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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뭐?”

시체도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을 괴물의 먹이로 준다니. 이번에는 더 황당한 이야기였다.

“괴물 새끼가 하나 나왔거든요. 그리고 그 새끼를 애완용으로 키운다고…….”

“미친놈이군.”

‘그래서 내가 미친놈을 무서워해!’

“직접 본 것인가?”

“아니요. 본 사람이 있어요! 괴물 시체를 관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들하고 같이 도망친 거였어요!”

처음 본 시체들이 은용과 도망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괴물을 만난 것이고 운 좋게 그녀만이 살아남아 도망치다가 강간의 위기에서 준영을 만난 것이었다.

“일단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군.”

“으, 그냥 안 가면 안 되나요? 정말 위험한데?”

“나는 강하다.”

“다섯 명이라니까요! 게다가 리더는 B등급이라고 했어요!"

“5,000명이 있어도 괜찮다.”

“어후, 진짜 아저씨는 자기 등급도 모른다면서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준영을 보며 은용은 한참 갈등했다. 저 신기한 능력도 좋지만, 그곳에 가면 분명 도망친 자신부터 괴물의 먹이로 던져 줄 것이다.

준영은 슬슬 귀찮게 느껴졌다. B등급이 있든 뭐든 자신이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그때,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라고? 흠, 그래. 알았어.”

‘또 지랄이네. 또 지랄이야.’

은용의 속마음도 모른 채 인형과 잠시 속닥거린 준영은 은용의 눈을 지긋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각성자다. 그곳에서도 굳이 나를 적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같은 편으로 회유하려 할 수도 있다.”

준영이 인형과 나눈 대화는 은용을 안심시켜 주자는 것이었다. 아직 그의 실력에 대해 은용이 제대로 모르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래서 일단은 은용을 안심시키려 좋은 방향으로 얘기했다. 그들이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면 죽이려 할 수도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널 잃어버린 여동생으로 하도록 하지.”

그 말에 은용은 턱에 주먹을 괴고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동생이요? 흐음, 내가 예뻐서 손해인데. 음, 그래요. 그럼 저한테도 함부로 못하겠네요.”

“그래.”

“약속했어요!”

“알았다.”

그제야 은용은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각성자의 가족이라면 이 시대의 새로운 귀족이나 다름없었다. 사돈의 팔촌 정도만 되어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물론, 생존 본능은 뛰어나지만, 그 정도로 한번 믿어 보는 은용이 순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준영도 사회생활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까마득한 시간을 그 기억과 살육으로 보냈다.

그렇게 살아오며 쌓인 사고방식은 자신이 한 말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기, 언니는 계속 업고 다닐 건가요?”

“응?”

다시 방향을 되돌아가던 중에 은용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 또 인형 어쩌고 하면 사단이 날 것이 빤했다. 그래도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자신이 나서서 사고를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언니도 매번 업혀 다니기 힘드실 테고… 그러니까…….”

“누나도 각성자다. 힘들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아하, 그렇군요… 가 아니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편한 건 다르죠!”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준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아무래도 저 인형 언니는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번에 확실히 잡지 않으면 앞으로의 여정에 계속 방해가 될 수 있었다.

“어… 일단 오빠가 휠체어 같은 걸 만드는 게 가능하면 그걸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음…….”

그렇잖아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고려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자인 은용이 그리 얘기하니 더 마음이 쏠렸다.

“그렇게 하지.”

몇 번 손을 휘저어 상품 검색을 한 준영은 최고급 휠체어를 꺼냈다. 지구가 망하기 전, 대기업 회장님들이나 타고 다닐 법한 항공기 소재의 휠체어였다.

“됐나?”

조심스레 휠체어에 인형을 앉힌 뒤 물었다.

“네, 그리고 담요랑 목도리, 장갑, 모자, 마스크도 꺼내 주세요.”

“그건 왜?”

“언니가 각성자라도 몸이 좀 불편하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러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최대한 가려 주는 게 언니한테도 편해요.”

