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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준영의 입에서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필터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누나 외에 다른 사람과 하는 대화라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누나와 대화할 때는 말이 잘 나왔는데 다른 사람과 말하려니 뭔가 어색하고 너무 어렵다는 점이었다.

‘너도 더러우면서!’

“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씻으면 정말 예뻐요. 정말이에요. 지금은 도망 다니느라… 흑, 저 정말 예뻐요. 인기도 정말 많았어요. 흑…….”

여자는 속마음을 숨긴 채 애원했다. 일단은 하자고 하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미쳐 있고 혼자 있으니 괴물이 많이 달라붙으면 위험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일단 피해요. 주변에 괴물들이 있어요. 저 혼자 겨우 도망친 거예요. 위험해요. 일단 자리를 피해요. 이렇게 있으면 안 돼요. 제발요.”

“괜찮다.”

“네?”

“천사들 약하다. 내가 전부 없앨 수 있다.”

“저, 정말이에요?”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는 자랑을 하고 싶었다.

“몇 마리가 와도 그놈들 약해.”

괜히 몸이 으쓱거렸다. 하지만 힐끔힐끔 여자의 반응을 보니 안 믿는 눈치였다. 그 때문에 준영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 하하. 정말 강하신 분이군요.”

인상을 보고 바짝 쫄은 그녀가 자라목을 하며 대답했다. 하긴 각성자가 되면 제일 낮은 등급도 괴물 여러 마리를 감당할 수 있다는데 그는 무려 세 명의 각성자를 한 번에 해치우지 않았는가.

여자는 그가 미쳤어도 강한 각성자긴 각성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그럼 전 이만 가도 될까요?”

그녀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말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름은?”

“네?”

“이름.”

“장은용이요…….”

“장은영?”

“은용이요!”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 아차 싶었다. 이름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잠깐 방심한 사이에 본심이 나와 버렸다.

“아, 헤헤. 은용이요.”

“은용, 은용… 이상한 이름이군.”

‘안 이상해!’

“누나,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응? 그래? 그럴까?”

은용은 미칠 거 같았다. 저 미친놈이 이제는 고개를 돌려 인형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제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내 이름은 이준영이다.”

“네네.”

“같이 간다.”

“어디를요?”

“사람들이 있는 안전한 곳까지 내가 데려다 준다. 누나가 그게 좋겠다고 한다.”

“아니요, 저는…….”

“같이 간다.”

“…네.”

눈물이 다시 나올 거 같았다. 준영이 아니더라도 미친놈하고 같이 다니는 것은 위험했다. 언제 목이 날아가고 잡아먹힐지 모른다. 그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나았다.

“가자.”

준영은 인형과 소근소근 대화하며 걸음을 옮겼다. 은용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갔다. 저 미친놈이 뭐라 하는지 듣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따라만 가는데 준영이 걸음을 멈추고 은용을 바라보았다.

의아함에 같이 빤히 바라보자 준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냄새가 지독하군.”

‘당신도 냄새 나거든!’

“네… 죄송…….”

속마음과 달리 은용의 대답은 온순한 양처럼 나왔다. 무언가 억울했지만 딱히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고개를 다시 푹 숙이고 말았다.

‘쳇, 요즘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준영은 딱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저 누나가 시킨 대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으러 갈 뿐이었다.

‘도망가야 해.’

은용은 슬금슬금 걸음을 늦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딱히 준영을 따돌릴 만한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각성자는 초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망가도 금방 뒤따라 잡힐 것이고 그 뒤엔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저 미친놈은 계속 인형과 속닥이며 가끔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봤다. 은용은 그게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어떡하지?’

이도 저도 못한 채 거리만 벌리고 터벅터벅 따라만 갔다.

미친놈과 같이 있으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뒤, 별의별 놈이 다 생겨났다.

원래부터 인성이 썩은 놈은 물고기가 물 만난 듯이 성질을 뽐내었고, 현실의 잔혹함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으, 안 돼.’

