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뜻밖의 수확(3)
마크 리치가 서울을 떠난 날, 건설의 오현창 소장은 견적 팀장과 함께 리비아에 도착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비아의 제2도시인 벵가지에 있는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건설현장에 있었다.
오현창은 그곳에서 클라이언트, 더 정확히는 건설국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곳에 의과대학 기숙사를 지어주십시오. 건설 부지는 저기 보이는 저 땅입니다.”
오현창은 건설국장인 압둘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건설자재가 쌓여있는 황량한 공간이었다. 내친김에 오현창은 한창 공사 중인 의과대학 건물도 자세히 바라보았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4층 건물의 특이한 외벽이었다. 창문 부위만 평면이고 나머지는 볼록렌즈처럼 외벽이 튀어나온 구조였다. 저런 외벽은 공사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굳이 저런 외형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벌써 창틀까지 시공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소 개학 시기인 9월 중순까지는 준공이 되어야 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원래는 기숙사를 짓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과대학 측의 요구에 뒤늦게 발주되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하며 변명하는 그를 보고 오현창은 확신에 찬 어투로 답을 했다.
“틀림없이 개학 전까지는 완공을 시켜놓겠습니다.”
“각하의 지시사항이니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다시 한번 확신에 찬 오현창의 답을 듣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압둘라가 가지고 있던 설계도면을 내밀었다.
“쭉 한 번 살펴보시고 견적부터 내세요.”
“견적에 급행료는 감안해 주셔야겠습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시멘트는 리비아에서 생산된 것입니까?”
“시멘트와 철광석이 리비아의 주된 광업제품입니다.”
“다행이군요. 견적을 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도록 하겠습니다. 명함 한 장만 주세요.”
“마음이 급하다 보니 명함도 안 드렸네요. 자, 여기 있습니다.”
압둘라가 내민 명함을 받고 오현창은 자신의 명함도 그에게 건네주었다. 오랫동안 해외공사를 해온 탓에 오현창의 명함 뒷면은 영어로 기재되어 있었다.
“공사가 급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언제든 필요하면 전화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오현창은 곧장 빈 택시를 잡아타고 견적팀장과 함께 자신들이 묵고 있는 벵가지 호텔로 향했다. 가면서 오현창이 견적팀장인 구천서에게 물었다.
“여기서도 견적이 가능하겠지?”
“네.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하하, 좋았어.”
* * *
이날 저녁에 승지는 자택에서 외삼촌을 만나고 있었다.
“뭐예요, 결혼식에도 안 오시고. 다시 도박에 빠져계셨던 거예요? 이렇게 오신 걸 보니 또 돈이 떨어진 거로군요.”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었다. 조카의 말에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짓던 박영길이 말했다.
“조카 말대로 돈도 떨어지고… 매형의 근황도 궁금해서…….”
어머니의 형제로 단 둘 뿐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런 외삼촌을 둘만 두었어도 속이 썩어서 제 명에 못 죽을 터였다. 어찌됐든 손아래 동생인 박영길 외에 나머지는 대부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어서, 어머니는 형제가 단출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도 육십 대에 돌아가셨다.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살아 계셨다. 그 분은 충북 괴산군 문광면이라는 곳에서 지금도 억척같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매달 딸이 드리는 용돈은 외삼촌 차지. 땅도 사주었다. 논 스무 마지기에 밭도 열 마지기나 되었다. 그래서 논은 모두 소작을 주고, 밭만 품을 얻어 지금도 열심히 경작하고 있었다.
그런 친정어머니를 볼 때면 박옥분 여사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근래에는 발길도 끊었다.
그런 어머니와는 달리 술, 여자, 도박 등 딱 망조 들기 좋은 것들만 좋아하는 외삼촌을 향해 승지는 다짐받을 것이 있었다.
“앞으로 외삼촌에게는 어머니도 절대 용돈을 안 드릴 거예요. 이젠 떼를 쓰고 난동을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럼, 나보고 굶어죽으라고?”
“외할머니께 드리는 용돈만으로도 풍족하게 쓰고 지내실 걸요? 매번 외할머니 용돈도 가져가시잖아요? 아니에요?”
“끙…….”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겠어요.”
“뭔데?”
순간, 외삼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썩은 동태눈깔 같던 눈이 금방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중고자동차 사업을 하세요.”
“그것도 그냥 하나? 돈이 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런 재주가 나한테는 없어.”
