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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크큭…….”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운 이름 중 하나. 드디어 그 흔적을 하나 발견했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마치 하늘이 도와준 것만 같은 타이밍이다. 이렇게나 빨리 흔적을 발견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크흐흐…….”

준영은 얼굴을 한 손으로 잡고 몸을 들썩였다. 이런 감정, 얼마나 오랜만인가. 준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으하하하하하핫!”

콰앙!

“끄아아악!”

“꺄악!”

광소와 함께 절로 마력이 분출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준영의 바로 앞에서 부들대며 떨고 있던 서원호는 그 마력의 파장을 직접적으로 받아 고막이 터져 버리고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하고 말았다.

“으하하하하하!”

“꺄아악! 아저씨!”

조금 떨어져 있던 은용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그녀도 고막이 터지고 피가 흘러나와 귀를 막고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 흥분하지 말아야지. 크큭.”

은용의 고함 소리에 준영은 마력을 갈무리했다. 더 이상 마력을 방출했다간 이 주변의 모든 생명체가 터져 죽고 말 것이었다.

“흐흐, 살아 있었군. 그렇다면 나머지도 살아 있을 거야.”

양승수가 살아남을 정도면 아마 모두 다 살아 있을 것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양승수보다 강했으니까.

“누나! 그놈들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휠체어에 다가간 준영의 눈이 다시 한 번 광기로 번들거렸다.

“양승수, 그 새끼! 그 새끼가 S등급이래. 크하하핫! 겁도 많고 싸움도 제대로 못하던, 덩치만 큰 고기방패 같은 새끼가! 지금은 아주 거물이 되셨어! 사람들을 이끌고! 각성자를 만들면서 인류를 지키는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고! 그 비겁한 새끼가!”

인형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준영은 개의치 않고 손짓, 발짓까지 하며 계속 떠들어 댔다.

“으하하하하! 살아 있어! 그 새끼들, 살아 있다고! 누나, 누나, 듣고 있지? 응? 누나도 기쁘다고? 그래, 나도 기뻐! 그래, 사지를 찢어 버리자. 그 배신자 새끼들을 가루로 만든 뒤, 천사들의 먹이로 줘 버리자.”

준영은 눈이 벌게진 채 침까지 튀기며 떠들어 댔다.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직접 만나게 되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졌다.

“누나, 누나의 복수도 해야지. 그치? 좋다고? 그래, 내가 그 새끼들의 사지를 끊어 버릴게. 크크, 큭.”

‘으으, 저 새끼 또 왜 저래… 미친 새끼… 내가 이래서 미친놈들이 싫다니까…….’

은용은 귀가 울려 뭐라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침까지 튀기고 악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떠드는 모습을 보고 그저 또 미친놈이 맛이 갔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아아, 젠장. 귀가 계속 울리고 머리가 깨질 거 같아. 피까지 나는 걸 보니 문제가 생긴 건가?’

은용은 주저앉아 몸도 제대로 못 가눈 채 비틀거렸다. 계속 이명이 울리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이 지속되었다. 이대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기절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시발, 내가 진짜 미친놈이랑은 안 다닌다. 진짜 제명에 못 살겠네… 기회 봐서 도망가야겠다…….’

왠지 울컥한 마음에 속에서 열불과 함께 욕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은용이 어지러움 속에서 쓰러지기 직전.

준영이 흥분을 가라앉힌 모습으로 은용에게 다가갔다.

“으으…….”

“미안하군. 내가 조금 흥분했다.”

‘그게 조금 흥분이면 여자랑 잘 때는 아주 지구를 멸망시키겠다. 미친놈아…….’

물론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생각뿐이었다. 그럴 깡이 없을뿐더러 그녀에게 입을 열 힘도 없었으니까.

“마셔라.”

흐릿한 눈빛으로 기절하기 직전의 은용을 부축한 준영은 허공에서 포션을 꺼내 귀에 부어 주고 입을 강제로 열려 먹였다.

화악.

“응?”

은용은 순간적으로 따뜻함과 청량함이 온몸을 타고 도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순식간에 피가 멎고 활력이 느껴졌다. 마치 푹 자고 일어난 것과 같은 개운함, 아니, 지금까지 살면서 쌓여 온 모든 불순물과 피로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어어?”

은용이 놀라 입을 벌리고 눈만 껌뻑거렸다. 머리까지 맑아졌다. 이런 약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준영이 꺼내 준 것은 최상급 포션. 숨만 붙어 있다면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린다는 명약중의 명약이었다.

‘이 남자다!’

순식간에 은용의 마음이 다시 뒤집어졌다. 요즘 세상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은 바로 식량과 의약품이었다. 그런데 준영에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있었다. 고막이 터져 피가 날 정도의 중상을 순식간에 치유하는 이 약은 분명 각성자의 힘과 관련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나.”

“아, 예…….”

은용은 대충 대답했다. 더 이상 말을 섞을 기력도 없었다. 마음은 다시 뒤집어졌지만, 지금은 알랑방귀를 낄 힘도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서원호는 눈까지 까뒤집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흘린 채 기절해 있었다.

