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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강장신이 체포되어 끌려가는 것을 보는 순간, 이현성은 ‘쌤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귀 전 자신의 돈을 가지고 튄 사람이었으니까.

케케묵은 오랜 악연이 정리되었다.

강장신이 잡혀간 후, 두 명의 운반꾼이 빠졌지만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아직 이현성의 등급은 C급이었고, B급 마력까지 상승시키기 위해선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눈에 띄는 영혼의 구슬을 줍는다고 해도 모든 시체에서 영혼의 구슬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떨 때는 구슬의 숫자가 적어질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오히려 영혼의 구슬이 많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운반꾼의 일을 마무리한 그는 트레이닝실로 달려가 악마와 전투를 펼쳤다.

결과는 항상 같았지만, 과정이 달라졌다.

초반 1분도 버티지 못하던 이현성이지만, 악마와 매일 같이 싸우다 보니 악마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젠 10분까지 시간을 늘린 이현성이 만족감을 드러내며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오는 집.

이은아가 우울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최연수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뭔 일이야?”

집으로 돌아온 이현성이 지금 상황을 묻자 최연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틀 후에 이은아의 진학 상담이 결정되어 있고, 최연수가 본래 그 자리에 참여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변경된 일정으로 그 자리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최연수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이현성이 곰곰이 생각하다 간단하게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는 말을 했다.

“내가 갈게.”

“그날 쉴 수 있어?”

이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모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 빠진다고 해서 해고될 일은 아니었다.

김인석도 상황을 듣는다면 흔쾌히 이현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줄 사람이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아. 내일 모레라고?”

“응.”

“내가 참석할 게. 오빠가 참석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을 거 아니야?”

이현성의 말에 이은아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아버지가 없는 이은아에게 이현성은 오빠이기도 했고,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런 규정 없어.”

“그럼 이제 고민 끝이네. 나 씻을 게.”



다음 날, 이현성은 이은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인석을 찾아갔다.

상황을 말하고 월차를 사용한다는 이현성의 말에 김인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인석에게 허락을 받은 이현성이 다음으로 김춘아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매일 같이 트레이닝실을 나오다 갑작스레 말없이 빠지면 김춘아가 걱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 제대로 된 옷은 있냐? 여동생의 진학 상담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거면 제대로 갖춰 입고 가야지.”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운반꾼을 하면서 번 돈 일부는 이은아의 대학 등록금으로 저금을 해 두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옷을 사 주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 주는 것으로 일당을 사용해 왔다.

“관장님의 말대로 이런 옷차림으로 갈 수는 없겠죠. 은아 학교로 가기 전에 백화점에서 정장 한 벌 맞춰야겠네요.”

미쳐 생각하고 있지 않은 부분을 지적해 준 김춘아에게 감사를 전했다.



***



이은아와 약속한 당일, 이현성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백화점으로 향했다.

검은색 캐주얼 정장을 맞춰 입고 집으로 돌아온 이현성이 시간을 확인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은아의 친구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깔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까지 한 그는 이은아의 학교로 향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 진학 상담이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 오지 않은 이현성의 모습에 이은아가 초조하게 기다렸다.

잠시 뒤, 교실의 문을 열고 나타난 청년의 모습에 이은아의 눈이 커졌다.

학생들의 진학 상담을 위해 찾아온 학부모 중 이현성이 가장 어렸다.

나이가 지긋한 학부모들 사이에 선 이현성이 손을 흔들었다.

“누구야?”

옆에 앉은 친구가 멋지게 차려입고 나타난 이현성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은아게 물었다.

정확하게 이현성이 향하는 시선은 이은아에 고정되어 있으니까.

“오빠.”

“오빠? 친오빠? 우와 잘생겼다. 슈트 빨 죽이네.”

“응. 오늘 엄마가 일 때문에 못 오신다고 해서 오빠가 대신 오기로 했거든.”

간단하게 친구에게 설명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이현성을 향해 걸어간 이은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약속은 지켜. 그래도 처음으로 네 학교에 오는 건데, 평소 같은 옷차림으로 올 수는 없잖아. 진학 상담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이제 곧 시작할 거거든?”

“화내지 마. 약속대로 왔잖아.”

이현성이 이은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은아의 담임선생이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학부모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차례대로 진학 상담을 시작했다.

이은아의 차례가 왔을 때, 이현성이 당당하게 담임 선생님의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은아와는 어떤 관계이신지?”

유일하게 젋은 청년.

학부모 대신 이은아의 진학 상담에 찾아온 이현성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그 질문에 이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아 친오빠입니다.”

“2학년 2반 담임인 이소혜라고 해요.”

간단한 인사를 한 두 사람이 이은아의 성적표를 꺼내며 진학 상담을 시작했다.

“은아 성적으로 서울 대학권은 충분히 노릴 수 있어요. 다만, 은아가 가고 싶은 학과가 법학과여서 커트라인이 아슬아슬하지만요.”

“은아의 성적이 어느 정도입니까?”

“현재 전교 3등이죠. 모의고사 점수도 만족스럽게 나오긴 했지만, 인서울 커트라인이 높아서요.”

“전 은아가 지방대로 가는 건 원치 않습니다. 여동생이다 보니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

“그러시군요. 음, 선행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 은아 성적을 보면 걱정할 수준은 아니니까요. 내년에 다시 한번 학부모님 상대로 진학 상담이 이뤄질 거예요. 그때,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시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간단한 대화를 끝낸 후, 이현성이 이은아와 함께 자리로 걸어갔다.

