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2화



한 건물 안으로 안내된 일행은 곽주식을 만날 수 있었다. 건물의 내벽을 다 뚫고 크게 만든 방이었다. 조악한 정착지가 그렇듯 지저분한 물건들과 악취로 가득 찬 방이었다.

곽주식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자였다. 근육이 아니라 살이 많이 쪄 거대하게 보이는 덩치였다. 과거,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건달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만 해도 건들건들해 보이는 것이 불편한 느낌을 줬다.

곽주식이 있는 방 안에는 네 명의 남자가 똑같이 건들거리며 앉아 있거나 누워서 육포 같은 것을 씹고 있었다.

“무슨 일로 왔냐?”

곽주식의 거만한 말에 서원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괴물을 좀 얻어 오라고 했다. 우리 쪽에 식량 문제가 좀 생겨서 말이야.”

“몇 마리?”

“대충 열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 정도…….”

“큭.”

곽주식이 웃었다. 괴물 열 마리면 수십 명의 사람이 한 달 이상을 재생시켜 먹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절반에 가까운 괴물을 달라고 한 것이었다.

“너네 회장 놈이 우리랑 한바탕 하자는 건가?”

“그, 그게 아니고 회장이 필요한 걸 말하면 우리도 주겠다고 했어.”

“흐음…….”

곽주식이 잠시 고민했다. 그렇잖아도 요새 사람이 좀 모자란 것을 그는 떠올렸다. 아무리 괴물 몸으로 먹여 살려도 이것저것 일을 시키려면 노동력은 필요했다.

“열 마리를 주지. 대신 너희 회원 열 명을 보내.”

“그, 그래. 회장한테 그렇게 전달할게.”

‘좆 까. 난 도망가서 다른 정착지 갈 거야.’

어차피 준영 때문에 억지로 와 본 것이다. 괴물들을 받으면 밖에 나가 다 죽여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그런데 너희도 괴물이 꽤 있지 않았나? 다 어디에 쓰고?”

“그게 회장 형 각성 때문에…….”

“크큭, 그 멍청하고 재능 없는 새끼 때문에 귀한 식량들을 쓰다니. 한심하군.”

비웃는 곽주식의 말에 서원호는 할 말이 없어 입만 다셨다. 그의 말처럼 보유하고 있는 괴물들을 함부로 다 사용해 버리면 사람들의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의 형은 죽었지만, 곽주식은 그걸 모르니 실컷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쨌든 바로 받아서 갔으면 좋겠는데…….”

서원호의 말에 곽주식이 눈을 게슴츠레 하고 그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뒤쪽에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 못하는 은용을 보고 있던 것이다.

그 외에 곽주식의 부하인 네 명의 각성자도 혀를 돌리며 은용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정착지에 있던 여자인지를 몰랐다. 아예 관심도 없던 더러운 여자였고 은용이 내심 얼굴을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며 숨겼으니까.

어쨌든 얼굴도 예쁘고 깨끗한 옷까지 입고 있는 여자를 보니 욕정이 당기는 것이었다.

“예쁘군. 일행인가?”

“그, 그래. 욜로회 회원이야.”

“여자가 이런 곳까지 오다니 각성자인가?”

“아니, 각성자는 아닌데…….”

“회장 여자야?”

서원호는 곽주식의 집요한 말에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지만, 욜로회에서 중요한 여자야. 허튼 생각하지 마.”

“크큭, 우리 사이에 무슨… 알았어. 가서 쉬고 있어.”

곽주식이 손짓하자, 서원호는 헐레벌떡 준영과 은용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괜히 곽주식이 은용을 덮칠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어휴, 무서워라.”

은용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 정도로 긴장한 것이었다.

곽주식의 부하가 일행을 낡은 건물의 숙소로 안내를 해 주었다. 요청한 괴물은 내일 오전까지 준비해 준다고 말을 하고 돌아갔다.

“저… 형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서원호가 물었지만, 준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그냥 가요.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잖아요?”

은용이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녀는 곽주식이 별일 아닌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흉흉한 소문까지 있고 사람들까지 줄어드니 더 있기 싫은 것이었다.

그녀에게 곽주식은 공포의 군주, 그 자체였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하루 묵고 간다. 사람들을 좀 봐야겠다. 누나랑 같이 와라.”

준영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밖으로 나섰다. 서원호도 어깨를 으쓱하고 따라 나갔다.

은용은 다급하게 휠체어를 끌고 준영을 따라 나섰다. 이런 곳에서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준영은 얼마 크지도 않은 정착지를 쭉 둘러보았다. 말이 정착지지 사람들은 목숨만 겨우 붙여서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전부 퀭한 눈빛에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더러웠다. 악취가 사방에 풍겼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자재를 옮기는 사람, 땅을 파고 있는 사람,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등등 각자의 역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중에서 준영의 눈을 가장 끈 것은 아주 더러운 천막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부상자들이었다. 이 시대에는 약도 구하기 힘들고 의사는 더욱더 보기 힘들었다. 병에 걸리거나 상처가 썩으면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 대다수였다.

천막 안에 들어가자 악취는 더욱 더 심하게 풍겼다. 살과 상처에 난 고름이 썩어 가는 냄새가 더해지니 역할 정도였다.

“욱, 우엑.”

