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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2년 사이 더 늙어 버린 노건희을 바라보던 김춘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부탁해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녀석이 왜 돌아왔냐?”

툴툴거리며 말하는 노건희.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김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싶던 노건희는 자신이 협회장으로 있는 기간 동안 그가 방황을 멈추고 돌아왔으면 했다.

그리고 노건희의 바람대로 적절한 시기에 돌아왔다.

“강태식 팀장의 제안에 혹했습니다.”

김춘아의 짧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이현성이라는 젊은 헌터 때문에 돌아오는 거냐?”

그가 돌아오는 건 기쁜 일이지만, 서운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자신 때문에 돌아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녀석이 살아갈 세대에서 헌터 협회가 변하는 모습은 원치 않습니다. 협회장님이 퇴임하시면 헌터 협회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김춘아의 확고한 답변에 노건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에 노건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젊은 청년의 인생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했다.

그 인연을 통해 노건희은 김춘아라는 재능이 있는 헌터를 발굴해 냈다.

그가 협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뿌듯하던 일이 김춘아라는 보석을 발굴해 낸 것이라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가장 큰 불행이라 여기던 일도 있었다.

“떠오르기 싫은 기억이겠지만, 이건 확실하게 하고 가야 할 문제인 것 같구나. 재식이의 죽음이 너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생각은 변함없냐?”

김춘아가 돌아온 건 돌아온 거고, 그를 괴롭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노건희의 말에 그의 눈이 확고하게 변했다.

“변함없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도망치지만 않았더라면, 재식이는 살았을 겁니다.”

“재식이는 살았어도 너는 죽었겠지. 아니, 아마 너와 재식이 둘 다 죽었을 거다.”

“…….”

“너도 알고 있겠지만, 재식이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넌 그 선택을 따랐다.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테니까.”

노건희의 말을 반박하기는 힘들었다.

한재식이라는 헌터는 김춘아에게 친동생과도 같았으며 힘든 헌터 생활을 견뎌 내게 해 주던 원동력이었다.

그 상황에서 한재식은 김춘아를 보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김춘아도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터였다.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노건희는 자신이 아끼는 그가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차마 그를 잡지 못하고 보내 줘야 했지만, 그건 후회하지 않았다.

아마 김춘아가 퇴역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생명을 깎아 먹었을 터.

그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보내 주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너 스스로 용서라는 것을 해 주었으면 한다. 재식이를 그곳에 두고 온 널 스스로 용서하지 못해서 헌터를 그만둔 게 아니더냐.”

“…제가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아가야 할 부분입니다.”

“재식이는 널 원망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고마워했겠지.”

김춘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보스 몬스터와 맞닥뜨렸을 때, 한재식은 큰 상처를 입었다.

도망가라는 그의 말에 김춘아는 갈등했지만, 결국 그는 결국 한재석을 버리고 던전 밖으로 도망쳤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김춘아에게 희미하게 들려왔던 한재식의 목소리가 떠올렸다.

‘고마워, 형.’

자신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을 버리고 간다는 원망보단 자신의 말에 따라 주는 김춘아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춘아가 눈물을 애써 삼키며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한재식의 장례가 치러지고 김춘아는 노건희의 설득에도 퇴역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헌터 일을 지속한다면 자신이 먼저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때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김춘아는 어떤 선택을 할까 2년 동안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결론을 내렸다.

“다시 한번 그 상황이 온다면, 전 주저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김춘아의 다짐을 들은 노건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가지 서류를 건넸다.

하나는 이현성의 의무 기간을 면제해 준다는 서류였고, 다른 하나는 재심사 허가서였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춘아야.”



***



김춘아가 헌터로 복귀한다는 말과 함께 이현성의 재심사 허가가 날 거라는 말을 김인석에게 전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김인석은 이에 관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전달 받은 김인석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젊은 이현성이 운반꾼이라는 좁은 사회보다 더 큰 곳으로 나가 성장하길 원했으니까.

심사에 통과한다면 운반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들었지만,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늘이지?”

김춘아가 만들어 준 기회.

재심사 허가증은 김춘아에게 받았지만, 하루 정도는 운반꾼 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도움을 준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으니까.

“네, 대장님.”

“잘하고 와라. 다시 돌아오지 말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F등급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김인석이 말했다.

“운반꾼의 일을 그리워하지도 말고, 다시 돌아오려 하지도 마라. 헌터가 되어서 너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인석의 진심이 담긴 조언에 이현성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날, 운반꾼들이 이현성과 함께 식사하고 응원하며 자신의 일인 것마냥 함께 기뻐해 주었다.



다음 날.

항상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했지만, 오늘은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춰 입고 집을 나섰다.

가족들에게 재심사를 본다고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헌터 협회의 본사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

창가로 지나가는 풍경을 멀뚱히 바라보던 이현성이 도착지에 내려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헌터 협회 본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난 이현성을 발견하고 손을 높게 들었다.

“현성아, 여기다!”

헌터 협회로 복귀한 김춘아가 이현성을 반겼고, 그 옆에 선 강태식이 고개를 숙였다.

“강태식 팀장님?”

생각치도 못한 사람이 나타나자 이현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강태식이 환하게 웃었다.

“오늘 재심사가 있다는 말에 응원하고 싶어 나왔습니다, 이현성 헌터님.”

“아… 감사합니다.”

끈질지게 자신을 파헤치려 한 사람.

이현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것을 확인한 강태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이현성이 강태식에 대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깨달은 강태식이 손을 내밀며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제가 이현성 헌터님을 조사한 이유는 이현성 헌터님을 곤란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선배 헌터로서 후배인 이현성 헌터님께서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었는데… 상황이 꼬여 버렸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서 있던 김춘아가 부가적인 설명을 하며 오해를 풀어 주고자 노력했다.

