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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헌터 협회에선 검령의 던전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한 천재 연구원의 연구로 인해 이곳의 가치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검귀의 뿔이 헌터들의 마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순간, 이곳의 가치가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갔다.

등이 굽어져서 두 발로 펄쩍펄쩍 뛰는 검귀들.

이현성이 백과 야를 뽑아들고 자세를 취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헌터 협회가 내게 호의를 준 만큼, 딱 그만큼만 돌려주자.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되잖아?’

돈이 있으면 결국 허튼 짓에 써 버리게 된다.

과한 사치를 부리게 되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유혹이 괴롭히게 될 터.

이현성은 진형을 갖추는 검귀들을 바라보았다.

검귀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선 B급 헌터가 필요했다.

그만큼 피부가 두텁고 사냥하기 힘든 몬스터가 바로 검귀였고, 무엇보다 B급 헌터로 하나로 잡을 수만 있다면 협회에선 이곳을 버리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지. 검귀는 개인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단체로 활동한다는 것.’

적어도 열 마리가 한 팀을 이루며 진영을 갖추었고, 헌터들은 팀 단위를 꾸려 검귀를 사냥해야 했다.

체력 소모와 전력 소모가 부담되는 곳.

브레이크의 염려도 없기에 헌터 협회는 이곳을 유령 던전으로 만들었다.

진영을 갖추며 이현성을 향해 다가오는 녀석들.

검붉은 피부를 가진 검귀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우선 진영을 무너트려야 했다.

‘그리고 내 능력은 검귀의 진영을 무너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겠지.’

고속이동을 이용하여 검귀들이 진영을 갖춘 공중 위에 나타난 이현성이 백을 강하게 집어던졌다.

블레이드가 깃든 백이 강렬하게 회전하며 가장 가운데에 있는 검귀를 향해 쇄도했다.

푸욱―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B급 헌터의 마력이 있어야만 꿰뚫을 수 있는 검귀의 피부가 뚫렸다.

백이 검귀의 머리를 꿰뚫고 바닥에 박히자마자 공중에서 떨어져 검귀의 위에 착지한 이현성이 야를 바로 앞에 있는 검귀의 정수리에 박았다.

그와 동시에 이현성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귀의 공격.

고속이동으로 이동한 이현성의 손에는 백야가 들려 있지 않았다.

백야를 회수하기 전에 검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 백과 야는 당신의 부름에 답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 글귀. 이현성이 제단에서처럼 백야의 이름을 불렀다.

“백, 야.”

이현성의 부름에 검귀에 박혀 있던 두 개의 무기가 빛을 발산하며 순식간에 사라졌고,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움직였다.



***



이현성이 검령의 던전에 들어간 지 1시간 40분이 지났다.

나오지 않는 이현성의 모습에 우미혜가 불안한 시선으로 던전 입구를 바라보았다.

“저희도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리님?”

강기찬의 말에 우미혜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고민했다.

혹시나 이현성이 검귀에게 당한다면 집행부가 움직인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김춘아가 집행부를 움직인 이유는 이현성의 안전 때문이기도 했다.

“20분만 더 기다려.”

이현성이 들어간지 두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

우미혜의 판단에 강기찬이 불안한 시선으로 던전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던전 입구에서 이현성이 검귀의 시신 두 구를 양어깨로 들고 나타났다.

그렇게 던전과 입구를 왕복하던 이현성은 총 열 구를 내려놓았다.

시신 열 구에서 뿔을 모두 잘라 낸 이현성이 손에 마력을 부여하고 검귀의 뿔을 부셨다.

“혹시 가스레인지 있습니까, 우미혜 헌터님?”

“있습니다.”

담담하게 검귀의 시신을 옮기고 뿔만 잘라 내는 모습을 당황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미혜가 가스레인지를 요구하는 이현성의 말에 강기찬을 바라보았다.

강기찬은 서둘러 취사도구를 차에서 가져와 이현성에게 넘겼다.

