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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노건희의 요청에 따라 이현성은 헌터 협회 본사에 진입했다.

검령의 던전에서 전투를 벌이느라 옷이 지저분해 있는 상황에서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이곳은 일반인도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기에 피가 묻은 옷을 입은 이현성의 신분을 확인해야 했다.

“신분증 확인 후,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직원의 정중한 말에 이현성이 헌터 라이센스를 내밀며 말했다.

옷을 갈아입고 올 일이었지만, 급하게 오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었다.

“협회장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이현성의 말에 직원이 라이센스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이현성이 오면 바로 협회장실로 안내하라는 보고를 받았고, 실수하지 말고 정중하게 대하라는 당부도 전해 들었다.

“안내하겠습니다, 이현성 헌터님.”

끄덕.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헌터 협회 본사 가장 최상층에 존재하는 곳.

안내에 따라 들어가자 그곳에 처음 보는 사람들 몇 명과 김춘아, 강태식이 앉아 있었다.

이현성은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노건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요청을 받고 바로 왔습니다, 협회장님.”

옷 곳곳에 피가 묻어 있는 상태였지만, 노건희는 괘의치 않고 이현성에게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요청을 들어주셔서 고맙네. 일단 앉게나.”

이현성이 마지막으로 들어오자 회의실에 문이 굳게 닫히며 강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프로젝트를 켜고 설명했다.

“현재 101곳의 소중규모 길드를 조사한 결과, 헌터들의 실종 건수가 총 열 건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강태식의 보고에 담담히 보고를 듣고 있던 한 중년인이 혀를 찼다.

“허어… 열 건이라는 일이 발생되었음에도 헌터 협회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헌터 협회를 통해 들어온 실종 신고가 다섯 건이지만,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기에 직원들의 선에서 커트가 된 것 같습니다, 조사단장님.”

하얀 세치가 군데군데 난 중년인이 강태식의 보고에 눈을 질끈 감았다.

헌터의 실종은 사안이 중대했고, 곧바로 위로 보고가 되었어야 할 일이었으나 아래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린 것 같았다.

헌터 협회를 이끄는 수뇌부로서 이런 일이 발생되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잠시 멈춘 브리핑에 노건희가 고개를 저으며 강태식에게 말했다.

“계속하게나, 1팀장.”

그 말에 강태식이 서울 지역의 지도가 그려진 영상을 가리켰다.

“헌터들의 실종 장소입니다. 소규모 팀을 이룬 헌터들의 실종된 곳은 총 아홉 곳입니다. 대부분 서울 내에 존재하는 던전들로 D급 던전이 가장 많았고, C급 던전도 하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

그동안 헌터 협회에 보고도 없이 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 길드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노건희가 분을 삭히며, 강태식에게 물었다.

“후속 처리는?”

“C급 던전을 제외하고 현역 헌터들이 하나씩 책임지며,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스 방에선 어떤 존재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보스 레이드는 허가해 주지 않았습니다.”



에이션트 놀처럼 돌연변이 보스가 나타난다면, 현역 헌터들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태식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한 노건희가 C급 던전이 표시된 곳을 바라보았다.



“C급 던전이 문제겠군.”



“그렇습니다. C급 던전의 레이드를 진행하기 위해선 집행부장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현역 헌터들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협회장님.”



김춘아를 투입시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

노건희가 고개를 저었다.

현재 김춘아는 집행부를 안정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간단한 보고가 마무리되고 노건희가 눈을 살짝 감았다 다시 뜨며 이현성에게 의사를 전했다.

그를 이곳에 부른 이유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었으니까.

“헌터 협회에선 에이션트 놀을 사냥하고 새롭게 나타난 돌연변이 몬스터를 사냥한 이현성 헌터에게 C급 던전에 대한 레이드 권한을 주고자 하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건희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에게 갚아야 할 3억이 있긴 하지만,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대가로 3억을 탕감하는 데 끝낼 수는 없었다.

“C급 던전 레이드를 성공시킨다면, 제게 무엇을 줄 수 있으십니까?”

