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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여느 때처럼 트레이닝실로 향하는 발걸음.

너무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나쁘진 않았다.

오랜만에 자신에게 주는 휴식이라 생각했다.

이현성이 트레이닝실에 도착하자 김춘아가 그를 반기며 바로 트레이닝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무기를 선정하는 날이다. 사람마다 재능이 있는 무기가 각기 다르지. 가장 기본적인 무기는 검, 창, 활이다. 이 세 개 중 하나를 잡아 봐.”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당당하게 무기가 진열된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의 무기가 아닌 검과 창, 두 개의 무기를 잡았다.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하나의 무기도 제대로 사용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리는데… 그것도 성향이 다른 두 개의 무기를 쥐다니…….”

“한 번 해 보고 싶어서요.”

물론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회귀 전에 사용하던 전투 스타일이었으니.

이를 본 어떤 헌터들은 성향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이현성에게 허세를 부린다고 혀를 찬 적도 있었다.

하지만 14년 가까이 사용해 온 전투 스타일을 굳이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현성의 당찬 말에 김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도류를 사용하는 헌터들도 종종 있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두 개의 무기로 전투 스타일을 잡으면 변칙적인 공격으로 인해 조금은 더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단,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경우에.

그렇기에 이현성은 수많은 노력을 해 왔고, 결국 악마의 신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회귀 전, 의무 기간을 마치고 헌터 운반꾼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음에도 이현성은 장비를 맞추지 못했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살 수 있는 무기가 거의 없을 때, 우연히 발견한 무기상에게서 얻은 무기 때문에 창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게 되었다.

잠시 과거를 떠올리던 이현성을 김춘아가 새로운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트레이닝실이 단순히 수련만 하는 공간이었다면, 한 달에 받는 금액이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진 않을 터였다.

투명한 유리로 된 방을 바라보던 이현성이 김춘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몬스터와 대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몬스터의 특징 그대로 구현했고, 가상현실처럼 모든 게 다 구현되는 공간이지. 나도 처음 경험해 보는 무기 선정이라 일단 어떻게 싸우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오… 요즘 기술로 이런 것도 되나요?”

회귀 전에 이름 정도는 들어봤지만,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트레이닝실을 수습 헌터들이 비싼 가격에 등록하는 이유가 있지. 일단 고블린부터 시작해 볼까?”

“네, 관장님!”

실제로 헌터 협회 심사장에서 사용하는 기기와 같은 모델이었다.

단, 중고로 구입하긴 했지만.

아직 쓸 만은 했다.

김춘아가 방을 나가자 이현성이 긴장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기계음이 들려오고 방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실제 던전과 유사한 형태로 바뀐 방.

이를 신기한 듯 둘러보는 이현성의 눈앞으로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들이 레이드를 하는 던전 그대로 구현된 공간이다.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시스템을 끄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자동으로 시스템이 종료되니, 무운을 비마.]

김춘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현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진짜 현실처럼 구현된 공간이라면 긴장을 해야 했다.

고블린들이 흉흉한 눈빛을 드러내며 이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과 검을 든 이현성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긴장감에 미소를 지었다.

주저하지 않고 창을 든 손을 들어 올린 이현성이 힘껏 창을 달려오는 고블린에게 던지며 전투를 시작했다.

피융―

푸욱―

단창을 힘껏 던지며 싸움의 시작을 알린 이현성이 가볍게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이현성을 향해 몸을 던지는 고블린들.

오랜만에 느끼는 전투의 흥분을 느낀 이현성이 손에 든 검을 움직였다.

깡!

‘블레이드.’

고블린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검.

하지만 이현성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겐 블레이드라는 능력이 있으니까.

블레이드는 마력을 압축하여 검에 씌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단단하게 압축된 마력은 기존 헌터들이 사용하는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했다.

서걱―

붉은 아지랑이가 이현성의 검을 감쌌다.

고블린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온 검이 다시 고블린의 팔을 향해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순식간에 떨어져 나간 팔.

팔이 떨어진 단면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생생한 시뮬레이션 구현에 만족감을 드러낸 이현성은 눈앞에서 포효하는 고블린의 심장으로 검을 찔렀다.

