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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원유 선물에 몰방(3)
술이 취하니 바빠서 잊고 있었던 윤진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끝난 일. 머리를 내저어 생각을 지운 승지는 두리번거리며 공중전화를 찾았다. 이참에 효주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의 눈에 50미터 전방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가 들어왔다. 그곳으로 가서 십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연속해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열심히(?) 다이얼을 돌렸다.
다섯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가정부의 목소리였다.
“효주 없어요?”
“누구… 아, 새신랑이군요.”
승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기다리는 동안에는 전화기는 계속해서 돈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승지는 미리미리 십 원짜리 동전을 투입했다. 그러던 도중, 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야?”
“그래. 뭐해?”
“공부.”
“거짓말 하지 말고, 이실직고 해봐.”
“나라고 공부하면 안 돼?”
“이실직고 하면 오빠가 데이트 해줄게.”
“정말?”
“말해봐.”
“사실은 TV보고 있었어.”
“알았다. 얼른 나와. 택시 타고.”
“어디로?”
“본사 알지?”
“그럼. 아빠 때문에 몇 번 가봤지.”
“그 뒤편에 대풍식당이라고 있어. 삼겹살집이야.”
“알았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케이!”
전화를 끊고 승지는 다시 대풍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홀에 몇 팀의 손님이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은 비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승지의 행동을 지켜보며 쫓아다니던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더 자시게요?”
“네. 한 30분 있으면 여학생 한 명이 올 건데, 오면 안으로 들여보내주세요.”
“네.”
“소주 2병에 삼겹살 3인분 주시구요.”
“네.”
아주머니가 물러가자 승지는 방문을 닫았다.
* * *
그로부터 30분 후.
승지가 삼겹살을 구워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니, 효주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많이 기다렸어?”
“그런데, 얼굴이 그게 뭐냐? 쥐 잡아먹은 것도 아니고.”
옅게 볼터치를 한 것은 물론, 입술에는 로즈까지 바른 효주였다.
“오빠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어?”
“학생이 화장이나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쳇, 좋았던 기분 다 잡쳤네.”
“풀고 앉아.”
승지의 말에 효주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기분도 그런데 나도 술 한 잔 하면 안 될까?”
“마셔.”
“정말?”
“색시 술버릇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헤헤헤, 잘 생각했어.”
말과 함께 빈 잔을 내미는 그녀였다. 승지도 묵묵히 술을 따라주었다.
마시기 직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술 마시다 걸리면 정학인데.”
“오빠랑 마시면 괜찮아.”
“그렇겠지? 곧 신랑 될 사람이라고 하면 더욱 용서가 될 거야.”
말을 끝내자마자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도 몇 번에 걸쳐 잔을 비우는 그녀였다.
“이렇게 쓴 걸 왜 마시는 거야?”
“취해봐. 술이 달아진다.”
“그래? 그럼 나도 취할 때까지 마셔봐야겠네.”
“쓸데없는 소리.”
“알았어, 알았어. 몇 잔만 마실게.”
피식 웃으며 승지도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자 효주가 금방 잔을 채워주었다.
승지도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고기 먹어.”
“미리 구워놓으니 좋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면 안 될까?”
“하는 거 봐서.”
“쳇.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까?”
“뭐? 말투부터 고쳐. 시종 반말이네. 나이도 어린 것이.”
“부부는 일심동체라며?”
“그게 반말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니까 한 몸끼리는 말도 놓고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안 되겠다, 대충 먹고 가자.”
“멋대가리 없기는.”
이렇게 두 사람은 투닥거리며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택시를 타고 평창동까지 온 승지는 효주가 집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
“오빠, 오늘 고마웠어. 내 꿈꿔.”
“그래, 잘 자.”
쪽!
효주는 자신의 손바닥에 뽀뽀를 해서 승지에게 보내는 시늉을 하고는 부끄러운지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다음날 아침.
정확히 8시 50분에 승지는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부실장님!”
여비서의 인사에 승지는 손을 들어 마주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
“차 드릴까요?”
