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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어린 신부(3)





다음날 저녁.

10월 20일 밤 7시.

승지네 집의 대형 식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승지는 물론 효주 외에도 초대된 사람이 세 명 더 있었다. 효주가 다니는 여학교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그들이었다.

가정부가 불고기요리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포도주 잔을 놓고 담소가 이어지고 있었다.



“종전에 제 남편이 말씀드린 대로, 효주가 모레 여기 있는 우리 아들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니 많은 편의 부탁드립니다.”

박옥분 여사의 말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교장선생님이 헛기침과 함께 답변을 했다.

“험, 험. 민법에도 엄연히 여자는 16세면 부모 동의하에 결혼이 가하다 했습니다. 문제는 임신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교칙을 적용해 퇴학처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점만 유념해 주시면, 나머지는 우리가 잘 돌봐 무난히 졸업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걱정은 다른 데 있습니다.”

승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혹여 효주의 결혼 사실이 알려져서 다른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지는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그건 본인만 입조심을 하면 됩니다. 여기 있는 세 사람은 교육자의 양심을 걸고 절대 비밀을 누설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에 승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믿습니다.”

이때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담임선생님이 효주를 보고 놀리듯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효주도 한 마디 해야지?”

담임선생님의 말에 효주가 당당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니 물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임신하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임신을 하면 퇴학인가요?”

“학생이 배가 불러서 등교를 해봐. 그것도 한두 사람도 아닌 수십 명이 그러면 학교가 뭐가 되겠어. 난장판이 되지 않겠어? 더군다나 학칙에는 분명 연애도 금하고 있는데, 험험!”



교장선생님의 말에 효주가 실망한 낯빛으로 말했다.

“예효… 그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꾹 참아야겠네요.”

“하하하.”

“호호호.”

장내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 가운데, 이를 무마하듯 고병윤이 잔을 들며 말했다.

“들지요?”

“네, 회장님!”

학기 초에는 가정조사를 했기 때문에 효주가 GL그룹 부회장의 딸이라는 정도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세 선생님을 초대하면서 초대의 변도 밝혔기 때문에 병윤이 회장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어쨌거나 우려의 시선으로 승지와 박 여사가 병윤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잔에 입만 댔다가 뗐다. 이때 때마침 불고기 요리도 끝나서 본격적인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 * *



결혼식 전날인 10월 21일 토요일.

이날은 아침부터 집안이 떠들썩했다. 일가친척은 물론 요리 솜씨가 좋은 아줌마들까지 몇을 사서 잔치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각종 전이며 동그랑땡, 산적, 잡채 등의 온갖 음식을 준비하느라 식당은 물론 정원까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면 이런 번거로움이 없겠지만, 가급적 소문을 내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 잔치를 벌이다 보니 이 모양이었다.

하긴 웬만한 집에서는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도 안주 값을 식당에 지불하지 않기 위해 술안주 정도는 미리 장만해가지고 가는 게 보통이었다. 어찌됐든 승지는 출근을 하지 않으려다가 이런 게 싫어서 하루를 회사에서 보냈다.



그리고 승지가 저녁나절에 돌아오니 이때는 큰누나 부부와 작은누나 부부가 와 있었다. 누나들이야 모두 집안 살림이나 하지만 큰 매형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GL화학의 사장이고, 작은 매형은 GL유통의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큰 매형은 사시를 패스한 검사 출신이고, 작은 매형은 행시를 패스한 사무관 출신이었다.

“어서 와, 처남!”

“저녁은?”

큰 매형과 작은 누나의 인사 겸 물음에 승지가 무표정으로 답했다.

“먹어야죠.”

“이발도 안 하고 그게 뭐야?”



큰누나의 잔소리에 승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내일 일찍 할 겁니다.”

“내일 장가가는 사람답지 않게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데?”

작은 매형의 물음에 승지는 마음속으로 답을 했다.

‘다 너희들 때문이다, 이 원수들아!’



전생에서 자신을 배반하고 하씨네와 짝짝꿍이 된 자들. 그 생각만하면 신물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이내 표정을 펴고 승지가 말했다.

“고등학생인 효주를 생각하니까 좀 그러네요.”

“나도 그럴 것 같아. 처남 입장 이해해.”

큰 매형의 말에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승지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배고프네요. 다들 저녁은요?”

“잔치음식으로 일찍들 먹었으니까, 너만 먹으면 돼.”

큰누나의 말에 승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곧이어 가정부 아주머니가 저녁식사를 차려주자 승지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누나와 매형들의 손에 이끌려 세 시간 동안이나 고스톱을 쳤다.



* * *



오전 9시에 이발소로 가서 단정하게 머리를 깎은 승지는 이어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일찍 배달서비스까지 해서 받은 패물을 한 번 살펴보고는 효주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가정부가 받았다.



“효주 좀 바꿔주세요.”

[지금 신부화장을 하러 가서 집에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장인어른과 할머니는 출발하셨습니까?”

[지금쯤이면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가정부의 말에 시계를 흘깃 보니 5분 전 10시였다.

“그렇군요. 참, 효주는 누가 데리고 옵니까?”

[부회장님께서 할머니 내려드리고, 아가씨를 데리러 가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12시 예식이라 시간은 충분하다 생각하면서 승지는 정원으로 나갔다. 집안 여자들은 단체로 미장원에 가는 바람에 점검 차 나와 본 것이었다.

지금 승지가 살고 있는 집은 대지 300평에 건평이 99평이었다. 99평인 이유는 100평이 넘어가면 세율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1층이 60평, 2층은 39평이지만 아파트와는 달리 상당히 넓었다.

