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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현성은 운반꾼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빨리 집에 도착한 그는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던 그는 이내 오늘 받은 일당 봉투를 확인했다.

급하게 오느라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빵빵한 봉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돈은 100만 원.

이현성이 눈이 크게 떠졌다.

“100만 원? 이럴 리가 없는데… 잘못 넣어 주신 건가?”

김인석이 실수한 줄 알고 봉투에 돈을 꺼내자, 그곳엔 작은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 고맙다. 80만 원은 오늘 일에 대한 보상이다.

김인석은 이현성이 목숨을 걸고 운반꾼들을 살려 주었다고 생각했고, 운반꾼들은 자신의 일당을 빼서 이현성의 일당에 보탰다.

가장 많은 돈을 집어넣은 사람이 최문석과 김인석이었다.

40명 정도 되는 운반꾼들이 조금씩 보탠 금액.

최문석의 경우엔 반에 해당하는 15만 원을 보탰고, 김인석도 20만 원이라는 돈을 보탰다.

“아…….”

평소 일당보다 다섯 배가량을 번 이현성.

운반꾼들의 성의를 확인한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지만, 같이 일하는 운반꾼들은 생각보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



고블린의 등장으로 인해 하루 동안 멈춰 있던 운반꾼들의 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출근한 이현성을 반기는 운반꾼들.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운반꾼이 있었다.

최문석도 아니었고, 김인석도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이현성에게 사기를 친 운반꾼.

강장신이 친근하게 다가오자 이현성이 피식 웃었다.

그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회귀 전에도 운반꾼 중 유일하게 이현성에게 다가온 사람.

이현성이 6,000만 원을 모았다는 말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높은 수익이 나는 펀드 하나 소개를 해 주겠다며 이현성이 모은 6,000만 원을 가로챘다.

“어제 신입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처음에는 그의 친절이, 호의가 진심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막지도 않았고, 그에게 더 잘해 주고 싶었다.

돈이 없다고 하면 돈을 빌려주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전부 멍청한 행동이었다.

그땐 운반꾼들이 이현성에게 다가오지 않았기에 외로움에 그를 받아들여 주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다른 운반꾼들이 이현성에게 다가왔으니까.

어제 일이 고맙다며 선물을 건네는 운반꾼도 있었다.

이현성이 운반꾼들 사이에서 둘러싸이자 강장신의 표정이 변했다.

초조해 보이는 모습.

입술을 깨문 그의 얼굴을 힐끔 바라본 이현성이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한 대 쳐 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은 시간을 되돌아 왔으니 미래를 알지만, 다른 운반꾼들은 그 미래를 몰랐다.



김인석의 지휘에 이현성도 바쁘게 움직였다.

이젠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려 운반하는 일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고블린 던전에서 얻은 수치는 25%.

열 개의 영혼의 구슬을 획득했다.

이제 마력 수치는 75%.

앞으로 다섯 개의 영혼의 구슬만 더 흡수하면 새로운 능력을 오픈할 수 있게 된다.

이현성이 오크 던전에 도착해 운반꾼의 일을 하며 꾸준하게 구슬을 흡수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구슬을 흡수했을 때, 또 하나의 능력이 개방되었다.



[E급 마력에서 D급 마력으로 상승합니다.]

[마력 집중, 블레이드가 오픈됩니다.]



새로운 능력이 오픈되고 두 곳의 던전에서 20개의 영혼의 구슬을 흡수한 이현성의 마력 수치는 D등급 50%.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려는 그에게 김인석이 다가와 작게 물었다.

“혹시 헌터 트레이닝실을 다녀 볼 생각은 없나?”

“예?”

수습 헌터들이 수련을 위해 다니는 곳, 트레이닝실이라 불리는 곳은 한 달에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지불해야만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 이현성이 지닌 돈으로는 다니지 못하는 곳.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F등급이라고 해서 성장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끝까지 희망을 놓치진 말아야지.”

김인석의 자상한 말에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돈이 없습니다, 대장님.”

“내가 아는 놈이 트레이닝 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말이야. 이번 일에 대한 감사로 그 금액 일부분을 지원해 주고 싶은데… 아 기분 나빠하지 말고.”

평소와는 다른 그의 말투에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선의가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김인석의 제안에 이현성은 생각했다.

돈이 쓸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체계적으로 헌터에 대한 부분을 배우고 싶었다.

“가격을 한 번 들어 보고 결정해 보고 싶습니다.”

이현성의 대답에 김인석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소개해 줄 트레이닝실은 비록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춰 있는 곳이었다.

“가자.”

“오늘 당장 말입니까?”

“시간을 끌면 뭐해? 현성이 너도 가격을 들으면 마음에 들 거다.”

항상 신입이라는 호칭으로 그를 불러 오던 김인석은 처음으로 이현성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김인석의 말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갔다.



트레이닝실은 던전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기입니까, 대장님?”

“예전에 내 밑에서 일하던 놈인데, 너처럼 운반꾼 생활을 하다 헌터로 전향한 녀석이지. 못미더운 놈은 아니니까 현성이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허름하고 낡은 건물 안에 있는 트레이닝 실.

