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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웅성웅성.

사람들은 모두 모인 채 일부는 불안한 표정을, 일부는 기대감을 가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곽주식은 우리가 처리했다! 너희는 이제 욜로회로 가서 생활할 것이다!”

서원호가 앞에 서서 일장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얼굴이 상기된 채 바짝 텐션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앞에서 이렇게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준영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고, 은용은 뭐가 신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욜로회에서는 너희를 기꺼이 받아 줄 것이며 곽주식처럼 괴물의 먹이로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걱정을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

“와아아!”

서원호의 연설이 끝나자 일부는 환호와 박수를, 일부는 마지못해 분위기에 이끌려 따라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이곳이나 욜로회나 별 다를 게 없는 썩을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짐을 챙기고 출발한다! 모두 준비되는 대로 이곳으로 나와라. 모두 모이면 바로 출발할 것이다!”

서원호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명령하는 기분이 정말 째졌다. 이래서 모두 권력자가 되고 리더가 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그럼 저놈들은 어찌할 겁니까? 저놈들도 같이 가는 겁니까?”

나름 성깔 있는 아저씨 하나가 한쪽 무리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그곳에는 곽주식을 따르던, 총을 들고 있는 일반인 몇 명이 있었다.

“맞소! 저놈들도 곽주식 패거리요. 저놈들도 우리 괴롭혔잖아!”

말 그대로 곽주식의 명령을 받아 이곳에서 자그마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총을 소지할 수 있었고 곽주식의 명령에 충실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 끈 떨어진 연이 된 셈이었다.

“저놈들도 죽여야지! 곽주식 명령대로 하던 놈들이었어!”

“저런 놈들하고 같이 못 삽니다!”

“죽입시다! 저 새끼들도 죽여야 해요!”

“곽주식이 죽었으니 저놈들도 죽어야지!”

“저 새끼들 저거 아주 개자식들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한쪽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들은 군중들이 성을 내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총을 들었다.

“저 새끼들 죽이고 갑시다!”

“그럽시다!”

사람들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주변에 있는 무기들을 쥐어 들었다.

철컥, 철컥.

총을 든 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들은 수가 훨씬 더 적었지만, 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장전을 하고 총을 들어 사람들을 겨누었다.

“저 새끼들, 저거, 우리를 쏘려고 해!”

“한 번에 가서 잡아 족칩시다!”

사람들 속에서 누가 큰소리로 선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흉흉한 눈빛으로 조금씩 총을 든 자들에게 다가갔다.

“어, 어, 오지 마!”

“우, 우리는 그냥 곽주식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잖아!”

총을 든 자들도 뒤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언제든지 사람들을 쏠 준비를 하였다.

사람들은 약 50여 명에 총을 든 자들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싸운다면 총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었다.

“응? 어? 응?”

서원호는 당황했다. 자신의 멋진 연설이 끝나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출발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급반전한 것이었다.

그는 당황하여 준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영은 처음처럼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다급한 그는 은용을 바라보았다. 은용도 갑작스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총을 든 자들은 이제 정말 쏠 각오를 했다. 사람들이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우르르 달려든다면 자신들은 맞아 죽을 게 빤했다. 더 다가온다면 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죽이자! 죽이자!”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타오른 사람들이 외쳤다. 그들에게 서원호란 존재는 금방 잊히고 말았다. 각성자의 말 한마디면 죽는 시늉도 하는 그들이 곽주식이 사라지자 참아 온 분노가 터져 자신들 앞에 각성자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상황 통제를 못하고 있는 서원호의 어벙함도 한몫했다.

“아저씨! 아저씨, 어떻게 해요!”

은용이 준영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외쳤다. 하지만 준영은 살짝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건조하게 내뱉었다.

“각자의 분노와 그에 따른 선택은 막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더 상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익,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은용은 씩씩거리며 준영의 팔을 열심히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다.

“야이, 미친 아저씨야! 어맛, 죄송.”

성깔을 부리려던 은용은 입을 막고 호다닥 도망갔다. 요새 들어 미친 아저씨가 잘 대해 주니 간덩이가 부어오르긴 했다.

“잠깐, 잠깐만요!”

두 그룹이 맞붙으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은용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은용이 아니냐? 비켜라. 저놈들은 그냥 놔두고 갈 순 없어.”

“그래, 위험하니까 비켜라!”

“너도 저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알잖아!”

사람들이 성을 내지만, 은용은 비키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휘저으며 크게 소리 내었다.

“그러지 마세요! 잘못했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다 죽이면 우리가 곽주식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요!”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분노한 군중들에게 그런 이상적인 얘기는 통하지 않았다.

“비켜라! 안 그러면 너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까부터 중간에 서서 선동하던 사람이 크게 외친다.

“아저씨는 좀 가만히 있어요! 왜 자꾸 싸우려고 해요!”

