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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혹시 하얀 피부를 가진 놀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무기상에서 혹시 몰라 단창을 구입하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여동생을 피신시켰습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전투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렇군요.”

힙겹게 사냥한 새하얀 피부를 가진 놀에 대해 강태식이 묻자 이현성이 잡아떼며 거짓 진술을 말했다.

이현성의 진술을 적고 수첩을 접은 강태식이 고개를 숙였다.

“조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진술이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간단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온 강태식이 기다리고 있던 조사단원과 검은 차량에 오르자, 조사단원이 그에게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물었다.

“팀장님, 에이션트 놀을 사냥한 자가 F등급 헌터일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강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작은 의심도 놓칠 수는 없었다.

에이션트 놀은 쉽게 잡을 수 있는 그런 류의 몬스터가 아니었고 적어도 상급 헌터가 되어야 상대가 가능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창을 조회한 결과, 이현성 헌터가 구입한 일련번호와 동일했어. 그리고 폐쇠 회로에 찍힌 이현성 헌터의 경로와 진술한 경로가 전혀 달라. 몇 번을 확인해 봤고, 무기를 구입하고 바로 1층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까지 확인했으니까.”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백화점 내부에는 CCTV가 수도 없이 많았고, 여직원의 진술에 따라 무기상에서 나온 이현성의 경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강태식의 말에 조사단 중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션트 놀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B급 헌터들이 마력이 담긴 검으로도 에이션트 놀의 피부를 뚫지 할 정도로 방어력이 출중한 것이었다.

A급 정도가 되는 헌터가 아니고선 결코 홀로 사냥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를 F등급 헌터가 사냥한다?’

이제 막 사회에 나와 경험도 없는 어린 헌터가 에이션트 놀을 사냥할 수는 없을 거라 조사단원은 확신했다.

“다른 헌터가 나타났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멀리서 찍힌 영상을 보면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습니다. A급 헌터도 그러한 움직임으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강태식의 추론을 반박하는 조사단원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수첩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점검했다.

강태식은 이현성이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사를 할 때는 확신해선 안 돼. 어떤 경우의 수라도, 희박한 확률이라 할지라도 넘기게 된다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테니까.”



***



강태식을 만나 조사를 진행하고 나온 이현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혹시라도 조사단이 자신이 놀들을 사냥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김춘아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걱정으로 가득한 이현성의 얼굴을 확인한 김인석이 고블린 던전을 마무리하자마자 그를 불렀다.

“뭔 일이야?”

김인석의 물음에 이현성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상황을 그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었으니까.

“아무일도…….”

“얼굴에서 다 티 난다, 이 녀석아. 오늘은 먼저 퇴근해. 자, 오늘 일당이다.”

던전 하나만 돈 상태에서 퇴근을 하라는 김인석에 말에 주춤거리며 봉투를 받아들었다.

비록 일이 빨리 끝나더라도 운반꾼으로 출근한 이상, 모든 일당을 지급하는 게 규정 사항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만 빨리 퇴근하겠습니다, 대장님.”

이 상태로 일을 집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이현성은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처리하고 와. 내일도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알아서 하고.”

“감사합니다, 대장님.”

김인석의 배려로 일찍 퇴근을 하게 된 이현성이 곧장 트레이닝실로 향했다.

혹시 몰라 택시를 타고 트레이닝실에서 내린 이현성은 주변을 살펴보다 눈을 감으며 사냥꿈의 기감을 사용했다.

[현재 귀하를 응시하는 인물은 한 명입니다.]

‘한 명이라…….’

눈을 뜨자 보이는 글귀가 나타나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명 있다는 정보에 눈을 가늘게 떴다.

눈에 드러난 글귀를 바라보는 것을 멈춘 이현성은 트레이닝실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소보다 일찍 들어오는 모습에 김춘아가 눈을 깜빡였다.

“관장님…….”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이현성의 모습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직감한 김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현성은 어제 백화점에서 일어난 일과 오늘 조사단이 찾아온 것까지 숨기지 않고 김춘아에게 말했다.