다니는 손님이 한 명도 없어 보이는 곳에 들어간 이현성이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이현성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가 환한 표정으로 이현성에게 달려왔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김인석이 혀를 찼다.

“나 왔다.”

“대장님, 여긴 어쩐 일로……?”

어떨떨한 표정으로 김인석을 바라본 사내.

그런 사내의 모습에 김인석이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나름 잘나가는 현역 헌터였지만,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헌터 일을 그만두고 트레이닝실을 차렸다.

“손님이다. F등급. 너하고 비슷한 상황이야.”

“흐음, 그럼 운반꾼입니까?”

“왜? 싫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손님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간신배처럼 손을 비비는 사내의 모습에 이현성이 못미덥다는 표정으로 김인석을 바라보았다.

이현성의 시선에 김인석이 고개를 저었다.

행동은 가벼울지 몰라도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한 달에 얼마냐?”

“50만 원. 딱 50만 원만 받습니다.”

한 달 가격을 들은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그러자 김인석이 지갑에서 25만 원이라는 돈을 그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반은 이 친구에게 받으면 된다.”

“웬일이십니까? 대장님이 운반꾼에게 관심을 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김인석이 내미는 돈을 잽사게 받아 든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운반꾼을 챙겨 주긴 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그들을 챙기는 성격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운반꾼을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생명을 빚졌거든. 아무튼 잘 알려 줘라.”

“네, 대장님.”

사내에게 말을 하고 이현성에게 시선을 돌린 김인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성이, 너도 잘 배우고! 내일 보자.”

그가 트레이닝실을 나가자,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난 김춘아라고 한다.”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일단 체력부터 볼까? 운반꾼이라면 뭐, 체력은 문제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아야 훈련 강도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

김춘아가 이현성을 데리고 헌터 지망생들이 수련할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트레이닝 공간.

김춘아가 짧게 외쳤다.

“달려!”

김춘아의 외침에 이현성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체력은 이미 비이상적으로 높아진 상태.

가볍게 트랙을 5바퀴 정도 돈 이현성을 김춘아가 가로막았다.

“체력은 어느 정도 되네. 다섯 바퀴를 돌아도 호흡이 안정적이니… 자, 모래주머니다. 각각 10㎏짜리니까 팔과 발에 착용해.”

김춘아의 요구에 이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40㎏짜리 모래주머니를 양팔과 다리에 착용했다.

그러고 다시 뛰는 이현성.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렇게 큰 불편함은 없었다.

헌터들이 착용하는 장비의 무게가 거의 60㎏를 넘어섰으니까.

하루 종일 장비를 착용하고 운반꾼의 일을 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그렇게 큰 무리도 아니었다.

무게는 점점 늘어 20㎏ 주머니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이현성은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가쁘게 내쉬어야 했다.

힘겨워 보이는 이현성의 모습에 김춘아는 훈련을 멈추고 징그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운반꾼으로 지낸 기간은?”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요?”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는 말에 김춘아가 경악하며 주머니를 벗는 이현성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현성이 순박하게 웃었다.

두 시간이 넘게 달렸다.

만약 마력이 상승되지 않았더라면, 쓰러졌을 정도로 고된 시간이었다.

운반꾼의 일까지 하고 와 체력이 떨어질 법도 했지만, 이현성은 지치지 않았다.

“대장이 왜 너한테 관심을 가졌는지 알 만한 부분이네. 너 진짜 F등급이냐?”

“네. 심사장에서 마력 측정을 했을 때, F등급으로 나왔어요.”

당당하게 자신의 등급을 말하는 이현성의 모습에 김춘아가 고개를 저었다.

보통 F등급을 맞게 되면 이현성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등급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이현성의 체력을 점검한 김춘아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돈을 내일 가져와도 될까요, 관장님?”

“알아서 해. 이미 대장님에게 25만 원 받았으니까. 계약금이라 생각하지, 뭐.”

가볍게 말하는 김춘아.

보통 손님에겐 존댓말을 해야 했지만, 김춘아는 끝까지 이현성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현성은 그런 신박한 김춘아의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그는 가식을 보이진 않았으니까.



***



이현성의 일과는 간단했다.

운반꾼으로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두세 시간 트레이닝실에서 훈련하는 일상.

그러고 집으로 가서 다음 날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운반꾼의 일을 하면서 이현성의 마력 수치는 상승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틀이 더 지났을 무렵, 오크의 던전에서 다음 마력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D급 마력에서 C급 마력으로 상승합니다.]

[사냥꾼의 발걸음이 강화되어 사냥꾼의 고속 이동으로 능력이 변화합니다.]



얻은 능력을 활용해 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사냥꾼의 발걸음은 평소에도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문제는 블레이드와 마력 집중이라는 능력은 제대로 활용해 볼 기회가 없었다.

운반꾼이 몬스터와 마주치는 건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쉽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 기회가 찾아오지도 못할 것 같은데…….’

이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1년 동안은 운반꾼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알았다.

국가의 의무였으니까.

이현성이 마지막 던전을 돌고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