냄새를 맡은 서원호는 코를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은용은 며칠 전까지도 익숙하던 냄새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타까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급하게 들어가 주저앉고 환자의 더러운 손을 잡았다. 악취가 나고 온몸이 새까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종문이 아저씨!”

“으, 누…구?”

“아저씨 저 은용이에요. 은용이요.”

은용은 급기야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누워 있는 환자는 몸 곳곳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제대로 치료를 못해 진물이 지고 고름이 흘러내렸다. 이 상태라면 고열과 함께 얼마 안 있다 죽고 말 것이었다.

“여, 여기 왜 다시 왔어… 어서 도망가… 너 여기 있으면 죽어…….”

김종문이란 자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은용에게 도망가라 말했다. 그는 정착지에서 은용을 딸 같이 아끼고 보호해 준 사람이었다. 은용도 그를 많이 의지하고 따랐다.

그녀에게 도망가라고 권해 준 것도 그였다. 그가 바로 괴물 관리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자신마저 도망간다면 분명 곽주식과 그의 부하들이 쫓아와 죽일 거라며 몰래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남았다.

“어떡해. 어떡해. 엉엉.”

김종문의 상처는 심각해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다간 얼마 살지 못할 것이었다.

은용은 갑자기 앉은 상태에서 무릎걸음으로 다급하게 준영의 앞으로 기어갔다.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 아저씨, 아니, 오빠, 살려 주세요. 네? 종문이 아저씨 좀 살려 주세요. 엉엉.”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처럼 따르던 사람이 저렇게 되자 마음이 급격히 무너졌다. 준영이라면 분명 그 약으로 치료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잠깐 은용을 물끄러미 바라본 준영은 허공에서 손을 휘저어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는 김종문의 입과 온몸에 골고루 뿌렸다.

‘크, 아까워라. 차라리 날 주지.’

서원호는 저 귀한 약을 일반인한테 쓰는 게 아까웠지만, 얻어터질까 봐 입을 닫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화악!

포션이 순식간에 김종문의 화상 입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속의 뒤틀린 부상까지 모두 말끔하게 치료했다.

“어? 어?”

김종문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픈 곳이 모두 사라지고 온몸이 상쾌했다. 피딱지와 고름까지 떨어져 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김종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준영에게 절을 올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런 귀한 물건을 가진 자라면 분명 각성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극진하게 절을 올렸다.

“오빠,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은용도 똑같이 옆에서 절을 올리며 고개를 조아린다.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 같았다.

“저, 저희도 좀…….”

그 모습을 보던 옆의 환자들도 죽는 소리를 내었다. 준영은 성큼성큼 다가가 모두에게 포션을 뿌려 주었다. 몇 사람 되지도 않았기에 포션은 그리 많이 들지도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다가와 절을 하고 인사했다. 그게 불편한 준영은 몸을 휙 둘려 나가 버렸다.

“은용아 어찌된 일이냐?”

김종문이 묻자 은용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신이 욜로회에 들어가서 다시 여기에 일 때문에 들린 거라고 말을 했다.

“우리도, 우리도 데려가 주면 안 되겠니?”

옆에서 그 말을 들은 다른 환자가 애원하듯 말했다. 욜로회도 별다를 게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적어도 싱싱한 먹이를 주겠다고 멀쩡한 사람을 괴물 새끼한테 던져 주진 않을 테니까.

이미 그것은 소문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모두들 통제가 강화돼 도망가지도 못하고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었다.

은용은 당황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사실 자신은 욜로회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준영만 따라다녔을 뿐인데 이런 위치가 되어 버렸다.

당황한 은용이 서원호를 바라보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원호 아저씨, 저기… 여기 있는 사람들 욜로회로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이 망할 년아. 나도 거기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서원호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기회 봐서 도망가야 하는데 사람들까지 끌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게다가 이곳 정착지의 사람들을 끌고 가면 도착하기도 전에 곽주식한테 맞아 죽을 것이 빤했다.

“은용아, 우리도 데리고 가다오. 제발!”

“아이고, 부탁한다. 은용아.”

“어허! 이 사람들 은용이 곤란하게 왜 그래! 그러다가 주식이 놈한테 죽으면 어찌하려고! 이 젊은 것까지 죽이려고 해?”

사람들이 은용에게 매달리자 김종문이 호통을 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떨어질 줄 몰랐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은용에게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다 생각한 것이었다.

“으으…….”

은용도 나름 곤란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울상을 지으며 서원호를 바라보며 부탁했다.

“원호 오빠,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오빠 말 잘 들을게요.”

교복 입은 미소녀의 오빠 발언과 말 잘 듣겠다는 대사에 그의 마음이 쿵하며 떨어졌다.

순간,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뻔했으나 다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저었다.

“아, 안 돼. 그러면 우리 여기서 나가는 순간 다 죽어요. 알잖아요?”

“준영 아저씨랑 같이 가도 죽나요?”

“아, 아마?”

서원호는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다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추측하기로 준영은 B등급 상위권. 그가 곽주식을 잡을 수 있다 해도 나머지 네 명의 각성자들이 문제였다.

자신은 그중 한명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협공을 당하면 준영은 죽을 것이고, 자신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그때, 천막 밖에서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준영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은영.”

“네, 네?”

“모두 욜로회로 데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