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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다들 어안이 벙벙한 채 굳어 있었다. 숨 막히는 적막이 흘렀다. 놀라운 광경에 순간적으로 다들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었다.

“죽여!”

적막을 깬 것은 곽주식의 분노에 찬 비명이었다. 그래도 엘리트급 각성자라고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그 명령에 남은 두 명이 정신을 차리고 준영에게 덤벼들었다.

화르륵.

한 명의 손에서 불길이 타오르며 주먹을 감싼다. 아마 이 녀석이 김종문을 불로 고문한 자일 것이다.

지이잉―

다른 한 명의 손이 거대한 칼로 바뀌었다. 이자는 육체 변형 능력자였다. 육체 변형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무기 변형 능력인 걸로 보였다.

“죽어라아!”

두 사람이 동시에 준영에게 쇄도했다. 한쪽은 불의 주먹, 한쪽은 거대한 칼이었다.

척.

“이이익!”

불의 주먹과 거대한 칼은 준영의 맨손에 허무하게 막혔다. 두 사람이 이를 악물고 힘을 줘 보지만,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도, 날카로운 칼도 준영의 맨손에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콰직!

“끄아악!”

준영이 잡은 손에 힘을 주자 불로 감싼 자의 주먹이 박살났다. 그자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질렀다.

쨍강!

“으아아아악!”

반대편에 붙잡은 칼이 파편을 튀기며 부러졌다. 칼이 잘린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변형이 풀리자 손목이 잘린 상태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게 가능하다니!’

서원호는 쩍 벌린 입을 닫을 줄 몰랐다.

육체 변형이 된 무기는 보통의 다른 무기보다 강력했다. 마력을 전달해 강화시키는 일반 무기와 달리 사용자의 마력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력으로 만든 불 또한 쉽게 꺼지지 않고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더 높은 등급의 각성자들도 대놓고 맞아 줄 정도는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준영은 그것들을 맨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박살을 내 버렸다.

퍼억!

준영은 귀찮은 듯 무릎 꿇은 자의 턱을 발로 차 버렸다.

콰앙!

포탄처럼 날아간 그자는 턱이 박살난 채 벽에 박혀 절명하고 말았다.

“으으, 오지 마. 살려 줘.”

바닥에서 손목을 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는 준영이 다가오자 주춤주춤 뒤로 기어갔다.

휘익.

준영이 손을 휘젓자 허공에서 창이 하나 생성되었다. 준영은 그것을 그대로 날렸다.

푸욱!

“꺽, 끄억…….”

손목이 잘린 자는 복부에 창이 박힌 채 피를 토해 내며 꿈틀거렸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그는 잠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제 하나 남았군.”

음산한 준영의 목소리에 곽주식이 화들짝 놀라 한 손으로 은용의 목을 잡았다.

“아악!”

“머, 멈춰! 다가오지 마! 당장 이년을 죽일 거야!”

그는 왼손으로 은용의 목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뭐야! 너, 뭐야! 당장 꺼져! 꺼지라고! 이년 죽여 버릴 거야!”

곽주식은 이성이 나가 버릴 거 같았다. A등급이라면 B등급 각성자를 동시에 열 명 이상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부하들은 C~D등급이지만 저렇게 쉽게 당할 정도면 자신보다 강한 A등급이란 확신이 든 것이었다.

애초에 동시에 같이 덤볐어야 했다. 아니,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같이 덤볐으면 저 시체들 속에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준영이 천천히 한손을 들고 손바닥을 폈다.

“멈춰! 멈추라고!”

무언가를 느낀 곽주식이 은용의 목을 더욱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이년도 같이 죽여 버리려는 것 이었다.

은용의 목이 부러지려는 그 순간.

준영의 펴진 손이 주먹을 쥐었다.

콰드득!

“끄아아악!”

은용의 목을 잡고 있던 곽주식의 손목이 뒤틀리며 찌그러졌다. 손자국까지 생긴 것이 마치 손으로 강하게 쥐어짠 모양이었다.

고통에 휩싸인 그 순간에도, 나름 노련한 그는 반대쪽 주먹을 은용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그녀의 머리를 박살 낼 심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은용은 재빠르게 몸을 날렸고 준영은 다시 손바닥을 활짝 폈다.

펑!

주먹은 머리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공기의 벽에 막히며 큰 소리를 내고 튕겨져 나갔다.

“으다다다!”

그 찰나의 순간 몸을 날린 은용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가까스로 준영의 뒤로 숨을 수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틈이 나는 순간에 온몸을 다해 날린 걸 보니 정말 도망치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 여자였다.

“헉헉, 아저씨, 파이팅!”

은용이 주먹을 들고 나름 응원을 했다. 그녀는 이제 준영이 이길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정말 미치도록 강한 미친 아저씨였다.

“으그그그극. 이 개자식아!”

눈이 벌게진 곽주식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내 옷이 모두 찢어지고 높은 천장까지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화가 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옆으로 더 퍼져서 방 안이 아주 꽉 찼고, 살들이 출렁거리니 무척이나 혐오스러워 보였다. 그의 몸에 그리다만 문신들이 같이 커져 흉하게 보였다.

“꺅!”

옷이 모두 찢어져 곽주식의 다리 사이에 흉물스럽게 달려 있는 ‘그것’을 본 은용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외쳤다.

“작아!”

거대화됐으니 그것도 커져야 하는데 일반 성인 크기도 안 되었다. 그 몸에 달려 있으니 정말 없어 보였다.

“작지 않아!”

은용의 외침에 콤플렉스가 발동한 곽주식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부우웅―

거대한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준영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척.

