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다음 날 아침, 운반꾼들 틈에 앉아 이현성이 우렁차게 들려오는 김인석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모두 주목!”

오늘 하루 일정을 마친 운반꾼들이 일당을 받기 위해 김인석을 기다렸다.

봉투를 가지고 온 김인석이 운반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는 그간 헌터들과 운반꾼들에 두려움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헌터 협회와 상의한 결과, 운반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하나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단, 평소엔 무기를 이곳에 보관하고 던전에 들어갈 때만 소지할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해도 적어도 그 시간 동안은 제대로 된 운반꾼의 일이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헌터 협회는 운반꾼이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소지하기 편한 단검이 모든 운반꾼들에게 주어질 거다.”

김인석의 폭탄선언에 운반꾼들의 눈빛이 변했다.

던전에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갈 수 있다면 몬스터를 만나게 되더라도 방어할 수단이 생기는 거니까.

운반꾼들이 헌터 협회의 결정을 반겼다.

일당과 무기 허가서를 받아 가는 운반꾼들.

이현성도 무기 허가서를 받으며 김인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고블린을 마주쳤을 때, 무기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던 이현성이었다.

맨몸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무기를 지니고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천지차이였다.

다음 날, 김인석이 어제 말한 것처럼 운반꾼들에게 단검이 지급되었다.

“약속한 무기를 지급했다. 이 무기는 몬스터의 뼈를 섞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몬스터의 피부를 뚫을 수 있는 강도를 지닌 단검이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운반꾼에 일에 집중하도록!”

“네, 대장님.”

운반꾼들이 크게 외쳤다.

이현성은 지급된 작은 단검을 바라보던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김인석의 의도대로 몬스터와 상대할 수 있는 무기가 주어진다면 운반꾼들을 괴롭히던 두려움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대로 운반꾼들은 던전 중간도 이젠 거침없이 움직였고, 덕분에 평소보다 빠르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운반꾼으로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그는 바로 트레이닝실로 움직였다.

한 번이라도 더 악마와 싸워 보고 싶던 탓이다.

김춘아와의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시뮬레이션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현성의 눈앞에 나타난 악마.

준비 시간도 없이 이현성이 곧바로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쾅!

악마의 위로 떨어졌다.

붉은 블레이드가 서린 검을 방어막에 내려쳤다.

쩌억―

약간의 생체기.

검의 부딪친 방어막에 균열이 일어났다.

방어막에 상처가 나자 무표정하던 악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당황이 섞여 있는 표정.

이현성이 환희를 드러내며 다시 한번 고속이동을 사용했다.

처음으로 악마의 방어막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

마력도 상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의 집중을 통해 이뤄 낸 노력의 결실이었다.

악마가 다시 한번 방어막으로 떨어지는 이현성을 향해 빛을 뿜어냈다. 쳐 내지도, 막아내지도 못하던 빛이 블레이드에 막혔다.

그렇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현성은 결국 악마가 쏘아낸 빛에 심장에 꿰뚫려 쓰러졌다.

바닥에 누워 있던 이현성이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싸울 만하겠네.”

‘C급 마력을 가지고 1%의 힘을 가진 악마의 힘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전력을 드러낸 악마와 싸우기 위해선 적어도 S급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네. 아니 그래도 부족할 수도 있겠지.’

바닥에 누워 생각을 정리하는 이현성에게 김춘아가 다가왔다.

“지독한 놈. 독종도 아니고 그렇게 죽으면서 끈질기에 싸움을 이어 나갈 줄이야.”

방으로 들어온 김춘아가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이현성은 왜인지 몰라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강해진다면 감당하기 힘든 저 악마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시작인데요. 뭐…….”

‘능력이 S급 이상이여야 상대가 가능할 거야. 무기의 마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시 노가다를 시작해야겠지.’

E급 영혼의 구슬이 올려주는 마력 수치는 한계가 있었다.

이현성이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김춘아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잠만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을 했고 평소처럼 일상은 똑같이 흘러갔다.

운반꾼의 일이 끝나자, 이현성에게 다가오는 운반꾼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장신.

회귀전 이현성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간 사기꾼이었다. 언제가 되었던 자신에게 곧 접근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무슨 일이시죠? 강씨 아저씨.”



“대화를 좀 나누지 않겠나?”



중후한 목소리.

정중하게 자신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그의 말에 이현성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웃음을 지었다.

그와 마주보고 앉은 이현성.

강장신이 품에서 지닌 펀드에 관련된 서류를 꺼냈다.

“한 달 수익 두 배. 잘만 되면 세 배까지 올라가는 재테크지. 이현성 군이 어린 나이에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좀 도와 주고 싶은데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그는 본론을 바로 드러냈다.

강장신의 말에 이현성이 서류를 손으로 들었다.

세세하게 읽어 본 결과, 허점들이 너무 많았다.

투자한 금액을 돌려주는 것도, 투자금 비율도, 한 달에 돈을 얼마씩 준다는 조항도 허술했다.

