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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무기상에서 나온 이현성이 파랗게 질려만 가는 이은아를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안심을 시켜 주려는 의도였다.

이현성은 이은아의 손을 잡고 백화점 입구로 나가려 했다.

“꺄악!”

“사…살려 주세요!”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백화점 입구.

다행히 백화점과 이현성의 집은 꽤 떨어져 있었다.

최연수가 일하는 곳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결국 이현성이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이은아의 안위뿐이었다.

“오빠…….”

백화점은 중간이 뻥 뚫려 3층에서 로비가 보이는 구조였다.

1층을 내려다본 이현성이 놀 두 마리가 백화점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놀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손에 든 철퇴로 백화점 고객을 향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사람들이 홱홱 쓰러지자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이은아가 잔인한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손으로 눈을 가로막았다.

“금방 끝날거야. 그러니까 눈 감고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움직이지 마. 알겠지?”

이은아가 떨리는 손으로 앞에 선 이현성의 팔을 잡았다.

혹시라도 이현성이 자신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까 봐.

이은아의 불안한 안색에 이현성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하지 마. 난… 아버지처럼 너하고 어머니를 두고 떠나진 않아.”

파파팟.

이현성이 그 말을 끝으로 3층 난간에 손을 올리며 1층으로 낙하했다.

오크도 아닌 놀을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회귀 전, 다양한 몬스터를 상대로 살아남기도 했고, 놀보다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손쉽게 상대한 경험도 있었다.

쿠웅!

안전하게 1층 로비에 착지한 이현성이 이은아가 선물한 단검과 방금 나온 단창을 두 손에 쥐였다.

검과 창의 길이가 평소보다 훨씬 짧아졌지만, 상관없었다.

검과 창이 손에 쥐여진 이상, 이현성을 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없을 테니까.

크아앙!

놀 두 마리가 이현성을 발견하고 크게 포효했다.

보통의 놀보다 생김새가 약간 다른 녀석.

놀의 피부는 일반적으로 갈색이지만, 지금 이현성의 앞에 있는 놀의 피부색은 새하얀 색이었다.

관여치 않고 단검과 창을 이용해 새하얀 색의 놀을 노려본 이현성이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실전에서 처음 쓰는 고속이동이었다.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이현성이 놀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창에 블레이드를 씌워 강하게 놀의 머리를 향해 찔렀다.

쉐에엑―

푸스스스.

단번에 놀의 머리를 꿰뚫을 줄 알았지만, 놀이 손으로 이현성의 단창을 막아 냈다.

맨손으로 블레이드가 발현된 창을 막는 놀의 모습에 이현성이 인상을 구겼다.

놀이 손에 든 철퇴를 움직이자, 이현성이 바닥으로 몸을 굴렀다.

뒤구르기로 놀의 철퇴를 피한 이현성이 다시 한번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파팟―

이번엔 놀의 옆으로 나타난 이현성이 단검을 강하게 놀의 옆구리에 찔렀다.

깡!

‘뚫리지 않는다고?’

마치 이현성이 악마와 전투를 펼쳤을 때, 악마의 몸에 두른 방어막처럼 놀의 피부에 무기가 닿기도 전에 튀겨져 나왔다.

자신의 블레이드를 막아 낸 놀의 모습에 이현성이 냉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뒤로 물러났다.

쾅!

백화점 바닥의 대리석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

놀이 내려친 철퇴로 부셔지는 백화점 바닥을 무시하고 다시 움직이려 했다.

크아아앙!

다시 한번 놀이 포효했다.

와장창장―

백화점 입구에 둘러싼 투명한 유리가 부셔지며 놀들이 백화점 내부로 진입했다.

약 열 마리의 놀의 등장.

이현성이 새하얀 놀을 바라보다 고속이동을 이용했다.

‘마력 집중.’

이현성에게 맹렬하게 달려드는 놀들.

그는 신체에 마력을 깃들게 해 주는 마력 집중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고속이동.’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놀의 심장과 목을 중심으로 단검과 창을 찔러 넣었다.

검은 정장과 흰색 와이셔츠가 놀의 피로 번져 나갔다.

얼굴에 놀의 피가 튀었다.