“네. 그리고 상사의 최 사장 좀 불러주세요.”
“네, 부실장님!”
회장실로 들어온 승지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여비서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최종욱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곧 문이 열리고 최종욱 사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 승지가 최 사장에게 물었다.
“원유 구매 건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누구의 명이라고 태만하겠습니까?”
“좋습니다. 하나 더 묻죠. 세계 각국에 퍼져 나가있는 지사장들과는 정기적인 통화나 회의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고 필요할 때만 통화를 합니다.”
“일본 종합상사의 정보력이 웬만한 나라의 정보력보다 낫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배경에는 매주 정례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보고받은 그 나라의 정정이나 경제동향, 여타 소식 때문에 그들의 정보력이 빠른 것입니다. 그러니 사장님도 그렇게 하세요. 해서 특이 동향은 제게 보고도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외에 할 얘기 있으면 하세요.”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가서 일 보세요.”
최 사장과의 면담 후에 승지는 건설사에 들러서 설계 확정 소식을 듣고는 빠른 시일 안에 터파기에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승지는 왠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간단하게 회장실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승지가 직접 비서실의 문을 열고 여비서에게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에 햄버거와 감자튀김 좀 시켜줘요.”
“네? 패스트푸드점이라뇨? 햄버거는 레스토랑에서 시켜야…….”
무의식중에 말을 하고 나서 승지는 아직 한국에는 패스트푸드점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그렇죠. 그럼 자장면이나 한 그릇 시켜줘요.”
“네, 부실장님!”
문을 닫으며 승지는 생각했다. 패스트푸드점을 제일 먼저 이 땅에 내야겠다고.
* * *
그로부터 5일 후.
승지가 출근을 하자마자 소병규가 회장실로 들어왔다.
“마크 리치로부터 사흘 후 뉴욕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답니다.”
“너무 촉박한 것 아니요? 비자는 나왔습니까?”
“아직 비자도…….”
“급행료를 주고라도 오늘 내로 발급을 받고, 대한항공의 직항편이 없다면 일본을 경유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알아보세요. 참, 제과와 전자 사장 비자도 신청해놨죠?”
”네, 부실장님!”
지난번 점심 식사 때의 건으로 국내에 패스트푸드점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 승지는, 곧장 비서실에 지시해 제과 사장도 비자신청을 하도록 지시한 바가 있었다.
또한 전자 사장은 훗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서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방미로 인해 비서실 아래직급의 4명이 방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수행비서 민영민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이 이에 해당되었다.
* * *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일행은 노스웨스트 138편에 탑승했다. 앵커리지를 경유해 뉴욕으로 직행한 이 비행기가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55분이었다.
통관수속을 마치고 포터에게 짐을 들려 밖으로 나오자, 사십대 중반의 미국지사장 이하 네 명의 간부가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실장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고맙습니다.”
승지의 감사 인사에 미국 지사장 한동채의 얼굴이 감격으로 환해졌다.
황송함과 기쁨의 낯빛으로 그가 새삼스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곧 출발할 수 있도록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대시시켜 놓았습니다.”
그를 따라가니 일행 모두가 탈 수 있도록 네 대의 고급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곧이어 승지를 비롯한 일행은 차에 올랐다.
잠시 후, 일행이 탄 차는 넓디넓은 하이웨이를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차가 이스트 강으로 다가가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자, 눈앞에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휘황찬란하게 네온불이 반짝이는 고층빌딩 숲이 보인 것이었다.
맨해튼에 들어찬 고층빌딩들이 저마다의 위엄을 뽐내는 가운데, 일행은 머지않아 파크 에비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도착했다.
승지가 보기에는 외관상으로는 별로 화려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최고급 호텔이라는 명성답게 엘레강스한 커브 계단으로 연결되는 아트 데코(Art Deco) 스타일의 화려한 로비가 압권이었다.
이 호텔은 천재 전기 공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 마를린 먼로 등이 투숙해 유명세가 더해진 곳이었다.
