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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데… 아무래도 백야를 빨리 가져와야 할 것 같아.’

현재 이현성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는 이은아가 선물로 사 준 단검 하나뿐이었다.

무기를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운반꾼의 생활을 청산한 상황이라 돈을 아껴야 했다.

“악마의 신단으로 들어가는 건 뒤로 미뤄야겠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

운반꾼의 일을 1년 동안 한다는 전제로 계획을 세웠지만,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예상한 시간보다 빠르게 헌터가 되지만, 헌터 협회의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인맥도 없는 초보 헌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자. 백야를 가져와야 해.’

이현성이 급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인천 외곽에 있는 허름한 무기상에 도착한 이현성이 멍하니 서서 가게 외형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맞겠지?’

회귀 전, 이현성의 무기가 되어 주던 녀석들.

회귀 전, 헌터 운반꾼에 불과하던 이현성이 검과 창을 동시에 쓴 계기가 되어 준 그의 동반자였다.

‘백(白), 야(夜).’

백색의 순백의 창날과 창대를 지닌 백(白).

칠흑같이 어두운 검신을 가진 검, 야(夜).

그 악마를 상대했을 때도 손에는 백과 야가 들려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녀석들을 다시 손에 쥐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는 무기상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TV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중년인.

이현성의 등장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기를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현성의 행색을 바라보던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코드를 찍는 기기를 가리켰다.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선 무기 허가서나 헌터 라이센스를 필수로 확인해야 했다.

이현성은 헌터 라이센스를 품에서 꺼내 기기에 찍었다.

B급 헌터라는 정보가 뜨자 주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무기가 있으십니까?”

주인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주며 말했다.

“검과 창을 보고 싶습니다.”

“저기에 검과 창이 진열되어 있으니, 둘러보시죠.”

한쪽 구석을 가리키자 이현성이 그쪽으로 걸어가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이 허름한 무기상의 무기는 다른 무기상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백야는 절대 가격이 낮지 않았다.

회귀 전, 이현성이 눈에 들어온 백야에 가격을 묻자 주인은 3억이라는 금액을 제시했다.

3억이라는 돈이 없던 이현성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무기를 구입해야 했고 3년이 지나고 나서야 백과 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건 얼마인가요?”

구석으로 향하자 그곳에 이현성이 찾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백색의 창대를 지닌 백과 흑색 검신을 지닌 야를 가리키며 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회귀 전과 가격은 변동이 없을 게 분명했다.

“3억입니다.”

예상한 가격이 튀어나오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야가 아직까지 팔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돈은 헌터 생활을 하면서 벌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늘 당장이라도 백야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돈을 벌자.’

백야를 아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몸을 돌린 이현성에게 주인이 말했다.

“일주일 전인가? 그 무기들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백야를 사겠다는 손님이 있었다는 말에 이현성의 표정이 굳어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라도 백야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안 될 일이었다.

이현성의 표정을 확인한 주인이 쐐기를 박았다.

“당장 3억을 지불할 수 있다면 손님에게 넘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3억을 달라는 말에 이현성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돈을 당장 마련할 방법이 당장 뚜렷하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시간 이내로 다시 오겠습니다.”

이현성이 백야를 내려놓고 무기상을 나가자 주인이 나른한 표정으로 다시 앉았다.

지금 당장 백야를 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하던 이현성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당장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김춘아뿐.

3억이라는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건 그뿐이었다.

“형, 돈 좀 빌려주세요.”

당당하게 말하는 이현성의 말에 김춘아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응?]

“지금 당장 3억이 필요해요.”

금액을 들은 김춘아가 펄쩍 뛰며 높은 언성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3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하면 3억이라는 돈이 생기냐?]

“부탁드릴게요, 형.”

그 말에 이현성이 간절하게 3억이라는 다시 한번 요구하며 간절하게 말했다.

오늘이 아니라면 백야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지도 몰랐다.

3년 후 이곳에 왔을 때, 백야는 그대로 무기상에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미래가 변할지 몰랐다.

이현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요소가 되었으니까.

‘무조건 가져와야 돼. 오늘 백야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어.’

“나중에 꼭 갚을게요. 이자도 드릴게요. 제발요, 형…….”

간절하게 말하는 이현성의 부탁에 김춘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지금 있는 위치를 말해.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 빌려줄지 말지 결정할 테니까.]

김춘아의 요구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상의 주소를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고 30분 뒤, 무기상 앞으로 등장한 검은 차 한 대가 이현성의 앞에 멈추며 김춘아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 뒤 그가 차 뒷문을 정중하게 열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건희가 차에서 내려오며 이현성의 앞에 나타났다.

“혀, 협회장님?”

노건희의 모습에 당황한 이현성이 깜짝 놀라자 김춘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그가 집행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어도 3억이라는 돈을 당장 융통할 수는 없었다.

트레이닝실이 있는 건물을 사느라 모아 놓은 모든 돈을 썼으니까.

“이현성 헌터, 3억이 왜 필요한지 물어봐도 되겠나?”

대놓고 물어보는 노건희의 말에 이현성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기를 구입하려고… 합니다.”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이현성에겐 장비를 살 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노건희는 알고 있었다.