‘내가 이런 말에 속아 6,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니…….’

과거 자신의 허술한 일처리에 반성한 이현성이 서류를 내려놓고 거절의 의사를 전달했다.

“솔직히 말해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수익이 아무리 많더라도 위험한 일로 제 돈을 묶어 둘 생각은 없어요, 아저씨.”

“잘 생각해 봐. 일확천금의 기회일 수도 있어. 투자한 금액에 최소 두 배는 회수할 수 있다니까?”

“죄송합니다.”

이현성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강장신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대로 한탕하고 운반꾼을 뜰 생각이었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이런 위험한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금액을 만들어 놓고 날아야 했다.

‘저 어린 녀석을 지지고 볶을 수 있는 획기적인 계획을 강구해 봐야 해. 한 달에 적어도 400씩만 투자를 하게 만들면? 6개월만 작업하고 나를 수 있다!’

그는 이미 다른 운반꾼들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는 중이었다.

거의 다 된 작업.

딱 6개월만 작업을 하고 떠난다면 적어도 그의 손에 억 단위에 돈을 쥘 수 있을 터였다.

열 명의 운반꾼만 유혹한다면 6개월 뒤 불어날 돈은 최소 2억 4,000만 원이라는 돈이 된다.

영악하게 상대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선 좀 더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운반꾼의 신뢰를 받는 이현성을 유혹한다면 다른 운반꾼들도 혹할 게 분명했다.

강장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오는 길, 이현성이 눈을 빛내며 김인석에게 다가갔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고 던전 입구를 바라보는 그의 옆에 선 이현성이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대장님?”

“아, 그냥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퇴근 안 하고 뭐 해?”

“이제 퇴근하려고 합니다.”

“빨리 가. 트레이닝실 가야 되잖냐.”

재촉하는 그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행동과는 달리 이현성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인석이라면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여긴 그는 입을 열었다.

이현성은 강장신이 이곳에서 작은 돈도 가져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강 씨 아저씨가 이상합니다.”

“강장신?”

“네. 제게 펀드에 관련된 서류를 보여 줬는데, 허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운반꾼 아저씨들이 강 씨 아저씨와 가까이 하는 걸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성의 말에 김인석이 혀를 찼다.

이현성의 말대로 강장신은 지금 운반꾼들에게 작업이라는 것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보고가 하루에 한 번씩 김인석에게 들어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냥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이현성이 하는 말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하마. 알려 줘서 고맙다.”



강장신이 이상하다는 말을 김인석에게 알려 준 다음 날.

김인석이 운반꾼들을 모아 놓고 가져온 서류들을 다른 운반꾼에게 전달했다.

“천천히 돌아가며 읽어 보도록.”

의도적으로 강장신에게는 마지막으로 서류가 돌아가게끔 돌렸다.

놀랍게도 그곳엔 강장신의 사기 이력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본 운반꾼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최문석이 그 서류를 확인했을 때,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에 앉아 있는 강장신을 향해 걸어갔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왜, 왜 그래? 최 씨.”

최문석도 펀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제안을 무시하긴 했지만, 이미 한두 명의 운반꾼들은 그에게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과 친밀한 이들인 탓에 최문석은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고 강장신의 멱살을 와락 잡았다.

“사기 이력이 화려하네, 사기 전과 18범?”

김인석이 냉정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강장신을 바라보았다.

사기 전과 18범이라는 말에 두 명의 운반꾼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사기 이력이 들통나자 강장신이 깜짝 놀라며 최문석의 팔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운반꾼으로서 살아온 그의 근력은 최문석의 팔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익!”

“사기 전과를 속이고, 또다시 사기를 치려고 해?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운반꾼들을 상대로?”

최문석의 눈에서 분노가 표출되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운반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운반꾼에게 사기를 치다 잡히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내 돈! 내 돈은?”

이미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강장신에게 투자한 운반꾼이 눈이 뒤집어지며 강장신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운반꾼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아들 등록금… 아아…….”

그때서야 그들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 빠진 녀석들이라고 중얼거린 김인석이 던전 입구를 바라보자, 경찰이 때마침 나타났다.

경찰을 발견한 강장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운반꾼이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직업이기에 사기 전과가 있어도 이력서 위조로 운반꾼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위조 사실까지 밝혀진다면 빼도 박도 못할 상황.

강장신이 급하게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그는 최문석에게 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경찰이 빠르게 달려와 저항하는 강장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강장신 씨, 당신은 사문조 위조와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영장을 가져와! 영장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건가?!”

오히려 강장신이 적반하장 격으로 날뛰었다.

그의 외침에 김인석이 강장신이 위조한 서류를 그의 가슴팍에 올리며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곧 증거겠지. 알지? 운반꾼에 제출하는 서류가 위조되는 순간, 그때부턴 사기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인 범죄로 변환된다는 거.”

“대, 대장님!”

“정신 빠진 것들… 이런 허술한 사기꾼에게 당해? 너희 둘도 따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