“자본은 제가 대드릴 것이고, 장사는 사람을 고용해서 하세요. 만약 이마저도 떨어 먹으면 정말 끝이에요. 제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건 잘 아시죠? 만약 이번에도 까먹으면 정신병원에 영원히 입원시켜 버릴 거예요.”
“내가 정신병자냐?”
“알코올중독자잖아요? 그만하면 충분해요.”
“조카라고 한 놈 있는 게, 더럽게 독하네.”
“말씀 다하셨어요?”
“아, 아니야. 돈이나 줘보라고. 얼마나 줄 건데?”
“외삼촌한테는 안 드려요. 내가 직접 오퍼 사무실 내고, 사람도 다 구해줄 거예요. 그 대신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가지고, 술을 마시든, 도박을 하시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자본금에 손을 댔다가는 그날로 공금횡령에 여러 죄목을 씌어서… 알죠?”
순간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던 외삼촌이 이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조카가 보기에는 한 달 이익금이 얼마 정도나 될 것 같은데?”
“최소 2백만 원은 넘겠죠.”
말이 2백만 원이지, 이 당시의 물가로는 대졸 초임의 15배가 넘는 큰돈이었다.
그것이 한 달 수입이면 거금 중의 거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이때, 입이 찢어질 대로 찢어져 반색하는 외삼촌을 향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상냥히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효주였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자주 들락거린 덕분에 서로는 안면이 있었다.
“어디 갔다 오냐? 시장 봐가지고 와?”
“네. 저이 영양식 좀 해주려고요.”
효주는 승지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기 위해 장을 봐서 오는 길이었다.
“외삼촌도 잡수고 가세요. 삼계탕 해드릴게요.”
“할 줄은 알고?”
“어머니께 배웠어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당연히 시어머니죠.”
“바로 술상만 봐오면 먹고 가지.”
하는 말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승지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냥 가세요!”
“허허, 조카 왜 이러나? 조카며느리는 대접을 못해서 안달인데.”
저렇게 뻔뻔하니 지금도 저 모양인 것이다.
포기한 승지가 아내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어제 내가 먹다 남긴 소주나 반 병 갖다드려. 안주는 김치 쪼가리면 돼. 그렇죠, 외삼촌?”
“김치쪼가리가 아니라 소금만 있어도 된다.”
한 술 더 뜨는 외삼촌 때문에 승지는 문을 쾅 닫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화가 난 것처럼 행동하며 방으로 들어온 승지는 곧 모처로 전화를 걸었다.
최종욱 상사사장이 금방 전화를 받았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 회장님 전화라면 받아야죠.]
“다름이 아니라, 리비아에 중고자동차를 수출하려고 하는데, 그쪽에 밝은 사람으로 두 사람만 추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는 대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리비아 트리폴리에 지사를 설치하세요. 앞으로는 리비아가 매우 큰 건설시장 겸 우리의 수출창구가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네, 회장님!]
* * *
다음날 오전 9시.
승지는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 소병규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거기 앉으세요.”
집무실 책상의 의자에서 일어난 승지는 소파로 가서 소병규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때 여비서가 들어왔다.
“차나 한 잔 합시다.”
“네, 회장님!”
승지가 여비서에게 말했다.
“차 두 잔 부탁해요.”
“네, 회장님!”
두 사람의 기호를 잘 알고 있던 여비서였기에 곧장 그녀는 방을 나갔다.
“외삼촌한테 중고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는 오퍼상을 차려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쪽에 밝은 직원 두 명을 상사에서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만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니, 자동차를 매입할 직원으로 두 명을 뽑되, 당연히 자동차 전문가라야 하겠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또한 사무실도 구해주고, 돈은 내 개인 돈으로 할 테니 재무의 심 전무에게 그대로 전해서 초기 자본금을 포함해 필요한 돈을 타내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이렇게 되어 일련의 한량 구제 사업이 시작되었다.
* * *
3월 24일.
이날은 반공일이라고 부르던 토요일이었다.
이날 오전에 승기는 건설사장 홍성기로부터 리비아 공사 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것은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기숙사를 99만 달러에 계약하고 선발대를 파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밤을 새워 공사를 하더라도 기일은 꼭 지키라는 엄명을 내리고 승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출근할 때는 멀쩡하던 하늘에서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50분이었다.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방을 나서는 순간, 여비서가 불렀다.
“회장님!”
승지는 시선만 주었다.
“효주 씨, 아니 사모님한테서 온 전화입니다.”
“그래요?”
