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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이,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욜로는 그런 뜻이 아니라…….”

서원호를 비롯한 대머리와 일행들이 웅성거렸다.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이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느낌을 받은 그들이었다.

“이봐, 이봐. 진정해.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

다가오는 준영의 어깨에 서원호가 손을 올리려 하자.

“손대지 마라.”

콰앙!

준영의 나직한 일갈에 그는 포탄처럼 튕겨나간 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무슨 수를 썼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으헉!”

“원호가 한방에!”

“뭐야, 씨발!”

척.

“으으, 너, 너. 내, 내 동생, B등급 각성자야. 나 건드리면 너, 너 죽어.”

준영이 앞에 서자 대머리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제야 정말 잘못 건드렸단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름.”

“으으?”

“이름이 뭐냐.”

“조, 조재현이다.”

“동생 이름은?”

“조재도! 조재도 알아? 회장이 내 동생이야! 내 동생이 알면 너 죽어! 그러니까 그만하자. 아, 아니 우리 회에 들어와라. 내가 잘 말해 줄게.”

뻐억!

“으겨겨격!”

조재현이 입을 잡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되고 앞 이빨이 죄다 박살 났다. 고통이 너무 큰 것인지 결국 눈물까지 글썽이며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만 사는 놈이 말이 많구나.”

준영은 봉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들어 올린 봉으로 곧바로 내려치지 않았다. 단박에 머리를 박살 낼 수 있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계속 찝찝했다.

죽여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 딱히 분노도 생기지 않고 그럴 마음도 일지 않았다. 그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죽어라.”

결국 그가 마음을 다잡고 봉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털썩.

“사, 사려 줘. 사려 주서요오.”

무릎을 꿇은 채 싹싹 비는 조재현의 모습을 보자 맥이 턱 빠졌다.

심지어 뒤에 있는 놈들까지 같이 주저앉아 버렸다. 총을 쏴도 통하지 않고 믿고 있던 각성자마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지금껏 살아온 눈치가 더 이상의 저항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다. 남은 것은 상대의 자비에 기대야 할 뿐이었다.

‘하찮다…….’

너무나 약하고 너무나 하찮아서 죽일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끝에 지구로 돌아와 사람을 봤기 때문에 조금씩 마음이 약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변해 버린 이 세상 때문에 만사가 귀찮아졌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여야 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무고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여 왔을 것이다. 이들 때문에 고통 받은 자들이 수없이 존재할 것이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들은 또 약자들을 괴롭히고 죽일 것이었다.

‘교육인가?’

어쩌면 어릴 적 교육받은 단 하나의 도덕. 사람은 같은 사람을 심판할 수 없다. 오직 공동체의 합의된 법안에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법칙. 이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거 같기도 했다. 단순한 변덕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 그것이 가장 타당한 이유로 보였다.

‘죽일 필요가 있을까?’

만약 준영이 약했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죽이겠지만,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사여탈조차 관조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

‘누나.’

누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항상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 줬고, 무엇이든 그녀의 말대로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답을 주지 않았다. 준영은 답답했다.

“은영, 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죽이려 했지만, 너무나 하찮아서 죽일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결국 은용에게 답을 구했다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괴물들과 보냈기에 인간들의 틈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오오!”

“사, 살려 주십쇼!”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대머리 일행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며 기뻐했다. 죽일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하기에 희망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게 다들 희망에 차 기뻐할 때 은용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 죽여주세요. 죽여야 해요.”

“으허헉!”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조재현과 일행들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속으로는 저 계집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계속 빌 뿐이었다.

준영은 은용을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이유를 듣고 싶었다.

“저놈들… 욜로회 놈들은 우리가 있던 곳에 왔을 때, 단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고 사람을 쏴 죽이고 웃던 놈들이에요. 아, 아저씨는 각성자니까, 강하니까, 저런 것들이 하찮게 보이고 귀찮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달라요. 우리는 괴물보다 저런 놈들이 더 무서워요. 그래서 도망친 거고요. 아저씨같이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지켜 주거나 나쁜 놈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저 같은 약자들은 그저 괴롭힘 당하고 잔인하게 죽을 뿐이에요. 세상에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은용은 떨면서도 숨을 크게 내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발 저런 놈들은 죽여주세요.”

끄덕.

퍼억!

준영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조재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으어억!”

“저, 저 개 같은 년!”

“사, 살려 줘!”

퍼퍼퍽!

그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전부 머리가 깨져 절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잘 알아들었다.”

준영은 살짝 떨고 있는 은용을 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현재의 지구에 맞춰 하나씩 배워 나가고 행동을 결정하면 됐다.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어떻게 살아갈지 마음의 기둥이 세워지지 않았다.