“무기라… 하긴, 제대로 된 헌터 생활을 하려면 무기가 필요할 테지. 무슨 무기가 필요한지 말을 해 주게. 헌터 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라면 이현성 헌터에게 무료로 빌려줄 테니.”

노건희의 제안에 이현성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지금 이현성에겐 백야가 무조건 필요했으며 빚이 생긴다고 해도 백야를 얻는 일에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될 일이었다.

“제가 원하는 무기는 저 무기상에 있습니다, 협회장님.”

허름한 무기상을 바라보던 노건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흐음, 꼭 저 무기상에 있는 무기여야 하는가?”

그의 말대로 무조건 백야여야 했다.

이현성의 동반자가 되어 줄 무기는 백야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을 테니.

무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하던 녀석들이었으니까.

“네.”

이현성의 확고한 대답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상의 문을 열었다.

노건희가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백야를 요구하던 청년이 돈을 만들어 올지, 못할지 궁금했지만, 예상외의 인물의 등장하자 눈이 커졌다.

주인이 노건희를 알아보았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협회장님?”

얼굴이 굳어진 주인의 물음에 노건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은 유명했다.

이현성의 입장에선 주인이 노건희의 얼굴을 알아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분의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백야의 가격을 물어보고 무기상을 나간 이현성을 가리키며 말하자 주인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님께서 B급 헌터를 신경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노건희가 뒤에 선 김춘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집행부장이 매우 아끼는 헌터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말에 노건희가 눈웃음을 지으며 불편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손님과 주인의 시선이 아니었다.

노건희의 시선에 무기상의 주인이 그를 바라보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

“갈준후 마이스터님께서 절 경계하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이스터.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술을 지닌 자들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살아 있는 문화제라 불리는 사람들.

이 무기상의 주인이 마이스터일 줄 모른 이현성의 눈빛에 경악이 깃들었다.

“협회장님처럼 휼륭하신 분을 제가 경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독한 어색함.

노건희와 무기상의 주인 갈준후는 서로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시선과 말투에는 불편함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제시한 3억 드리겠습니다.”

노건희의 말에 갈준후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이미 말을 꺼냈고 그 약속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단 조건이 우선적으로 이행되어야 했다.

“협회장님과 알고 지내는 헌터라는 걸 알았다면, 그 금액을 제시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약속은 지켜져야 할 테지만, 돈이 있다고 제 무기를 살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건 저 청년에게 달렸습니다.”

이현성에게 달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이스터의 무기를 돈으로 얻을 수는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갈준후가 자리를 벗어나 이현성이 지목한 백야를 양손에 쥐고 내밀자 갑작스런 갈준후의 행동에 이현성이 그의 고집스런 눈을 바라보았다.

“뛰어난 무기는 그 주인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님께서 이 녀석들의 주인이 될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무기를 판매할지 말지 결정하겠습니다.”

갈준후의 말에 이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과 야에게 손을 뻗었다.

회귀 전, 자신의 동반자가 되어 주던 녀석들이고, 죽기 직전까지 손에 쥐여 있던 백야를 무조건 가져가야만 했다.

간절한 바람을 드러내며 백야를 양손으로 쥐자 미동 없이 갈준후의 손에 들려 있던 백야가 맹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자신의 손에서 떨리는 백야의 모습에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회귀 전에도 느껴 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났으니까.

백야가 스스로 진동을 하는 모습을 확인한 갈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건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3억 지불하고 가져가십시오, 협회장님.”

금액을 노건희가 대신 지불하고 무기상에서 나왔을 때, 이현성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잘 사용하게. 갈준후 마이스터의 무기를 얻는 일은 힘든 일이니까. 아마 이현성 헌터에게 최고의 무기들이 되어 주겠지.”

이현성의 감사 인사에 노건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랐다.

3억이라는 돈으로 갈준후의 무기를 살 수 있다는 건, 이현성에게 행운이 작용했다는 뜻이다.

노건희가 떠난 곳, 갈준후가 무기상 안에서 이현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떠날 줄 안 이현성이 다시 무기상으로 들어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게 이 녀석들을 판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에 갈준후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님의 자질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전 돈을 받고 팔았고 손님께선 돈을 지불하고 무기를 사셨는데, 왜 제게 감사 인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하고 싶었다.

회귀 전, 그가 자신에게 배풀어 준 호의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백야가 이현성에게 팔리자 그는 미련 없이 무기상을 접었으니까.

그가 왜 자신에게 백야를 팔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회귀 전에는 이현성의 손에 들린 백야가 이렇게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녀석들의 이름은 백과 야로 결정할 생각입니다. 지지 않는 밤처럼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비추라는 뜻으로 지을 생각입니다.”

이현성의 당찬 설명에 갈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백야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무기를 내어 주었으며, 3억을 모아 온 이현성에게 백야를 판매한 사람이 갈준후였고, 그에 대한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

“백야라… 좋은 이름입니다.”

마이스터 장인은 함부로 무기를 판매하지 않았다.

대충 만든 무기라 해도 부르는 게 값이지만, 그들은 무기를 사용할 주인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행운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무기가 바로 마이스터가 만들어 낸 무기였다.

잠잠하게 손에 들린 백야를 내려다보던 이현성이 온화한 미소를 드러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백야, 너희들은 다시 쥘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