10기의 놀을 모두 바닥에 쓰러트린 이현성이 자신의 옷을 짧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하루도 가지 못하고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이현성이 정장 외투를 벗어 바닥에 던졌다.

놀이 악마와 같은 방어막을 사용한다면…….

“뚫어야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현성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다시 한번 하얀 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현성의 눈에서 붉은 이채가 띄며 단검과 창에 깃든 블레이드의 마력이 점점 강해졌다.

악마의 방어막에 균열을 일으키던 것처럼 새하얀 놀이 사용하는 방어막에도 균열을 일으킬 작정이었다.

이제 탐색전은 끝났다.

쾅!

놀의 심장이 있는 곳에 창을 찔러 넣고, 곧바로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이번엔 놀의 뒤에 나타나 등을 연속해서 찍었다.

막히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쉴 새 없는 움직임이었다.

단검과 창으로 연속 두 번 공격하는 이현성의 모습에 놀이 몸을 돌렸다.

이현성이 다시 한번 고속이동을 이용하며 끈질기게 놀의 등 부근을 노렸다.

타격점을 한곳으로 지정하고 연속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두 번 정도 같은 작업을 반복했을 때, 기다리던 방어막의 균열이 일어났다.

쩌저적―

놀의 등에 나타난 투명한 방어막에서 균열이 이는 소리가 나자, 이현성이 마력을 창에 부여하고 찔러 넣었다.

푸우욱―

파공성을 뿜어내며 등을 꿰뚫은 창.

그대로 심장까지 파괴되며 피를 뿜어내는 새하얀 놀의 모습에 이현성이 창을 힘껏 뺐다.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산 창이 균열이 일어나며 반 토막으로 부서져 버렸다.

짧게 혀를 찬 이현성이 3층에서 눈을 가린 이은아를 힐끔 바라보며 강하게 발을 찼다.

놀의 피가 온몸에 튀긴 상태였지만, 이은아를 가뿐하게 품에 안은 이현성이 백화점을 벗어나기 위해 연속해서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짧은 시간 동안 백화점 입구에 몰려들던 고객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방어막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였기에, 이현성이 나서기 전에 이미 많은 피해가 발생된 상태였다.

이현성이 이은아를 데리고 백화점에서 사라지자, 현역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끔찍한 광경의 백화점을 바라보던 현역 헌터 하나가 놀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새하얀 놀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에이션트 놀입니다.”

“…보스 몬스터까지 브레이크의 여파에 딸려 온 건가?”

에이션트 놀이란 놀의 신전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였다.

등급은 A급.

A급 헌터들이 나서서 레이드를 진행해야 사냥이 가능한 보스 몬스터였다.

놀의 신전에서 나오는 일반 몬스터는 평범한 놀이었으나, 보스는 그 능력과 힘이 다른 놀과 차원이 달랐다.

에이션트 놀의 시신을 바라보던 현역 헌터들의 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에이션트 놀을 사냥한 이가 누군지 추적해야 했다.

“팀장님, 무기상에서 일하는 직원분이 브레이크가 일어난 직후, 단창을 사 간 손님이 있었다고 알려 왔습니다.”

“조사 진행해. 누가 에이션트 놀을 잡았는지 알아내야 하니까.”

이현성에게 무기를 계산해 주느라 늦게 대피해야 했던 무기상의 여직원.

그녀는 늦어진 대피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이은아를 품에 안고 놀들의 피를 가득 머금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인적이 드문 골목에 도착했다.

이현성은 이은아를 품에서 내려놓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전해.”

이현성의 말에 이은아가 꾹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다시 이현성의 품에 안겼다.

몬스터를 마주치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생각했으니까.

이현성이 전투를 벌일 때, 이은아는 그 모든 상황을 힐끔힐끔 보았다.

F등급으로 알려진 이현성이 놀을 사냥하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빠…….”

“미안해. 이런 광경을 보게 해서.”

그냥 단순히 이은아에게 예쁜 옷을 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터져 버린 브레이크로 인해 이은아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했다.

“괜찮아. 왜 오빠가 미안해해?”

“나 때문에 백화점 갔으니까.”

이현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은아는 오늘 최연수와 함께 백화점으로 오려 했다.

