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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다음 던전에 도착한 이현성에게 운반꾼들이 다가오며, 이 던전에 대한 특징을 설명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E급 던전인 고블린의 던전이고, 지금 들어갈 곳은 D급인 놀의 던전이다. 고블린보다 더 무거운 녀석들이라 아마 그전과 같이 작은 부산물들을 주워야 할 거야. 그리고 여기선 놀들이 사용하는 철퇴 무기가 있어서, 그것까지 다 운반해야 돼.”

“아, 네.”

얼떨떨하게 운반꾼의 설명에 대답했다.

물론 이현성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운반꾼들의 모습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고블린의 시신과 철퇴의 무게가 비슷하니까, 아마 무기 운반 위주로 하면 될 거다. 삼 일 만에 고블린 시신을 들어 올렸으니 이젠 1인분 정도 해낼 수 있겠지.”

이현성을 잡고 이것저것 알려 주던 운반꾼.

김인석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잡담 그만하고 투입할 준비해!”

김인석의 불호령에 이현성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던 운반꾼이 이현성의 어깨를 툭 치며 웃음을 지었다.

“난 최문석이라고 해. 그냥 아저씨라 불러. 앞으로 잘해 보자고.”

“네, 아저씨.”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던전 입구로 달려가는 최문석을 바라보던 이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단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회귀 전에는 소심하고 주눅 들어 운반꾼들과 친근한 유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실수만 반복하던 이현성을 좋아하는 운반꾼도 없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자 운반꾼들이 이현성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으니까.

다음 던전으로 들어가는 이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고블린의 던전에서 올린 수치는 50%로 하루 만에 마력 수치를 반이나 올렸다.

이제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마력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할 터.

‘그럼, 사냥꾼의 발걸음을 얻을 수 있겠지.’

이미 한 번 이룩한 경지였으며 새롭게 나타날 능력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방식도 제대로 이해한 상태였다.

이현성이 D급 던전 놀의 던전으로 진입하자, 놀의 시신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고블린의 던전에선 그 숫자가 50구 정도였다면, 이곳 놀의 던전에선 100구가 넘는 시신들이 뒹굴고 있었으니까.

‘이게 다 내 힘의 양분이 될 녀석들이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해. 어설프게 움직이면 효율만 떨어질 거야. 그냥 주울 수 있는 영혼의 구슬만 줍는다.’

시간은 많았다.

어차피 1년은 의무적으로 운반꾼 생활을 해야 했다.

1년이 지나면 헌터 운반꾼으로 소속되어 움직여야 할 테지만, 이현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성장을 이룩해서 헌터로 생활하고 싶었다.

최문석의 말대로 이현성은 놀의 시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옆에 떨어진 검은 철퇴를 중점으로 운반했다.

철퇴를 옮기면서도 작은 부산물들을 주우며 영혼의 구슬도 함께 주웠다.

구슬 하나를 손에 쥐자 그의 눈에로 글귀가 들어왔다.



[D급 영혼의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F급 마력이 10% 상승합니다.]

[F급 마력 60%.]



무려 10%나 상승하는 광경.

이현성이 수레에 가득찬 부산물들을 확인하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

최대한 많은 구슬을 흡수하기 위해선 그만큼 더 노력하고 움직여야 했기에 쉴 시간이 없었다.

이현성이 밖으로 나갔다 바로 되돌아와 놀의 철퇴를 수레에 다시 실었다.

그렇게 작은 부산물들과 철퇴를 수레에 채운 이현성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두 번을 왕복했을 때, 이현성의 마력 수치는 90%였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구슬을 손에 쥐었다.



[D급 영혼의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F급 마력이 10%로 상승합니다.]

[F급 마력에서 E급 마력으로 상승합니다.]

[사냥꾼의 발걸음이 오픈되었습니다.]

[사냥꾼의 기감이 오픈되었습니다.]



회귀 전과 지금 나오는 글귀는 미세한 차이점을 보였다.

이전에는 능력을 획득했다고 나왔지만, 지금 보이는 글귀는 오픈되었다는 말로 변경되었으니까.

이현성이 그 차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F등급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다시 성장해야 한다는 좌절감보단 행운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무려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내려왔으니까.