능력을 얻은 이현성의 전투 스타일은 한 번 더 바뀌었다.

검과 창으로 방어만 해 오던 기존 스타일을 버리고, 창을 공격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속이동’

이현성이 머릿속으로 스킬을 사용하자 고블린에게 박힌 단창이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사냥꾼의 발걸음이 보법과 비슷하다면, 사냥꾼의 고속이동은 마치 순간이동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이현성은 2초 만에 단창이 박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푸욱―

고블린의 얼굴에 박힌 단창을 뽑아 든 이현성이 다시 한번 창을 던지며 고블린을 찢어발겼다.

그런 이현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춘아는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되는 능력.

이현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모니터를 통해 비춰지는 이현성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 같았다.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났다하는 일이 반복됐으니까.

‘쟤, 진짜 F등급 맞아?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지금 이현성이 사용하는 능력 자체만 두고 본다면 F등급이라 할 수 없었다.

평범한 무기로는 절대 고블린의 피부를 뚫을 수는 없으니까.

현역 헌터들이 사용하는 마력을 무기에 주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이현성의 검과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아지랑이는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김춘아는 마력이 맞다고 판단을 내렸다.

“F등급 헌터가, 그것도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애송이가 마력을 무기에 부여할 수 있다고? 허…….”

그냥 한 번 경험해 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검과 창을 어떻게 쓰는지 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 가볍게 시작한 시뮬레이션이었다.

1분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현성은 던전에 나타나는 고블린을 너무도 쉽게 사냥했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지? 이게 진짜라면… 사기 아니냐…….”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춘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속이동을 사용해 단창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이현성에게 고블린 하나가 몸을 날리며 그를 덮쳤다.

이현성은 다급하게 단창을 빼내고 고블린의 손톱을 창으로 막아 냈다.

차차창!

평범한 F등급이라면 고블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가 떨어졌을 터.

하지만 이현성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고블린의 힘을 견뎌 내며 다른 손에 든 검을 고블린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푸욱―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현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은 고블린은 약 다섯 마리.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고속이동.’

복부에 박힌 검을 빼내고 바로 고속이동을 사용한 이현성이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냈다.

쓰러지는 고블린의 뒤에 있던 놈에게로 이동해 검을 목에 꽂아 넣고는 옆에 있는 다른 놈에게 창을 던졌다.

빠르게 검을 빼낸 그는 다시 고속이동을 사용하여 단창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창을 빼내는 즉시 다시 던지고 고블린의 뒤로 이동하여 목을 단번에 베었다.

그러고 다시 단창을 쥐었을 때, 하나의 고블린만 남아 있었다.

그는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창 끝부분을 잡고 펜싱 자세를 취하며 검보다 긴 단창을 길게 뻗었다.

푸욱―

달려오는 고블린의 복부에 단창이 박히며 시뮬레이션이 끝났다.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이현성은 단창과 검을 강하게 쥐었다.

“쉽네요, 관장님?”

김춘아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스피커로 고개를 돌리며 말하는 이현성.

그의 말에 김춘아가 허탈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괴물이냐?”

“아니요. 평범한 운반꾼인데요?”

‘평범?’

지금 이현성이 사용하는 능력은 평범과 거리가 멀었다.

현역 헌터로 살아오면서도 이런 능력을 보인 헌터는 없었다.

S급 헌터 정도면 지금 이현성의 움직임을 대충은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김춘아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 계속 운반꾼 할 거냐?”

“현재로선 방법이 없으니까요. 재심사를 신청하게 되더라도 1년 넘게 걸리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1년의 의무를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면 수습 헌터보단 운반꾼이 나으니까요. 그래도 운반꾼은 돈이라도 많이 벌잖아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김춘아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현성의 전투는 자연 그대로의 날것처럼 보였다.

마치 짐승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이 능력을 가다듬는다면 그는 A급으로 승급하는 건 무리도 아니라 생각했다.

마력 등급이 떨어지더라도 이현성이 가진 능력이라면 충분히 마력 등급보다 높은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 터였다.

“지금 네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 운반꾼으로 의무 기간을 채우고 헌터로 전향하는 게 맞긴 하지. 그건 인정할게. 그보다 하나만 물어보자.”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눈으로 이현성을 바라보는 김춘아.