다급한 경우에만 전화를 하라면서 알려준 회장실 직통 전화번호였다. 그런 까닭에 승지는 전화기를 넘겨받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여봉~!”
대뜸 들려오는 코맹맹이 소리에 승지는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말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왜?”
“나 우산 안 갖고 나왔어. 어쩌지? 오빠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는데.”
“기사 보낼게.”
“엑스오빠가 날 데리러 올 거라면서 친구들한테 큰소리 빵빵 쳐놨는데?”
이 당시 X(엑스)오빠는 친구를 넘어서 애인에 가까운 사이를 일컫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당연히 데리러 와야지.”
“기사만 보내면 안 될까?”
“그렇게만 해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알았다, 알았어. 기다려.”
“오케이, 땡큐 설!”
사적인 일이건 공적인 일이건 기사를 마치 노예(?)처럼 부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가 않아서 승지는 자신이 직접 회장 전용 차량인 그라나다를 몰고 회사를 출발했다.
이 당시는 외제차를 타면 세무조사 내지는 사찰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아무리 대기업 총수라도 모두 국산차를 탔다. 아무튼 효주는 시집을 와서 한남동에 살게 된 관계로 ㅂ여고로 전학을 한 상태였다.
승지가 빠르게 달려서 20분 만에 학교에 도착해 보니, 효주가 정문에서 두 명의 여학생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반색하는 그녀에게 승지가 차창만 내리고 말했다.
“타!”
“함께 빵집에 가기로 했는데?”
“알았어. 알았으니까 모두 타.”
“고마워용, 오빠!”
효주는 두 친구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은 조수석에 탔다.
“안녕하세요? 효주 친구에요.”
“네.”
승지가 친구들의 인사에 간단하게 답을 하는데 효주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
“압구정 GL리아 1호점.”
“아, 국내 일호로 개업했다는 패스트푸드점?”
“그래.”
이내 차는 압구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근래에 GL그룹은 ‘GL리아’라는 상호로 압구정에 햄버거 등을 파는 패스트푸드 1호점을 개업했고, 그 옆에는 피자집 1호점도 문을 열었다.
얼마 후 GL리아 1호점에 도착한 승지는 효주와 친구들에게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등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5시에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승지는 6시 30분이 되자 외출을 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크 리치가 서울을 떠난 날, 건설의 오현창 소장은 견적 팀장과 함께 리비아에 도착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비아의 제2도시인 벵가지에 있는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건설현장에 있었다.
오현창은 그곳에서 클라이언트, 더 정확히는 건설국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곳에 의과대학 기숙사를 지어주십시오. 건설 부지는 저기 보이는 저 땅입니다.”
오현창은 건설국장인 압둘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건설자재가 쌓여있는 황량한 공간이었다. 내친김에 오현창은 한창 공사 중인 의과대학 건물도 자세히 바라보았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4층 건물의 특이한 외벽이었다. 창문 부위만 평면이고 나머지는 볼록렌즈처럼 외벽이 튀어나온 구조였다. 저런 외벽은 공사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굳이 저런 외형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벌써 창틀까지 시공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소 개학 시기인 9월 중순까지는 준공이 되어야 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원래는 기숙사를 짓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과대학 측의 요구에 뒤늦게 발주되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하며 변명하는 그를 보고 오현창은 확신에 찬 어투로 답을 했다.
“틀림없이 개학 전까지는 완공을 시켜놓겠습니다.”
“각하의 지시사항이니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다시 한번 확신에 찬 오현창의 답을 듣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압둘라가 가지고 있던 설계도면을 내밀었다.
“쭉 한 번 살펴보시고 견적부터 내세요.”
“견적에 급행료는 감안해 주셔야겠습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시멘트는 리비아에서 생산된 것입니까?”
“시멘트와 철광석이 리비아의 주된 광업제품입니다.”
“다행이군요. 견적을 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도록 하겠습니다. 명함 한 장만 주세요.”
“마음이 급하다 보니 명함도 안 드렸네요. 자, 여기 있습니다.”
압둘라가 내민 명함을 받고 오현창은 자신의 명함도 그에게 건네주었다. 오랫동안 해외공사를 해온 탓에 오현창의 명함 뒷면은 영어로 기재되어 있었다.
“공사가 급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언제든 필요하면 전화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오현창은 곧장 빈 택시를 잡아타고 견적팀장과 함께 자신들이 묵고 있는 벵가지 호텔로 향했다. 가면서 오현창이 견적팀장인 구천서에게 물었다.
