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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일반 운반꾼으로 활동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오늘도 열심히 영혼의 구슬을 수집하던 이현성이 던전에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오늘도 고생했다, 현성아.”



“아, 아저씨.”

어느 때처럼 이현성에게 다가오는 최문석.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현성의 고생을 치하했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운반꾼의 일을 하며 일당 20만 원을 꼬박꼬박 받아 한 달 6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일을 마치고 트레이닝실에 들어온 이현성은 외투를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지저분해진 몸 상태로 훈련을 할 수 없었으니까.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이현성이 트레이닝 공간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김춘아가 다가왔다.

“왔냐?”

“네, 관장님.”

“시작하자. 시뮬레이션실로 들어와.”

한 달 동안 이현성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몬스터와 상대하는 방법만을 익혔다.

정돈되지 않은 전투 스타일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말보단 경험으로 느끼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김춘아의 말에 시뮬레이실로 들어간 이현성이 검과 창을 쥐고 자리에 섰다.

그러자 바뀌는 방의 풍경.

넓은 초록 들판이 나타나고, 그의 앞에 오크 서른 마리가 등장했다.

D급 몬스터인 오크를 상대하기 위해 이현성이 검과 창을 바닥에 박고 목을 짧게 꺾었다.

으드득―.

목에서 느껴지는 시원함.

이현성이 바닥에 박은 검과 창을 다시 쥐고 중얼거렸다.

“시작해 볼까?”

꽤 멀리 있는 오크들.

1㎞ 앞에 보이는 오크들의 모습에 이현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던전 형태의 시뮬레이션은 점점 진화하여 필드 형태로 나타났다.

움직이기에도 던전 형태보단 필드 형태가 훨씬 좋았다.

모니터를 통해 이현성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던 김춘아가 의자에 앉아 손에 깍지를 끼고 쭉 폈다.

점점 달라지는 이현성의 전투 스타일을 체크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그냥 받은 만큼만 이현성에게 다양한 이론만 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현성의 재능을 알게 된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훈련을 지도했다.

이현성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그가 강해지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돕고 싶었다.

지금 이현성의 성장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실제로 이현성은 사냥꾼의 발걸음을 제대로 이용해 보지도 못하고 고속이동이라는 상위 호환의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고속이동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고 해도 사냥꾼의 발걸음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투에서는 고속이동이 압도적으로 성능이 좋지만, 일상에선 사냥꾼의 발걸음만큼 활용적인 것도 없었다.

고속이동을 사용하기엔 능력이 너무 튀었다.

오크들의 앞에 도착한 이현성이 기존 전투 스타일처럼 창을 던지지 않고 오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스릉―

달려오는 오크의 다리를 베고 그 충격으로 쓰러지는 오크의 앞으로 고속이동을 이용해 움직였다.

바닥에 엎어진 오크의 머리를 향해 창을 내려찍은 이현성은 녹색의 피가 얼굴에 튀기는 것을 느끼며 다시 창을 빼들었다.

“후우…….”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이현성이 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오크의 검을 막았다.

고블린의 경우에는 무기를 들지 않고 공격했지만, 오크는 달랐다.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검술까지 본능적으로 사용했다.

‘마력 집중.’

블레이드라는 능력이 있는 이상, 사실 마력 집중이라는 능력을 그렇게 크게 활용할 수 없을 거라 이현성은 생각했다.

물론, 그건 마력 집중의 활용법을 몰랐기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블레이드가 무기에 마력을 집중시키는 능력이라면, 마력 집중은 신체에 마력을 집중시켜 폭발적인 근력과 스피드를 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마력 집중을 사용해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킨 이현성이 총알처럼 앞으로 튕겨져 나가며 단창을 강하게 오크의 복부에 박았다.

투박하던 전투 방식은 조금 더 세련되게 진화했다.

그냥 고속이동의 능력으로 던지고 찌르기만 하던 단순한 동작에서 좀 더 활용적으로 동작이 진화했다.

무작정 창을 던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창을 던져야 했다.

