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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조, 조재도 일당이 왔습니다.”

가장 선두에 선 각성자가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전말은 이러했다. 준영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조재도와 그 일당들이 괴물들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요 몇 달 동안 계속 이곳을 틈틈이 감시했다. 준영의 행동을 파악한 뒤, 나가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준영이 사냥을 위해 나가자 바로 멀리서 괴물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끌고 와야 했기에 하루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괴물들을 이끄는 것은 조재도를 따르는 각성자들이 맡았고 남은 수하들은 괴물이 들이닥치는 때에 맞춰 사방에 불을 질렀다.

괴물들은 이곳에 도착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했다. 조재도 일당을 더 쫓을 필요도 없었다. 먹음직스러운 먹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조재도 일당들은 임무 성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바로 도망갔다.

이제 내버려 둬도 이곳은 망할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끄덕.

조재도 일당이 왔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준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부상자들을 치료해라. 포션은 아끼지 않아도 좋다.”

“아저씨!”

심각한 표정을 한 준영이 정착지를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은용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온다. 누나를 잘 보살피고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준영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용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만 봐야 했다.

“으으, 나 때문이야…….”

서원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애초부터 조재도와 그 패거리를 모두 쓸어버려야 했다. 자신이 괜히 준영을 설득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서원호가 살려 주자고 설득한 것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괜히 자신 때문인 거 같아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밖으로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은용이 다가왔다.

“아저씨 탓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나쁜 거예요.”

은용이 이를 악물고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는 그가 열심히 설득한 것을 알았다. 서원호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부상자들을 도우러 가요. 아저씨 잘못 아니에요. 그놈들… 그놈들이 그냥 악마 같은 거예요.”

은용은 뭔가 더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가요, 사람들을 도와야죠.”

“누님…….”

서원호는 은용이 내민 손을 잡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은 사람들을 도와야 할 때다.

서원호가 사람들에게 달려가자, 은용은 잠시 멈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인형에게 말했다.

“언니, 아저씨 괜찮은 거겠지?”

인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눈을 감고 신비로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은용은 볼을 긁적이다가 자신도 사람들을 도우러 달려갔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정착지를 정리하고 있을 때. 준영은 조재도 일당을 추적하고 있었다.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아니라서 여기저기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괴물들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반복해 왔다. 이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참을 이동하자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는 대략 30여 명.

“크흐흐, 거기 완전히 작살났겠지?”

“당연하지. 그 정도는 우리도 못 잡아. 게다가 중급 천사까지 있었잖아?”

“배신자 새끼들 쌤통이다. 낄낄낄.”

“내가 아까 그 새끼 죽이고 불 던지는 거 봤어? 끝내주지 않았냐?”

“정말, 너는 사탄도 울고 갈 놈이야. 캬캬캬.”

앉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쉬고 있던 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자랑하며 떠들고 있었다.

저벅.

준영이 퀭한 눈빛으로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뭐야, 이 새끼?”

“어휴, 깜짝이야. 너 이 새끼… 응? 으허헉!”

갑자기 나타난 준영의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어, 잠깐! 잠깐만요!”

도망가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준영의 손에 검 하나가 나타나 들려졌다.

쉬각!

순식간에 열 명의 목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으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남은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들은 발도 떼지 못했다.

털썩. 털썩.

도망가기도 전에 모두 바닥으로 목이 떨어졌다. 단 한 사람만을 남기고.

“으으, 으으으으…….”

남은 한 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빨만 딱딱거리며 떨고 있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솜씨에 넋이 나가 버린 것이었다.

“말해라.”

“네? 네?”

“나머지 놈들이 있는 곳을 말해라.”

준영은 음산한 목소리로 앉아 있는 자의 목에 칼을 대었다.

사내는 감히 거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손짓, 발짓을 하며 열심히 설명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고 현재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알겠다.”

쉬각!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남은 자의 목도 날아갔다.



준영은 그들이 집결하기로 한 곳을 지나치며 그곳에 있는 자들도 모두 목을 베었다. 그리고 결국 조재도와 남은 일당이 지내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허헉!”

준영이 나타나자 조재도와 그 일당들은 기겁했다.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모른 것이었다.

“쳐! 쳐!”

다급한 마음으로 조재도가 명령을 내렸다.

