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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이현성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새롭게 개방된 능력을 사용했다.

‘브레이커.’

백에 깃들어 있던 브레이크가 창날 끝으로 모여들었다.

환한 백색의 빛을 뿜어내는 백을 그대로 다리에 찔러 넣자 그간 뚫리지 않던 방어막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리자드맨 워리어의 눈에 당황이 깃들었다.

리자드맨 워리어가 다급하게 손에 쥔 장창을 이현성을 향해 휘둘렀다.

쾅!

에이션트 놀처럼 회귀 전 마지막에 본 악마와 비슷한 능력을 드러내는 모습.

그는 리자드맨 원리어의 창을 백야로 막아 내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마력에서 비슷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힘만 놓고 본다면 리자드맨 워리어가 더 강했다.

‘고속이동.’

이를 강하게 깨물고 날아가는 와중에 그는 고속이동을 사용해 리자드맨 워리어의 위로 나타났다.

그러고는 그대로 야를 강하게 쥐고 정수리에 야을 박아 넣었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던 리자드맨 워리어였지만, 방어막이 부셔지자 그때부턴 일반 리자드맨과 다를 바가 없었다.

푸욱―

신경질적으로 야를 정수리에서 뽑으며 바닥으로 착지한 이현성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쓰러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에이션트 놀이나 이 녀석이나 수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째서 악마와 같은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지?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파악해야 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백야를 바닥에 박고 눈을 감았다.

브레이커라는 능력은 마력을 모두 잡아먹었고, 텅텅 빈 것 같은 마력의 느낌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 느낌도 오랜만이네.’

악마의 신단에서 살아갈 때, 종종 마력을 전부 소비한 적이 있었다.

마력 상승으로 주어지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투 지속을 위해서라도 마력 등급을 성장시켜야 했다.

“하아… 하아…….”

그때, 리자드맨의 피로 샤워를 한 듯한 강무한이 이현성을 향해 달려왔다.

일반 리자드맨을 처리하고 그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F등급에 불과하던 이현성이 왜 갑작스럽게 B등급 헌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내심 이현성이 김춘아와의 인연으로 과한 등급을 받은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이현성의 능력은 B등급 헌터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고 생각했다.

강무한이 정중하게 그에게 고개를 숙이자, 이현성이 먼저 제안을 했다.

“이 녀석의 표본은 헌터 협회에 양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성 헌터님.”

강무한이 바닥에 쓰러진 리자드맨 워리어를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리자드맨 워리어의 시신을 양도하겠다는 이유.

그건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이기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표본을 연구하고 뒷일을 대처해야 하는 건 협터 협회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강무한의 시선을 확인한 이현성이 다른 곳의 상황을 물었다.

“나머지 브레이크는 모두 막은 겁니까?”

걱정이 담긴 그의 물음에 강무한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마무리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리자드맨 워리어 하나인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돌연변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해도 움직이지 못했을 일.

마력이 바닥을 보이자, 이현성은 현기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A급 영혼의 구슬이 야에 저장됩니다.]



B등급 몬스터라 알려진 리자드맨 워리어에서 나온 등급은 A급.

하지만 에이션트 놀보다 훨씬 더 강했다.

뜬금없이 터진 브레이크를 정리한 그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럼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현성은 바닥에 박혀 있던 백야를 양 손에 쥐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마력이 바닥을 보이는 중에 고속이동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이현성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현성 헌터님, 제가 집까지 모셔 드리고 싶습니다.”

이현성의 팔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강무한이 빠르게 이현성의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힘들 거라 판단하고,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강무한이 서둘러 차를 가져와 이현성을 태우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침묵만이 감도는 차 안.

이현성이 몰려오는 어지럼을 느끼며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아무리 봐도 리자드맨 워리어가 가진 힘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이션트 놀부터 시작해서 점점 강해지는 몬스터들의 등장은 마치 거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강무한과 짧은 대화를 마친 이현성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행히 세 곳의 던전은 인적이 드문 산에 있었고, 몬스터가 도심가로 흘러들기 전 현역 헌터들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현성의 집에 도착하자 이현성은 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만약 그 자리에 이현성 헌터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화를 나눌 여력도 없었기에 간단하게 대답한 이현성이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



이현성은 검령의 던전의 레이드를 건너뛰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부족한 마력을 채우기 위해선 휴식을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깊은 밤이 찾아오자, 갈증을 느낀 이현성이 부스스한 상태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형?”

밤 10시.

이현성의 집 거실에 앉아 최연수가 내어온 과일을 열심히 먹고 있던 김춘아가 말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집 거실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당황을 드러내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운반꾼의 일을 그만두고 뭐하면서 지내나 한 번 찾아와 봤다. 온 김에 어머니에게도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말이야.”

핑계를 대는 그의 모습에 이현성이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일단 제 방으로 들어오세요.”

김춘아가 왜 왔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리자드맨 워리어 때문일 터.

이현성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김춘아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김춘아가 이현성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몸은?”

“마력이 바닥났어요. 한 이틀은 집에서 움직이지 못할 테죠.”

마력이 바닥났다는 말에 김춘아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에이션트 놀을 상대할 때도 그의 마력은 바닥나지 않았으니까.

이현성은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그렇기에 전투, 능력 측정이 높게 상승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대단한 놈이었겠구나.”

리자드맨 워리어를 지칭하며 말하는 모습에 이현성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위험했죠.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까요.”

백과 흑에 영혼의 구슬을 전부 흡수시키지 않았다면, 리자드맨 워리어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가 이현성에게 찾아온 이유는 몸 상태를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오늘 일어난 세 곳의 던전 소유권은 하령 길드라는 곳에서 가지고 있었어. C급 길드로 길드장이 B급 헌터인 곳이었으니까.”

