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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고블린이 나오는 E급 던전 앞. 한 청년이 운반꾼들에 손에서 던전 입구로 이송되어 나왔다.

축 처진 신체.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흙먼지와 녹색의 피를 가득 묻힌, 허름한 작업 복장을 하고 있었다.

“탈수 증상이 있는 녀석을 거기에 눕히는 놈들이 어디 있어! 그늘로 데려가!”

볼에 긴 상처 흉터를 지닌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인의 외침에 운반꾼들이 다시 청년을 들어 나무 그늘로 달려갔다.

중년인도 그들을 따라 나무 그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는 중년인의 움직임에 운반꾼들이 쓰러진 청년을 살펴보았다.

“물 가져와.”

물을 달라는 중년인의 말에 청년을 살피던 운반꾼 하나가 작은 생수병을 들고 왔다.

생수병의 뚜껑을 딴 중년인이 물을 청년의 얼굴에 탈탈 쏟아부었다.

“허억!”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쓰러져 있던 청년이 물의 차가움을 느끼며 기겁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청년의 행동에 중년인이 혀를 차며, 운반꾼들에게 말했다.

아직 던전 안의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네 사람이나 나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다시 들어가서 하던 일 마저 끝내.”

“네, 대장.”

두 명의 운반꾼이 설렁설렁 던전 입구로 달려가는 모습에 중년인이 혀를 차고 정신을 차린 청년의 옆에 앉았다.

어제 처음 운반꾼의 일을 시작하여 이틀째 되는 신입, 첫날에는 운반꾼들만 바라보던 청년이 갑자기 일을 시작했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몬스터의 시신을 들어 올리려던 청년.

결국 걱정하던 상황이 터졌다.

습하고 더운 던전에서 한 시간 가까이 고블린 시체 한 구와 씨름하던 청년이 탈수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청년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중년인, 김인석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청년이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혼란이 가득한 시선으로 눈동자를 떨었다.

청년의 반응에 김인석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른 운반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구석에서 시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는 걸 본 적이 있기에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던 아이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성격.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완수하려는 끈기까지 보여 주었으니까.

“하루 일당이다. 깨끗하게 씻고 그냥 자. 그래야 근육통이 조금 나아질 테니까. 알겠냐?”

김인석의 물음에도 청년은 답하지 않았다.

청년은 그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김인석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탈수해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김인석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들고 있던 봉투를 청년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었다.

비록 일찍 조퇴를 하지만, 일당은 그대로 지급해야 했다.

“내일 보자고.”

간단하게 인사를 해 준 김인석이 다시 던전을 향해 걸어갔다.

나무 그늘 아래 남아 있던 청년이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장님이 왜 내 앞에…….’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분명 그는 악마의 형태를 가진 존재에게 배를 뚫려 목숨을 잃었다.

서울을 덮치던 그 붉은 유성우들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올려다본 하늘은 청명하고 한없이 맑았다.

먹구름이 가득 낀, 죽기 직전의 상황이 아니었다.

한참을 그늘 아래에 앉아 있던 청년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자고 싶다…….’

이내 고개를 강하게 저은 청년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김인석이 쥐여 주고 간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스무 장과 일당 거래 명세표가 함께 들어 있었다. 청년이 일단 거래 명세표를 들고 펼쳤다.

그곳에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 그리고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3년?!’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고 싶어서,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 운반꾼.

F등급으로 살아가야 할 그에게 첫 직업이 되어 주고,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직업이 바로 운반꾼이었다.

2023년, 20살의 나이로 되돌아온 청년, 이현성은 일당 거래 명세표를 수 없이 확인하며 눈을 비볐다.

‘15년 전이라니…….’

악마와 마주쳐 죽음에 이를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운반꾼이 아닌, 헌터로서 던전으로 들어갔을 때가 서른 살이었고.

5년이라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악마의 신단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가 운 좋게 영혼의 구슬을 흡수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F급 헌터로서 상대할 수 없을 것 같던 녀석들이지만, 결국 살아남아 악마의 신단을 빠져나왔다.

수많은 위기를 견디고 이겨 냈다.

하지만 떳떳한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무색하게 악마의 신단 밖에서 마주친 악마라는 존재는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런 악마에게 당해 죽은 자신이 스무 살로 돌아온 거라면.

‘보고 싶다.’

이현성은 악마에게 죽기 직전에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이 생각났다.

―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만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올 거야.