등급 상승을 이뤄 냈지만, 이현성은 멈추지 않고 운반꾼의 일을 하며 부수적으로 영혼의 구슬을 열심히 손에 쥐었다.

10%가 오르던 수치는 등급 상승을 하자 5%로 변경되었다.



[D급 영혼의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E급 마력이 5%로 상승합니다.]

[E급 마력 30%.]



던전 밖으로 나왔을 때, 이현성의 마력은 E급 30%까지 치솟았다.

이젠 너무나도 가뿐하게 무기를 들어 올렸고, 수레를 끄는 속도도 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세 개의 던전을 모두 돌고 첫 던전인 고블린의 던전으로 되돌아온 이현성.

운반꾼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이현성을 칭찬해 주었다.

삼 일밖에 되지 않은 어린 운반꾼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으니까.

“오늘 고생했다. 받아라. 오늘 하루 일당이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기쁜 마음으로 일당을 받은 이현성이 봉투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이 돈으로 가족들에게 어떤 걸 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현성의 미소를 바라보던 김인석이 다른 운반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리버리하고 실수만 연발할 것 같은 신입이 하루 만에 달라졌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었다.



운반꾼들이 신입에 대해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이현성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코끝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기.

치킨 집을 발견한 이현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치킨을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와 사 온 치킨을 탁자에 내려 둔 이현성.

어제보다 더 늦게 들어온 모습에 이은아가 거실 밖으로 나왔다.

“뭐야?”

“치킨. 나 씻고 나올 테니까 배고프면 먼저 먹어, 식기 전에.”

이현성이 방에서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이은아가 입가에 기름기를 묻히며 치킨을 열심히 뜯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최연수도 자리에 앉아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



고블린의 던전에서 얻은 영혼의 구슬이 올려 주는 마력 수치는 2.5%.

예상을 했기에 별다른 감흥 없이 운반꾼의 일에 집중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간, 대형 쥐가 나오는 레트 던전은 D급 던전이고, 놀의 던전에서 얻은 수치와 동일하게 얻었다.

무려 하루 만에 한 등급을 상승시키고, E급 마력 50%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하루.

이현성은 고블린의 시신을 옮기며 영혼의 구슬 파밍도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가 하루에 한 번씩 등급이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물론, 마력 등급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는 건 알았다.

실제로 악마의 신단에서 C등급까지는 엄청 빠르게 올렸으니까.

C등급 마력이 되고 B등급으로 상승할 때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B급 마력에서 A급으로 상승할 때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B등급 영혼의 구슬을 흡수하여 A급 마력 수치를 고작 5% 상승시킬 수 있었다.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영혼의 구슬을 얻기 위해선 직접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헌터들에게 사냥당한 몬스터의 구슬만 주우면 될 일이었다.

물론, 이미 죽어 있는 몬스터라 그런지 모든 시체에서 영혼의 구슬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던전 중간 부근까지 이동한 이현성과 최문석이 뭔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던전 안쪽을 바라보았다.

던전 초입부를 정리하던 운반꾼들이 하나둘 중간 부분으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

최문석이 옆에 선 이현성을 바라보았다.

“스산하네. 평소보다 더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최문석의 말에 이현성이 굳은 표정으로 어두운 던전 안을 바라보았다.

뭔가 촉이 좋지 않았다.

마침 그때, 얼마 전 얻은 스킬이 떠올랐다.

‘사냥꾼의 기감.’

악마의 신단에서 숫한 고비를 넘기게 해 준 능력이었다.

전투 능력이 없던 상황에서 사냥꾼의 기감은 몬스터의 움직임을 알려 주었고, 덕분에 몬스터의 등장을 파악하여 도망치거나 전투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고블린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여과 없이 눈에 보이는 글귀, 불안한 느낌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정리되지 않은 고블린이 있다.’

이현성이 표정을 굳히고 최문석을 바라보았다.

사냥꾼의 기감이 알려 준 대로 살아남은 고블린이 나타나기 전에 최문석부터 피신을 시켜야 했다.

“제 말 잘 들으세요.”

최문석의 물음에 이현성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에게 경고했다.

“왜 그러는데?”

“입구까지 달려요. 그리고… 운반꾼들에게 몬스터가 남아 있다고 전해 주세요.”

“응?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라고 하려던 최문석이 자신에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다급하게 돌렸다.