이현성은 부드러운 유연성으로 뒤로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날아오는 검을 피해 낸 그는 달려드는 오크의 발등을 향해 창을 찍었다.

오크의 발등에 단단하게 박힌 창은 봉의 역할로 바뀌었고, 창대를 이용해 몸을 띄운 이현성이 발로 달려오는 오크의 얼굴을 차 버렸다.

퍼억!

바닥에 내려와 창을 다시 뽑아 든 그는 발등에 구멍이 난 오크의 옆구리에 창을 강하게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바로 고속이동을 이용해 앞에서 달려오는 다른 오크의 뒤로 이동했다.

뒤에서 날아오는 오크를 확인하고 몸을 돌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오크의 검을 막아 내고, 다른 손에 들린 검으로 앞에 있는 오크의 다리를 찔렀다.

일대일의 전투 상황이라면 이런 큰 동작들을 하지 않겠지만, 일대 다수의 싸움이라면 말이 달랐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들을 피해 내야 했으니까.

쾅!

오크의 검을 막아 내고 다리를 찌른 검을 빼내며 그는 한쪽 다리를 길게 펴고 낮은 자세로 회전했다.

그리고 앞에서 날아온 오크의 검을 쳐 내며 창을 앞으로 뻗었다.

뒤에 있는 오크를 찌르기 위해 검을 뒤로 잡은 이현성이 강하게 오크의 복부 쪽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앞뒤의 두 마리 오크를 동시에 처리한 이현성이 검과 창을 다시 빼내며 고속이동으로 움직였다.

잠시 숨을 고르며 짧게 한숨을 내쉰 이현성이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서른 마리의 오크가 바닥에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려 끝난 전투였다.

이현성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방의 광경에 우뚝 서서 고개를 돌렸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이현성은 무기를 다시 본래의 위치로 꽂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 관장님 덕분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 중화 요리 어때?”

“좋아요. 오늘은 제가 낼게요.”

시뮬레이션을 마무리한 그들은 저녁을 먹었다.

훈련 기간이 늘어날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아쉬운 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이번엔 시뮬레이션이 아닌, 그냥 혼자서 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이었다.

김춘아가 옆에서 자세를 지적해 주면 다시 자세를 잡고 움직이는 정도.

격하게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기에 이현성은 편하게 훈련을 지속했다.



***



다음 날,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되는 하루.

이현성이 손수레를 끌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현재 마력 등급은 C등급.

E급 영혼의 구슬은 이제 0.5%의 수치만 올려 주었다.

그리고 D급 영혼의 구슬의 경우 1%의 마력 수치만 올라갔다.

‘E급 영혼의 구슬로만 100%의 능력치를 채우기 위해선 200개의 영혼의 구슬이 필요하고, D급 영혼의 구슬은 100개 정도인가? 점점 마력 수치를 올리는 게 까다로워지네.’

현재 이현성이 운반꾼으로 도는 던전은 D급이 최대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C급 마력을 갖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그냥 차근차근 성장 루트를 밟아 가며 힘을 키워야 했다.

악마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B급 던전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애석하게도 일반 운반꾼들은 C급 이상의 던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반 운반꾼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 등급은 C급이지만, 이현성이 속한 운반꾼 팀은 C급 던전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에겐 최대 D급 던전까지만 배정되었으니까.

“중간 부근을 책임져 줄 수 있나?”

고블린이 한 번 튀어나온 전적이 있는 곳.

그래서 운반꾼들은 고블린의 던전 중앙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만큼 그 기억은 운반꾼들의 머릿속에 공포로 자리 잡았다.

김인석의 부탁에 따라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레를 끌고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현성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최문석도 같이 움직였다.

최문석 역시 다른 운반꾼들과 마찬가지로 두려웠지만, 이현성 혼자 중간 부분으로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는 선배로서 본을 보이지 못할망정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다른 운반꾼들을 생각하며 혀를 찼다.

그런 최문석과 함께 중간 부분으로 이동한 이현성이 수레에 열심히 고블린의 시신을 옮기고는 던전 입구로 향했다.

