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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뜻밖의 수확(2)
“각하! 헌데 계속 세워놓으실 참입니까?”
“아하, 그런가? 경황이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소. 다들 앉으시오.”
그러더니 중앙에 놓인 소파에 가서 그가 앉고, 두 사람은 그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마크 리치가 말했다.
“나이를 떠나서 여기 있는 고 회장과 저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각하를 소개시켜주려고 먼 아시아에서 초청까지 했는데, 겨우 기숙사 건 하나를 주십니까?”
“부른 당신이 책임져야지, 그걸 왜 나한테 미뤄?”
카다피의 말에도 마크 리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 친구가 각하에게서 구매하는 제 리비아 산 원유를 모두 사가기로 했단 말입니다.”
“그래? 생각보다는 통이 큰 친구로군. 그렇다면 하나 더 주지. 그런데 이것 또한 건설 여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맡겨만 주시면 충분히 건설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승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카다피가 이내 말을 꺼냈다.
“500㎞ 밖 사막 한가운데서 생산된 원유를 토브룩(Tobruk) 항까지 파이프라인을 통해 보내고 있는데, 이 거리가 원체 길다보니 중간쯤에서 압력을 높여줘야(boosting) 하오. 그런데 그 중간지점까지가 또한 사막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접근이 쉽지가 않소.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지점에 비행장 하나를 건설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열정적인 한국인은 못해낼 공사가 없습니다.”
“좋소! 당신들의 열정을 믿기로 하지.”
카디피의 말에도 인상을 찡그린 마크 리치는 볼멘소리를 했다.
“난공사라서 타 회사가 기피하는 공사를 주시는 느낌이군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무안했는지, 대소로 얼버무린 카다피가 말했다.
“물론 그렇기는 해. 하지만 이런 난공사도 무난히 끝내준다면, 정말 실력과 열정이 대단한 친구들이거든. 그땐 내 보장하건데, 더 큰 공사를 주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급히 고개를 꺾는 승지를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은 마크 리치가 갑자기 딴소리를 했다.
“각하! 배고픕니다.”
“아, 당신들이 장시간 비행을 했다는 것을 깜빡했군. 이만 식당으로 갑시다.”
“각하께서도 식사를 안 하셨습니까?”
“하긴 했지만, 나도 이참에 간식이나 좀 먹으려고.”
카디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두 사람도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랐다.
머지않아 그들은 식당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미트볼과 어린 양의 갈비를 여러 향신료를 써서 구워낸 음식이었다.
그런데 카다피의 음식은 달랐다. 그의 말대로 간식용인지, 절인 올리브에 구운 식빵 세 조각이 나왔다. 그들은 이내 말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답답했다.
그때 마침 카다피가 승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도 한국을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도 리비아를 잘 모르지 않소?”
“그렇습니다. 간간이 서방 통신사가 전해주는 뉴스가 보도되고는 하는데,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어떻게?”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습니다. 한데 각하도 항상 독재자로 표현되고 있어서 좋은 이미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흐흠…….”
“그러나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서구인들이 장악했던 석유기업을 국영화한 뒤로, 리비아 곳곳에 도로, 학교, 병원 등을 지었고, 노동자의 최저임금도 인상되었습니다. 더하여 국민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 사업에도 주력해, 리비아 국민의 문맹률을 90%에서 10%대로 떨어뜨렸다는 것까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마크 리치 회장이 왜 당신을 친구로 선택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터. 오늘부터 당신도 나의 지기요.”
“감사합니다, 각하!”
“하하하.”
승지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카다피는 연속해서 대소를 터트리며 아주 즐거워했다.
외국인들에게서 온갖 비난을 받고 있던 독재자인지라 외국인의 칭찬에 큰 갈증을 느끼고 있다가, 자신의 한 마디에 흠뻑 빠져드는 그를 보며 승지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위정자들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카다피도 마찬가지였다. 식사가 끝나자 그와의 면담시간도 끝났다. 일행은 카다피가 제공해준 헬기를 타고 다시 트리폴리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관저에 내리니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알라딘 호텔로 되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승지는 카운터에 신청해, 홍성기 건설사장과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10분을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연락이 되는 대로 자신의 방으로 연결해 달라고 해놓고는, 908호실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2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연결이 되었다.
[회장님, 저 홍성기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리비아에서 건설공사 2건을 수주했습니다. 한데 지급과 난공사입니다. 그런고로 빨리 이곳으로 직원을 보내서 우선 견적을 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큰 공사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작은 공사지만 2건의 공사를 무난히 마친다면 더 큰 공사를 주기로, 리비아의 국가원수인 카다피가 직접 약속을 했습니다.”
[역시 회장님은 노는 물이 다르십니다.]
“저랑 통화가 끝나는 대로 조선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하십시오. 최고의 고객이 되실 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니, 접대에 한 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전하시고요.”
