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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어린 신부(4)





김포발 제주행 오후 6시 비행기의 기내.

4만2천 피트 상공에서 지상의 물체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난쟁이 나라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은 효주도 다르지 않았는지 옆자리의 승지를 툭 치더니 말했다.

“오빠, 저것 봐. 집은 마치 성냥갑 같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개미새끼 같아.”

그녀의 놀람과 신기함을 반영하듯 효주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이에 승지가 입에 검지를 대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 다른 사람들 자잖아.”



승지의 말에 주변의 좌석을 둘러보고 효주가 말했다.

“자긴 뭘 자? 저희들끼리 노닥거리기 바쁜데.”

“알았다,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가자.”

“오빠는 정말! 비행기 처음 타본 사람은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해 보인다고. 그걸…….”

“알았으니까 제발 목소리 좀 낮추라고.”

“쳇! 알았네요.”



삐진 효주는 그 후로 한동안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재잘거리는 효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1시간여의 비행 끝에 트랩을 내려오자 효주가 물었다.

“나 어때?”

예식 전에 입었던 감색 투피스 정장 차림의 그녀가 물어오자 승지는 간단히 답을 했다.

“예뻐!”

“쳇, 신부 티를 내면 현지에서 바가지 쓴다고 해서 신부 티 좀 안 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나지?”

무슨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승지는 마치 종달새 같은 그녀를 잡아끌어 짐을 찾고는 택시 승강장까지 왔다.

이내 줄지어 서 있는 택시 중에서 가장 앞에 있던 택시를 잡은 승지가 트렁크를 짐칸에 실으며 말했다.

“타!”



입을 삐죽 내밀며 효주가 뒷좌석에 오르자 승지는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곧이어 차는 도심을 달려 10분 만에 KAL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1974년에 개관한 제주도 최초의 특급관광호텔로서, 제주도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와도 같은 건물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서니, 제주를 상징하는 하루방과 아열대수목의 가지가 입구부터 제주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정원을 걸어 호텔 내부로 들어서자 미색대리석의 중후함과 웅장함이 시선을 압도했다.



“대단하네! 멋지고 웅장하다!”

호텔이 처음인 효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승지는 곧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예약 확인 좀 해주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고승지입니다.”

“1201호실로 예약되어 있군요. 즐거운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건네주는 룸키를 받아들고 승지는 효주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서 내린 승지는 1201호실을 찾아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일인용 침대 두 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효주도 그걸 보았다. 그런데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일부러 이런 방을 잡은 승지는 모른 척을 했다. 그 외에 응접세트도 보이는 가운데 슬리퍼를 찾으니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승지는 곧 구두를 벗고 옷장의 문부터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 잠옷 두 벌과 슬리퍼 두 짝이 보였다. 이를 보고 승지는 내심 생각했다.

‘슬리퍼도 도난을 당하나?’



승지는 슬리퍼 두 짝을 꺼내서 한 짝을 효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승지 본인도 슬리퍼를 신었다. 모처럼 만의 친절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효주는 좀 전의 실망은 잊은 듯 ‘야호!’라는 외침과 함께 좌측 침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런 그녀가 반듯이 돌아누우며 말했다.

“오빠! 빨리 와. 뽀뽀 한 번 하자.”

“그놈의 뽀뽀는…….”

“이젠 우리 결혼했잖아?”

“알았다, 알았어. 조금 있다가 질리도록 해줄게.”

“정말?”



반색하는 그녀에게 승지가 동문서답을 했다.

“배고프다.”

“나도. 우리 뭐 먹으러 나갈까?”

“언뜻 보니 1층에 식당이 많더라.”

“그럼 빨리 가자.”

발딱 일어선 효주가 승지 가까이 다가오더니 팔짱을 끼었다. 거절하면 또 무슨 강짜를 부릴지 몰라 승지는 조용히 보조를 맞추어 주었다.



잠시 후.

1층 레스토랑에서 효주의 요구를 따라 함박스테이크로 식사를 한 두 사람은 다시 곧장 방으로 올라왔다. 들어오자마자 승지는 답답한 느낌이 들어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밤이라 그런지 제주항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곁으로 다가온 효주가 불빛으로 반짝이는 항구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멋있다!”



효주가 승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오빠, 우리 술 한 잔 하자.”

“뭐? 고등학생이 웬 술?”

“그놈의 고등학생 소리 좀 그만해. 오늘은 나도 학생을 떠나 어엿한 신부야. 신부가 술 한 잔도 못해? 그것도 첫날밤에.”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알았어. 냉장고 문 열어봐.”



두리번거리던 효주가 이내 작은 냉장고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는 맥주를 비롯해 생수와 음료수가 잔뜩 들어있었다.

“이거 그냥 꺼내 먹어도 돼?”

“생수 한 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돈을 내는 거야!”

“쳇, 좋다 말았네. 그런데 오빠는 그걸 어떻게 그리도 잘 알아? 혹시 이런 호텔에 자주 들락거린 거 아냐?”

“사업상 몇 번 들락거린 게 전부다.”



승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지가 말했다.

“맥주나 몇 병 꺼내와.”

“안주는?”

“손가락이나 빨지 뭐.”

“내가 나가서 사올까?”

“룸서비스 시키면 돼.”

“그런 방법도 있어?”

“전화기 들고 먹고 싶은 걸 주문해.”

“알았어. 그런데 뭘 먹을까?”

“흐흠… 잠깐. 생각이 바뀌었어.”

“왜?”

“명색이 첫날 밤 신부인데 맥주보다는 샴페인이 나을 것 같아. 나는 양주로 할게. 안주는, 으음… 그건 직원 오거든 시키자.”

“알았어.”



효주가 전화기를 드는 것을 보며 승지가 다가가서 말했다.