설명을 들은 김춘아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조사단에서 움직였다라… 혹시 조사단에서 나온 사람의 이름이 뭐였지?”

“강…태식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강태식?”

조사단에서 강태식이라는 이름은 많았지만, 김춘아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사냥꾼의 기감을 유지하던 이현성에게 또 한 번의 글귀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접근 중입니다.]

그 글귀를 보고 트레이닝실 입구로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이현성을 조사한 사람, 강태식의 등장에 김춘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레이닝실을 지키고 있던 김춘아를 확인한 강태식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선배님?”

강태식의 등장에 감정이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김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군. 2년 만인가? 강태식 팀장.”

조사단 1팀 팀장.

강태식, 그는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조사단의 팀장이 된 유능한 사람이었다.

김춘아의 말에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곳에 계실지는 몰랐습니다.”

강태식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성이 앉아 있는 의자에 손을 올렸다.

“현성아, 가서 트레이닝 준비하고 있어라.”

“네, 관장님.”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눈빛을 드러낸 모습에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트레이닝실로 들어갔다.

김춘아의 앞으로 다가와 앉은 강태식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이현성과 김춘아가 연관이 되어 있을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계셨습니까?”

강태식의 날카로운 시선에 김춘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주치기 꺼려하던 조직에 소속된 자와 마주치는 건 그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이현성이 난감해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찾아온 이유는?”

싸늘한 목소리에 강태식이 표정을 움찔거렸다.

김춘아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제 브레이크가 일어난 던전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아직 제대로 된 정보는 언론에 뿌려지지 않았다.

그냥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정보와 사상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만 공표되었으니까.

김춘아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놀의 신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보스까지 함께 세상에 나왔습니다.”

에이션트 놀이 브레이크 여파에 포함되었다는 말에 김춘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놀의 신전의 소유권이 헬하운드 길드에게 전해지기 전에 헌터 협회가 담당하던 중요 던전이었다.

“그게 왜? 에이션트 놀과 저 녀석과 뭔 상관이 있다고.”

모른 척을 하는 김춘아의 행동에 강태식이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그가 이해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조사를 위해서라도 김춘아에게 공시를 해 주어야 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에이션트 놀을 사냥하기 위해선 A급 헌터가 움직여야 합니다. 백화점 내부로 흘러든 녀석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화점에 이현성 헌터가 방문했다는 것도 파악했고 모든 폐쇄 경로도 점검했습니다.”

하필이면 지독한 놈에게 걸려 버린 이현성.

한 번 문 사냥감은 절대 놓지 않는 사람이 강태식이었다.

김춘아가 얼굴에 감정을 티 내지 않고 피식 웃었다.

“고작 F등급 헌터다. 아니, 사실 헌터도 아니지. 헌터 라이센스만 가지고 있는 무늬만 헌터인 녀석이니까. 운반꾼이 에이션트 놀을 잡는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김춘아의 부정에 강태식의 냉정한 시선이 시뮬레이션실로 향했다.

그가 부정한다면 억지로라도 찾아내어 알아볼 생각이었다.

“선배님, 조사단 팀장의 권한으로 시뮬레이션실에 내장된 영상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이현성과 김춘아가 연될되어 있지 않았다면 강태식은 의심이 약간씩 옅어졌겠지만, 연결을 파악한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의 감은 언제나 정확했다.

마치 무당처럼 뛰어난 감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특이한 사람이 강태식이며, 과학 수사 말고 감에 의존하는 수사를 하는 성향이었다.

“불가. 영상을 압수하려면 영장 가져와. 그럼 보여 주지.”

“아시지 않습니까? 조사단의 팀장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영장 없이 모든 곳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

조사단 팀장은 영장 없이 헌터에 관련된 시설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었다.

트레이닝실도 헌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시설이었고, 팀장 권한에 포함되는 곳이었다.

강태식의 말에 김춘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결국 몸을 비켜 주었다.

시뮬레이션실에 들어가는 강태식을 바라보던 김춘아가 걸음을 옮겼다.

