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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두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뮬레이션실로 들어온 이현성에게 김춘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모든 구현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떡할래?”

기다릴지, 아니면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갈지 물어보는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무조건 그 존재와 한 번 싸워 보고 싶었다.

비록 그 당시에 마력 등급과 지금 마력 등급은 달랐지만, 능력 활용도가 달라졌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현성이 시뮬레이션실 바닥에 앉았다.

“기다릴게요.”

눈을 감고 마지막에 본 악마와의 전투를 회상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더 흘렀을 때, 김춘아가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왔다.

“구현 끝났다. 시작할까?”

“네.”

이현성은 심호흡하며 간단하게 몸을 풀 뿐,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제대로 구현되었다면 어차피 10분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

우우웅―

시뮬레이션실이 크게 진동하며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서울의 광경.

바닥에는 헌터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그중에선 옷에 특유의 문양을 새긴 자들도 있었다.

보통 S급 헌터가 되면 헌터 협회에선 S급을 상징하는 문양을 지급한다.

그 문양은 헌터들 사이에선 고유 문양이라고 불렸다.

이현성의 앞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시신들 중에서 고유 문양을 지닌 자들은 다섯이었다.

이 모습에 이현성은 화들짝 놀랐다.

‘그때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피해가 이 정도일 줄은… 그보다 너무 세세하게 구현됐는데?’

과연 악마의 모든 능력치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구현되었을지 궁금해하던 이현성은 이내 공중에 떠 있는 채로 그를 내려다보는 악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쥐의 것과 닮은 날개를 펼친 악마가 냉소를 지었다.

죽기 전 본 악마는 딱 이런 표정이었다.

재밌겠다는 표정.

이현성은 시뮬레이션일 뿐인데도 공포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 맞붙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어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는 검과 창을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고속이동.’

어차피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도 시뮬레이션만 끝날 뿐이었다.

겁먹을 필요가 없다 판단한 이현성이 곧바로 움직이자 악마가 손을 펼쳤다.

‘블레이드. 마력 집중.’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이현성이 모든 능력을 드러내며 100%의 전력으로 악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공중에 뜬 악마를 향해 검과 창을 찔러 넣었지만,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이현성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악마가 실망을 드러내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온다.’

이현성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던 힘.

악마의 손에서 벼락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속이동.’

그 빛을 피하기 위해 고속이동을 사용했지만, 악마는 이미 눈치챘는지 나타날 방향으로 빛을 날렸다.

‘커헉!’

싸움을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복부를 꿰뚫린 이현성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죽기 전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며 떨어지는 유성우.

맹렬하게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우는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을 강타했다.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

‘1분도 버티지 못했어. 그래도 그때는 한 시간 정도 싸운 것 같은데…….’

이현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죽음이었다.

충격을 받을 필요가 없기에 이현성이 벌떡 일어났다.

한편, 모니터를 통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김춘아가 멍허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에게 있어서 방금 전의 상황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도 바닥에 쓰러져 있던 S등급 헌터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춘아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시뮬레이션실로 들어갔다.

스스로의 몸을 더듬으며 상태를 확인하는 이현성에게 김춘아가 다가갔다.

“…이거, 도대체 뭐냐?”

“만약 관장님이 구현된 존재를 상대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요?”

“…1분도 못 버티겠지.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첫 공격을 방어하지도 못할 거다.”

‘그렇겠지.’

S급 헌터들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존재였으니까.

이런 무시무시한 존재와 대적해야 할 상황은 무조건 온다.

이현성이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적어도 아군은 아닐 거예요.”

“너… 혹시 능력이 예언과 관련된 능력이냐?”

터무니 없는 소리였지만, 김춘아는 자신의 추측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확하게 이 광경들을 구현해 내지 못할 터.

예언자라 불리는 헌터들은 한 세대에 하나씩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미 예언자는 최근에 나타났다.

한 세대에 두 명의 예언자는 없다.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예언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이 광경을 직접 경험한 회귀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회귀를 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

“…내가 알아듣지 쉽게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하아… 이런 존재니까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잡아먹은 거지…….”

“관장님, 혹시 능력치를 줄일 수도 있나요?”

악마의 능력치를 줄일 수도 있냐는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로 능력치를 하락시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해.”

“그럼 99%의 능력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죠?”

능력치를 대폭 줄여달라는 요청.

김춘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성의 요청대로 100%의 힘을 가진 이 존재와 맞설 수 있는 헌터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존재와 대등하게 전투하기 위해선 능력치를 하락시키는 방법뿐이었다.

“…한 번 해 보마. 지금 당장 시작할 건 아니겠지?”

시간이 너무 늦었다.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모된 체력도 없이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구현이 100%되었다고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도 성과가 없진 않았다.