“그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준영은 불쾌했다. 감히 그녀를 보고 누가 뭐라 한단 말인가. 자신은 누나의 몸이 불편해도 상관없었다. 누가 뭐라 하고 시비를 건다면 박살을 내면 그만이었다.

“참내, 아저씨가 여자 마음을 알아요? 여자는 차라리 조금 불편해도 남들한테 구경거리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요!”

“으음…….”

묘한 박력이 느껴졌다. 여자가 여자의 마음을 아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누나의 마음도 있을 텐데 자신이 싫다고 고집 부리는 건 오히려 이기적인 것 같았다.

“내 말대로 해요. 아저씨는 언니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길 바라요? 그래도 언니가 원하지 않을 걸요? 그쵸, 언뉘? 어맛, 봐요. 언니도 고개 방금 끄덕였잖아요!”

사실 바람이 살짝 불어 인형의 머리카락이 흔들린 것이지만, 말은 그럴 듯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자신의 화장 안 한 민얼굴이나 안 좋은 점은 보여 주기 싫다는 식의 얘기를 누나에게 들은 적이 있는 거 같았다.

“으음…….”

고민을 해 봤지만, 역시 여자의 마음은 같은 여자가 안다고 은용의 말을 듣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자신도 사실 누나를 보고 사람들이 궁시렁 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매번 사람들을 때려죽일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은용 말처럼 자신은 여자 마음을 잘 몰랐다.

“좋다. 네 말이 맞는 거 같군.”

“그죠? 언니도 좋아해요.”

누나가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은용이 좋아하는 건 알 것 같았다.

“받아라.”

최고급 브랜드의 물건들이 쏟아졌다. 은용은 쏟아지는 물건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히야, 이런 걸 내가 두르고 다녀야 폼이 날 텐데.’

전쟁 전이었다면 눈이 돌아가게 갖고 싶었을 물건들이다. 특히 와인색에 금색의 명품 로고가 박힌 목도리가 꽤나 탐이 났다. 아쉽지만 은용은 입을 다시며 인형 티가 안 나게 열심히 싸맸다.

“덥지 않겠어?”

“언니도 각성자인데 뭘 걱정해요? 언니가 마음 편한 게 더 중요해요. 알겠어요?”

“아, 알았다.”

할 말이 없어진 준영은 머리만 긁적였다. 은용이 누나를 뺏어 간 것만 같았다.

‘으음, 누나도 여자가 없어서 외로웠을 테니.’

잠시의 실랑이가 끝난 뒤, 둘은 다시 걸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휠체어는 은용이 자진해서 민다는 것이었다. 나름 밥값을 하려고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것이지만, 준영은 그녀를 잘 챙기는 은용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휴, 다행이야 잘만 숨기면 사고는 없겠어.’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한 세상이긴 하지만, 인형 가지고 칼부림이 나는 것만큼은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는 이름이 뭐에요?”

“몰라도 된다.”

‘네, 네. 그 나이에 인형에 이름 붙인 게 창피하겠죠. 흥흥!’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여전히 인형에 관해서는 거리감 있는 준영의 반응에 은용은 겉으로 말은 못하고 입술만 빼죽였다.

인형에 대한 정리가 끝나고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친해졌다 생각한 은용은 재잘거리며 틈날 때마다 준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제 친구 희숙이가요.”

“듣고 싶지 않다.”

“눼, 눼.”

두 사람의 걸음은 극히 느렸다. 준영은 급한 일이 없으니 천천히 은용의 걸음에 맞추었고 은용은 최대한 늦게 가고 싶어서 쉴 틈만 나면 푹 쉬었다. 중간중간 괴물이 소수 나타났지만, 준영의 한 수에 그냥 사라질 뿐이었다. 정말 든든한 미친 아저씨였다.

그렇게 하루면 갈 길을 사흘이나 걸려 도착했다. 물론, 밤마다 안락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받은 은용은 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더더욱 늦게 걸었다. 당연히 준영은 그러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그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따르릉!