생수를 냄비에 붓고 물을 끓이고는 준비한 작은 망에 부순 검귀의 뿔을 일부 넣었다.

그러고 30분을 기다렸다.

검귀의 뿔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검귀의 뿔의 효능이 알려지자 검귀의 뿔 하나당 10억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었다.

가격은 점점 올라갔고, 이현성이 살 수 있는 금액을 뛰어넘게 되었다.

그는 이내 검귀의 뿔을 우려낸 물을 잔 세 개에 균등하게 따랐다.

“드시겠습니까?”

잔을 내미는 이현성의 행동에 우미혜와 강기찬이 공손하게 잔을 받아 들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헌터의 세계에선 등급이 곧 계급이었다. 우미혜의 등급은 C급, 강기찬의 등급은 D급으로 이현성보단 낮은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이현성이 건네는 차를 마시는 두 사람.

이현성이 홀짝이며 검귀의 뿔을 우려낸 차를 마셨다.

‘별 것 없네? 그냥 소모된 마력만 채워 주는 수준이니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소모된 마력만 채워 주는 효과라면 검귀의 뿔 하나 가격이 10억까지 치솟았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 사람이 차를 다 마셨을 때,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검귀의 시신은 잘 좀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 다시 들어가야 될 거 같으니.”

“알겠습니다.”

비록 자신에게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다를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의 변화로 효과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비록 나한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효과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르지 않을까? 난 영혼의 구슬로 마력으로 수치를 올릴 수 있으니까.’

잠시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현성이 몸을 돌렸다.

다시 검령의 던전으로 들어가는 이현성.

바닥에 널브러진 열 구의 검귀 시신을 바라보던 우미혜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다니… 혼자서 검령의 던전으로 들어간 것도 놀라운 일인데, 진형을 갖춘 검귀 한 팀을 홀로 상대할 줄이야…….”

옆에서 들려오는 강기찬의 목소리에 우미혜다 딱딱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대기하고 있는 집행부원들을 소집한다. 검귀의 시신은 얻기 힘든 표본이니까.”

“근데 검귀의 뿔을 가져갔다는 보고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분배하기도 전에 검귀의 뿔을 가져갔으니까요.”

“우리가 사냥한 것도 아니고, 이현성 헌터님 홀로 사냥해 온 검귀들이다. 그리고 검귀의 뿔이 비싸더라도 검귀 시신 하나의 값보단 훨씬 못 미치니 문제 없다.

우미혜의 질책 섞인 말에 강기찬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현성에게 무슨 일이 생길수도 있기에 김춘아는 집행부 한 팀을 검령의 던전에 배치했다.

김춘아가 자리를 비운 2년 동안 집행부는 많이 망가진 상태였고, 노건희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구심점이 없는 조직의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우 대리.”

“강 과장님, 이현성 현터님께서 검귀의 시신 열 구를 가져오셨습니다.”

두 시간 만에 검귀 한 팀을 사냥했다는 우미혜의 보고에 집행부 1팀 소속 강무한 과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검귀의 시신들을 바라보던 강무한은 뿔이 잘린 모습에 의문을 품고 우미혜에게 물었다.

“검귀의 뿔은?”

“이현성 헌터님께서 회수하셨습니다.”

검귀의 뿔을 가져갔다는 말에 강무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검귀를 사냥하기 위해선 적어도 B급 헌터 다섯이 필요하던 일이었다.

“그 정도야 뭐. 충분히 이해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겠지. 검귀의 시신들을 헌터 협회에 옮긴다. 표본으로 사용하라고 연구팀에 던져 줘. 그리고 검귀 시신 하나 가격을 측정하라고 회계팀에게 전달해.”

“알겠습니다, 과장님.”

“절대 오차가 일어나선 안 된다. 분배금 문제는 무조건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할 테니까.”

협회장이 직접 집행부의 지시를 내렸고, 이현성의 분배금은 조사단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노건희는 이현성의 재능이 뛰어남을 파악했다.