그 악마와 다시 싸우게 되는 건 10년 뒤였다.

다행히 시뮬레이션이라는 기술로 그 존재를 구현해 낼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 느껴졌다.

10년 후면 이현성의 기억이 변질되거나 희미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아무리 이현성의 기억력이 뛰어나도 10년이 지난 일까지 세세하게 기억할 리가 없었다.



이현성이 돌아가자 김춘아가 녹화된 장면을 다시 한번 돌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싸운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겠지.’

여러 번 영상을 돌려보던 김춘아가 눈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피로함을 드러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 이현성이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적어도 회귀 전의 능력을 빠르게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더 강해져야 해. 지금 이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악마와 싸우기 위해선 더 빠른 성장 속도를 이룩해야 해.’

회귀 전, 이현성은 너무 허탈하게 죽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연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가진 악마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그는 의문이 들었다.

그저 막연한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부딪쳐야 한다.

수없이 싸우며 방법을 찾다보면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지 몰랐다.

악마의 지닌 힘이 전지전능하다 할지라도 끈질기게 파헤치고, 싸우고, 죽다 보면 10년 안에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기술을 알지 못했더라면 막연하게 그냥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식하게 성장만 했겠지만, 이젠 성장하면서 악마와의 격차를 좁혀야 했다.

오늘도 고블린의 던전 중앙에 들어온 이현성이 빠르게 수레를 움직였다.

E급 영혼의 구슬을 빠르게 파밍하고 다음 던전인 오크의 던전으로 향했다.

오늘 얻은 영혼의 구슬은 고블린의 던전에서 열 개, D급 던전 두 곳에서 열다섯 개를 회수했다.

올린 수치는 C급 마력 20%.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회귀 전에 능력을 되찾기 위해선 A등급 마력으로 무조건 성장해야 했으니까.

일을 마무리하고 트레이닝실로 걸어가던 길, 이현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성장 속도가 줄어들었고 그 해결법을 찾아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김춘아와의 약속대로 능력을 드러내선 안 되니까.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B급 던전으로 들어갈 수 없어.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한다면 악마의 신단으로 들어갈 수도 없겠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이현성이 트레이닝실로 들어오자 김춘아가 퀭한 눈으로 이현성에게 달려왔다.

“99%의 능력치를 줄였어!”

밤새도록 수 없이 영상을 돌려보며 악마의 능력치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김춘아가 얼굴에 환희를 드러내며 팔짝 뛰었다.

능력치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는 말에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하셨어요, 관장님.”

“큼… 네 말대로 그 존재가 적이라면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씻고 와라. 세팅해 둘 테니까.”

씻고 나온 이현성이 깨끗한 트레이닝 복장으로 시뮬레이션실 가운데에 섰다.

그러고 어김없이 구현되는 공간.

이현성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장면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 했다.

운반꾼들이 몬스터의 등장으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처럼 이현성도 목숨을 잃은 악마에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을… 부순다.’

이현성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악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과연 1%의 힘밖에 남지 않은 악마는 어떤 힘을 선보일지 궁금했다.

또다시 시작되는 싸움.

이현성이 고속이동을 이용해 악마의 뒤편에 나타났다.

블레이드를 씌운 검을 내리친 이현성.

하지만 여전히 악마의 방어막을 뚫을 수가 없었다.

‘1%의 능력이라도 뚫을 수 없다 이 말인가?’

방어막을 뚫지 못한 이현성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며 검과 창을 들고 당당하게 악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악마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현성은 검과 창을 강하게 쥐었다.

‘방어막을 뚫어낼 수 없다면 악마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피웅―

악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이현성이 두 자루의 무기로 그 빛을 막아 보고자 했다.

빠각―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현성이 지닌 무기가 빛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 버렸다.

무기가 부숴짐과 동시에 심장이 꿰뚫린 이현성은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시뮬레이션이 종료되고 누워 있는 이현성에게 달려온 김춘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이게 내가 낮출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야.”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김춘아.

그의 모습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충분했으니까.

1%의 힘을 가진 악마조차 상대할 수 없지만, 이현성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다시 해 보죠, 관장님.”

“결과는 비슷할 텐데?”

“피하기만 한다면 저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겠죠.”

이제 노가다만이 살 길이었다.

지금 자신과 악마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 부딪치며 경험해 봐야 했다.

‘수없이 죽어 봐야 이 두려움이 무뎌질 테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냉정하게 악마를 바라봐야 했다.

무조건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상대해야 할 존재.

두려움을 가진 상태로 부딪치면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 후로 두 번이라는 죽음을 경험하고 결국 시뮬레이션을 중단한 이현성이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징그럽게 강하네. 제길.’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악마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