혹시 몰라 이현성을 찍은 모든 영상을 다른 곳에 저장해 두었고, 시뮬레이션 컴퓨터에도 그 영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컴퓨터를 뒤졌지만, 나오지 않은 영상의 모습에 강태식이 뒤에선 김춘아를 노려보았다.

“이현성 헌터가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는 영상이 왜 없습니까?”

강태식의 물음에 김춘아가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F등급인 녀석에게 시뮬레이션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제대로 트레이닝실에 다닌지 한 달 조금 넘은 녀석이다.”

컴퓨터에 남은 기록은 김춘아가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는 영상 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영상을 바라보던 강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는 이현성의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려 했지만, 김춘아가 싸우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실력이 더 높아지셨습니다, 선배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확인 했으면 가라.”

실없는 그의 말에 김춘아가 무표정으로 대응하며 몸을 돌려 시뮬레이션실을 나가려 했다.

“이현성 헌터도 알고 있습니까? 선배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강태식의 말에 김춘아가 딱딱해진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살기까지 드러낸 그의 모습에 강태식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그저 은퇴한 퇴역 헌터에 불과한 사람이었고 과거를 떠올리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지금 많이 참고 있는 중이다. 퇴역 헌터가 조사단의 팀장을 때렸다는 기사를 보기 싫다면 조용히 나가.”

싸늘한 그의 경고에 강태식이 고개를 숙이며 열의를 드러냈다.

김춘아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조사를 이어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선배님, 저는 조사를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알아서 해라. 아, 그리고 내 위치를 협회장님에게 알려 줘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다. 위치가 드러나 내가 헌터 협회에 복귀하게 된다면, 너부터 가만 안 둘 생각이거든.”

김춘아의 싸늘한 목소리에 강태식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를 바라보았다.

헌터 협회에서 그를 찾는 이유는 그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설득을 하여 헌터 협회에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김춘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쌩―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김춘아의 모습에 강태식은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하고 터덜터덜 트레이닝실을 나갔다.

강태식이 나가자 검과 창을 휘두르던 이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딱딱해진 표정으로 이현성이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 김춘아에게 미안함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관장님.”

생각 없이 움직여 꼬리를 잡힌 건 잘못이라 생각했으나 그때 백화점에는 이은아가 함께 있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일이기에 이현성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김춘아 역시 알았다.

“여동생이 함께 있었다고 말했잖냐. 아무리 능력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여동생보다 중요한 건 없겠지. 신경 쓰지 마라, 현성아.”

“하지만…….”

“괜찮아. 강태식 팀장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니까.”

김춘아의 말에 애써 검과 창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머리를 비웠다.

그 모습에 김춘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난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저 녀석을 도와주려 하는 거지?’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강태식에게 협박까지 하면서 이현성을 도우려는 이유가 뭘까?

이현성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현성이의 재능에 매료된 건 아닐까?’

매일 같이 악마와 싸우면서 목숨을 잃으면서도 끈질기게 싸우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현성의 머릿속에 구현된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힘을 지닌 존재라는 것도 확실했다.

실제로 김춘아는 구현된 악마와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결과는 1%의 능력을 가진 악마를 껐었지만, 2%의 능력을 지닌 악마와 전투는 무참히 패배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이현성은 참 대단한 녀석이었다.

비록 마력의 양은 한참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능력은 사기적이었다.

고속이동부터가 말도 안 되는 능력이고, 이현성이 가진 능력의 끝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

‘현성이의 검과 창에 발현된 그 힘부터가 말도 안 되니까.’

마력을 압축하여 만들어 내는 능력 블레이드.

헌터들은 마력을 무기에 두를 수는 있지만, 마력을 압축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따라해 보려 해도 그 원리를 알아내지 못했다.

김춘아는 고개를 돌려 이현성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고 몸만 푸는 듯했다.

지금 상태로 악마와 싸운다고 해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것 같긴 했다.

김춘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현성이 트레이닝실을 빠져나갔을 때, 뒷정리를 하던 김춘아의 앞에 강태식이 다시 나타났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