4일째가 되는 날 오후, 멀리서 자전거 벨을 울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는 일곱 명. 다들 뾰족한 뿔이 달린 목걸이와 팔찌들을 차고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가장 앞 선 남자는 낡은 하얀 깃발 하나를 들고 있는데 붉은 궁서체로 ‘인생한번’ 이라고 진지하게 쓰여 있었다.

“헉! 욜로회!”

은용이 놀라 준영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욜로회?”

“그, 그러니까 산적 같은 거예요. 산적!”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게 있나?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을 텐데?”

“만만한 정착지를 습격하거나 좀 힘들 거 같으면 서로 교류도 하고 그래요.”

“돌아다니기는 위험하지 않나?”

“어차피 자기 구역의 괴물들은 자주 정리하니까요. 일반인들한테나 무섭지, 몇 마리 정도는 각성자한테 별 위협도 안 되잖아요? 많으면 도망가면 그만이구요. 우리랑은 사는 세상이 달라요.”

“욜로회가 무슨 뜻이지?”

“뭐, 그러니까 세상 망하기 전 잠깐 유행하던 말인데 ‘인생 한 번뿐이니까 이 순간을 즐기자’? 그런 뜻인데 저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오늘을 막 산다’ 이렇게 써요. 으, 정말 싫어.”

“웃기는 놈들이군.”

은용이 준영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욜로회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을 가진 듯했다.

“저들에게 당한 적이 있나?”

“직접 당한 건 아닌데 제가 있던 곳과 교류하거든요. 와서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소문도 안 좋은지, 밖에서 만나면 끌려가서 괴롭힘 당하다가 죽어요. 실제로 제가 있던 곳에서도 시비 걸려 죽은 사람도 있고요.”

“너희가 있던 곳은 왜 습격하지 않았지?”

“각성자 수는 다섯 명이라 욜로회보다 더 적긴 한데 리더가 B등급이라니까, 싸우기 좀 부담스러운 상대니 그냥 협력하는 거죠."

“욜로회는 몇 명이지?”

“잘 몰라요 그냥 각성자만 열 명 넘는다고 들었어요. 그나저나 저쪽 일곱 명인데 괜찮겠어요?”

“괜찮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욜로회원들이 도착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사람 한두 번 죽여 본 게 아니었다.

“형제들 어디로 가시는가?”

선두에 있던 대머리 남자가 건들거리며 말을 걸었다. 깨끗해진 은용을 보고 욕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깨끗하게 꾸민 여자는 높은 남자의 것이니 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교복이라니. 이런 환경에서는 남자의 욕망을 충분히 건드릴 만한 옷차림이었다.

‘촌스럽군.’

그들을 본 준영의 첫 생각이었다. 가죽점퍼에 뾰족한 것들이 달린 장신구들이라니. 하지만 왜 옛날 만화나 영화에서 그런 복장들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시대에서는 일반인들에게 나름대로 위협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

“형제여?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응?”

총을 메고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각성자는 아니었다. 그 외에도 마찬가지. 가장 뒤에 있는 키가 매우 크고 마른 남자만이 각성자였다.

“우리가 괴물도 아닌데 쫄은 거야? 그런 거야?”

“어허, 그놈 고추 있나 보자.”

“여자가 꽤 예쁜데, 애인이야?”

“난 남의 애인 먹는 게 제일 좋더라. 으하핫!”

겁을 먹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떠들어 댔다. 맨 뒤의 각성자만 귀를 파며 귀찮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무리의 리더로 보이지만, 인원들이 통제가 안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자가 둘인 거 같은데 그냥 끌고 가자.”

“남자는?”

“그냥 죽여.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 주식이 새끼네 가는데 끌고 가서 뭐해?”

“그럴까?”

“야야, 그런데 이거 뭐야? 여자 한 명은 병신이야? 몸은 또 왜 둘둘 말아서 예쁜 얼굴을 안 보이게 했어?”

선두의 대머리가 휠체어를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괜찮아! 병신도 벌리면…….”

빠각!