남은 각성자들과 부하들이 모두 준영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격과 동시에 목이 떨어져 세상을 하직해야만 했다.

“으다다다…….”

조재도는 부하들이 공격함과 동시에 뒤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 하지만 부하들이 너무 빨리 죽어 결국 잡힐 수밖에 없었다.

“으으… 사, 살려 줘.”

“왜 그랬지?”

준영은 퀭한 눈빛과 피곤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자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나, 나는…….”

“나는 너희를 살려 주었다. 왜 그랬지?”

“너, 너는 우리 형도 죽였잖아.”

“사람들을 마구 죽이던 놈이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 형이야! 노예 같은 놈들과 다르다고! 어렸을 때부터 날 업어 키운 형이란 말이다!”

“그게 사람들을 죽인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놈들은! 내가 지금까지 먹이고 재웠어!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 괴물들에게 죽었을 놈들이라고!”

준영은 아무 말 없이 조재도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그놈들은 내가 떠나니까 좋아했지! 은혜도 모르는 것들 같으니! 그런 놈들은 죽어도 싸!”

한번 말문이 터지자 조재도는 얼굴까지 벌게진 채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말문이 유창하게 트이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것은 멸망 전 다단계 회사를 했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내 입장에서 너는 갑자기 찾아와서 내 사람들과 살고 있는 곳을 뺏은 놈이라고!”

“…….”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우리 형이 잘못한 건 네가 이미 죽였잖아! 그런데 왜 내 것까지 빼앗아 가는 거냐 말이다!”

“너에 대한 악행은 충분히 들었다.”

“그게 뭐! 네가 봤어? 네가 뭔데? 네가 경찰이야? 지금 법이 있어?”

“이번에는 내 눈으로 직접 봤지.”

“그게 어쨌다고! 그전에 뺏었잖아! 게다가 그놈들은 내가 거둬들이고 지금까지 먹여 주고 살려 준 놈들이야! 내 거라고! 그 목숨도! 내가 월급 주던 내 직원들하고 다를 바 없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놈들이라고! 그게 싫었으면 떠나면 됐잖아! 왜 나한테 빌붙어 있는데? 내가 먹여 줄 때는 고맙다고 내 밑에서 살았으면서 네가 오니까 다 너한테 붙었어! 은혜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배은망덕한 새끼들 같으니!”

“그게 죽을죄 인가?”

“뭐?”

“묻고 싶다. 그게 죽을죄였나?”

“이이익, 죽을죄지!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내가 목숨을 살려 줬는데 목숨 값은 내가 받는 게 당연하지!”

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나는 너의 말에 반박할 말재주가 없다.”

“내 말이 맞으니까! 내가 거둬들인 목숨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나가 틀렸다.”

“뭐?”

준영이 서서히 검을 들어올렸다. 그때까지 열변을 토하던 조재도는 아차 싶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너무 흥분한 것이었다.

“잠, 잠깐. 살려 줘! 나는 잘못이 없어! 억울하다고! 그들은 배신자들이야!”

“배신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아, 안 돼!”

“저 세상에서 그들에게 사죄해라.”

스걱!

그 말을 끝으로 조재도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준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완전한 밤이 되어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구로 돌아온 뒤, 처음 겪는 일이다.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돌아가야겠군.”

은용이 기다릴 것이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본인은 제대로 의식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정착지의 사람들은 아무도 잠에 들지 못했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은용 또한 바쁘게 움직이며 준영을 기다렸다. 그가 당할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지니 걱정되는 것이었다.

일을 하며 힐끔힐끔 정착지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야근하는 남편이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리는 마누라 같은 모습이었다. 혹시나 자신들을 버리고 그냥 떠나 버리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까지 되었다.

수십 번은 봤을까. 어둠 속에서 살짝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왔다!’

준영인 걸 직감한 은용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달려갔다.

드르륵. 드르륵.

무언가를 끌고 오는 소리와 함께 준영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저씨!”

은용이 반색하며 뛰어갔다. 준영은 큰 수레를 이끌며 정착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이게 뭐에요?”

반가워하는 그녀를 보고 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반긴다는 것이 새삼 간지럽게 마음에 다가왔다.

준영을 반갑게 맞이한 은용이 옆으로 돌아 수레를 살펴보았다. 한껏 웃으며 반가워하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