[네, 회장님!]
“그럼 끊습니다.”
[네, 회장님!]
이후 승지는 마크 리치의 방으로 찾아가 다시 한번 한국방문 약속을 확약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승지는 비서실장도 찾아갔다.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하되, 귀국하는 대로 마크 리치와 함께 거제옥포 조선소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에 최적화된 노선을 수배하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런 다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승지는 샤워를 끝내자마자 곧장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효주 생각이 났다. 이어서 아픈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 * *
로마-동경-김해국제공항 노선을 택한 일행은 부산에서 일박을 했다. 간단하게 조식을 마친 일행은 곧장 긴급으로 서울에서 이송된 최고급 승용차 3대에 올라 금강 호텔을 떠났다.
부산에서 거제까지는 140㎞. 중간에 휴게소도 한 번 들러서 거제 옥포조선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5층 조선소 건물 앞에는 하영 사장을 비롯해 조선소 간부들이 줄줄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준 마크 리치와 승지는 휴게실로 잠시 장소를 옮겨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동안에 안전모와 안전화가 도착했다. 곧이어 이를 착용하고 마크 리치와 승지는 야드로 향했다.
드넓은 야드는 미리 알려주어서 그런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런 야드 끝으로 거대 골리앗 크레인 두 대가 보이고, 제1도크에서는 선박 한 척이 건조되고 있었다. 그리고 제2도크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크 리치가 하영 사장에게 물었다.
“지금 건조되고 있는 저 선박은 어떤 선박입니까?”
“화학제품 운반선입니다.”
“흐흠… 벌크선이야 범용선이니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라면 모두 건조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유조선은 다릅니다. 해서 묻습니다. 유조선 건조 실적이 있습니까?”
집안 내력대로 뼈대가 굵은 하영이었지만, 춥지도 않은 계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건조되고 있는 것이 화학선인데, 화학선은 유조선과 똑같은 공법이 적용됩니다. 단지 화학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장비가 추가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유조선도 당연히 건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은지 마크 리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승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주영 회장이 선박건조용 외자유치를 위해 롱바텀 회장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 말이 떠오르자 승지는 곧바로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화폐의 뒷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회장님! 이걸 잘 보십시오. 이 지폐에 그려진 배는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입니다. 영국의 철선 건조 역사는 1800년대부터지만, 우리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침략군을 궤멸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정말 자네의 조상들이 영국보다 3백년이나 앞서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말인가?”
승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을 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거짓 역사를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리고 화폐에 등장하면 세상이 다 알 터인데, 이것이 가짜라면 일본이 두고만 보고 있었겠습니까?”
“좋아. 문제는 납기일인데, 벌크, 유조 모두 수프라맥스(Supramax)급으로 상정하면 얼마 만에 건조가 가능하겠습니까?”
막 하영이 답을 하려는데, 마크 리치가 제지를 했다.
“아, 잠시 만요. 지금 자세히 보니 도크가 하나뿐인데, 4척이 동시 건조가 가능하겠습니까?”
승지는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답을 했다.
“보시다시피 제2도크도 곧 준공될 것이고, 나머지는 굴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됩니다.”
“굴대의 원리라니? 그게 선박건조에도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 뭣하면 굴대와 동시에 예인선을 동원한다면 충분히 배를 도크까지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도크는 비워놔야겠지요.”
미래중공업에서 이미 행한 바가 있는 공법이기 때문에 승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흐흠……. 자네는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신묘한 재주가 많아. 좋았어! 계약하자고.”
곧이어 일행은 발길을 돌려 사무동으로 향했다. 사장실로 들어온 일행은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즉, 설계도면을 첨부한 계약서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마크 리치 회장에게 제출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후 그 견적을 가지고 구체적인 가격협상을 벌인다는 내용까지 합의한 후에 마크 리치는 자리를 떴다.
잠시 자리에 남은 승지가 하영 사장을 보며 물었다.
“기술자는 충분합니까?”
“지금은 넘치지만, 만약 4척을 동시에 수주하게 되면 기술자가 턱없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안하겠습니다. 사내에 곧바로 기술훈련소를 설치하세요. 그렇게 해서 선박건조에 필요한 용접이라든지 각종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해서 만약 그 인원이 남아돌 때는 그 기술이 필요한 다른 계열사로도 전출시킬 수 있을 테니, 가급적 많이 양성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급 고개를 조아리는 하영의 태도를 보고 전보다 많이 공손해진 것 같아 승지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수완 좋게 마크 리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것하며, 중간에 말하는 것을 보니 선박에도 전혀 문외한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이내 사장실을 떠난 승지는 마크 리치와 합류했다. 이후 일행은 다시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김해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김포국제공항에 내렸다.