“…조사를 진행했겠네요. 브레이크가 세 곳에서 동시에 일어났으니.”

오늘 하루 종일 조사단과 집행부는 하령 길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하령 길드에 속한 헌터의 수는 40명. 그리고 한 달 전부터 길드의 소속된 모든 헌터가 실종되었다는 걸 조사 끝에 알아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한 경로는 리자드맨 던전. 아마 거기서 몰살당했을 확률이 크겠지.”

헌터 40명이 몰살당했다는 설명에 이현성은 말을 이루지 못했다.

리자드맨 워리어는 위험했으며 이현성이 악마와 시뮬레이션으로 경험을 쌓지 못했더라면 절대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그렇군요.”

“최근 중소규모의 길드에 속한 헌터들의 실종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일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아.”

“헌터 협회에서 나온 결론은요?”

“대형 길드를 제외한 소, 중 규모 길드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야. 아무래도 전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집행부를 네게 붙여 주진 못할 것 같아서.”

길드는 폐쇄적인 성향이 강한 곳이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

그들의 이름은 곧 길드의 명예였기에 실종된 헌터들을 제대로 공표하지 않았다.

하령 길드의 일로 인해 헌터 협회는 결국 전수조사라는 칼을 뽑았다.

수많은 길드를 대상으로 모두 전수조사 하다 보면 그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운반꾼 팀만 하나 붙여 주세요. 제가 나머진 알아서 진행할 테니.”

“알겠다. 그리고 이번 브레이크를 막아 낸 대가로 헌터 협회에서 너에게 포상금을 지급했으니 계좌 확인해 봐.”

“네.”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김춘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 인사를 하러 왔지만, 이현성의 상태를 보니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간다. 나오지 마.”

“다음에 헌터 협회로 한번 찾아갈게요, 형.”

이현성의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김춘아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가는 소리까지 확인한 이현성은 휴식을 더 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



이틀 동안 꼼짝도 할 수가 없는 상황.

이 정도로 오랜 시간을 쉬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잠을 자는데 시간을 소비했다.

가끔 나와 가족들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마력은 아주 천천히 채워지는 중이었다.

결국 이틀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백야를 챙기고 검령의 던전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김춘아에게 전달했다.

[괜찮겠냐? 내가 말려도 움직일 녀석이라는 건 알지만…….]

벌써 움직이겠다는 말에 김춘아가 걱정을 드러냈지만, 이현성을 뜯어 말리지는 않았다.

그의 말에 이현성이 분위기를 전환하며 일의 진행 사항에 대해 물었다.

“네, 전수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죠?”

김춘아는 잠깐의 침묵 후에 대답했다.

[…심각해. 전수 조사 끝나면, 협회장님이 한 번 널 부를 것 같은데?]

“흐음, 알아 두고 있을 게요.”

백야에 영혼의 구슬을 흡수시키는 일은 그만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이현성 본인의 마력 등급 상승이 시급해 보였으니.

이현성은 검령의 던전에 도착해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검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그는 백야를 손에 쥐고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최대한 검귀들을 사냥하고 영혼의 구슬을 얻어야 했고, 부가적으로 뿔을 얻으면 더 좋았다.

‘솔직히 지금 모아 놓은 뿔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야. 더 많이 욕심을 내 봤자,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할 것 같고… 당장 알려 준다고 해도 검령의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모아 놓은 검귀의 뿔은 이현성의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지금 당장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 없지만, 4년 후에 뿔의 효능이 밝혀지기 전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보다 빠르게 검귀의 뿔에 효능을 헌터 협회에 알릴 생각이었다.

‘아, 마력을 채울 때, 검귀의 뿔을 사용할 걸 그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

이현성은 검귀의 뿔을 우려낸 물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방해도 없이 검령의 던전에서 여섯 시간을 보낸 이현성이 던전 입구에 사냥한 검귀들을 옮겨 두었다.

그러고는 운반꾼들이 가져가기 편하게 일일이 던전 입구로 옮겼다.

검귀의 시신을 한쪽에 쌓아 둔 이현성이 가방에 넘치도록 쌓인 뿔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도 한 대 사야 하나.’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은 검귀의 뿔은 점점 더 늘어날 게 분명했고, 쌓아 둘 장소가 필요했다.

‘악마의 신단이라면 안전하겠지.’

비상용 창고.

지금 이현성에겐 그게 필요했고, 악마의 신단은 창고로 쓰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곧장 악마의 신단 안으로 들어갔다.



[악마 사냥꾼의 제단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들어오자마자 이현성에 눈에 보인 글귀.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늘 위에서 떨어진 거대한 빛이 이현성을 다시 한번 덮쳤다.

가져온 검귀의 뿔을 제단에 내려 두고 떠나려는 찰나.



[입구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전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친절하게 변해 버린 글귀의 모습에 이현성이 갸웃거리며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번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다.

던전에 모아 놓은 검귀의 뿔을 두고 나와서 시간을 확인했을 때, 오후 1시라고 표시되었다.

그는 이틀 전 김춘아가 한 말을 떠올리고 핸드폰으로 계좌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이현성의 잔액에 찍힌 금액은 2억을 돌파했다.

‘돈 벌기 참 쉽네.’

회귀 전, 10년을 운반꾼 생활을 했지만, 적은 돈만 남았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헌터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았지만, 2억이라는 거금을 얻고 현타가 몰려왔다.

그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이현성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급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이현성 헌터의 핸드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넘어에서 들려온 목소리에서 진중함이 느껴졌다.

[헌터 협회 협회장 노건희일세. 이현성 헌터에게 협회장으로 부탁할 일이 생겨 전화를 했네.]

노건희의 전화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3억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현성이 곧바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김춘아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상태였다.

“헌터 협회로 가겠습니다.”

[기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