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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우미혜의 손에 들려 강한 진동을 하는 녀석.

유설화에게 전달되어야 할 아실로테를 전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이현성의 입장에서는 모험과 같았다.

그의 관여로 미래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성이 모험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실로테가 어떻게 유설화 헌터의 손에 쥐여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의 추측일 뿐이지만, 어쩌면 최초로 아실로테를 쥔 사람은 우미혜가 아닐까 싶었다.

어떤 이유로 우미혜의 손을 떠나 유설화에게 전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것으로 미래는 변하겠지만, 그는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자신의 관여로 미래가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큰 틀은 그대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아실로테와 유설화의 얽혀 있는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아실로테와 어떻게 인연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모두 묵살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실로테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현성이 우미혜의 인생에 관여한 건 검귀의 뿔을 다린 물을 마시게 한 것뿐이었다.

달라진 마력의 양만으로 아실로테가 반응을 할 리가 없었다.

자신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던 녀석이 우미혜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애초에 아실로테는 우미혜 헌터에게 전해진 거야. 그리고 어떤 이유로 우미혜 헌터에게서 유설화 헌터에게 아실로테가 넘어간 거고.’

비록 예상에 불과했지만,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푸른 아실로테의 장궁을 바라보던 우미혜가 활시위를 손가락을 잡았다.

그녀가 비록 펜싱을 중점으로 펼치는 검술을 전력으로 사용하지만, 활시위를 잡은 그녀의 자세는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 집행부 헌터들은 주 무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기를 다룰 줄 알았다.

티잉―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우미혜의 표정이 평온하게 변했다.

무언가 안도를 전해 주는 소리.

그녀가 활시위를 완전히 당기며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자, 빈 시위에 어인 보스가 사용하던 마력의 화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 형태로 만들어지는 마력을 확인한 우미혜가 급하게 활을 내려놓았다.

“이건……?”

어인 보스가 사용하던 능력이 그대로 펼쳐지자 그녀가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이현성을 바라보았다.

혹시 그라면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저도 상세한 것까지는 모르지만, 아실로테가 우미혜 헌터님을 주인으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아… 제가 이 활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사용될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인연이 우미혜 헌터님과 닿았고, 제가 그걸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검귀의 뿔 때도 그렇고, 지금도 이현성은 욕심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

아실로테를 다른 이에게 판매해도 억만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는 아실로테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의아할 만했다.

이현성에게는 백야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백야가 자신에게 전해진 것처럼 아실로테도 좋은 주인을 만나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화령의 던전으로 갈 땐 가더라도, 살라스트 레이드를 성공시킨 다음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헬하운드 길드가 무단 침입한 이현성에게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그를 억누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절대 제가 오기 전까지 혼자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당부를 하고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든 우미혜가 김춘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현성이 움직이는 순간, 집행부가 나서더라도 화령의 던전으로 향하는 걸 막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현성이가 움직인데?]

자세한 보고도 하지 않았지만, 김춘아는 이현성이 할 행동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우미혜에게 물었다.

“막더라도 화령의 던전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저 혼자서 이현성 헌터님을 막을 수가 없기에… 보고를 한 후 함께 움직이려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현성이다워.]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우미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행부장님, 자칫하면 이현성 헌터님께서 곤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헬하운드 길드는 무단 침입을 이유로 이현성 헌터님을 옭아매려 할 겁니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헬하운드 길드가 이현성에게 합의 조건으로 그들의 길드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내가 예상 못했을까 봐 걱정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길드라는 조직 자체가 독립적인 형태였고, 아무리 헌터 협회라도 그들의 일에 관여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녀의 걱정스런 말에 김춘아가 말을 이어 나갔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단! 잡지 못할 것 같으면 앞뒤 가리지 말고 현성이를 데리고 빠져나와. 절대 무리하지 말고. 살라스트는 상대하기 쉬운 녀석이 아닐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이현성이 기다리는 곳으로 다가간 우미혜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움직이시죠.”

김춘아에게 보고를 하고 온 그녀의 모습에 이현성이 순간 움찔거렸다.

아무리 가족의 안전이 달린 일이라 해도 김춘아를 곤란하게 하면서까지 움직여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움직여야 할 일이었고 감정적으로 움직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미혜를 두고 홀로 움직이려던 이현성은 그녀의 참전 결정에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현성 혼자 책임지는 일이었다면 주저 하지 않고 움직였을 테지만, 우미혜가 같이 움직이는 순간 집행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진 못했다.

우미혜에게 양해를 구하고 김춘아에게 전화했다.

“형, 우미혜 헌터님을 데려간다면 집행부도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혼자 가려고? 살라스트가 어떻게 변화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위험이 있을 줄 알고 혼자 간다는 거냐?]

