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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현성의 동생, 이은아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생활했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으로 인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도 포기하고 오직 학교와 집을 오갔다.

학교에 다녀온 이은아가 집에 있는 이현성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늘은 일찍 왔네, 오빠?”

이은아의 말에 이현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수는 일을 하러 나간 상태였기에 현재 집에는 이현성 혼자였다.

이은아로서는 다소 낯선 광경일 터.

잠시 최연수를 떠올린 그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큰마음 먹고 38만 원이라는 돈을 최연수에게 내밀었으나, 그녀가 끝까지 그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현성만 있는 집을 바라보던 이은아가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축 쳐져 있는 여동생의 어깨를 바라보던 이현성이 일어났다.

최연수가 받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다른 형태로 가족에게 돌려주면 된다.

“옷 갈아입고 나와.”

“왜?”

“이제 슬슬 추워지는데, 교복만 입고 다닐 수는 없을 거 아냐. 옷 사 줄 테니까, 나가자.”

이현성의 말에 이은아가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낡아서 목이 늘어나 있는 티를 입고 간단한 외투를 걸친 이은아의 모습에 이현성이 속으로 혀를 찼다.

“옷이 그거 하나 뿐이야?”

“치, 학생이 교복만 잘 입고 다니면 되잖아. 사복 입을 일도 없는데 돈 아깝게 옷을 왜 사?”

이은아의 항명에 이현성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은아의 신발 밑창이 다 달아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꾸미는 걸 좋아할 나이, 친구들에게 보여 주는 걸 좋아할 나이에 이은아는 수수하게 살며 공부에만 집중했다.

공부는 항상 상위권에 들었기에 대학만 가면 이은아의 인생이 바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이은아는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

“…가자.”

이현성은 이은아를 데리고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신발을 바라보던 이은아가 기겁하며 이현성에게 귓속말로 의사를 전했다.

“비싸. 시장에 가면 2만 원이면 살 신발이 뭐 이렇게 비싸지?”

신발 하나 당 6만 원에 가까운 금액.

기겁하는 이은아의 말에 이현성이 그 말을 무시하며 붉은 계열 캔버스화를 직원에게 가리켰다.

“신발 사이즈가… 225였나?”

“230. 오빠…….”

직원이 앞에 서 있기에 이은아는 이현성에게 나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신발 사이즈를 말하고 이은아에게 직접 신겨 준 이현성은 편해 보이는 운동화를 하나 더 구입했다.

15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직업에게 현금을 내밀었다.

“이 신발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이은아가 신고 온 신발을 가리키는 직원을 향해 이현성이 웃으며 말했다.

“버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38만 원의 금액 중 운동화를 사는 데 15만 원이나 지불했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이후 이은아와 최연수의 겉옷까지 사는 데 30만 원이라는 돈을 사용하고 나서야 둘은 집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 와?”

어느새 퇴근을 하여 집에 앉아 있는 최연수.

그녀의 말에 이현성이 가져온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



이현성은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운반꾼이 된지 삼 일차.

던전으로 들어온 그가 운반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이현성의 직장이었고, 운반꾼들은 그에게 도움을 줄 선배들이었다.

뻣뻣하게 굴어서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회귀 전의 경험으로 그는 알고 있었다.

이현성의 밝은 인사에 운반꾼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김인석이 몰라보게 달라진 이현성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이현성은 그런 김인석을 눈치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회귀 전,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 했다.

하지만 이현성의 앞에 나타난 악마는 대적하기 두려운 존재였다.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지도 못하고 죽었어.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약해지지 말자.’

고민해 봤자 현재로선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이 생활에 충실하게 움직이자.’

던전 앞에 설치된 신호기에서 삐비 소리가 울려 왔다.

붉은색은 현역 헌터들이 레이드를 하고 있다는 신호였고, 녹색은 운반꾼의 투입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노랑색은 던전에 입장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고.

세 가지 색으로 신호가 표시되고, 운반꾼들은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면 던전으로 들어간다.

“투입 준비!”