은용도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한 소리 들은 그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댔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그녀가 욜로회원이고 각성자들을 데리고 온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저 아저씨들이 그런 건 곽주식이 시켜서 그런 거잖아요! 그게 잘했다고는 저도 생각 안 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곽주식한테 아무런 소리 못 했잖아요?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저 아저씨들도 좋아서 한 거 아니잖아요!”

은용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들도 곽주식이 시켜서 한 짓들이고, 죽기 싫어 그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물론 내키지 않아 하는 자도 있었을 테고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서 한 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을 정말 세세하게 알 수는 없었다.

“잘못한 건 나중에 가려서 벌을 주면 돼요. 저 아저씨들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도 곽주식이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다 그랬을 거잖아요. 기회가 왔다고 죽이면 우리가 곽주식 놈들하고, 욜로회 산적들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요? 그러지들 마세요. 이제부터라도 힘 합쳐서 잘 살아 봐야 하잖아요!”

총을 든 자들 중에 은용에게 잘해 준 사람도 있었다. 그녀를 무시하고 괴롭히던 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알았다. 모든 이가 정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것을. 그저 목숨이 아깝고 무서워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들과 똑같이 그랬을 것이기에.

저들은 이 세상에 흔한 아주 악독한 놈들처럼, 아예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보는 막장까지 간 자들은 아니었다.

사람들도 사실 알았다. 자신들도 그 위치에, 그런 명령을 받는다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곽주식이 죽고 억눌러 온 분노가 터지자 그 분노를 풀 제물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 그만해요! 우리끼리 싸우지 말아요. 더 상처 입고 더 슬플 뿐이에요.”

은용의 외침에도 사람들의 터진 분노는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특히 선동하던 자는 눈까지 부라리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원호 아저씨! 일루 와요!”

“응? 저요?”

어벙한 표정으로 상황을 구경하던 서원호는 은용이 부르자 엉거주춤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이 아저씨 욜로회 각성자에요! 더 싸우면 이 아저씨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잘못이 있다면 그곳으로 간 뒤에 하나씩 가려내요. 여기서는 이제 그만 싸우세요!”

숨을 고른 그녀가 서원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죠? 원호 아저씨?”

“어? 응? 넵. 그렇고말고요! 다들 싸우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짐 챙기고 출발할 준비나 해!”

자신의 말주변으로는 제대로 설득할 자신이 없는 은용이 서원호를 팔아먹었다. 서원호도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여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크게 호통을 쳤다.

“자자, 다들 해산해! 빨리 짐들이나 챙겨 와!”

서원호의 일갈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은용을 노려보며 그녀가 각성자들 믿고 너무 나댄다고 쑥덕거리고 욕을 했다.

“으, 은용아, 고맙다.”

총을 든 자들 중에 몇 명이 다가와 은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왠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이고 발로 땅바닥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나중에 잘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가서 사과해 주세요. 사람들이 화가 많이 쌓여서 그랬을 거예요.”

“그, 그래.”

“모두 살기 힘든 세상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은용은 쪼르르 준영에게 다시 달려갔다. 앞에 나서서 이러는 건 정말 체질에 안 맞는다고 은용은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또 싸우고 죽이는 건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휘유.”

준영 옆으로 돌아오자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잘했다고 하는군.”

“네? 에헤헤… 고마워요, 언니.”

은용이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인형 언니라도 잘했다고 해 주니 마음이 왠지 놓이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주섬주섬 다시 모여들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다들 모인 것을 확인하자 서원호가 앞장서며 이들을 이끌었다.

‘흐흐, 회장, 당신은 이제 끝이야.’

욜로회도 악독한 놈들 천지였다. 일반 사람들은 노예처럼 지내지만, 회장을 따르는 놈들 중 몇몇은 정말 상종도 못할 악인들이었다.

‘흠, 한 여섯 명 정도겠지?’

욜로회에 남은 각성자는 회장을 포함하여 열 명이다. 그중 다섯 명이 회장에게 충성을 바치는 악독한 놈들이었다.

나머지 네 명은 회장의 말을 어느 정도 따르지만, 일반 사람들은 괴롭히지도 않고, 산적질에 가담하지도 않는, 그나마 양심적인 자들이었다. 그저 지낼 곳이 없고 회장과 그의 패거리들이 강하니 이도저도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처럼 말이다.

‘60명? 70명? 대충 그 정도가 빠지겠군.’

욜로회의 일반인들은 200명이 넘는다. 그중 60~70명 정도가 회장의 형과 같이 다니는 놈들처럼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산적 같은 놈들이었다.

이곳에서 곽주식의 말을 따르던 놈들과는 질이 다르다. 멸망 이후 초창기부터 회장을 따르던 친위대이자 악마 같은 놈들인 것이다.

‘흐흐, 하지만 이제 걱정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