당당하게 묻는 말에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노건희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김춘아가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현성은 헌터 협회에 소속된 헌터가 아니었고 의뢰를 하는 입장에서 확실한 대가를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헌터 협회에서 이현성 헌터에게 의뢰를 드리는 입장이니, 보상을 내어 드려야 하는 것도 맞지. 레이드한 던전의 소유권을 지급하려 하네.”

던전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 길드는 유령 길드가 되었다.

모든 길드원이 실종되었고 자연스럽게 던전 소유권도 헌터 협회로 회수될 일이었으나, 헌터 협회에서 던전 소유권을 가지게 되더라도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엔 돌연변이 몬스터를 레이드할 수 있는 이현성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게 나았다.

노건희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책임지겠습니다.”

수십 억에 거래되는 C급 던전 소유권, 생각보다 크게 부르는 노건희의 제안에 이현성이 바로 승낙했다.

앞에선 강태식이 정중하게 말했다.

“집행부 한 팀이 이현성 헌터님과 함께 움직일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협회장님.”

노건희에게 인사를 한 이현성이 회의실 문으로 당차게 걸어갔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을 테니까.

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회의장을 벗어나는 이현성의 모습에 노건희의 앞에 앉은 이들이 불만 어린 시선으로 이현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몰랐다.

이 사항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며 나타난 보스 몬스터는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



회의장을 나와 본사 앞으로 걸어 나온 이현성의 앞에 집행부 헌터 스무 명이 나타났다.

무장을 한 상태로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들.

강무한과 우미혜가 속한 1팀이었다.

“다시 뵙습니다.”

강무한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이현성이 그에게 물었다.

“함께 움직인다는 분들이 1팀이었습니까?”

“집행부장님께서 명령한 사항입니다. 다시 한번 이현성 헌터님과 팀을 이뤄 싸우게 되는 점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현성은 강무한의 눈빛에서 활활 타오르는 투기를 확인했다.

강무한은 집행부의 소속된 헌터로서 브레이크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우미혜와 다른 집행부 헌터들 역시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우미혜와 강기찬을 잠시 바라보던 이현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한 대로 검귀의 뿔은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우미혜와 강기찬의 마력이 희미하게 늘어나 있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일지라도 다른 헌터들에겐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이현성이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검귀의 뿔 두 개를 손에 쥐었다.

“움직이기 전에 간단한 차나 한잔하고 움직이시겠습니까?”

뜬금없이 차를 마시자는 그의 말에도 강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집행부 사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헌터 협회 본사로 들어가려 하자 이현성이 그의 앞을 막았다.

“저희가 편하게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던전 앞에서 간단하게 차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해야 했다.

자신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악마의 힘을 가진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이현성의 요청에 강무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우미혜의 눈빛은 빛났다.

마력량이 늘어난 이유를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굳이 그 이유를 꼽자면 던전에서 나온 이현성이 검귀의 뿔로 우려내 준 물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이현성은 집행부 1팀과 함께 C급 던전으로 차량으로 이동했다.

스산한 분위기의 던전 앞.

이현성이 우미혜에게 부탁한 가스버너를 펴고 냄비에 물을 담았다.

품에 지니고 있던 검귀의 뿔을 맨손으로 으스러트렸다.

“이현성 헌터님. 검귀의 뿔을 왜 우려내시는 겁니까?”

녹차나 커피도 아니고, 몬스터의 부산물인 검귀의 뿔을 물에 우려내는 모습에 강무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몸에 좋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우미혜 헌터님?”

자신에게 묻는 이현성의 물음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게 맞았다.

이현성이 검귀의 뿔을 가져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 다른 몬스터의 뼈들처럼 철과 함께 재련하면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현성의 미소에 우미혜가 딱딱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같이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해야 하는 분들이니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미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아직 사회생활이 부족한 강기찬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으니까.

“…마력이 상승한 이유가 검귀의 뿔 때문에 일어난 현상입니까?”

그의 놀란 목소리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기찬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 같지만, 우미혜는 그전부터 의심하고 있던 것 같았다.

“검귀의 뿔을 다려 마시게 된다면, 마력이 상승하게 됩니다. 다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마력이 늘어나지만요.”