이 호텔의 클래식한 독방에 여장을 푼 승지는 이내 샤워를 하고는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술이 취하니 바빠서 잊고 있었던 윤진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끝난 일. 머리를 내저어 생각을 지운 승지는 두리번거리며 공중전화를 찾았다. 이참에 효주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의 눈에 50미터 전방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가 들어왔다. 그곳으로 가서 십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연속해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열심히(?) 다이얼을 돌렸다.
다섯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가정부의 목소리였다.
“효주 없어요?”
“누구… 아, 새신랑이군요.”
승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기다리는 동안에는 전화기는 계속해서 돈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승지는 미리미리 십 원짜리 동전을 투입했다. 그러던 도중, 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야?”
“그래. 뭐해?”
“공부.”
“거짓말 하지 말고, 이실직고 해봐.”
“나라고 공부하면 안 돼?”
“이실직고 하면 오빠가 데이트 해줄게.”
“정말?”
“말해봐.”
“사실은 TV보고 있었어.”
“알았다. 얼른 나와. 택시 타고.”
“어디로?”
“본사 알지?”
“그럼. 아빠 때문에 몇 번 가봤지.”
“그 뒤편에 대풍식당이라고 있어. 삼겹살집이야.”
“알았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케이!”
전화를 끊고 승지는 다시 대풍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홀에 몇 팀의 손님이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은 비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승지의 행동을 지켜보며 쫓아다니던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더 자시게요?”
“네. 한 30분 있으면 여학생 한 명이 올 건데, 오면 안으로 들여보내주세요.”
“네.”
“소주 2병에 삼겹살 3인분 주시구요.”
“네.”
아주머니가 물러가자 승지는 방문을 닫았다.
* * *
그로부터 30분 후.
승지가 삼겹살을 구워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니, 효주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많이 기다렸어?”
“그런데, 얼굴이 그게 뭐냐? 쥐 잡아먹은 것도 아니고.”
옅게 볼터치를 한 것은 물론, 입술에는 로즈까지 바른 효주였다.
“오빠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어?”
“학생이 화장이나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쳇, 좋았던 기분 다 잡쳤네.”
“풀고 앉아.”
승지의 말에 효주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기분도 그런데 나도 술 한 잔 하면 안 될까?”
“마셔.”
“정말?”
“색시 술버릇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헤헤헤, 잘 생각했어.”
말과 함께 빈 잔을 내미는 그녀였다. 승지도 묵묵히 술을 따라주었다.
마시기 직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술 마시다 걸리면 정학인데.”
“오빠랑 마시면 괜찮아.”
“그렇겠지? 곧 신랑 될 사람이라고 하면 더욱 용서가 될 거야.”
말을 끝내자마자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도 몇 번에 걸쳐 잔을 비우는 그녀였다.
“이렇게 쓴 걸 왜 마시는 거야?”
“취해봐. 술이 달아진다.”
“그래? 그럼 나도 취할 때까지 마셔봐야겠네.”
“쓸데없는 소리.”
“알았어, 알았어. 몇 잔만 마실게.”
피식 웃으며 승지도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자 효주가 금방 잔을 채워주었다.
승지도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고기 먹어.”
“미리 구워놓으니 좋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면 안 될까?”
“하는 거 봐서.”
“쳇.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까?”
“뭐? 말투부터 고쳐. 시종 반말이네. 나이도 어린 것이.”
“부부는 일심동체라며?”
“그게 반말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니까 한 몸끼리는 말도 놓고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안 되겠다, 대충 먹고 가자.”
“멋대가리 없기는.”
이렇게 두 사람은 투닥거리며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택시를 타고 평창동까지 온 승지는 효주가 집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
“오빠, 오늘 고마웠어. 내 꿈꿔.”
“그래, 잘 자.”
쪽!
효주는 자신의 손바닥에 뽀뽀를 해서 승지에게 보내는 시늉을 하고는 부끄러운지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다음날 아침.
정확히 8시 50분에 승지는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부실장님!”
여비서의 인사에 승지는 손을 들어 마주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
“차 드릴까요?”
