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백야를 얻었다.

이제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으니 주저하지 말아야 했다.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악마의 신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악마의 신단이 발견된 곳은 동네 뒷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었다.

산의 중턱.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었다.

길을 잃은 등산객에게 발견된 곳.

헌터 협회는 신전 형태로 드러난 곳을 악마의 신단이라 불렀다.

악마의 신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작은 동굴에 도착한 이현성이 백과 야를 손에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바뀌는 풍경.

검은 기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다양한 짐승형 몬스터가 자리를 지켰다.

‘일반적인 던전은 한 달 정도 레이드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어김없이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하지만 이곳, 악마의 신단은 달라.’

헌터들에게 버림을 받은 이유는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던전이라는 점이었고, 만약 브레이크 위험이 있다면 헌터 협회는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 레이드를 진행했을 것이다.

한 달이 지나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던전이 종종 발견되곤 했다.

악마의 신단 역시 그중 하나였고, 발견되지 않는 던전 대부분이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은 던전이었다.

이런 던전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으며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찾아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겹게 사냥하던 몬스터들이지. 그 약점도 잘 알고 있고.’

악마의 신단에 자리한 몬스터는 세 종류였다.

사자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 블루 샤벨.

곰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 블랙 베어.

늑대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 화이트 울프.

이 세 종류의 몬스터는 모두 B급 몬스터였으며 이곳에서 처음 발견된 몬스터들이었다.

그들은 365일 세력 다툼을 했고, 세 종족은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회귀 전 이현성은 이 부분을 파악하고 세 종족의 싸움을 이용하여 몬스터들을 사냥하곤 했다.

그때는 몬스터를 사냥할 힘이 없었고, 아마 지금도 힘이 부족한 건 매한가지일 게 분명했다.

B급 마력을 지니고 나서야 겨우겨우 사냥을 할 수 있던 녀석들이었으니까.

악마의 신단에 관해 떠올린 이현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제단을 찾기 위해선 던전을 모두 뒤져야 하나?’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일루전 현상을 만난 것도, 그 현상을 겪고 도착한 곳이 제단이었다는 것도 운이라 생각했다.

이현성은 악마의 신단으로 들어갔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을 노려보는 블루 사벨을 바라보았다.

초입구의 세력을 둔 녀석들.

블루 샤벨은 악마의 신단 초반부에 있고, 블랙 베어는 중반부, 화이트 울프는 끝 쪽에 세력을 두었다.

사실 이 세 몬스터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녀석은 블랙 베어였다.

앞과 뒤에서 공격하는 블루 샤벨과 화이트 울프를 막으면서도 세력을 지켜 올 정도로 강했다.

블루 샤벨을 상대하기 위해 백야를 손에 쥐자마자 던전 입구 깊숙한 곳에서 맹렬하게 강렬한 빛이 다가왔다.

강한 빛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자 이현성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앞에 높은 계단이 웅장하게 서 있는 제단이 나타났다.

‘일루전 현상인가?’

곳곳이 상해 있는 낡은 제단.

이곳이었다.

영혼의 구슬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이곳은 절망하는 이현성에게 기회를 주었다.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그 순간 백야에 검날과 창날에서 검은색과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야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하나로 뭉치자 제단의 진짜 모습이 드러냈다.

낡고 허름한 제단의 형태를 벗어 버리고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한 백색의 계단의 길이 드러났다.

‘왜? 어째서…….’

회귀 전에도 이현성은 백야를 들고 이곳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태는 처음 보았다. 순백의 계단 길은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백야에서 공명이 일어났다.

두 무기는 이현성의 손에서 빠져나와 몸을 떨며 스스로 공중 위로 떠올랐고, 두 무기의 검날과 창날은 제단 위를 가리켰다.

스스로 무기가 의사를 가지고 떠오르는 현상을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올라가 보라는 거야?”

우우웅―

우우웅―

이현성의 말에 백야가 동시에 떨었다.

계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백야가 이현성의 걸음과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회귀 전, 제단의 끝에 올라가 회색의 구슬을 쥐였을 때, 그때부터 영혼의 구슬을 보였으며 그 구슬을 흡수하여 마력을 상승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잠든 힘이 얼마나 유용하고 특별한 힘인지.