비록 헌터 라이센스를 들고 있는 이현성이 없어서 무기는 사 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물건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한 이은아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오늘 진학 상담회 끝나고 엄마하고 같이 백화점 가려고 했어…….”

“…뭐?”

“오빠 선물 사려고 내가 엄마한테 부탁했거든.”

하지만 최연수가 일이 생겨 이은아의 진학 상담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그 자리를 이현성이 채워 주었다.

이현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오늘 간다고 하지 않았다면 최연수와 이은아가 큰 위험에 노출될 뻔했다.

‘그건 그렇고… 그 새하얀 놀은 도대체 뭐였을까?’

던전 브레이크라 불리는 현상.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던전에서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끔 이상 현상이 일어나 레이드가 진행되었음에도 브레이크가 터지는 현상도 있긴 했다.

‘어떤 길드가 담당하는 던전에 브레이크가 일어난 거지?’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놔야 됐다.

담당 길드를 떠올리며 화를 삭이고 있을 때, 이은아가 말을 걸어왔다.

“오빠, 일단 집에 가서 씻어야 할 것 같은데?”

피가 가득 묻은 옷.

이은아의 교복도 이현성의 옷에 묻은 피 때문에 더러워졌다.

이은아의 말에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옷 좀 새것으로 사고, 교복도 하나 사야겠네.”

“미안해, 돈 쓰게 해서.”

“괜찮아. 일단 옷부터 사러 가자.”

이현성의 몸에선 피비린내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이은아도 바로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이은아가 나오고 피로 가득한 옷을 봉투에 담아 버린 이현성이 교복을 사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최연수가 들어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현성과 이은아가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었다.

“왔어?”

최연수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본 이현성이 손을 흔들었다.

이현성의 말에 최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진학 상담은?”

“잘 받고 왔어. 내년에 진학 상담을 할 때, 제대로 결정하자고 하더라. 아직 2학년이라 남은 1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진학이 달라지겠지.”

이현성의 말을 듣고 최연수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지만,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최연수에게 들키지 않게 부지런히 움직였으니까.



다음 날, 이현성은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하루 만에 다시 출근한 던전 입구.

이현성이 피곤한 표정으로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평소 이현성을 반겨 주는 운반꾼이 아닌, 헌터 협회를 상징하는 검 문양이 새겨진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이현성을 반겨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헌터 협회 조사단 소속 강태식이라고 합니다.”

“예?”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조사단의 모습에 이현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현성의 표정을 확인한 강태식이 손사레를 쳤다.

그가 무슨 잘못을 일으켜서 찾아온 건 아니었으니까.

“혹시 어제 세신 백화점에 방문한 적이 있으십니까?”

“…있습니다.”

무기상에 들어갈 때, 헌터 라이센스를 찍은 기억이 생각난 이현성은 강태식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았다.

백화점에 방문했다는 말에 강태식이 수첩을 꺼내들었다.

“헌터 라이센스를 찍은 시간을 보니, 브레이크가 일어난 시간과 동일하군요. 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간단한 조사만 진행할 예정이니.”

강태식의 말에 이현성이 김춘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절대 능력을 들키지 말라는 말.

“브레이크가 일어나서 전 여동생과 함께 화장실로 피신했습니다.”

이현성의 알리바이를 들은 강태식의 표정이 묘하게 변화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의심하는 표정을 확인한 이현성이 강태식의 시선이 수첩으로 고정되었을 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혹시나 자신이 에이션트 놀을 사냥했다는 게 알려진다면 채운 의무 기간이 날아갈까 봐 두려웠다.

알리바이를 간단하게 진술하고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수첩을 접은 강태식이 다시 이현성에게 질문했다.

“라이센스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김인석의 조언대로 운반꾼으로 일할 땐, 헌터 라이센스를 집에 두고 나오니까.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에 강태식이 일반 운반꾼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일반인들로 구성된 곳에서 라이센스를 지니고 다닐 리가 없었다.

강태식의 조사를 받은 이현성이 티는 내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불안감이 강하게 들었다.

‘혹시 눈치챈 건 아닐까? 이러다 의무 기간이 리셋되면 억울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