“저놈도 죽여야겠군.”

천천히 쓰러져 있는 서원호에게 걸어갔다. 그가 깨어난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좆됐다!’

서원호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도 각성자랍시고 은용이 말할 때부터 깨어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도 대략은 눈치를 챘다.

척!

“형님 살려 주십쇼! 저는 함부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준영이 다가오자 번개같이 일어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괴물과의 싸움에서도 죽을 뻔한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지만, 어떻게든 눈치 있게 살아남았다.

‘사나이 서원호!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살려 주십쇼! 형님!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옆에 분은 누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넉살이 좋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지금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이니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처음에 대머리가 설칠 때,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

“왜 말리지 않았지?”

준영의 물음에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은 각성자였다. 일반인들의 횡포는 말리려면 말릴 수 있었다. 단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귀찮았기 때문에 내버려 둔 것이다. 회장의 형이기도 했고.

“그, 그게 저놈이 우리 회장의 형이라… 제 말을 잘 안 듣습니다.”

“핑계가 좋군.”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안 그러겠습니다! 살려 주십쇼!”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은용의 말이 맞지만, 이놈은 직접적으로 가담하진 않았다. 꼴을 보니 딱히 정의롭지는 않지만, 나서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흐음…….”

은용을 보니 이놈도 죽여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확인할 것이 있었다. 이놈은 처음으로 만난, 제대로 대화가 가능한 각성자였다.

“선발대인가?”

“네, 네? 그게 무슨?”

당연한 결과지만, 준영은 실망하지는 않았다. 선발대 출신이라면 이 정도로 약하진 않았을 것이다.

“각성자가 된 지 얼마나 됐지?”

“2, 2년 됐습니다.”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엄청 몸을 사렸거나 조직에서 성장을 통제했을 것이 분명했다.

“욜로회 가입은?”

“육 개월 정도 됐습니다.”

육 개월이라면 딱히 그곳에서 성장을 통제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각성자가 되었지?”

“그, 그게…….”

빠각!

“크아아악!”

대답이 늦어지자, 준영의 봉이 그의 한쪽 어깨를 박살내었다.

“대답은 즉시.”

“네네… 네, 예전에 있던 그룹에서 거기 대장이던 분이 몇 명을 선별해서 각성시켜 주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그룹은 어떻게 되었지?”

“대장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떠났습니다. 그분이 각성시켜 준 사람 몇 명이 그룹을 이끌었지만, 결국 내분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저는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욜로회에 가입한 것입니다!”

“대장? 리더인가? 그는 왜 떠난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하고 갑자기 떠났습니다. 저희보고 남은 사람들을 각성시켜 주라고 하고 떠났습니다.”

서원호가 한쪽 팔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각성자가 된 뒤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준영의 마력이 몸 안에 남아 회복을 방해하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서원호가 알 리 없었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은 모두 각성시켜 주었나?”

“그, 그게.”

빠악!

“으아아아아악!”

남은 한쪽 어깨마저 박살이 났다. 은용은 그 모습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못, 못했습니다. 대장이 해 준 사람들만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유는?”

“우리끼리만 힘을 가지려고요! 방법도 될 때까지 잡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숨겼습니다! 재능에 따라 잡아야 하는 수가 다르단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지도 않고요!”

“리더가 사람들에게 방법에 대해 말은 하지 않았나?”

“모두 다 알면 욕심 때문에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밀로 하고 재능 있는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모두 각성시킨다고 했습니다!”

들어 보니 리더는 꽤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사람들을 이끌던 것 같았다. 게다가 일반 사람들을 모두 각성시키려 했다는 걸 보니 심성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내분의 이유는?”

“그냥 서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힘도 서로 고만고만하고 사람들도 꽤 있으니 왕처럼 군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끼리 패를 갈라 싸웠고 저는 패배해서 도망친 거였습니다.”

“그렇군.”

빤한 스토리였다. 얄팍하게 힘을 가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허무한 결말.

“리더가 각성자의 의무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나?”

“네네, 우리가 힘을 가진 이유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우리가 가진 의무는 모든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신인류가 되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리더의 등급은 알고 있나?”

“S등급이라고 했습니다.”

S등급이라면 최상급에 속하는 각성자다. 중급 천사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고, 상급 천사도 일대일이라면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일인 군단이라 칭할 수 있는 최강자의 등급.

꽤나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인성도 괜찮고 실력도 좋은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각성자의 의무에 대해서도 강조한 것을 보아 선발대 출신일 확률이 높았다.

“리더의 이름은?”

“야, 양승수라고 했습니다.”

순간 준영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