지금은 비록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현성은 분명 헌터 협회의 큰 도움이 될 인재라는 판단을 내렸다.

집행부 한 팀이 이현성을 지원한다는 걸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이현성이 두 시간 후, 다시 던전 입구로 나왔다.

검귀의 시신 열 구를 다시 바닥에 내려 두는 모습에 우미혜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만할 생각입니다. 하루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집행부의 소속된 헌터로서 이현성 헌터님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하루 네 시간 만에 검귀의 시신 스무 구를 가져온 이현성.

백야가 힘을 갖게 되면서 영혼의 구슬을 흡수하는 형태도 달라졌다.

그동안 일일이 손으로 주웠다면, 이제부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백에 내장된 영혼의 구슬, B급 영혼의 구슬 여덟 개.]

[흑에 내장된 영혼의 구슬, B급 영혼의 구슬 일곱 개.]



열다섯 개 정도로 떨어진 영혼의 구슬.

스무 마리의 검귀를 잡았아서 나온 영혼의 구슬 숫자였다.

앞으론 영혼의 구슬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터.

이제 이현성 혼자 영혼의 구슬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백야에게도 할당을 해야 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이현성의 가방에는 검귀의 뿔 열여덟 개가 들어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이현성이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운반꾼으로 일할 때 매일 같이 바쁘게 생활했지만, 김춘아가 트레이닝실을 접고 운반꾼으로도 활동할 수 없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야 할 상황.

그렇다고 집행부 헌터들을 하루 종일 던전 입구를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집행부 헌터들이 없다면, 하루 종일 사냥에만 집중했을 텐데. 문제는 검귀의 시신 처리 문제가 중요하니까.’

집행부를 배치해 둔 이유는 검귀의 시신 문제도 컸다.

개인 혼자서 검귀의 시신을 처분할 수는 없고, 애초에 이현성은 검령의 던전에 대한 소유권이 없었다.



***



“검귀의 표본 스무 개가 생겼습니다.”

이현성 홀로 오늘 하루 사냥한 검귀의 숫자를 보고하자 노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마력 등급은 C급이지만, 전투와 능력 등급은 A급이었다.

마력량이 헌터의 등급을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현성은 다른 헌터들과 달랐다.

“이현성 헌터에게 지불할 배당금은?”

“보통 검귀 시신은 1,000만 원 정도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이현성 헌터가 잡은 검귀의 수가 스무 마리이니 총 금액이 2억이고, 그중 3할을 배당금으로 책정하면 6,000만 원이라는 돈이 계산됩니다. 세금을 3% 제외하면 5,820만 원으로 측정됩니다. 그리고 이현성 헌터가 검귀의 뿔을 가져갔으니, 1,000만 원 정도 제하면 될 것 같습니다.”

회계팀의 보고를 받은 노건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현성 혼자 검귀를 사냥했고 뿔의 가격을 제외할 이유가 없었다.

“5,820만 원 그대로 입금해. 검귀의 뿔 가격이 높은 것도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현성 헌터가 사냥한 검귀의 시신은 모두 표본으로 돌려.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몬스터니까.”

“아, 그리고 검귀에게서 나온 마흔 자루의 검도 계산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이현성 헌터가 양보해 주었다고 들었으니, 검귀에서 나온 무기들은 배당금에 넣지 않아도 되겠지.”

하루만에 6,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될 테지만, 희귀한 표본을 헌터 협회에게 내어 준 대가가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



통장 사본과 헌터 라이센스 사본을 김춘아에게 넘긴 이현성이 저녁 시간이 됐을 때, 계좌를 확인했다.

운반꾼으로 일하면서 모아둔 1,000만 원이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 잔액 : 6,850,000원.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여유를 가지고 검귀 사냥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30%의 배당금이 측정되었어도 끽해 봤자 3,000만 원 정도 수준이라 생각했지만, 이현성이 생각한 금액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