던전 안쪽에서 드러나는 녹색의 빛.

흉흉한 한 쌍의 시선을 확인한 최문석의 몸이 굳어졌다.

운반꾼을 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레이드가 끝난 던전에 운반꾼들이 들어올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남은 몬스터가 없도록 꼼꼼하게 현역 헌터들이 레이드를 했으니까.

운반꾼들은 현역 헌터를 믿고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주저 없이 던전으로 들어온다.

물론, 헌터들은 운반꾼들이 투입되고서도 던전 밖 입구를 지킨다.

헌터들이 안전하게 지키고 있음으로 운반꾼들이 걱정 없이 일하게 해 줄 목적이었다.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는 들었지만, 최문석 본인도 실제로는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타난 고블린을 바라보던 이현성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이 고블린 던전이라 다행인 거지.’

만약 이곳에 오크의 던전이나 레드의 던전이었다면?

아무리 이현성이라 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현성이 급하게 손에 든 고블린의 손톱을 쥐고 녹색의 눈이 보이는 곳으로 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최문석이 큰 소리를 냈다.

“현성아!”

“달려요! 다 던전 밖으로 나가라 하세요. 어서요!”

최문석이 이현성의 말대로 다급하게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최문석.

그의 다급한 움직임 때문인지 이현성은 앞으로 달려오는 고블린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사냥꾼의 발걸음.’

이현성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도망치는 것보단 시간을 벌어 주어야 했다.

이현성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고블린을 피해 사냥꾼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블린이 등장한 안쪽으로 내달렸다.

몸을 급하게 낮추고 고블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휘익―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온 고블린의 손톱을 피해 낸 이현성이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술래잡기처럼 고블린은 이현성을 잡기 위해 달려갔고, 이현성은 고블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다행히 고블린의 움직임은 이현성보다 빠르지 않았다.

사냥꾼의 발걸음을 이용해 도망을 치던 이현성이 다시 방향을 돌려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지금쯤이면 모든 운반꾼이 대피했을 테니까.

이현성이 입구 쪽으로 빠르게 달려가자, 고블린도 이현성을 잡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텅텅 비어 있는 던전.

이현성이 겨우겨우 입구에 다다르자, 입구에서 무기를 들고 던전으로 들어온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 숙여요!”

몸을 숙이라는 말에 이현성이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고, 헌터가 고블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헌터의 검에 베인 고블린이 목과 신체가 분리되었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이현성은 엎드린 그 자리 그대로 눈을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괜찮습니까?”

고블린을 벤 헌터가 이현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운이 좋았는지 고블린의 발견은 신속하게 이뤄졌고, 운반꾼의 요청에 입구를 지키던 헌터가 곧바로 들어왔다.

그를 구해 준 헌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이현성을 부축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잘못했으면 큰 피해가 일어날 뻔했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헌터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온 이현성이 던전 입구에 앉아 눈을 감았다.

회귀 전, 지겹도록 잡던 몬스터지만, 이렇게 마주하니 또 느낌이 달랐다.

이현성의 재치로 살아난 운반꾼들이 김인석을 바라보았다.

“오늘 운반꾼의 일은 진행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던전에 전달해 두겠습니다.”

자칫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한 상황.

헌터들도 운반꾼들의 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현성의 도움으로 운반꾼들에게 사실을 알려 준 최문석이 다급하게 이현성에게 달려와 그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네, 멀쩡해요.”

“하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무식한 거냐, 아님 미련한 거냐?”

“달리기에는 자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성의 도움으로 피해 없이 던전 밖으로 대피한 운반꾼들이 하나둘 이현성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항상 무뚝뚝한 표정으로 명령만 내리던 김인석도 이현성의 앞에 앉아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현성은 사냥꾼의 발걸음이 있는 이상 고블린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이현성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끌어 주었다 생각하겠지만, 이현성에겐 목숨을 걸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일찍 운반꾼의 일이 끝나자 최문석이 이현성에게 말했다.

“살려 줘서 고마워.”

“운이 좋았어요. 거기서 빠르게 고블린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고블린의 눈을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죠.”

“점심이라도 사 주고 싶은데, 시간 좀 내줘라.”

“점심이요?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하긴… 지금 밥이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나중에 꼭 밥 한번 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