순백의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대략 한 시간이 지났을 쯤, 나타난 제단의 정상이 보였다.

이현성은 고속이동을 이용하여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으나 그냥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며 정상에 다다랐다.

제단의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자 중앙에 솟구쳐 있는 이현성의 키만 한 기둥이 눈에 보였다.

회색의 기둥.

그곳 곳곳에는 문양인지, 아니면 글귀인지 모를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현성이 그 기둥을 바라보며 걸어가자 백야가 그 기둥 위에 강하게 박혔다.

우우웅―

두두두두―

회색의 기둥에 백야가 박히자 제단에서 극심한 진동이 느껴지며 회색의 기둥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과 야가 당신에게 영구 귀속됩니다.]

[백과 야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대의 부름에 답할 것입니다.]

[백과 야에게 영혼의 구슬을 흡수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회귀 전과 뭐가 달라진 거지?’

새로운 능력을 얻고 이현성은 단 한 번도 이 제단을 다시 오르지 않았다.

그저 능력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5년을 견뎌 왔고 살아남으려 애를 써야 했다.

어지럽게 드러나는 황금색 글귀는 회색 글귀로 변화하며 이현성에게 다양한 설명을 해 주었다.

모든 글귀가 사라지며 기둥에 박힌 백과 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자신들을 불러달라는 듯이.

내 이름을 불러 달라는 듯이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백, 야. 돌아가자.”

이현성의 부름에 백과 야가 이현성의 눈에서 사라지며 그의 손에 나타났다.

마치 고속이동처럼 순식간에 이동하여 이현성의 손에 스스로 잡히는 백야.

이현성이 환한 미소를 드러내며 다시 제단 아래로 돌아갔다.

제단 아래로 내려오자 다시 제단의 형태가 본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제단의 변화를 바라보던 이현성이 고개를 돌렸을 땐, 회귀 전 그를 수 없이 괴롭혀 오던 몬스터들이 제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가야 하나.’

입구까지 걸어가며 입맛을 다시는 이현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몬스터를 사냥하여 능력을 성장해야 할 이현성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신단 곳곳을 살펴봐도 드러나지 않은 몬스터들로 인해 이현성이 실망한 채로 악마의 신단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현성이 나가자 회색의 기둥에서 한국어로 된 언어가 새겨졌다.



― 악마 사냥꾼의 신전, 2대 지배자 이현성.



이현성이 사라지자 회색의 털을 가진 늑대가 나타나 하울링을 시작했다.

우우우!

늑대의 울음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 형태의 존재들.

곰의 형태와 사자의 형태를 가지고 전신에 회색의 털을 지닌 이들이 하나둘 신전에 몸을 드러냈다.



***



악마의 신단 밖으로 빠져나온 이현성이 혀를 짧게 찼다.

주 사냥터로 이곳에서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이곳에서 성장하며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가져다 팔며 우선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 생각이었다.

‘사냥터를 결정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제단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며 악마의 신단에 있는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졌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사냥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 김춘아 관장님.



이제 더 이상 관장이 아니라 집행부장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아직 명칭을 바꾸지 못했다.

‘이제 이름을 변경해야겠네.’

기다렸다는 듯이 걸려 온 전화에 이현성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네, 형.”

[왜 전화가 안 되냐? 한 열 통은 한 것 같은데.]

“전화하셨어요? 부재중 전화 없었는데…….”

[핸드폰 고장 난 거 아니냐? 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깐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 게 있어서. 협회장님께서 너에게 전달하라는 말이 있다.]

악마의 신단으로 들어오기 전, 무기상에서 두 사람과 만났지만, 김춘아는 이현성에게 전달해야 할 것을 미처 전달하지 못했다.

“협회장님께서요?”

[네가 원하는 던전을 하나 결정해. 현역 헌터들은 네가 활동하는 던전에서 철수하게 될 거니까. 단, 레이드는 확실하게 진행해 줘야 한다?]

헌터 협회가 보유한 모든 던전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

그 말에 이현성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던전을 찾아가야 하나 하던 찰나, 그 고민을 지울 수 있는 제안이 들어왔다.

“당연하죠.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꼴은 저도 못 보니까요.”