“현성아, 네 재심사를 위해 곁에서 날 도와준 사람도 태식이었다. 오해가 있다면 풀어라.”

“네, 관… 아니, 형.”

10살 차이였지만, 김춘아에게 이현성은 서슴없이 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강태식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심사장으로 데려갔다.

이현성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

헌터 협회 협회장 노건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헌터 협회 협회장 노건희라고 하네.”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협회장님.”

헌터 협회 협회장 노건희.

그는 헌터 협회를 창설한 멤버였으며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협회를 끌어온 거인이었다.

그가 노환으로 협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부터 헌터 협회라는 조직이 변하기 시작했다.

비리를 항상 경계하던 노건희과 달리, 새로운 협회장은 오히려 자신이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였다.

그때부터 이현성의 운반꾼 생활도 변화가 찾아왔다.

운반꾼의 일당이 점점 줄어들었고, 운반꾼을 관리하는 헌터들은 대놓고 운반꾼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제대로 된 운반꾼 생활을 하기 위해서 헌터들에게 돈을 상납해야 했다.

부패로 점점 변질되는 헌터 협회.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최하급 신분을 지닌 헌터 운반꾼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이처럼 헌터 협회에 관해선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그건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무운을 빌겠네. 이현성 헌터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게나.”

“명심하겠습니다, 협회장님.”

초롱초롱한 눈망울.

이현성의 눈빛을 확인한 노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에 구슬에 손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심사가 시작되자 이현성이 마력에 구슬에 손을 올렸다.

푸른색으로 변하는 구슬.

심사관이 마력 등급을 C급이라 적고 다음 평가를 시작했다.

전투와 능력 평가였다.

김춘아의 트레이닝실에서 매일 같이 진행하던 시뮬레이션이 시작되는 장소에 선 이현성의 앞으로 오크 서른 마리가 나타났다.

미리 무기를 지급 받은 이현성이 자세를 취하자, 모니터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건희가 흥미로운 시선을 드러냈다.

“특이한 무기 선정이구나.”

“저도 의아해하긴 했지만, 전투를 보시면 왜 현성이가 저런 무기 조합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마력 등급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물론 F등급에서 단번에 C등급으로 오르는 경우는 없고, 이현성처럼 젊은 청년이 C급 마력을 가진 것도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이현성의 능력이 드러나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일들이 경악할 것이라는 걸 김춘아는 알고 있었다.

‘고속이동.’

이현성의 능력 중 하나인 고속이동이 발현되었다.

강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에 집중한 강태식이 에이션트 놀을 사냥한 사람이 이현성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된 스킬이었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오크 무리를 향해 고속이동으로 접근한 이현성.

눈 깜짝할 사이에 오크들의 앞에 도착한 이현성이 창과 검을 강하게 쥐고 다른 능력을 펼쳤다.

‘블레이드.’

이현성이 쥔 두 자루의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압축되며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었다.

“…저건?”

노건희가 놀라는 모습으로 중얼거리자 김춘아가 이현성의 능력을 설명했다.

“지금은 C급 마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저 정도 수준이지만, 마력을 쌓고 성장시킨다면 점점 위력이 강해질 겁니다. 솔직하게 말해 저도 저 능력을 한 번 따라해 보려고 했습니다.”

김춘아의 설명에 노건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결과는?”

“대실패입니다. 따라 할 수가 없는 능력이었습니다. 아마 현성이의 고유 능력이라 판단됩니다.”

빠른 속도로 고속이동을 이용하며 서른 마리의 오크 합동을 막아 내고 하나둘 오크를 쓰러트리는 장면.

강태식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에이션트 놀을 잡을 수 있던 이유가 있었군요, 집행부장님.”

김춘아가 협회에 돌아왔을 때, 그가 본래 있던 자리는 2년 동안 비워진 상태였다.

그 자리에 주인은 김춘아만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예상처럼 노건희는 주저 없이 그에게 집행부장이라는 자리를 돌려주었다.

“에이션트 놀?”

“아, 제가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세신 백화점에서 나타났던 에이션트 놀을 잡은 사람이 이현성 헌터라는 짐작을 했습니다. 백화점 내부 CCTV로는 얼굴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정식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나?”

“이현성 헌터의 능력을 보는 순간 직감했습니다. 확실합니다.”

말을 이어 나가면서도 세 사람은 이현성이 나오는 모니터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겨울 정도로 이현성의 전투를 봐 온 김춘아였지만, 이렇게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오크 서른 마리로는 현성이의 능력을 측정할 수 없을 겁니다.”

“…심사관!”

노건희의 외침에 시뮬레이션을 조정하던 심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에이션트 놀을 구현해야 할 거야.”

노건희의 말에 깜짝 놀란 심사관이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협회장님, 에이션트 놀 구현은 A급 헌터 등급 심사에만 사용됩니다.”

“걱정 말고 구현할 준비를 시작하도록.”

노건희의 확신에 찬 음성에 심사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션트 놀을 구현할 준비를 시작했다.

항상 하던 대로 오크를 상대하는 것을 마무리한 이현성이 마지막 오크의 심장을 창으로 꿰뚫었고 시뮬레이션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곧바로 다른 풍경으로 변했다.

고요한 신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전처럼 새하얀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곳에서 놀이 하나 튀어나왔다.

백화점에서 마주친 놀의 모습과 놀랍도록 같았다.

이현성의 눈에서 투지가 드러나며 자세를 취했다.

악마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녀석.

다시 한번 싸워보고 싶던 녀석이었다.

방어막을 사용하는 걸 알았고, 그 방어막을 뚫기 위해선 전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여지조차 주지 말자.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