이런 중대한 사항을 숨기지 않고 말해 주는 이현성의 모습에 1팀 헌터들이 더 당황했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저희에게 알려 주셔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헌터 협회에 보고한다면 이현성 헌터님께선 앞으로 검귀의 뿔을 가져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제 것이 아닌 것까지 숨기며 돈을 벌 생각은 없습니다.”

검령의 던전 소유권은 헌터 협회의 것이었다.

남의 물건을 가로채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없을뿐더러 어차피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차고 넘쳤다.

돈이 될 만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산물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겐 효능이 극대화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이현성이 검귀의 뿔을 우려낸 차를 종이컵에 담아 집행부 소속 헌터들에게 전달했다.

“드시죠. 들어가게 된다면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까지 다시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경직된 헌터들의 모습에 이현성이 그들의 찝찝함과 긴장을 풀어 주고자 다정하게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어차피 이 던전의 소유권을 넘겨받게 된다면 검령의 던전을 레이드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할 테니까요.”

C급 던전의 소유권을 판매할 마음이 없었다.

이현성의 생각대로 악마의 힘을 지닌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라면?

‘다른 길드에 넘겨도 희생자만 더 늘어나는 꼴이 될 테니, 그럴 바엔 내가 레이드를 진행하는 게 나아. 그리고 언제까지 주 사냥터를 빌려서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소유권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곧, 이현성이 레이드를 진행할 거라는 말과 같았다.

그의 말에 강무한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던전을 소유하겠다는 뜻은 이현성이 앞으로 갈 길을 결정했다는 말이었다.

“길드를 창립하려 하십니까?”

길드 창립하는 건 결정하지 못했지만, 1인 길드를 세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리자드맨 워리어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면 다른 길드에 소유권을 넘겨도 희생자만 생겨날 겁니다. 전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악마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이현성이 책임져야 하는 게 맞았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닌, 단순히 악마라는 존재에게 농락당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기 싫을 뿐.

그는 이미 회귀 전 악마의 손에 한 번 농락당한 전적이 있었다.

가족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쁨 마음에 던전 밖으로 나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악마였다.

‘그만큼 기분 안 좋은 것도 없지.’

던전에 들어가기 앞서, 강무한이 던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현성은 그저 C급 던전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터.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그에게 알려 주어야 그가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은 어인의 던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두 발로 선 어인들이 등장합니다. 최종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저 어인과 비슷한 형태의 보스 몬스터입니다.”

강무한의 설명에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 두겠습니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이현성은 집행부 헌터 1팀과 함께 C급 던전 안으로 움직였다.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열다섯 마리의 어인들.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다면 이 던전에서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았다.

“포화 직전이군요.”

“잡몹들은 1팀에서 사냥하겠습니다. 이현성 헌터님께서 움직인 이유는 보스 몬스터 때문이니.”

그의 말대로 이현성이 움직인 이유는 평범한 어인을 상대하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이곳으로 함께 온 이상 집행부 헌터의 안전은 그가 책임져야 했다.

“같이 움직이면서 저도 몸을 풀까 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현성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집행 1팀, 전투 준비!”

헌터들이 전투 준비를 하며 진영을 갖추자 이현성도 백야를 두 손에 쥐고 움직였다.

물도 없는 곳에서 아가미로 이용해 열심히 숨을 쉬는 어인들이 고개를 돌려 입구에 나타난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삼지창을 들고 헌터들을 향해 달려왔다.

집행부 1팀 소속 헌터들이 순식간에 산개하며 어인들을 하나씩 잡고 전투를 시작했다.

이현성은 가장 먼저 고속이동을 사용하여 어인 하나의 뒤를 잡았다.

백을 이용해 어인의 등을 찌르려던 이현성이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며 공격을 멈추고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파앙―

등을 찌르려던 어인의 머리 위로 이동한 이현성이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거대한 장궁을 들고 있는 푸른색의 어인이 날린 화살이 이현성이 노리고 있던 어인의 심장을 꿰뚫었다.

같은 편을 향해 서슴없이 화살을 날리는 행동에 이현성이 빠르게 바닥으로 착지하여 녀석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