“살려 준다.”

준영은 그에게 다가가 포션을 들이부었다.

‘헉, 저 아까운 명약을! 차라리 날 주지!’

은용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렸지만, 준영은 개의치 않고 남은 포션을 모두 사용했다.

“콜록, 콜록! 케억! 뭐, 뭐야!”

서원호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이 넘치는 힘이라니! 몸속의 찌든 피로까지 모두 날아가고 상처는 언제 있었냐는 듯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깨도 모두 치유되었고 몸 자체가 매우 상쾌한 상태라는 것이 느껴졌다.

“너는 살려 주지.”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서원호가 잽싸게 무릎 꿇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매일 오락가락한 준영의 마음과 정신 상태를 안다면 안심할 수 없겠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서원호는 그저 지금 당장 살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몇 가지 더 묻겠다.”

“네네, 말씀하십쇼.”

준영은 양승수와 마지막에 헤어진 곳, 그리고 지금 향하는 곳이 은용이 있던 곳인지 다시 확인했다.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지?”

“괴물, 괴물들을 얻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을? 왜?”

“저희가 보유한 것들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주변에서 살아 있는 걸 많이 생포하기도 쉽지 않구요. 그쪽에서는 관리를 잘해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아까 죽은 회장의 형을 각성시키려 요새 소모가 많았습니다. 사람들 식량 대용으로도 써야 하구요.”

“그렇군.”

그의 말을 들은 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너,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라.”

“네?”

“우리는 이제부터 욜로회원이다.”

준영은 굳이 싸움을 피하진 않지만, 지구까지 와서 함부로 인간들과 실랑이를 벌일 생각도 없었다.

서원호를 이용한다면 큰 의심 없이 그곳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저 여자는 내 동생이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자는 누나고. 네가 알아서 보증해라. 문제없이.”

“네, 알겠습니다!”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까. 서원호는 즉각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회장의 형까지 죽은 이상 욜로회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즉, 괴물을 얻으러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기회를 봐서 다른 정착지로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군.”

준영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의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일반인들의 각성. 자신이 힘을 먼저 받은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동안 돌아가는 것과 복수만 생각하느라 잊고 있었다.

오로바스가 매번 강조한 각성자의 의무. 그것도 이제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누나, 누나 생각은 어때? 그렇지? 약속은 지켜야지.”

다시 인형과 대화를 나눈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가 있다는 건 좋군.”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이 이렇게 되니 새삼 마음에 와 닿았다. 먹기만 하고 도망치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받은 건 돌려줘야지.”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자신도 몰랐다. 그저 조금씩,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해 볼 생각이었다.

“너.”

“네?”

“너도 앞으로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각성시켜라. 그것이 각성자의 의무다.”

“네? 넵!”

서원호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아니, 요새 누가 그런다고…….’

겉보기와 어울리지 않는 말에 서원호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당연히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맞아 죽기는 싫으니까.

“은영.”

“으, 은용이라고요.”

준영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너도 이제 각성을 한다.”

“네에? 제가요? 가능해요?”

“가능하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각성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이 남자다!’

은용은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각성이라니. 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남자의 말이라면 가능할 거 같았다.

“그럼 어떻게… 언제부터…….”

휘이이익.

준영은 은용의 말을 무시하고 휘파람을 길게 불어 댔다. 자신의 마력을 듬뿍 담아 멀리멀리 소리를 퍼뜨렸다.

“응?”

‘또 미쳤냐?’

은용과 서원호는 가만 서서 계속 휘파람만 부는 준영을 바라만 보았다. 방해할 수도 없고 뭐라 할 수도 없어 그저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헤헤.”

서원호가 은용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은용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팩 돌릴 뿐이었다.

“준비해라.”

“네?”

갑자기 준영이 휘파람을 멈추고 말했다. 둘은 뭘 준비하란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

“으?”

잠시 시간이 지나자, 준영이 말한 뜻을 두 사람 다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준영이 바라보고 있는 쪽의 하늘에서 익숙한 무엇인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으, 아아…….”

“저, 저게…….”

크와와아아!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수는 점점 많아졌다. 나타나는 방향은 모두 달랐지만, 목적지는 단 하나였다.

바로 준영과 일행이 서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정말 별로 없군.”

준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말을 던지며 검 하나를 허공에서 뽑아내 쥐었다.

“으아, 아, 아저씨! 도망! 도망!”

“혀, 형님, 너무 많습니다. 빨리…….”

두 사람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벌벌 떨었다. 빨리 도망가야 하는데 준영이 움직이질 않으니 쉽게 갈 수가 없던 것이다.

“도망가지 않는다.”

“형님, 제발…….”

“아저씨! 오빠! 빨리 가요! 언니도 위험, 위험하잖아요!”

두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외쳤지만, 준영은 들은 채도 안했다. 은용이 인형 언니까지 팔아먹었지만,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을 뿐이다.

“특별훈련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