이현성의 말에 김춘아가 되물었다.

[원하는 던전이 있으면 말해.]

본래는 이현성이 원하는 던전에 자유 입장이 가능하게 해 주려 했지만, 이현성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협회장은 던전 하나를 비워 주기로 결정했다.

어디를 지목해야 할 지 고민하던 이현성이 문뜩 하나의 던전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검령의 던전. 그곳으로 결정할게요.”

[검령의 던전? 괜찮겠냐. 거기는 B급 던전인데.]

“괜찮아요. 거기라면 사냥터로 충분하겠죠.”

[뭐, 검령의 던전이라면 브레이크 위험도 없는 곳이긴 하지. 협회장님께 보고할 테니까, 오늘부터 입장하면 된다.]

“고마워요, 형.”

전화를 끊은 이현성이 백야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주 사냥터로 지목한 검령의 던전.

그곳은 약간 특이한 형태의 던전이었다.

악마의 신단처럼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고, B급 헌터 이상이 아니면 입장이 불가능했다.

‘어렵게 딴 등급인데 제대로 활용을 해야지.’



이현성은 검령의 던전이 있는 인천 외곽으로 향했다.

검령의 던전을 선택한 이유는 거리도 거리였지만, 브레이크의 위험도 없고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헌터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성장해야 할 이현성의 입장에선 그곳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이현성이 검령의 던전 입구로 모습을 보이자, 그곳을 지키는 헌터 두 명이 고개를 숙였다.

“집행부 소속 헌터 우미혜입니다.”

“집행부 소속 헌터 강기찬입니다.”

이현성의 얼굴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두 사람은 최대한 그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B급 헌터는 그 숫자가 적었고, 주로 현역 헌터로 활동하는 헌터들의 등급은 D급이나 C급이었다.

높은 등급을 지닌 헌터들은 대부분 길드 생활을 선택했다.

두 사람에 인사에 이현성이 헌터 라이센스를 꺼내려 했다.

“집행부장님께 지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검령의 던전을 지키는 일은 집행부가 담당하며 이현성 헌터님의 원활한 던전 레이드를 위해서 최대한으로 지원을 해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성의 등에 매여져 있는 백과 허리에 착용된 흑을 확인한 우미혜.

그녀의 손에는 검과 창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게 요청해 주시면 됩니다.”

우미혜의 말에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물어보는 이현성.

그의 질문에 우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제가 이곳에서 검귀들을 사냥한다면, 그 부산물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협회장님께선 이현성 헌터님이 잡아 오는 몬스터 부산물을 정확히 3할로 분배하시겠다고 말하셨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비율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던전을 하나 내어 주는 것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우미혜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협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주십시오. 나중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도 꼭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현성은 두 헌터를 지나쳐 검령의 던전으로 입장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충분히 감사 인사를 전했고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경험을 쌓아야 했다.

당당한 걸음으로 검령의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이현성의 등을 바라보던 강기찬이 옆에 있는 우미혜를 바라보았다.

“근데 마력 C급으로 검귀들을 사냥할 수 있을까요, 대리님?”

“뭐, 그가 선택한 결정이니까. 우린 집행부장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면 되겠지.”

집행부의 소속된 헌터들은 이현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듣기론 이현성이 김춘아를 복귀하게 만드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4년이라는 시간을 집행부에서 보냈고,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는 있는 그녀는 김춘아가 돌아오길 간절하게 바라던 헌터 중 하나였다.

김춘아가 집행부장으로 있었을 때, 그때는 정말로 즐겁고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집행부장으로 있었을 땐, 무시하는 헌터들은 거의 없었으며 집행부에 소속된 헌터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퇴역 신청서를 내며 집행부의 권위는 점점 바닥을 쳐야 했다.

“근데 집행부장님이 그렇데 대단한 사람인가요, 선배님?”

“넌 모를 거야. 집행부장님이 있는 거와 없는 건… 엄청난 차이를 보일 거라는 것.”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검령의 던전으로 들어온 이현성이 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검귀.

도깨비 형태의 녀석은 머리에 뿔이 하나 달려 있고, 양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검귀의 뿔의 효능은 현재 이현성만이 알고 있었으며 4년 후 검귀의 뿔에 대한 효과가 세상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