“네. 그리고 상사의 최 사장 좀 불러주세요.”
“네, 부실장님!”
회장실로 들어온 승지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여비서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최종욱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곧 문이 열리고 최종욱 사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 승지가 최 사장에게 물었다.
“원유 구매 건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누구의 명이라고 태만하겠습니까?”
“좋습니다. 하나 더 묻죠. 세계 각국에 퍼져 나가있는 지사장들과는 정기적인 통화나 회의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고 필요할 때만 통화를 합니다.”
“일본 종합상사의 정보력이 웬만한 나라의 정보력보다 낫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배경에는 매주 정례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보고받은 그 나라의 정정이나 경제동향, 여타 소식 때문에 그들의 정보력이 빠른 것입니다. 그러니 사장님도 그렇게 하세요. 해서 특이 동향은 제게 보고도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외에 할 얘기 있으면 하세요.”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가서 일 보세요.”
최 사장과의 면담 후에 승지는 건설사에 들러서 설계 확정 소식을 듣고는 빠른 시일 안에 터파기에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승지는 왠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간단하게 회장실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승지가 직접 비서실의 문을 열고 여비서에게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에 햄버거와 감자튀김 좀 시켜줘요.”
“네? 패스트푸드점이라뇨? 햄버거는 레스토랑에서 시켜야…….”
무의식중에 말을 하고 나서 승지는 아직 한국에는 패스트푸드점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그렇죠. 그럼 자장면이나 한 그릇 시켜줘요.”
“네, 부실장님!”
문을 닫으며 승지는 생각했다. 패스트푸드점을 제일 먼저 이 땅에 내야겠다고.
* * *
그로부터 5일 후.
승지가 출근을 하자마자 소병규가 회장실로 들어왔다.
“마크 리치로부터 사흘 후 뉴욕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답니다.”
“너무 촉박한 것 아니요? 비자는 나왔습니까?”
“아직 비자도…….”
“급행료를 주고라도 오늘 내로 발급을 받고, 대한항공의 직항편이 없다면 일본을 경유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알아보세요. 참, 제과와 전자 사장 비자도 신청해놨죠?”
”네, 부실장님!”
지난번 점심 식사 때의 건으로 국내에 패스트푸드점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 승지는, 곧장 비서실에 지시해 제과 사장도 비자신청을 하도록 지시한 바가 있었다.
또한 전자 사장은 훗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서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방미로 인해 비서실 아래직급의 4명이 방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수행비서 민영민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이 이에 해당되었다.
* * *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일행은 노스웨스트 138편에 탑승했다. 앵커리지를 경유해 뉴욕으로 직행한 이 비행기가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55분이었다.
통관수속을 마치고 포터에게 짐을 들려 밖으로 나오자, 사십대 중반의 미국지사장 이하 네 명의 간부가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실장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고맙습니다.”
승지의 감사 인사에 미국 지사장 한동채의 얼굴이 감격으로 환해졌다.
황송함과 기쁨의 낯빛으로 그가 새삼스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곧 출발할 수 있도록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대시시켜 놓았습니다.”
그를 따라가니 일행 모두가 탈 수 있도록 네 대의 고급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곧이어 승지를 비롯한 일행은 차에 올랐다.
잠시 후, 일행이 탄 차는 넓디넓은 하이웨이를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차가 이스트 강으로 다가가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자, 눈앞에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휘황찬란하게 네온불이 반짝이는 고층빌딩 숲이 보인 것이었다.
맨해튼에 들어찬 고층빌딩들이 저마다의 위엄을 뽐내는 가운데, 일행은 머지않아 파크 에비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도착했다.
승지가 보기에는 외관상으로는 별로 화려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최고급 호텔이라는 명성답게 엘레강스한 커브 계단으로 연결되는 아트 데코(Art Deco) 스타일의 화려한 로비가 압권이었다.
이 호텔은 천재 전기 공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 마를린 먼로 등이 투숙해 유명세가 더해진 곳이었다.
이 호텔의 클래식한 독방에 여장을 푼 승지는 이내 샤워를 하고는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