“갈 거야?”

“너랑 같이 가야지. 굳이 여기까지 와서 각자 집으로 갈 필요는 없잖아?”

“알겠어.”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나온 김에 점심 먹고 들어가면 되니까. 나 뒤에 있을 테니까 끝나면 불러.”

“응, 오빠.”



평소보다 일찍 끝난 학교.

이현성은 이은아를 데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선정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말에 소고기 전문점으로 들어간 이현성이 고기를 시키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법학과에 가고 싶어?”

“응… 사법 고시만 패스하면 검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변호사도 될 수 있으니까. 변호사가 되면 돈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돈돈 거리냐? 내가 벌고 있으니까 돈 생각 하지 말고 진짜 뭘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 봐.”

고기를 구워 이은아의 그릇에 놓아 준 이현성이 이은아를 바라보았다.

꼬맹이던 이은아는 어느새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지난 세월, 이현성은 이은아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못했다.

자신의 살길을 찾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으니까.

“왜 그렇게 봐?”

“그냥. 내 동생이 이렇게 못생겼나 싶어서.”

“오빠!”

이은아의 고함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살짝 겉 부분이 익은 소고기를 이은아의 그릇에 올려주며 말했다.

“먹기나 해. 많이 먹고 키 커야지.”

“이미 성장판 닫혔거든요? 그리고 나 여기서 더 크면 징그럽다는 소리 들어.”

이은아의 말대로 고2인 이은아의 키는 166정도 되어 보였다.

이대로 더 크면 170까지 클 수도 있었다.

“내 눈엔 그냥 꼬맹이 같은데?”

“오빠 키는 생각 안해? 180이 넘는데 왜 도대체 살이 안 찌는 거야?”

이현성의 키는 182㎝.

절대 작지 않은 키였다.

다만, 이현성이 마른 몸이기에 몸이 왜소하다는 말을 자주 들을 뿐이었다.

이은아에게 고기를 사 주고, 다음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이현성이 결정을 내렸다.

생각난 김에 이은아가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한 벌 사 주고 싶었다.

“백화점으로 가자.”

“백화점?”

“평소에 입는 옷 말고, 중요할 때 입을 수 있는 원피스 하나 사 주고 싶어서.”

백화점으로 가자는 이현성의 제안을 평소 같으면 거절했을 테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으니 이은아는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가자, 백화점으로.”

사야 할 물건이 있었다.

그래서 이현성이 주는 용돈도 돌려주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왔다.

물론, 처음에 거절했지만, 이현성의 성의를 계속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하루에 만 원씩 주는 용돈을 받았다.

최대한 돈을 아끼며 용돈을 모았고, 20만 원이라는 돈을 저금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모아온 용돈을 쓰는 날이었다.



백화점에 도착한 이현성과 이은아는 평일 오전임에도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빠, 원피스 먼저 보지 말고 무기상부터 가자.”

“무기상?”

“응.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었거든. 오빠 헌터 라이센스 있으니까 들어갈 수 있잖아.”

운반꾼으로 주어진 무기 허가증이 아니어도 이현성은 무기를 살 수 있었다.

헌터 라이센스 자체가 곧 무기 허가증이었으니까.

운반꾼들은 일반인이고, 무기를 소유하기 위해선 정부에서 무기 허가서를 받아야 무기를 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은아의 말에 이현성이 아무런 대꾸 없이 백화점 내에 있는 무기상으로 향했다.

라이센스를 보여 주고 무기상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은아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을 확인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했다.

2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작은 단검에 불과했으니까.

‘이거라도 사 주고 싶어.’

이은아가 중대한 결정을 하고 20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적힌 단검을 손에 쥐였다.

“그건 왜?”

“오빠 선물로 하나 사 주고 싶어서. 이제 곧 오빠 생일이잖아. 열심히 모았는데…….”

이은아가 축 처진 어깨로 단검을 손에 쥐고 카운터로 향했다.

단검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이은아의 행동에 이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너 쓰라고 준 용돈을 왜 모아 두고 있냐?”

“그냥. 오빠 선물이라도 하나 해 주고 싶었거든. 자, 헌터 각성 축하 선물도 못 해 줘서 미안했는데… 이제라도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은아가 이현성에게 구입한 단검을 손에 쥐여 주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여동생의 모습에 이현성이 손에 든 단검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쓸게. 고마워.”

“항상 안전하게 일해야 돼. 오빠가 건강해야 나하고 엄마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

이은아에게 선물을 받고 무기상을 나오는 길, 이현성이 백화점 내부에서 나오는 방송을 듣다 걸음을 멈추었다.

[현재 이 근방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소식입니다. 고객 여러분께선 침착하게 백화점 밖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오빠…….”

방송을 들은 이은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잠깐만 기다려.”

이현성이 다급하게 무기상으로 다시 들어가며 눈에 보이는 단창 하나를 손에 쥐었다.

피신을 하려는 직원을 잡고 결제를 요구하는 이현성.

직원은 이현성을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이은아가 선물한 단검으로는 부족했다.

무기가 두 개가 있어야 제대로 된 전투를 이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직원의 표정에 이현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계산 부탁드립니다.”

무기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고객은 헌터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린 직원이 재빨리 이현성이 가져온 무기를 결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