예전 생각이 떠오르자 다시 겁이 났다. 무리 지어 괴물들을 피해 숨어 다닐 때, 계속되는 공포에 미친 남자가 자고 있던 사람들을 도끼로 쳐 죽인 일이 생각났다.

그 도끼에 머리가 찍혀 죽은 사람이 바로 은용의 옆자리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이후, 그녀는 미친놈만 만나면 극도로 조심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괴물을 끌어오는 놈, 사람을 먹는 놈, 끊임없이 발광하는 놈 등 별 미친놈이 무리에 한둘씩은 꼭 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모두 조금씩은 미쳐있는지도 몰랐다.

도덕이 버려지고 본성만 남자, 사람은 때론 괴물보다 더 잔인해졌다.

이것이 은용이 자신을 구해 준 각성자를 만났음에도 그가 미친놈이란 생각이 들자마자 혼자 도망가려는 이유였다. 너무나 못 볼꼴을 많이 봤기에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 버렸다.

크에엑!

아무 말 없이 반나절 정도를 걷자 괴물 몇 마리가 드디어 모습을 보였다.

“역시 천사들이군. 그곳과 똑같아.”

아무렇게나 삐죽 튀어나온 흉측한 이빨과 핏빛 눈을 가진, 온통 하얀 몸과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는 괴물들은 준영이 있던 곳에 존재하던 것들과 완전히 똑같았다.

일명 천사라 불리는 그것들은 멀리서 준영과 은용을 보자 빠르게 날아왔다.

크어어어억!

준영이 알고 있던 괴물들과 다른 점이 하나가 있었다.

상대방을 위협하려는 괴성과 표정에 나타나는 비웃음. 바로 인간을 많이 먹어 본 놈들만이 지을 수 있는 포식자의 여유였다.

준영이 있던 곳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 저런 표정은 짓는 괴물은 없었다. 아니, 괴물들에게 그런 표정을 지을 여유조차 있지 않았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으, 으아…….”

은용은 뒷걸음질 치며 머리를 잽싸게 굴렸다. 지금 미친놈은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고 괴물들은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도망갈 기회였다.

“이잇.”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경험이 몸에 익은 듯 다리가 떨리지도 않고 쭉쭉 뻗어 나갔다.

뛰기 시작할 때 잠깐 돌아보니 미친놈은 도망가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괴물이 앞에 있으니 바로 쫓아오진 못할 거야. 게다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겁먹은 걸 수도 있어.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그러면 나도 위험해.’

각성자들의 등급에 대해 잘 모르는 은용은 혼자인 준영이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집중해서 뛰었다.

도망갈 때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남은 비결 중의 하나였다.

“허억, 허억.”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원래 지나온 길로 가지 않고 방향까지 바꿔서 뛰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도망가면서도 최대한 은폐, 엄폐가 될 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하늘을 나는 괴물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한 다년간의 경험이 알려 준 생존법이었다.

“허억, 헉… 헉…….”

한 시간을 넘게 질주를 한 은용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은 쉬어도 될 거 같았다.

“허억, 허억. 살았어. 난 오늘도 살았다고. 하악…….”

왜 살아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독한 년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걸 어찌한단 말인가. 자신은 생존 본능에 충실한 여자였다.

둘러보니 도시의 외곽 쪽인 거 같았다. 건물도 꽤 있는 것이 구석에 숨어서 조금 쉬다가 괴물의 시체를 찾아 먹거나 다른 먹을거리를 찾으면 될 거 같았다.

“후우…….”

적당한 곳을 찾아 앉은 숨을 골랐다. 하루하루가 진이 빠졌다.

은용이 자리한 곳은 반쯤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있는 곳이었다.

하늘도 가리고 주변에 돌무더기와 잔해들이 쌓여 있어 몸을 숨기기는 좋았다. 그 잔해들의 틈으로 기어 들어갔다.