큰 좌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힘들어 하는 이현성의 옆으로 다가오는 어머니, 최연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같은 말을 매번 쉽게 하는 그들이 미웠고, 화도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대못을 박고 나왔지.’

F등급 헌터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헌터라고 말하지 못한다.

헌터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그야말로 모순된 존재에 불과했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마력을 약간이나마 사용할 수 있지만, 티끌만 한 힘이었다.

‘헌터로 등록되는 순간,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헌터들은 힘을 가진 대신 사회의 엄중한 제재를 겪어야 한다.

일반인들처럼 다양한 직업을 갖지 못했고, 오로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헌터에 관련된 직업밖에 없었다.

재능 없이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경멸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이현성은 억울했다.

가난하던 이현성의 가정.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연금으로 생활비를 대신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집이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 소중한 집마저도 이현성의 잘못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현성은 눈앞의 집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떠날 수밖에 없던 집.

이현성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실에서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한 중년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운반꾼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린 어린 이현성은 어머니의 속을 제대로 썩였다.

위험한 일을 하겠다는 아들이 걱정되어 출근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전전긍긍하던 최연수가 힘없이 들어오는 이현성을 발견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와락―

이현성은 최연수의 품에 안기자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느끼며 팔을 힘없이 늘어트렸다.

속도 부단히 썩히고, 자리를 잡지 못해 평생을 고생만 시킨 가족들.

어머니는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아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한 탓으로 자책했을 사람이었다.

“으윽…….”

스무 살의 그에겐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꾹 눈물을 참아내느라 이현성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그를 품에서 떼어 낸 최연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 아파? 빨리 화장실에 가 봐.”

말은 저렇게 했지만,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농담으로 다독여 주려고 그런 것일 테니까.

이현성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 무슨 화장실이야.”



***



샤워를 하고 나와 방으로 들어간 이현성이 자신의 방을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비록 마력을 최하급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현성은 다른 천재성을 가졌다.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이 그의 장점이었고, 이 장점으로 15년 동안 F등급 헌터 생활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서랍을 열고 미소를 지었다.

스무 살이던 이현성은 운반꾼으로 일한 일당을 차곡차곡 서랍에 모았으니까.

아무리 F등급 헌터이더라도 갑옷과 검은 맞춰야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비싼 헌터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했다.

‘바보 같이 모으기만 하면 뭐 해? 정작 장비는 고사하고 사기를 당해 다 날려 먹었으면서.’

딱 3,000만 원만 모으고 기본 무기와 갑옷을 사자는 생각.

1년 동안 이현성은 열심히 모아 결국 6,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족들에게 조차 일절 사용하지도 않고 악작같이 모은 금액이었으나, 동료 운반꾼에게 사기를 당해 그 돈을 모두 날렸다.

‘어차피 남 좋은 일에 사용할 돈이라면 미련 없이 가족들에게 써야지.’

운반꾼의 일당은 높았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현성은 6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월급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 거액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도, 기회를 날려 버린 것도 이현성이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결심을 내린 이현성이 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봉투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갔다.

점심 준비를 하는 최연수의 모습을 본 이현성이 부엌으로 다가가 가스 불을 끄고 그녀를 거실로 데려왔다.

“왜? 배 안 고파?”

빠듯한 생활비에도 내색하지 않던 현명한 어머니.

그는 이제라도 그 어머니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때는 자신이 유명해지면 가족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 어제 받은 일당하고, 오늘 받은 일당이야.”

용돈 만 원을 제외하고 이틀치 일당을 모두 내미는 이현성.

최연수는 봉투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가 힘들게 번 돈이니까. 너 필요한 데 써.”

그는 그 말만으로도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회귀하기 전의 가족을 떠올렸다.

‘악마를 막는 것이 곧 가족을 지키는 일이야.’

허용할 수 없이 강하던 악마였으나, 맞서 싸워야 했다.

두려워도, 온몸이 떨리는 힘이라고 하더라도, 15년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15년.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악마를 막을 수도, 아니면 회귀 전처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회귀 전에 능력을 최대한 빨리 찾을지, 아니면 1년간의 의무 기간을 마무리하고 악마의 신단으로 찾아갈지.

‘어차피 지금 내 입장에선 답은 하나야. 우선 의무 기간을 채운다.’

1년을 운반꾼으로 생활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스무 살의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갈 생각이었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더는 안겨 주기 싫었다.

기회가 되면 악마의 신단으로 가고, 기회가 되지 않으면 때를 기다린다.

‘그때처럼 허망하게 죽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