“에이션트 놀 때도 저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지만, 형에게도 피해가 갔죠.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형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에이션트 놀을 사냥했을 때, 조사단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고 그로 인해 애꿎은 김춘아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제부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야 할 때.

김춘아와 자신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 자신으로 인해 그가 피해를 입을 건 명확했다.

[이제 내게 한 말이 뭐였냐? 너하고 내 유대가 이 정도로 흔들릴 일은 아니지. 왜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현성아, 내가 널 믿는 만큼 너도 날 믿어줄 거라 생각한다.]

“전 형을 믿어요.”

[동생이 하고 싶다는 일을 뜯어말릴 필요는 없잖냐?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해라.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안전이 위험해질 테니까.]

이득과 실리보단 김춘아가 중요시하는 건 시민들의 안전이었다.

화령의 던전에서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리게 될 터.

살라스트는 하필 비행형 몬스터였다.

넒은 창공으로 그놈이 풀려나는 순간, 그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될 일이었다.

이현성이 움직여 줌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김춘아는 그 어떤 것이든 감수할 수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게요. 절대 살라스트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김춘아와의 전화를 끊은 이현성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우미혜와 함께 화령의 던전으로 움직였다.



이현성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존재하는 산.

산 정상에 있는 화령의 던전에 도착한 두 사람이 텅텅 빈 입구를 바라보았다.

“헬하운드 길드는 브레이크에 대한 대비를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있나 봅니다.”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에이션트 놀 때도 헬하운드의 방관으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화령의 던전에서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헬하운드 길드는 그 책임을 헌터 협회에 전가할 게 빤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협회의 도움을 거절하고 우기고 있다니. 이건 거의 던전을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우미혜가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스산스러운 던전 입구.

버려진 던전처럼 주변이 어지럽혀 있고, 헌터들의 방문이 거의 없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주변은 지저분했다.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렸고,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둘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서 말했듯 이곳은 샐러맨더라는 몬스터가 등장하는 곳.

리자드맨처럼 변종 도마뱀이 아니라 진짜 도마뱀의 형태를 갖춘 몬스터였다.

녀석들은 온몸에 불꽃을 두르고 입에서 불길을 뿜어냈다.

우미혜와 함께 화령의 던전으로 들어온 이현성이 백야를 손에 쥐었다.

우우웅―

백야가 아실로테처럼 공명을 시작하는 모습.

이현성의 손에서 진동을 시작하는 백야의 모습에 우미혜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B급 몬스터라면 보스 방까지 뚫고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만, 우미혜 헌터님께서 아실로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실로테를 쥐자마자 마력의 화살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지만, 지금 우미혜의 마력은 C등급이었다.

그녀는 과연 아실로테의 능력을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제 마력이… 견뎌 내 줄지 의문입니다.”

우미혜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 봤으면 했다.

아실로테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터.

왜 유설화에게 아실로테가 전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이현성은 우미혜의 재능을 믿었다.

“우미혜 헌터님의 동반자를 한번 믿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현성은 앞에 나타난 샐러맨더를 향해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녀석의 머리 위로 나타난 그는 백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능력이었고 사기적이라 생각하는 우미혜였다.

마치 순간이동처럼 번쩍하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을 반복했으니까.

고개를 강하게 저은 우미혜가 아실로테를 들고 활시위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내가 이현성 헌터님께 짐이 되지 않도록… 도와줘, 아실로테.’

우우웅―

그녀의 말에 화답을 하듯 아실로테가 짧게 진동했다.

아실로테의 의사가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자 우미혜가 미소를 지으며 강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매겨져 있지 않은 시위에 푸른색의 마력의 화살이 등장했다.

우웅―!

마치 ‘날 믿고 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실로테의 응원을 받은 우미혜가 집중해서 활을 조준하고 마력의 화살을 날렸다.

아실로테에서 쏘아진 마력의 화살이 정확히 샐러맨더의 미간을 꿰뚫자, 우미혜가 담담한 시선으로 툭 늘어진 도마뱀을 바라보았다.

B급 몬스터인 샐러맨더를 뚫을 수 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날아간 화살이 샐러맨더의 미간을 꿰뚫리며 즉사하는 모습을 본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미혜 헌터님이라면 아실로테도 힘을 빌려주겠지. 백야가 내게 힘이 되어 주는 것처럼.’

이현성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고, 우미혜 역시 침착하게 마력의 화살을 날리며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이현성은 우미혜의 지원을 받으며 움직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고, 레이드 속도도 빨라졌다.

보스방 앞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 시간.

이현성이 보스방에 들어가기 전, 우미혜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현성의 물음에 그녀가 손에 들린 푸른색 장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무척 마음에 듭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이 거침없이 보스방 안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