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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천사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왔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아니 갑자기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구 곳곳에 거대하고 하얀 애벌레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정말 뜬금없이, 마치 차원 이동을 한 것처럼 하늘에 나타나 그 징그러운 배를 열고 괴물들을 떨어뜨렸다. 그 수가 추정 된 것만 수십억 마리.

세계 곳곳에 떨어진 괴물들은 무차별적인 학살을 시도했다. 그야말로 급작스러운 공격. 특히 도시의 사람들은 대응은커녕 도망조차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전조도 없이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기습이라… 대응하기가 힘들었겠군.’

준영의 생각처럼 하늘에서 바로 도시 내부로 내려와 학살을 시작하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공격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군대는 지휘 체계가 무너져 독자적으로 전투를 벌여야 했고, 제대로 뭉치지 못한 각성자들은 각자의 세력으로 괴물들과 싸워야 했다.

다행인 점은 군대의 무기가 괴물들에게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나도 많았고, 영역 및 전술 지역의 개념도 없이 모든 곳에 떨어진 괴물들을 제대로 처리하기란 불가능했다.

게다가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괴물들과의 싸움은 대부분이 도심지에서 이루어졌다. 당연히 건물과 시설들은 빠르게 파괴되어 갔다.

또한 급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사회 인프라가 모두 망가진 상태에서는 군수물자의 보급이 원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군대는 사람들을 지키기보다는 유지를 위한 선택을 하였고, 남은 물자들을 현지 조달하거나 약탈하며 괴물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고달파지는 건 당연히 일반 시민들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각성자에게 몰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남은 물자와 함께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싸운 덕에 괴물들의 수는 급감했지만, 인류는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고 그곳에서 증식된 괴물들이 다시 밀고 들어왔다.

그중에서 인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유럽에서 나타난, 무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중급 천사와 상급 천사의 등장이었다.

개체는 적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몇몇 나라는 최후의 힘으로 핵을 사용해 겨우 그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그렇게 5년 정도가 지나자 세계의 대부분은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살 수 있는 지역은 몇몇의 군벌들과 소수의 각성자들이 만든 세력만이 남았다고 한다.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며 자신들의 영역에서 그들을 몰아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괴물들은 다시 증식하고 있으며 인류의 기술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대로 간다면 다시 늘어난 괴물들에 의해 결국은 멸망하고 말 것이었다.

“그렇군.”

모든 이 얘기를 들은 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멍청하게 당했군.’

물론 단합을 했어도 동시다발적은 습격한 괴물들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각성자가 괴물보다 강하다 하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답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싸우는 와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더 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지?”

“에, 제가 듣기로는 뭐 거의 다 멸망하고 소수들만 남아서 싸우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차피 연락도 이제 안 되니까 다들 모르겠죠?”

“이곳, 그러니까 한국은?”

“뭐, 보시다시피 여기도 각자 살고 있는 거죠.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 강한 각성자가 한국 사람이래요. 그래서 그 사람이 더 강한 괴물들이 못 오게 사람들을 모아 막고 있대요. 우리나라가 그나마 제일 괴물들이 적고 안전하다나, 뭐라나? 근데 본 적은 없어요. 그냥 요새 조금 살 만하니까 희망 찬 설레발일지도?”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강한 각성자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지금 이곳에 괴물들은 많이 없는 건가?”

“그게 원래 이 주변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요새 들어서 다시 생기고 있어요.”

“번식이 빠른 놈들이니까.”

“그래서 주기적으로 각 정착지의 각성자들이 자신들의 영역 정도만 처치하고 있어요.”

“그 이상은?”

“그 이상은 힘들죠. 너무 멀리 나갈 수도 없고, 나가 봤자 자기들 힘만으로는 다 못 없애고… 자기 구역만 지킨다? 뭐, 이런 거예요.”

요컨대 일단은 소강상태라는 것이었다. 괴물들의 습성상 번식이 빠르더라도 생기는 족족 주변으로 퍼지니 처음처럼 대규모로 나타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각성자는 몇 명 정도나 있지?”

“저야 모르죠. 많은 곳은 수십 명도 있다는데, 적은 곳은 두세 명? 제가 있던 곳도 다섯 명인가 그랬어요. 그래도 괴물 수십 마리는 순식간에 잡더라고요. 가끔 큰 괴물이 하나씩 온 적이 있는데 그것들도 잡을 정도로 강해요. 그날은 아주 먹을 복 터지는 거죠.”

‘중급 천사를 잡을 정도는 되나 보군.'

“그들이 왜 각성자를 더 만들지 않는 거지?”

“각성자요?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요?”

“일반인이 괴물을 잡으면 된다. 많이.”

“에이, 어떻게 잡아요. 그런 얘기가 있기는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믿어요. 절대 안 알려 줘요. 자기 측근이나 가족들만 그 비밀을 공유하거든요.”

“그걸 왜 안 믿는 거지?”

“어떤 사람이 몇 십 마리 잡아 봤는데 안 됐대요. 그 사람은 결국 죽었고요. 그리고 살아남은 군인들이 그럼 죄다 각성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본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아무도 안 믿어요.”

‘그렇군.’