그의 질문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 힘으로 뭘 하고 싶냐? 높은 등급의 헌터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조용하게 살고 싶은 거야?”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 힘으로 뭘 하고 싶냐는 그의 질문에 이현성이 눈을 감았다.

감히 대적도 할 수 없던 악마, 던전을 나오자마자 마주친 그 악마를 떠올렸다.

“그냥 강해지고 싶어요. 굳이 제 힘을 숨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전 지금 이 상황에 순응하면서 살고 싶어요.”

말과는 달리 1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대비하는 것과 악마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 이현성의 최종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김춘아에게 말해 봤자 그는 이해하지 못할 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강해지고 싶다는 말이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내가 회귀를 하게 된 건 다 이유가 있을 테지. 피하지 못할 일이라면 맞서 싸워야 한다.’

가족과 소소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막아 내야 했다.

“무조건 숨겨. 적어도 운반꾼의 일이 끝나기 전까진 그 누구에게도 네 힘을 드러내지 마라. 그래야 나중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진심 어린 김춘아의 조언에도 이현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러낸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운반꾼에서 수습 헌터가 되는 일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으니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현성의 물음에 김춘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운반꾼에서 헌터가 되었지만, 헌터 협회의 시스템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운반꾼에서 수습 헌터가 되면, 운반꾼으로 생활하던 의무 기간이 다시 새롭게 갱신된다. 네 말대로 재심사 과정이 1년 넘게 걸릴 일이라 지금 당장 수습 헌터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을 테지. 간단하게 예를 들어 주마. 만약 네 힘이 드러나서 반년 뒤에 네 등급이 재평가되면?”

‘반년을 운반꾼으로 일한 의무 기간이 다시 리셋되겠지.’

김춘아의 말에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1년의 의무 기간을 다시 새롭게 리셋할 필요는 없었다.

수습 헌터들에게 주어지는 한 달 월급은 200만 원.

하지만 운반꾼에게 주어지는 일당은 20만 원이었다.

한 달에 거의 6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었고, 이현성은 이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무조건 의무 기간만 넘겨. 의무 기간만 넘긴다면, 운반꾼에서 바로 헌터 생활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되도록이면 현역 헌터가 되지 말고 길드로 들어가. 현역 헌터가 된다면, 수습 헌터로 짧아도 3개월은 활동시키고 현역 헌터로 투입될 거야. 그럼 그 시간을 다시 버리게 되겠지.”

“…그런 조항도 있었어요? 복잡하네요.”

이현성은 이처럼 세세한 조항까진 알지 못했다.

회귀 전, 이현성은 수습 헌터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의무 기간 1년을 운반꾼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계획을 세웠어야지. 아니, 그보다 이 능력을 가지고도 왜 F등급 판정을 받았냐?”

이현성은 이 질문에 대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이현성이 운반꾼 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F등급 헌터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운반꾼으로 던전에 들어가서 영혼의 구슬을 흡수했기에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될 수 있었다.

“그러게요.”

제대로 된 항명조차 하지 못한 이현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계획 없이 움직이는 이현성의 단순한 모습에 김춘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약속해. 절대 네 능력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김춘아의 처음으로 보이는 진지한 모습에 이현성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해야 했다.



***



한 달이 흘렀다.

이미 한 번 몬스터의 등장이 있었기에 헌터들은 레이드를 보다 더 꼼꼼하게 확인하며 변수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남은 시간 동안 이현성은 마력 성장을 최대한으로 상승시켜야 했다.

일반 운반꾼들은 보통 E급부터 C급 던전까지만 활동하게 된다.

B급 던전부터는 일반인이 들 수 없는 대형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드를 깔끔하게 진행하지 못해 몬스터가 등장하는 빈도도 훨씬 높았다.

이것이 헌터 운반꾼들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마력을 사용할 수는 없어도 일반인보다 체력과 근력이 높은 F등급 각성자들은 몬스터와 마주친다고 해도 도망칠 수 있었다.

만약 일반인이 B급 몬스터와 마주친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도 가기는커녕 죽었다는 것을 인지할 틈도 없이 즉사할 게 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