행될 조짐이 보였다.

실제로도 미국에서 기존 보스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힘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튀어나오고 있으니까.

“이현성 헌터에게 리자드맨 워리어와 어인의 구현을 해 줄 수는 없냐고 정중하게 요청해. 언제까지 이현성 헌터에게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니까.”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를 해야 했다.

돌연변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헌터 전력은 급상승하게 될 터.

노건희의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김춘아는 곧바로 이현성에게 요청을 했다.

이현성이 헌터 협회 본사에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김춘아가 손을 흔들었다.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에 이현성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탁한다.”

시뮬레이션실로 들어온 김춘아가 이현성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밖으로 나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계를 머리에 쓰고 눈을 감은 이현성이 리자드맨 워리어와 어인과의 전투를 떠올린 지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기계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현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한 김춘아가 그의 앞으로 걸어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현성아.”

“솔직히 저 혼자는 감당할 수는 없잖아요. 헌터 협회도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

“짜식. 아, 그리고 어인이 들고 있는 활은 삭제될 거다. 내가 구현을 하면서 활을 일반 활로 변경해 놓았으니까.”

아실로테의 활을 이현성이 가져간 이상, 어인 구현에 등장하게 해선 안 되었다.

헌터 협회도 그가 아실로테의 활을 들고 간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형이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숨기지 말고 말하세요.”

“곤란한 상황이 오지도 않게 조치를 취해 놔야지. 이제 어디로 움직일 거냐?”

어디로 움직일 거냐는 물음에 이현성이 잠깐 고민을 하다 김춘아에게 물었다.

“D급 던전에 보스 레이드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죠, 형?”

“그렇지. 돌연변이 보스를 상대하려면 내가 움직여야 할 상황이니까. 왜?”

지금 이현성에겐 정보가 필요했다.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들이 어떤 힘의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방어막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헌터 협회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았으나, 이현성은 나머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 볼 계획이었다.

“제가 움직이려고요.”

안 그래도 노건희가 그에게 부탁을 할 계획이 있지만, 보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놔야 했기에 아직 요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음, 가능하겠냐?”

“불가능하진 않겠죠.”

이현성이 나머지 D급 던전의 보스 레이드를 하겠다는 말에 김춘아가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기다려. 협회장님께 허락을 받고 올 테니까.”

급하게 최상층에 있는 협회장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은 김춘아가 10분 만에 명령서 하나를 손에 쥐고 나타났다.

“허가됐다. 어디부터 움직일 생각이냐?”

“그냥 가까운 곳부터 움직일게요. 브레이크 위험은 사라진 상태잖아요.”

허가서를 받고 움직이려 하는 이현성을 잡은 김춘아가 웃었다.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움직이겠다는 이현성의 요청에 협회장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그 배당금의 70%를 너에게 배정할 예정이야. 그 정도 보상도 없이 헌터 협회 소속도 아닌 너를 고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본래는 좀 더 큰 것을 내주려 했지만, 결정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돈으로 보상이 결정되었다.

“협회장님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시네요.”

이현성은 이를 작은 대가라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 정도면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인 길드 요청이 오늘 중으로 허가될 거다. 어인의 던전 소유권은 백야 길드에게 이전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길드의 이름은 백야.

이현성의 무기들의 이름을 따기로 결정했다.

회귀 전에도, 그리고 회귀 후에도 그의 곁에 남아 준 녀석들.

그는 백과 야를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한 생명으로 생각했다.

“걱정할 생각은 없어요.”



이현성은 던전의 모든 위치를 김춘아에게 전달받고 던전 순회를 시작했다.

헌터 협회에 소속된 현역 헌터들은 미리 지시를 받은 대로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수월하게 현역 헌터들을 지나 던전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D급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빠르게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보스방 앞에 도착한 이현성이 주저 없이 걸어갔다.



***



녀석에게서 새로운 형태의 능력을 기대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D급 던전의 보스는 에이션트 놀처럼 방어막의 능력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현성이 브레이커를 이용해 방어막을 산산조각 냈을 때부터 보스 몬스터의 사냥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오크 형태의 돌연변이 보스를 어깨에 지고 밖으로 나가 바닥에 내려놓고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수고하세요.”

너무나도 수월하게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자, 헌터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지울 수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경고할 만한 보스 몬스터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헌터들의 머릿속에 깃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세 곳의 던전은 돌았지만, 어인이 사용하던 능력처럼 특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보스 몬스터들은 없었다.

‘하긴 D급 몬스터를 기반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보스들이 그 이상의 힘을 가질 수는 없겠지.’

입맛을 다신 이현성이 오늘 하루 얻은 영혼의 구슬을 점검했다.

세 곳의 던전을 돌았고, 백과 야의 내장된 구슬이 꽤 많이 쌓였다.



[백에 내장된 영혼의 구슬.]

[C급 영혼의 구슬 3개.]

[D급 영혼의 구슬 21개.]

[A급 영혼의 구슬 3개.]



[야에 내장된 영혼의 구슬.]

[C급 영혼의 구슬 1개.]

[D급 영혼의 구슬 18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이현성은 주로 백을 활용했다.

어인을 사냥했을 때 나온 A급 영혼의 구슬이 백에 하나 내장되어 있을 뿐.

오늘 사냥한 보스 몬스터 한 마리에서 영혼의 구슬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백에게만 의존하면 안 좋은데… 야에 깃든 능력도 한 번 활용해 봐야겠어.’

나머지 다섯 곳의 던전은 이틀에 걸쳐 순회할 생각이었다.

보스 몬스터만 사냥하는 게 아니라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도 상대하며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렸고, 이동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던전 순회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간 이현성.

피로 얼룩진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오자 최연수와 이은아가 거실에 서서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그의 말에 이은아가 투덜거리며 물었다.

“오빠, 운반꾼의 일도 그만뒀으면서 왜 이렇게 바빠?”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부터 생활이 달라졌고, 며칠 동안 늦게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이은아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현성이 거실로 걸어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통해 계좌 잔액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핸드폰 액정에 나타난 잔액을 천천히 세던 이은아가 깜짝 놀랐다.

“…2억?”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말도 안 되는 잔액을 들은 최연수가 고개를 돌려 이은아에게 물었다.

“잘못 센 거 아니야?”

최연수가 핸드폰을 빼앗아 천천히 0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현재 이현성의 통장 잔액은 2억을 돌파했다.

2억이 넘는 금액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자 이현성이 최연수에게 말했다.

“그중 절반.”

뜬금없는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반응하며 의문을 드러냈다.

“응?”

“생활비로 줄 테니까. 엄마도 이제 일 그만두고 집에서 여유를 가지는 건 어때?”

어차피 길드에 들어가는 돈은 없었다.

현재 길드원은 본인 하나였고, 따로 월급을 챙겨 줄 길드원도, 유지비용이 드는 길드의 건물도 없었다.

그저 최연수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여유를 가지며 생활하길 원했다.

“진짜 그만둬도 돼?”

최연수가 토끼 눈으로 변하며 되물었다.

안 그래도 그녀는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늘 엄마 계좌로 이체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