걸리면 도망가기가 쉽지 않지만, 어차피 괴물들에게 발각되면 일반인은 따라 잡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확실하게 숨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다.

“미친놈은 죽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자신을 구해 주고 곱게 미친놈 같았는데 너무 겁을 먹었나 싶었다.

“아니, 아니야 갑자기 돌변하는 게 미친놈이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주머니에서 육포 하나를 꺼냈다 괴물의 시체를 말려서 만든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비상식량이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뭐라도 먹어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쯔읍, 맛없어”

물이 없어 아주 천천히 혀로 굴리며 씹어 먹는 와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덜컥, 드륵.

무언가를 치우는 소리.

은용은 안쪽으로 조금 더 몸을 집어넣었다.

터억, 턱.

소리가 잠시 멈췄다

탁탁.

다시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터억, 터억, 콰앙, 쾅!

집어 던지는 소리가 커지고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돌들과 잔해들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이곳을 누군가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미친놈인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빨리 쫓아왔다.

콰앙! 터엉!

들썩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은용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떨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위쪽에 있던 돌과 자재들이 떨어지며 틈이 더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소리가 다시 멈췄다. 은용은 자신이 들어온 그 틈새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의 정적 후.

괴물의 얼굴이 틈으로 쓱 들어왔다.

크아아아아!

“까아아악!”

은용이 기겁하며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가 보지만 등에서 막혀 버렸다. 애초에 안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던 것이다.

크아아아!

괴물의 큰 덩치가 불규칙적인 틈새를 짓이기며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연신 소리를 지르고 팔을 뻗어 은용을 잡으려 했다.

“아아, 어떻게 여기를…….”

아마 어디선가 은용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본 것이 분명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가 확인하지 못한 사각이 있던 것이었다.

“흐윽, 어떻게 살아왔는데. 정말 이렇게 끝인 거야?”

절망이 온몸을 휘감았다. 지금까지 눈앞에서 죽은 사람들처럼 자신도 찢기고 먹이가 될 것이었다. 허무함에 눈물만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운과 노력으로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그 운이 다한 거 같았다.

“엄마, 아빠. 어어엉.”

크아아아!

괴물의 상반신이 거의 다 들어왔다. 뻗은 팔이 은용의 발 앞까지 닿았다. 틈에 걸린 큰 날개만 빠진다면 그녀를 붙잡고 씹어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날개가 돌에 긁히며 빠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을 때.

죽음의 공포가 몸을 잠식하여 눈을 감는 그 순간.

시잉―

아주 얇고 긴, 마치 바람이 작은 구멍을 빠져나가는 듯한. 음악의 선율 같은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환청인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던 그때.

콰앙!

은용의 머리 위의 자재들이 뚫리며 한 자루의 창이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그 힘에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 흩날렸다.

창은 그대로 괴물의 머리를 정확하게 뚫고 끝없이 뻗어 나갔다.

주변에는 여파가 하나도 미치지 않고 정확히 창의 크기만큼만 구멍이 뚫린, 놀랍도록 정교한 힘의 기술이었다.

툭.

한 박자 늦게 괴물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 어어?”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은용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괴물의 시체를 발로 한번 세게 차고 엉금엉금 기어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으…….”

조금 떨어진 뒤쪽에 미친놈이 보였다 여전히 이상한 인형을 등에 메고 있어 무서웠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약간은 달라 보였다.

저벅저벅.

준영이 다가와 은용의 앞에 섰다. 그러고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흑, 죄송, 죄송해요. 혼자, 흑, 도망가서, 흑, 끄윽, 흑.”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살아남은 안도감 때문인지, 고마움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울고 있는 은용의 모습을 바라보던 준영이 메마른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가까이서 보니 냄새가 더 지독하군.”

“흐윽, 아저씨도요. 흑, 흐윽.”

준영은 인상을 쓰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용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비비며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