둘은 2인 1조로 움직이며 다른 운반꾼들보다 더 더 많은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이현성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현성의 다리와 팔에는 10㎏ 상당의 모래주머니가 착용되어 있었다.

그는 걷는 게 아니라 거의 달리는 수준으로 던전 안과 밖을 오갔다.

영혼의 구슬을 파밍하고 고블린 시신을 운반한 이현성이 던전 밖으로 나왔다.

쉬지 않고 운반차에 고블린의 시신을 싣는 이현성의 부지런한 모습.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인석은 고민이 들었다.

이대로 이현성에게 모든 걸 맡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운반꾼이 던전 중앙으로 가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해 주어야 했다.

운반꾼의 일이 끝난 뒤, 이현성은 사냥꾼의 발걸음을 이용해 빠르게 트레이닝실로 향했다.

보통의 걸음으로 걷는다면 30분 정도 걸리지만, 이현성이 걸린 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면 사냥꾼의 발걸음을 사용하지 못했기에 얌전히 걸어서 인적이 드문 곳까지 이동해야 했다.

이현성이 트레이닝실에 오자 김춘아가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시뮬레이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 이현성은 문뜩 떠올린 게 있었다.

‘이 시뮬레이션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회귀 전, 마지막으로 상대한 존재.

그 악마의 능력을 전부 발현할 수는 없더라도 아주 일부분이라도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이현성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한다?]

“관장님, 잠시 만요.”

이현성의 요청에 김춘아가 잠시 후 방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시작을 중지시킨 이유를 들어 봐야 했으니까.

“왜? 컨디션이 안 좋아?”

김춘아가 방으로 들어오자 하는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어느 정도 높아지면서 이현성이 아플 일은 없었다.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는 몸이 되었으니까.

“시뮬레이션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요?”

이현성의 갑작스런 질문에 김춘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현존하는 모든 몬스터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무시무시하다고 알려진 S급 몬스터까지 구현이 가능했다.

“S급 몬스터까지 구현 가능할 걸? 다만, 몬스터를 구현하기 위해선 사람의 기억 속에 잠재된 그 몬스터의 기억을 스캔해야 하겠지. 왜?”

S급 몬스터까지 구현 가능하다는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구현해 보고 싶은 존재가 있어서요. 제 기억 속에 있으니까 스캔을 해서 한 번 진행하면 안 될까요?”

“…운반꾼 주제에 몬스터와 마주친 적이 있다는 말이냐? 고블린 정도 마주쳤다는 건 알지만…….”

김인석에게 고블린의 던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은 적이 있었다.

이현성의 수준이라면 도망만 치는 게 아니라 사냥까지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테니 별다른 감흥 없이 듣고 지나쳤다.

“몬스터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능하겠죠?”

“이쪽으로 와라. 구현하고 싶은 존재를 떠올리고, 그 존재가 가진 힘을 제대로만 기억하고 있다면 구현이 가능할 거다.”

이현성은 이렇게라도 한 번 더 싸워 보고 싶었다.

그 존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대적 가능한 수준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김춘아의 안내대로 뇌파를 감지하고 스캔하는 기기를 머리에 쓴 이현성이 천천히 악마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구현했다.

[스캔 중입니다. 구현까지 걸리는 시간 두 시간입니다.]

“두 시간이라고?”

보통 S급 몬스터도 구현까지 한 시간 걸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두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떤 존재를 마주쳤길래…….’

이현성이 30분의 스캔이 끝나고 기기를 머리에서 벗었다.

“스캔이 완료되기 전까지 간단하게 몸이나 풀죠, 관장님.”

“이번엔 C급 몬스터인 리자드맨을 구현할 생각이다.”

김춘아가 리자드맨을 구현하기 위해 기기를 통제하는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모든 동력을 구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뭐? 아직 마정석을 교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일부로 비싼 마정석으로 교체했는데 동력이 부족하다고?”

당황이 섞인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두 시간 동안 간단하게 몸이나 풀게요.”

두 시간.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구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다시 한번 마주 서서 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현성이 시뮬레이션 공간이 아닌, 수련을 위한 공간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