사람 얼굴보다 더 큰 주먹이 준영의 손바닥에 허무하게 막혔다. 곽주식은 솜사탕을 살짝 때리는 느낌밖에 받지 못했다.

“다 벗으니 보기가 흉하군.”

“이익!”

멸망 전에 거대화 능력자를 위해 특수한 소재로 만든 옷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격도 너무 비싸고 소수만이 가질 수 있어 멸망 이후의 각성자인 곽주식은 얻을 수 없었다.

어차피 B등급의 마력으로 어지간한 적들은 거대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이겼다. 그렇기에 옷에 대한 아쉬움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오늘 이와 같은 굴욕을 당하니 이가 갈렸다.

“선발자인가”

“닥쳐라!”

곽주식이 다시 손을 휘두르려 했지만, 준영의 손바닥에서 주먹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익!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제대로 싸우자! 이딴 비겁한 수는 집어치워라!”

곽주식이 끙끙거리며 도발하자, 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작게 내뱉었다.

“몸을 다시 줄여 주지.”

“뭐?”

순식간에 곽주식의 옆구리로 이동한 준영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으드득.

“끄아아악!”

갈비뼈가 부리지는 소리와 함께 곽주식이 비명을 질렀다.

으직!

준영의 로우킥 한방에 곽주식의 정강이가 부러졌다. 이후 준영은 거침없이 그의 몸 곳곳을 부러뜨렸다.

“으아아아악!”

쿠웅!

몸 곳곳의 뼈가 박살나자, 곽주식의 몸이 허물어졌다. 거대한 몸이 바닥에 쓰러지자 주변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그래도 준영은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곽주식의 몸을 박살냈다. 보통 각성자의 몸은 마력으로 자연스럽게 보호받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방어 이상의 공격을 당하면 마력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힘을 끌어다 쓴다. 즉, 특수한 방어 능력이 아니라면 힘을 쓸수록 마력의 소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줄어들었군.”

준영이 구타를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곽주식을 내려다보았다. 마력을 전부 소진한 그의 몸은 거대화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이 출렁거리던 비대한 체구지만, 온몸이 불규칙하게 꺾이고 터져 있어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사, 살려 줘…….”

곽주식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애원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네, 네.”

준영의 질문에 기대를 가진 곽주식이 바로 대답했다.

“선발자인가?”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인 준영은 누구에게 각성을 도움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모르는 자의 이름이 나왔다.

다시 준영은 자신이 찾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듣거나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곽주식은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준영은 곽주식의 목을 잡아들었다.

“컥! 큭!”

준영이 그의 목을 잡고 괴물이 들어 있는 수레로 끌고 갔다. 비대한 체구가 목만 잡힌 채 바닥을 질질 닦으며 끌려갔다.

카아악!

이미 시체를 다 먹어 치운 괴물이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준영이 철창문을 부수고 가까이 가자 괴물은 번개같이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카악!

철그렁!

하지만 괴물은 목과 몸에 묶인 쇠사슬 때문에 더 나오질 못했다. 그래도 손이 닿는 거리였다.

크아악!

괴물이 힘껏 손을 휘둘렀지만, 준영은 가볍게 피한 뒤 괴물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살짝 밀었다.

텅!

우당탕!

가슴이 밀린 괴물이 나동그라지며 수레의 끝에 쳐 박혔다. 재빨리 일어났지만, 아직 덜 자란 새끼라 그런지 다시 덤비지 않고 위협적인 자세만 취했다.

“아, 안 돼.”

준영이 무슨 짓을 할지 눈치 챈 곽주식이 온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관절이 전부 박살나 있어 뜻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네가 죽인 자들과 같은 고통을 느껴라.”

준영은 그 말을 끝으로 곽주식의 몸을 괴물에게 던져 버렸다.

카아악!

“으아아아! 안 돼!”

곽주식이 자신의 앞에 떨어지자 괴물은 주저 않고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마력도 없고 온몸이 박살 난 그는 일반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살도 출렁출렁하니 괴물이 뜯어먹기에 좋았다. 힘껏 발버둥 쳐 보지만, 달려드는 괴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윽.”

은용은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서원호도 조금 보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에게 이런 광경은 은용보다 더 익숙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오직 준영만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곽주식에게 당한 자들이 직접 보는 것처럼.

크오오!

잠시 후, 괴물이 고개를 들고 포효했다. 곽주식은 이미 숨이 끊어졌고 비대하던 몸은 너덜너덜해 졌다.

그르르.

포식한 괴물이 다시 몸을 낮추고 준영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카악!

괴물이 다시 덤벼들었다. 하지만 준영은 아까처럼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퍼억!

괴물은 다가오지도 못하고 덤벼들던 그 자세 그대로 머리가 터져 버렸다. 준영이 손짓으로 마력을 쏘아내 터트린 것이었다.

“가자.”

그대로 몸을 돌린 준영이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저씨! 오빠!”

은용이 신나게 소리 지르며 만세를 하고 준영의 품에 뛰어들었다.

“아저씨, 완전 짱!”

“음.”

은용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부비부비 머리를 비볐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준영이 한마디 내뱉었다.

“머리에서 냄새 난다.”

호다닥.

은용은 정수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준영은 그대로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은용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으으, 이 매너도 없고 무드도 없는 남자 같으니.’

머리를 벅벅 긁은 은용은 손톱 끝으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응? 냄새 별로 안 나는데?’

당연했다. 어젯밤에 씻었으니 냄새가 심하게 날리는 없었다.

‘그런데 왜 냄새 난다고? 냄새에 민감한가? 잠깐… 설마?’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은용이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크큭, 그렇단 말이지.”

눈을 빛낸 은용이 쿡쿡거리다 만세를 하며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아저씨, 같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