“여기서도 견적이 가능하겠지?”
“네.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하하, 좋았어.”
* * *
이날 저녁에 승지는 자택에서 외삼촌을 만나고 있었다.
“뭐예요, 결혼식에도 안 오시고. 다시 도박에 빠져계셨던 거예요? 이렇게 오신 걸 보니 또 돈이 떨어진 거로군요.”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었다. 조카의 말에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짓던 박영길이 말했다.
“조카 말대로 돈도 떨어지고… 매형의 근황도 궁금해서…….”
어머니의 형제로 단 둘 뿐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런 외삼촌을 둘만 두었어도 속이 썩어서 제 명에 못 죽을 터였다. 어찌됐든 손아래 동생인 박영길 외에 나머지는 대부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어서, 어머니는 형제가 단출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도 육십 대에 돌아가셨다.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살아 계셨다. 그 분은 충북 괴산군 문광면이라는 곳에서 지금도 억척같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매달 딸이 드리는 용돈은 외삼촌 차지. 땅도 사주었다. 논 스무 마지기에 밭도 열 마지기나 되었다. 그래서 논은 모두 소작을 주고, 밭만 품을 얻어 지금도 열심히 경작하고 있었다.
그런 친정어머니를 볼 때면 박옥분 여사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근래에는 발길도 끊었다.
그런 어머니와는 달리 술, 여자, 도박 등 딱 망조 들기 좋은 것들만 좋아하는 외삼촌을 향해 승지는 다짐받을 것이 있었다.
“앞으로 외삼촌에게는 어머니도 절대 용돈을 안 드릴 거예요. 이젠 떼를 쓰고 난동을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럼, 나보고 굶어죽으라고?”
“외할머니께 드리는 용돈만으로도 풍족하게 쓰고 지내실 걸요? 매번 외할머니 용돈도 가져가시잖아요? 아니에요?”
“끙…….”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겠어요.”
“뭔데?”
순간, 외삼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썩은 동태눈깔 같던 눈이 금방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중고자동차 사업을 하세요.”
“그것도 그냥 하나? 돈이 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런 재주가 나한테는 없어.”
“자본은 제가 대드릴 것이고, 장사는 사람을 고용해서 하세요. 만약 이마저도 떨어 먹으면 정말 끝이에요. 제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건 잘 아시죠? 만약 이번에도 까먹으면 정신병원에 영원히 입원시켜 버릴 거예요.”
“내가 정신병자냐?”
“알코올중독자잖아요? 그만하면 충분해요.”
“조카라고 한 놈 있는 게, 더럽게 독하네.”
“말씀 다하셨어요?”
“아, 아니야. 돈이나 줘보라고. 얼마나 줄 건데?”
“외삼촌한테는 안 드려요. 내가 직접 오퍼 사무실 내고, 사람도 다 구해줄 거예요. 그 대신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가지고, 술을 마시든, 도박을 하시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자본금에 손을 댔다가는 그날로 공금횡령에 여러 죄목을 씌어서… 알죠?”
순간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던 외삼촌이 이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조카가 보기에는 한 달 이익금이 얼마 정도나 될 것 같은데?”
“최소 2백만 원은 넘겠죠.”
말이 2백만 원이지, 이 당시의 물가로는 대졸 초임의 15배가 넘는 큰돈이었다.
그것이 한 달 수입이면 거금 중의 거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이때, 입이 찢어질 대로 찢어져 반색하는 외삼촌을 향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상냥히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효주였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자주 들락거린 덕분에 서로는 안면이 있었다.
“어디 갔다 오냐? 시장 봐가지고 와?”
“네. 저이 영양식 좀 해주려고요.”
효주는 승지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기 위해 장을 봐서 오는 길이었다.
“외삼촌도 잡수고 가세요. 삼계탕 해드릴게요.”
“할 줄은 알고?”
“어머니께 배웠어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당연히 시어머니죠.”
“바로 술상만 봐오면 먹고 가지.”
하는 말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승지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냥 가세요!”
“허허, 조카 왜 이러나? 조카며느리는 대접을 못해서 안달인데.”
저렇게 뻔뻔하니 지금도 저 모양인 것이다.
포기한 승지가 아내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어제 내가 먹다 남긴 소주나 반 병 갖다드려. 안주는 김치 쪼가리면 돼. 그렇죠, 외삼촌?”
“김치쪼가리가 아니라 소금만 있어도 된다.”