마크 리치의 동의 하에 1박2일 동안 사무실 및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각하! 헌데 계속 세워놓으실 참입니까?”
“아하, 그런가? 경황이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소. 다들 앉으시오.”
그러더니 중앙에 놓인 소파에 가서 그가 앉고, 두 사람은 그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마크 리치가 말했다.
“나이를 떠나서 여기 있는 고 회장과 저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각하를 소개시켜주려고 먼 아시아에서 초청까지 했는데, 겨우 기숙사 건 하나를 주십니까?”
“부른 당신이 책임져야지, 그걸 왜 나한테 미뤄?”
카다피의 말에도 마크 리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 친구가 각하에게서 구매하는 제 리비아 산 원유를 모두 사가기로 했단 말입니다.”
“그래? 생각보다는 통이 큰 친구로군. 그렇다면 하나 더 주지. 그런데 이것 또한 건설 여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맡겨만 주시면 충분히 건설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승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카다피가 이내 말을 꺼냈다.
“500㎞ 밖 사막 한가운데서 생산된 원유를 토브룩(Tobruk) 항까지 파이프라인을 통해 보내고 있는데, 이 거리가 원체 길다보니 중간쯤에서 압력을 높여줘야(boosting) 하오. 그런데 그 중간지점까지가 또한 사막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접근이 쉽지가 않소.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지점에 비행장 하나를 건설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열정적인 한국인은 못해낼 공사가 없습니다.”
“좋소! 당신들의 열정을 믿기로 하지.”
카디피의 말에도 인상을 찡그린 마크 리치는 볼멘소리를 했다.
“난공사라서 타 회사가 기피하는 공사를 주시는 느낌이군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무안했는지, 대소로 얼버무린 카다피가 말했다.
“물론 그렇기는 해. 하지만 이런 난공사도 무난히 끝내준다면, 정말 실력과 열정이 대단한 친구들이거든. 그땐 내 보장하건데, 더 큰 공사를 주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급히 고개를 꺾는 승지를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은 마크 리치가 갑자기 딴소리를 했다.
“각하! 배고픕니다.”
“아, 당신들이 장시간 비행을 했다는 것을 깜빡했군. 이만 식당으로 갑시다.”
“각하께서도 식사를 안 하셨습니까?”
“하긴 했지만, 나도 이참에 간식이나 좀 먹으려고.”
카디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두 사람도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랐다.
머지않아 그들은 식당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미트볼과 어린 양의 갈비를 여러 향신료를 써서 구워낸 음식이었다.
그런데 카다피의 음식은 달랐다. 그의 말대로 간식용인지, 절인 올리브에 구운 식빵 세 조각이 나왔다. 그들은 이내 말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답답했다.
그때 마침 카다피가 승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도 한국을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도 리비아를 잘 모르지 않소?”
“그렇습니다. 간간이 서방 통신사가 전해주는 뉴스가 보도되고는 하는데,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어떻게?”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습니다. 한데 각하도 항상 독재자로 표현되고 있어서 좋은 이미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흐흠…….”
“그러나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서구인들이 장악했던 석유기업을 국영화한 뒤로, 리비아 곳곳에 도로, 학교, 병원 등을 지었고, 노동자의 최저임금도 인상되었습니다. 더하여 국민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 사업에도 주력해, 리비아 국민의 문맹률을 90%에서 10%대로 떨어뜨렸다는 것까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마크 리치 회장이 왜 당신을 친구로 선택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터. 오늘부터 당신도 나의 지기요.”
“감사합니다, 각하!”
“하하하.”
승지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카다피는 연속해서 대소를 터트리며 아주 즐거워했다.
외국인들에게서 온갖 비난을 받고 있던 독재자인지라 외국인의 칭찬에 큰 갈증을 느끼고 있다가, 자신의 한 마디에 흠뻑 빠져드는 그를 보며 승지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위정자들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카다피도 마찬가지였다. 식사가 끝나자 그와의 면담시간도 끝났다. 일행은 카다피가 제공해준 헬기를 타고 다시 트리폴리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관저에 내리니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알라딘 호텔로 되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승지는 카운터에 신청해, 홍성기 건설사장과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10분을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연락이 되는 대로 자신의 방으로 연결해 달라고 해놓고는, 908호실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2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연결이 되었다.
[회장님, 저 홍성기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리비아에서 건설공사 2건을 수주했습니다. 한데 지급과 난공사입니다. 그런고로 빨리 이곳으로 직원을 보내서 우선 견적을 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큰 공사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작은 공사지만 2건의 공사를 무난히 마친다면 더 큰 공사를 주기로, 리비아의 국가원수인 카다피가 직접 약속을 했습니다.”
[역시 회장님은 노는 물이 다르십니다.]
“저랑 통화가 끝나는 대로 조선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하십시오. 최고의 고객이 되실 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니, 접대에 한 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전하시고요.”