“아니다, 내가 할게.”

“알았어.”

전화기를 받아든 승지는 0번을 눌러 카운터를 호출했다.

“네, 카운터입니다.”

“직원 좀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효주가 다급히 말했다.

“여기 호실을 알려줘야지.”

“그쪽에서도 다 알아. 호실이 뜨거든.”

“그래? 오늘 많은 걸 배우네.”

“샤워부터 하고 나와라.”

“정말?”

반색하는 그녀를 보고 승지는 외면하려다가 한 술 더 떠서 음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를 보고 효주는 화들짝 놀라서 욕실로 달려가다가 ‘아, 잠옷’이라고 외치며 수선을 피웠다. 그리고는 트렁크를 여는가 싶더니 잠옷을 찾느라 이것저것을 다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승지는 다시 창가로 갔다. 그리고는 이내 커튼을 쳤다. 돌아와서 잠시 기다리니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잘생긴 젊은 직원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양주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국산부터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시바스 리갈로 주세요.”

“몇 년 산으로 드릴까요?”

“25년산, 세 병!”



승지의 말에 직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VIP룸이 아닌 일반 객실을 잡은 사람이 시바스 리갈 중에서도 최고급품인 25년산을, 그것도 세 병씩이나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승지는 연달아 다른 주문을 했다.

“거기에 샴페인 두 병. 안주로는 과일과 치즈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곧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직원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욕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 * *



그로부터 15분 후.

직원이 주문한 술과 안주를 내려놓고 나가는 것과 동시에 효주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한 마디로 섹시 그 자체였다. V넥이 깊이 파인 살색의 시스루 잠옷.

효주는 가슴 쪽이 V자로 깊이 파여서 가슴골이 다 보이고, 팬티 입은 모습까지도 비치는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효주가 부끄러운 듯이 살짝 홍조를 띤 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조신하게 걸어왔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욕정이 일지 않는다면 그것이 병일 터. 하지만 승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옷장으로 갔다. 그 자리에서 팬티만 남긴 채 훌렁훌렁 다 벗어버린 승지는 이내 잠옷을 꺼내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가면서 말했다.

“잠시 기다려.”

“네.”

대답과 동시에 효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승지는 젖은 머리를 말리며 잠옷 차림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잠옷 상의가 껑충 올라가서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승지는 키가 185㎝였기 때문에 이 당시로는 장신에 속했다.

그런 승지의 모습을 일별한 효주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승지는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자, 오늘의 신부 하효주 양의 앞날에 무한한 축복과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신랑이 축포를 쏘아 올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샴페인 병을 한참동안 흔든 승지가 겉 테두리를 벗겨내자, 뚜껑이 뻥 소리와 함께 천정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소리에 효주는 깜짝 놀랐다.

“한 잔 받으시죠?”

“고마워요, 오빠.”

“오빠보다는 여보 당신이 나을 것 같은데?”

“쑥스러워서 못하겠어요. 나중에는 그렇게 부를게요.”

“그래.”



말을 하며 승지가 양주 뚜껑을 따서 병을 건네자, 그녀가 이내 한 잔을 따라주었다.

“우리의 건강한 성생활과 백년해로를 위하여!”

“위하여!”

후창을 하던 효주의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건강한 성생활이라는 표현 때문이리라. 언더락 잔에 따를 것도 없이 승지는 단번에 잔을 비웠다. 하지만 효주는 약한 술도 찔끔거렸다.

“톡 쏴서 다 못 마시겠어요.”

“그래도 건배한 잔은 다 비워야 하는 거야. 건 자가 마를 건(乾)에, 잔 배(杯) 자거든.”

“알았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술자리는, 승지가 양주 두 병을 비우는 동안 효주는 샴페인 반 병을 비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제 그만 자자.”

“네.”

술자리 때부터 급 공손해진 그녀를 보며 승지가 말했다.

“이리 와. 네가 원하던 뽀뽀 실컷 해줄게.”

“싫어요.”



갑자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 발 물러서는 그녀를 보고 승지는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막상 멍석을 깔아놓으니 못하는구나!”

승지의 대소와 말이 그녀를 자극했나보다.

“좋아요! 해주세요.”

우측 침대에 걸터앉으며 승지가 말했다.

“이쪽으로 와.”

멈칫. 복사꽃이 핀 얼굴에 부끄러운 듯 두 손이 입가에 가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 승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어머!”



새된 비명소리를 귀 가까이 들으며 승지는 효주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금방 심장이 튀어나올 듯 기복이 심한 가슴.

승지는 할딱거리는 그녀의 입술로 천천히 접근해 갔다.

“잠깐!”

“왜?”

“나 깜빡 잊고 양치질 안했어요.”

“뭐?”

효주는 발딱 일어나더니 그길로 욕실로 달려갔다.



* * *



5분간의 열정적인 키스 끝에 효주를 억지로 떼어낸 승지는 그녀를 좌측 침대에 혼자 재웠다. 그리고 승지 자신은 남은 양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오전 6시.

오늘도 여느 때처럼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승지는 효주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얇은 이불은 다 차내 버린 채였다. 승지는 그 모습이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용히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곁에 누웠다.

승지는 효주를 등 뒤에서 꼭 껴안았다. 그 바람에 효주는 잠에서 깼다.

“오빠?”

“그래.”

“오빠!”



효주가 갑자기 돌아눕더니 승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승지는 말없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포근하다!”

“나도. 우리 이대로 있자.”

“오빠, 사랑해!”

“나도.”

“나도, 나도. 전라도야 뭐야?”

발칵 화를 내는 그녀의 입을 승지는 입술로 틀어막았다.

“음, 음……!”

어찌 된 일인지 승지에게는 그녀의 비음이 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