외투를 벗고 손수레에 손을 올린 이현성이 몸을 풀었다.

9년간 운반꾼 일을 한 짬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쯤은 손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내 손을 앞으로 까닥거리는 김인석의 신호에 운반꾼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습하고 더운 던전, 밖에 온도와 전혀 달랐다.

한 여름 장마와 같은 습도와 더위가 운반꾼들을 덮쳤다.

추운 겨울에도 던전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운반꾼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밖과 던전의 온도 차이였다.

던전 안과 밖을 오가며 움직여야 했고, 운반꾼의 옷은 얇았다.

던전으로 들어온 이현성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겹게 생활하던 곳.

운반꾼들은 하루 세 던전을 돌며 몬스터의 시신을 운반한다.

몬스터의 시신은 비싼 값에 팔리거나 재가공하여 유용한 자원으로 사용된다.

이현성이 손수레를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요령은 있지만, 문제는 근력이 부족했다.

10년의 경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요소가 근력이었다.

사람과 비슷한 무게를 가진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리려 했다.

힘겹게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렸지만, 손수레에 집어넣는 게 문제였다.

그런 이현성의 모습에 김인석이 시신을 내려놓게 하고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작은 부산물이라도 주워.”

제대로 된 운동을 해 보지도 않던 스무 살의 이현성의 몸은 형편없었다.

김인석은 아무리 노력해도 근력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몬스터의 시신을 운반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레이드 도중 검에 베인 몬스터의 손톱이나 살점들, 혹은 신체와 분리된 머리를 수집하는 것도 운반꾼이 해야 할 일이었다.

비위가 좋지 않다면 하지 못할 일.

참혹한 형태로 쓰러져 있는 몬스터들을 운반해야 했다.

이현성은 몸을 낮추고 바닥에 떨어진 손톱과 작은 살점들을 수레에 담았다.

그렇게 한창 부산물을 줍던 중, 살점 밑에 깔려 있던 작은 구슬이 눈에 띄었다.

이현성은 눈을 깜빡였다.

‘영혼의 구슬?’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오는 영혼의 구슬이라는 걸 흡수해 마력을 성장시키며 능력을 획득하는 능력.

‘아직 악마의 신단으로 간 것도 아닌데, 능력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다시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선 악마의 신단으로 움직여야 할 줄 알았지만, 회귀 전에 얻은 능력이 회귀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회귀 전에 얻은 마력은 전부 사라져 리셋된 것 같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영혼의 구슬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에 그는 조심스러워졌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현성이 조심스럽게 검은색의 작은 구슬을 손에 집자 눈에서 황금색 글귀가 떠올랐다.



[E급 마력의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F급 마력 5%가 상승됩니다.]

[F급 마력 5%.]



맞았다.

예상하던 영혼의 구슬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된 이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회귀 전, 1년 동안 지겹게 보고 경험한 글귀.

악마의 신단에서 얻은 능력은 단순히 마력만 상승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단계씩 마력 등급이 높아질 때마다 주어지는 능력들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마력 등급을 올릴 때마다 주어지는 능력들은 그야말로 사기적이라 해도 무관했다.

‘E급 마력으로 상승했을 때, 주어진 능력이 아마 사냥꾼의 발걸음이었지?’

기척 없이 사냥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능력.

학창 시절 종종 즐겨 보던 무협지에서 나오는 보법과 비슷한 능력이었다.

회귀를 했으나 사라지지 않은 능력을 확인한 이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악마의 신단으로 움직여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으니까.

악마를 막을 수 있을 방법은 성장밖에 없었다.

‘그걸 알기에 지금은 방법이 마땅히 없다고 생각했지. 근데 이러면 또 말이 달라지지.’

새롭게 능력치를 올려야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의 기억은 이현성에게 기회를 안겨 줄 테니까.

지금은 일단 운반꾼의 업무를 하며 영혼의 구슬을 흡수해야 했다.

‘그러면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지.’

이현성이 확고한 눈빛으로 영혼의 구슬이 사라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멀뚱히 서 있는 이현성을 발견한 김인석이 호통을 질렀다.