아파트야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도 모두 전용면적에 포함되지만, 가정주택은 실면적이기 때문에 더 넓어 보이는 것이었다.



집이 들어선 60평을 제외한 240평이 정원. 담장을 따라 조성된 화단을 빼면 대부분이 잔디밭. 그런 잔디밭 한쪽에는 오색 풍선이 달린 아치형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주빈들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또 그 앞에는 흰색상의 간의의자 50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식사를 할 수 있게끔 긴 탁자를 중심으로 간의의자가 쭉 놓여 있었는데, 그 행렬이 꽤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는 동네 및 돈을 주고 산 아주머니들이 밥을 짓고 육개장을 끓이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 11시 반이 되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신부가 나타나지 않아 승지는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효주 할머니를 데려다 놓고 신부를 데리러 간다던 부회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초대하지도 않은 계열사 사장들은 물론 중역들까지, 골목이 차로 꽉 찰 정도로 벌써부터 많은 사장과 임원들이 와서 병윤과 승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에 더는 참지 못하고 승지가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한 사람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전생에서 화면을 통해 많이 본 바 있는 개그맨 이주일 씨였다.

곧장 회장에게 다가온 그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고병윤이 승지를 불렀다.



“이리로 와 봐라.”

승지가 말없이 다가가자 아버지가 그를 소개해주었다.

“내가 일전에 말한 이주일 씨다. 원래는 총무부장에게 사회를 보라고 시켰다가, 기왕이면 무대에서 사회를 많이 본 사람이 나을 것 같아서 모셨다.”

“이주일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손을 내밀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고, 승지도 손을 내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고승지라고 합니다.”

“차기 회장이 되실 분이라고, 벌써부터 세간에서 떠들썩하던데요.”

“저는 언론이고 어디서고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하하하……. 어쨌거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병윤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가운데, 때마침 장인과 효주가 들어왔다.

“오빠!”

“저런, 저런! 신랑보고 오빠가 뭐야?”

효주가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에 수군거림이 이는 가운데, 곱게 화장을 한 그녀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승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그녀를 간단히 안아주고 떼어놓으며 승지가 물었다.

“드레스는?”

하지만 효주는 딴청이었다.

“나 어때?”

투피스 감색 양장차림의 그녀가 한 바퀴를 빙 돌며 물었다.

“교복을 입었을 때는 몰랐는데, 그렇게 입으니 이제는 정말 다 큰 처녀 같네.”

“그렇지? 호호호.”

기쁜 듯 웃은 그녀가 비로소 승지의 물음에 답을 했다.

“특별히 부탁해서 의상실 언니가 들고 올 거야. 다른 건 몰라도 드레스는 내가 입고 싶은 걸로 입고 싶어서 2주 전에 맞춰놨지.”

“잘했네.”



그 시각.

병윤에게 다가간 부회장 하준은 푸념을 하기에 바빴다.

“딸은 키워놔 봐야 소용이 없다더니, 딱 그 짝이로군요. 제 신랑을 보자마자 날 팽개치고는 달려가니 원.”

“나도 그랬어. 그래서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병윤이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말했다.

“아직은.”

“무리하면 절대 좋지 않습니다. 들어가 쉬시다가 예식이 시작되면…….”

“내가 빠지면 되겠나? 손님을 맞아야지.”

“손님이라고 해봐야 다…….”

“오늘만은 조금 무리를 하기로 했으니 너무 걱정 마시게.”

“정 그러시다면야…….”



하준이 한 발 물러서는 와중에, 한 여인으로부터 드레스를 받아든 효주가 집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빠도 따라와.”

“왜?”

“드레스 입은 내 모습, 미리 보고 싶지 않아?”

“알았다, 알았어.”

오늘 같은 날에 삐치기라도 하면 안 되겠기에 승지는 그녀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이제는 여동생의 방이 된 옛 승지의 방에서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온 효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가슴이 조금 파인 드레스였다.

“내 모습 어때? 예쁘지 않아?”

“정말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 그런데 어째 몸까지 날씬해진 것 같다?”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이틀 전부터 굶었더니 지금 핑핑 돌아.”

“뭐? 그게 무슨 짓이야!”

“일생일대에 단 한 번뿐이고, 사진으로도 고스란히 남잖아?”

“보정 좀 하면 되잖아.”

“그러긴 싫었어.”



두 사람이 아옹다옹하고 있는데 어머니 박 여사가 들어왔다.

“시간 다 됐다.”

“네, 엄마!”

곧이어 세 사람은 집을 나와 행사용 아치가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섭외된 진행요원들이 흰 장갑을 끼워주고 꽃도 달아주었다.



“지금부터 신랑 고승지 군과 신부 하효주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된 마이크를 통해 이주일 씨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담소를 나누고 있던 손님들이 준비된 의자에 앉기 시작하고 일부는 그 밖에 섰다.

그러는 사이 승지와 효주도 아치형 소품 앞의 출발선에 섰다.

“식순에 따라 신랑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먼저 신랑이 입장하겠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승지가 큰소리로 대답을 하자 장내는 일시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준비되셨으면, 신랑… 요이 땅!”

“하하하하.”



마치 운동회에서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의 모습을 재현해 폭소가 터진 가운데 승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오늘의 주례이신 효주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 앞에 서자, 이주일이 이번에는 ‘신부 입장’을 선언했다.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장내에 울려 퍼지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은 효주가 한 발 한 발을 떼며 승지 앞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시작된 예식은 30분 만에 끝났고, 이내 피로연 겸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 승지와 효주는 할머니를 비롯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폐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