대머리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강한 타격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준영의 손에 단단해 보이는 강철 단봉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가리키던 대머리의 손목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나름 부러뜨리진 않으려 준영이 힘 조절을 한 것이었다.

“으으아아아악!”

“사람을 놀렸다고 죽이는 건 과하니 이 정도만 하겠다. 꺼져라.”

준영이 싸늘하게 말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변화였다. 지구에 처음 왔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단번에 목을 잘라 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것을 모르는 대머리의 일행들이 잽싸게 총을 들어 겨눴다.

“으아아! 으아아! 이 새끼 죽여! 쏴! 쏴 버려!”

“여, 여자는?”

한 명이 아쉬운지 머뭇거리며 말했다. 휠체어 여자 뒤에 준영이 서 있고 은용은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관리도 제대로 안 된 총을 갈겼다가는 여자들도 죽을 수 있었다. 게다가 대머리는 예쁘고 깨끗한 여자들과 자주 즐기지만, 자신들은 그렇지 못했다.

“x발! 지금 여자가 문제야? 내가 다쳤잖아! 아프잖아! 개 같은 것들, 다 죽여 버려! 너, 내 동생한테 뒤지고 싶어? 주식이한테 가면 여자 달라고 해!”

“아, 알았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여자라도 받아서 즐겨야 할 판이었다.

“쏴 버려!”

대머리 사내가 부어오른 손목을 붙잡고 자리를 피했다.

탕탕탕탕!

“꺄악!”

사람을 쏘는 데 절대 주저함이 없는 것을 보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자신들보다 약해 보여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최대한 여자들을 맞추지 않으려 준영에게 총구를 집중했다.

“뭐, 뭐야…….”

하지만 몇 발을 갈겼는데도 셋 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준영은 그들을 침중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은용은 놀라서 두 눈을 꼭 감고 준영의 팔을 꽉 붙잡을 뿐이었다.

“총이 정비를 안 해서 그런가?”

“쏴! x발! 막 쏴! 개 같은 것들아!”

탕탕탕탕!

조금 더 가까이 가서 갈겨 댔지만, 아무도 맞지 않았다. 준영이 마력을 방출해 총알이 흩어지게 한 것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 이거 뭔가 이상한데?”

“설마…….”

대머리 일행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뒤에서 귀찮은 듯이 구경만 하던 각성자도 슬그머니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 새끼, 각성자 아냐?”

탕탕!

대머리까지 한 손으로 총을 쥐고 쏴 보지만, 여전히 아무도 맞지 않았다. 은용도 신기한 눈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각성자다!”

“뭐, 뭐야? 떠돌이 각성자가 아직도 있었어?”

그들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자신들이 총을 가졌어도 각성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모두의 눈이 뒤에 있는 각성자에게 향했다.

“야야, 서원호. 저 새끼 좀 부탁한다.”

대머리 사내가 살짝 부탁조로 말하자, 서원호란 사내는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나섰다. 사실 그는 각성자와 제대로 싸워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멍청한 새끼들. 요즘 걱정도 없이 살 만하니 너무 나태해졌어. 이런 시기에 소수로 다닐 정도면 각성자란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일단 같은 각성자니 설득을…….’

자신도 생각지 못했으면서 대머리를 탓한 그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메마른 준영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쉽게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죽이나?”

“이봐, 그게…….”

서원호의 말이 중간에 잘렸다.

“이런 세상에 사람 목숨이 아무리 파리 같아도 그렇게 쉽게 총을 쏠 수 있는가?”

“야야, 내 말 좀 들어 봐. 같은 각성자끼리 왜 그래?”

서원호는 일단 대화로 풀어 가려 했다. 자신은 E등급 각성자였다. 게다가 자신의 마력으로 준영이 각성자인지도 눈치 채지 못했고 저렇게 따로 다닐 담력도 없었다. 그 어떤 점을 미루어 보아도 자신보다 강한 것이 확실하니 싸우기가 싫은 것이었다.

“욜로회라고 했나?”

준영은 들은 체도 안하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봉을 앞으로 내민 채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욜로란 말 좋다. 너희는 오늘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