한 술 더 뜨는 외삼촌 때문에 승지는 문을 쾅 닫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화가 난 것처럼 행동하며 방으로 들어온 승지는 곧 모처로 전화를 걸었다.
최종욱 상사사장이 금방 전화를 받았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 회장님 전화라면 받아야죠.]
“다름이 아니라, 리비아에 중고자동차를 수출하려고 하는데, 그쪽에 밝은 사람으로 두 사람만 추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는 대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리비아 트리폴리에 지사를 설치하세요. 앞으로는 리비아가 매우 큰 건설시장 겸 우리의 수출창구가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곧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네, 회장님!]
* * *
다음날 오전 9시.
승지는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 소병규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거기 앉으세요.”
집무실 책상의 의자에서 일어난 승지는 소파로 가서 소병규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때 여비서가 들어왔다.
“차나 한 잔 합시다.”
“네, 회장님!”
승지가 여비서에게 말했다.
“차 두 잔 부탁해요.”
“네, 회장님!”
두 사람의 기호를 잘 알고 있던 여비서였기에 곧장 그녀는 방을 나갔다.
“외삼촌한테 중고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는 오퍼상을 차려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쪽에 밝은 직원 두 명을 상사에서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만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니, 자동차를 매입할 직원으로 두 명을 뽑되, 당연히 자동차 전문가라야 하겠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또한 사무실도 구해주고, 돈은 내 개인 돈으로 할 테니 재무의 심 전무에게 그대로 전해서 초기 자본금을 포함해 필요한 돈을 타내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이렇게 되어 일련의 한량 구제 사업이 시작되었다.
* * *
3월 24일.
이날은 반공일이라고 부르던 토요일이었다.
이날 오전에 승기는 건설사장 홍성기로부터 리비아 공사 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것은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기숙사를 99만 달러에 계약하고 선발대를 파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밤을 새워 공사를 하더라도 기일은 꼭 지키라는 엄명을 내리고 승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출근할 때는 멀쩡하던 하늘에서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50분이었다.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방을 나서는 순간, 여비서가 불렀다.
“회장님!”
승지는 시선만 주었다.
“효주 씨, 아니 사모님한테서 온 전화입니다.”
“그래요?”
다급한 경우에만 전화를 하라면서 알려준 회장실 직통 전화번호였다. 그런 까닭에 승지는 전화기를 넘겨받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여봉~!”
대뜸 들려오는 코맹맹이 소리에 승지는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말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왜?”
“나 우산 안 갖고 나왔어. 어쩌지? 오빠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는데.”
“기사 보낼게.”
“엑스오빠가 날 데리러 올 거라면서 친구들한테 큰소리 빵빵 쳐놨는데?”
이 당시 X(엑스)오빠는 친구를 넘어서 애인에 가까운 사이를 일컫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당연히 데리러 와야지.”
“기사만 보내면 안 될까?”
“그렇게만 해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알았다, 알았어. 기다려.”
“오케이, 땡큐 설!”
사적인 일이건 공적인 일이건 기사를 마치 노예(?)처럼 부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가 않아서 승지는 자신이 직접 회장 전용 차량인 그라나다를 몰고 회사를 출발했다.
이 당시는 외제차를 타면 세무조사 내지는 사찰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아무리 대기업 총수라도 모두 국산차를 탔다. 아무튼 효주는 시집을 와서 한남동에 살게 된 관계로 ㅂ여고로 전학을 한 상태였다.
승지가 빠르게 달려서 20분 만에 학교에 도착해 보니, 효주가 정문에서 두 명의 여학생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반색하는 그녀에게 승지가 차창만 내리고 말했다.
“타!”
“함께 빵집에 가기로 했는데?”
“알았어. 알았으니까 모두 타.”
“고마워용, 오빠!”
효주는 두 친구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은 조수석에 탔다.
“안녕하세요? 효주 친구에요.”
“네.”
승지가 친구들의 인사에 간단하게 답을 하는데 효주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
“압구정 GL리아 1호점.”
“아, 국내 일호로 개업했다는 패스트푸드점?”
“그래.”
이내 차는 압구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근래에 GL그룹은 ‘GL리아’라는 상호로 압구정에 햄버거 등을 파는 패스트푸드 1호점을 개업했고, 그 옆에는 피자집 1호점도 문을 열었다.
얼마 후 GL리아 1호점에 도착한 승지는 효주와 친구들에게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등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5시에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승지는 6시 30분이 되자 외출을 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