“신입, 서둘러! 오전 중에 다음 던전으로 이동해야 하니까.”

김인석의 호통에 이현성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대장님!”

몬스터의 부산물들을 주우면서 이현성은 그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구슬도 열심히 주웠다.

한 수레가 가득 차자, 이현성이 손수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무식하게 담은 수레.

지금 이현성의 근력으로는 끌지도 못할 무게였지만, 이현성은 어렵지 않게 수레를 끌고 던전 밖으로 이동했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작은 부산물들을 모으며 흡수한 영혼의 구슬은 여섯 개였다.

30%라는 마력 수치가 올랐을 때, 이현성의 근력도 조금씩 성장했다.

다만, 이현성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홀로 많은 부산물들이 담겨 있는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에 김인석이 놀라며 이현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몬스터의 시신을 들어 올릴 근력이 없다면, 수레를 끌고 가지도 못할 테니까.

‘하루 만에 저렇게 달라진다고?’

운반꾼들을 지휘하던 김인석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달라진 이현성의 근력에 김인석은 이상함을 느끼야 했다.

작은 부산물들을 바닥에 쏟아 버리고 다시 던전으로 들어온 이현성.

김인석이 그에게 외쳤다.

“이현성! 너, 시신 한 번 들어 봐!”

그의 외침에 이현성이 눈을 깜빡이다 수레를 끌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고블린의 시신으로 이동했다.

고블린의 사체에 두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허리의 힘과 다리에 힘으로 반동을 주며 사체를 들어 올렸다.

번쩍―!

이현성이 안은 몬스터의 시신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이현성은 수레에 다급하게 고블린의 시신을 떨구었다.

단 삼 일만에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리는 광경에 김인석이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멍하니 수레를 바라보던 이현성은 들어 올린 고블린이 있던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여과 없이 작은 구슬이 있었고, 그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그 옆에 떨어진 작은 손톱도 손에 쥐고 수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이현성이 수습한 고블린 시신은 네 구 정도였다.

물론, 시신을 옮기면서 바닥에 떨어진 영혼의 구슬을 줍고 다녔다.

던전 안에 정리되자 운반꾼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현성도 운반꾼들 사이에 나와 주먹을 접었다 폈다 했다.

“잘 하네, 신입!”

“삼 일 만에 몬스터 시신을 들어 올리다니… 그동안 한 건 연기였어?”

던전 밖으로 나온 운반꾼들이 처음으로 시신을 옮긴 이현성을 축하해 주며 농담을 던졌다.

실제로 회귀하기 전의 이현성은 한 달이 지나서야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릴 수 있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단 삼 일만에 고블린의 시신을 들어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농담 그만하고, 운반차에 시신들을 실어!”

마지막 던전 점검을 하고 나온 김인석이 이현성에게 몰려 있는 운반꾼들을 향해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운반꾼들이 입을 다물고 바닥에 널려 있는 몬스터 시신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이현성도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 했다.

“신입.”

“네, 대장님!”

김인석의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헌터 라이센스, 가지고 있나?”

처음 듣는 그의 물음에 이현성이 숨기지 않고 주머니에서 헌터 라이센스를 꺼내려 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김인석이 이현성의 팔을 잡았다.

“굳이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이현성의 모습.

이현성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통 일반 던전에서 움직이는 운반꾼들은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경험이 없는 F등급 헌터들이 신분을 숨기고 일반 운반꾼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E등급 이상의 헌터들에겐 수습 헌터의 의무가 주어지지만, F등급 헌터들에겐 운반꾼의 의무가 주어졌다.

1년 동안 운반꾼을 하고 그 경험을 삼아 F등급 헌터들이 활동하는 던전으로 배속되어 헌터 운반꾼이 되니까.

“대장님?”

“그렇게만 해 줘라. 많은 건 바라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현성이 F등급 헌터로 판정받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헌터 각성자라고 해도 F등급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이현성이 다음 던전으로 가기 위해 수송차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