[네, 회장님!]
“그럼 끊습니다.”
[네, 회장님!]
이후 승지는 마크 리치의 방으로 찾아가 다시 한번 한국방문 약속을 확약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승지는 비서실장도 찾아갔다.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하되, 귀국하는 대로 마크 리치와 함께 거제옥포 조선소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에 최적화된 노선을 수배하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런 다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승지는 샤워를 끝내자마자 곧장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효주 생각이 났다. 이어서 아픈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 * *
로마-동경-김해국제공항 노선을 택한 일행은 부산에서 일박을 했다. 간단하게 조식을 마친 일행은 곧장 긴급으로 서울에서 이송된 최고급 승용차 3대에 올라 금강 호텔을 떠났다.
부산에서 거제까지는 140㎞. 중간에 휴게소도 한 번 들러서 거제 옥포조선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5층 조선소 건물 앞에는 하영 사장을 비롯해 조선소 간부들이 줄줄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준 마크 리치와 승지는 휴게실로 잠시 장소를 옮겨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동안에 안전모와 안전화가 도착했다. 곧이어 이를 착용하고 마크 리치와 승지는 야드로 향했다.
드넓은 야드는 미리 알려주어서 그런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런 야드 끝으로 거대 골리앗 크레인 두 대가 보이고, 제1도크에서는 선박 한 척이 건조되고 있었다. 그리고 제2도크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크 리치가 하영 사장에게 물었다.
“지금 건조되고 있는 저 선박은 어떤 선박입니까?”
“화학제품 운반선입니다.”
“흐흠… 벌크선이야 범용선이니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라면 모두 건조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유조선은 다릅니다. 해서 묻습니다. 유조선 건조 실적이 있습니까?”
집안 내력대로 뼈대가 굵은 하영이었지만, 춥지도 않은 계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건조되고 있는 것이 화학선인데, 화학선은 유조선과 똑같은 공법이 적용됩니다. 단지 화학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장비가 추가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유조선도 당연히 건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은지 마크 리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승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주영 회장이 선박건조용 외자유치를 위해 롱바텀 회장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 말이 떠오르자 승지는 곧바로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화폐의 뒷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회장님! 이걸 잘 보십시오. 이 지폐에 그려진 배는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입니다. 영국의 철선 건조 역사는 1800년대부터지만, 우리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침략군을 궤멸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정말 자네의 조상들이 영국보다 3백년이나 앞서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말인가?”
승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을 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거짓 역사를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리고 화폐에 등장하면 세상이 다 알 터인데, 이것이 가짜라면 일본이 두고만 보고 있었겠습니까?”
“좋아. 문제는 납기일인데, 벌크, 유조 모두 수프라맥스(Supramax)급으로 상정하면 얼마 만에 건조가 가능하겠습니까?”
막 하영이 답을 하려는데, 마크 리치가 제지를 했다.
“아, 잠시 만요. 지금 자세히 보니 도크가 하나뿐인데, 4척이 동시 건조가 가능하겠습니까?”
승지는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답을 했다.
“보시다시피 제2도크도 곧 준공될 것이고, 나머지는 굴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됩니다.”
“굴대의 원리라니? 그게 선박건조에도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 뭣하면 굴대와 동시에 예인선을 동원한다면 충분히 배를 도크까지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도크는 비워놔야겠지요.”
미래중공업에서 이미 행한 바가 있는 공법이기 때문에 승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흐흠……. 자네는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신묘한 재주가 많아. 좋았어! 계약하자고.”
곧이어 일행은 발길을 돌려 사무동으로 향했다. 사장실로 들어온 일행은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즉, 설계도면을 첨부한 계약서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마크 리치 회장에게 제출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후 그 견적을 가지고 구체적인 가격협상을 벌인다는 내용까지 합의한 후에 마크 리치는 자리를 떴다.
잠시 자리에 남은 승지가 하영 사장을 보며 물었다.
“기술자는 충분합니까?”
“지금은 넘치지만, 만약 4척을 동시에 수주하게 되면 기술자가 턱없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안하겠습니다. 사내에 곧바로 기술훈련소를 설치하세요. 그렇게 해서 선박건조에 필요한 용접이라든지 각종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해서 만약 그 인원이 남아돌 때는 그 기술이 필요한 다른 계열사로도 전출시킬 수 있을 테니, 가급적 많이 양성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급 고개를 조아리는 하영의 태도를 보고 전보다 많이 공손해진 것 같아 승지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수완 좋게 마크 리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것하며, 중간에 말하는 것을 보니 선박에도 전혀 문외한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이내 사장실을 떠난 승지는 마크 리치와 합류했다. 이후 일행은 다시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김해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김포국제공항에 내렸다.
마크 리치의 동의 하에 1박2일 동안 사무실 및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