알 것 같았다. 각성자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의식하고 직접 죽여야 그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게 시스템의 법칙이었다. 선발대는 최초의 사냥 시 창으로 괴물의 심장이나 머리를 파괴하며 각성을 준비했다.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총을 쏴 죽인다면 어느 정도 마력이 흘러 들어올 순 있으나 온전히 다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었다.

미사일로 죽인다고 버튼을 누른 사람이 그 혜택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과 의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히 일정 이상의 거리 안에 있어야 마력이 흡수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마력은 그저 자연으로 다시 흩어질 뿐이었다.

즉, ‘내가 죽였다’라는 확실한 인식이 있을수록 마력의 흡수가 용이했다. 게임으로 치면 자신이 죽이고 얻은 경험치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총이나 활로 죽인다고 마력을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분명 살아남은 군인 중에 각성한 자도 있었을 것이다.

각성을 하기 위해 잡아야 하는 숫자는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기에 같은 수를 잡았어도 누구는 각성하고, 누구는 각성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터였다.

“제대로 안 알려 준 것이군.”

아마 각성자들은 지금의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 사람들을 각성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소수의 측근들만 각성시켜 그들의 성장까지 통제하고 있을 것이다. 괴물을 잡지 않는다면 자신보다 더 강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추악하군.’

만약 사태가 지금보다 더 심각하다면 그들도 살기 위해 다른 자들을 최대한 각성시켰을 것이고, 분명 초창기에 그렇게 각성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금, 충분히 자신들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테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어쩌면 은용의 말대로 정말 강한 각성자가 괴물들을 저지하고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식량은 어떻게 조달하지?”

예전처럼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동물을 사육할 수도 없었다. 그럴 만한 인재들도 별로 없을뿐더러 가공식품을 만들 방법이나 공장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다. 어차피 대부분의 동물들도 괴물들에게 먹혀 얼마 남지 않았다.

“뭐, 다들 작게 농사짓거나 동물도 키우는데, 그런 건 거의 높으신 분들이나 먹고 보통 사람들은 괴물 시체만 먹어요.”

“계속 조달이 가능한 건가?”

“괴물들하고 전투 때마다 시체는 넘치도록 나오니까요 보존도 오래 되고요. 맛은 없는데 그거라도 먹어야죠.”

“그렇군.”

“그리고 몇 마리씩은 잡아 와서 못 움직이게 가둬 놓고 사지를 잘라요. 으엑. 그래도 조금 지나면 재생되니까 또 먹을 수 있구요. 그런데 계속 재생하다 보면 결국 괴물도 죽더라고요.”

“뭐? 사육한다는 뜻인가?”

“뭐, 그런 셈이죠. 팔을 잘라서 먹으면 또 자라니까요. 계속 잘리고 재생하고 그러다가 죽어요.”

“큭, 큭, 하하하!”

신박한 생각이었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상상도 못 했다. 재생력을 이용해 식량을 조달하다니. 그리고 그것을 선심 쓰듯이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대단해. 대단하군. 하하하!”

정말 웃음이 나왔다. 인간들의 생존 본능이란 정말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그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괴물들이 재생을 못할 때까지 잘라 먹다니.

“그게 그렇게 웃겨요? 어떤 각성자는 묶어 놓고 회로도 떠먹던데?”

“회? 크크큭.”

그건 더욱더 대단하다. 아무래도 괴물들이 행성을 잘못 침략한 거 같았다. 보통은 말리거나 구워서 먹는 게 보통인데, 그 와중에도 맛을 보겠다고 회까지 떠먹다니.

자신의 능력이 이럴 때는 정말 다행인거 같았다. 인간들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미쳐서 그런가? 웃음 포인트가 이상하네? 그게 그렇게 웃긴가?’

한참을 웃은 준영은 일어나서 텐트를 치웠다. 인형과 다시 속닥거린 그는 은용을 보며 말했다.

“혹시 이자들을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

준영은 자신과 같이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아니요. 몰라요.”

“그래.”

준영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네가 있던 곳으로 간다.”

“못들은 걸로 해도 돼요?”

“네가 있던 곳. 네가 도망쳐 온 그곳으로 다시 간다.”

“아니 왜요! 거기 위험하다니까요! 각성자도 다섯 명이나 있어요! 전에 만난 그 세 명하고는 달라요! B등급이 있다고요!”

“나도 각성자다.”

“그건 그렇지만… 거긴 각성자가 다섯 명이나 있는데.”

“안내해라. 누나가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확인해야겠다고 한다.”

‘아나, 할 말 없으면 인형 언니 핑계네.’

“에휴…….”

은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는 정말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준영과 떨어지는 것도 싫었다. 잠깐에 불과하지만 한번 맛본 꿀맛을 포기할 수 없는 은용이었다.

“그럼 아저씨, 저 거기서 무슨 일 안 당하게 꼭 지켜 주셔야 해요. 알겠죠?”

“약속한다.”

“정말이에요. 꼭이요. 제 친구 희숙이가…….”

“듣고 싶지 않다.”

“네…….”

준영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은용이 해 준 얘기로는 부족했다. 대략적인 흐름은 알겠지만, 왠지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가면서 말씀 드릴게요. 그곳에 대해…….”

이동하며 은용은 한참을 주저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괴물 먹이로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