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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원유 선물에 몰방(1)





“대졸 초임을 비교해 보면 실제로는 1~2만 원 차이지만 자긍심 면에서는 엄연히 다를 것이고, 그 차이가 종당에는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한 사람은 승지도 익히 아는 여비서였고, 또 한 사람은 사십대 후반의 날카롭게 생긴 자였다. 그 사내를 보고 최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시게.”

“네, 사장님.”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답을 하고는 조용히 서있자, 최 사장이 그를 승지에게 소개시켜줬다.

“우리 그룹의 정유사에서 원유 딜러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입니다. 구매부장을 맡아오다 금번에 상사로 옮겨온 김용준 팀장입니다, 부실장님.”

부장급을 팀장으로 보내다니. 기획실장 조민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아 승지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 그대로의 표정을 지으며 승지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부실장 고승지라고 합니다.”



이제는 승지가 차기 회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원이 없었다. 그랬기에 김용준 팀장은 매우 어려워하며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승지의 손을 맞잡았다.

“김용준이라고 합니다, 부실장님!”

“좋아요! 당분간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 팀원은 몇 명이나 되죠?”

“저까지 9명입니다.”



승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요즘 원유는 얼마에 거래되고 있습니까?”

“배럴 당 12달러 선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구매방법은?”

“미국의 세브런(Chevron)과 선물거래를 통해 구매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세브런 단 하나의 메이저사와 거래를 해왔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세브런이 우리 정유사의 합작사이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습니다만, 단일 기업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는 뜻이겠군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찌됐든 좋습니다. 지금부터 무차별 선매입을 시작하세요. 자본금은 1천2백억 원입니다.”

“네에?”



최 사장과 김용준 팀장 모두가 어마어마한 금액에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가운데 승지가 물었다.

“선물(先物) 증거금으로는 통상 15%를 지급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면 1,200억 전액을 선물증거금으로 사용해 6개월부터 1년 치까지 모두 선물로 매입하세요.”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몰방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가격이 오르면 중간에 그들이 추가 증거금을 요구할 텐데, 전액을 투자하면…….”

“추가 증거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김 팀장은 최소 3개월부터 최장 1년6개월까지 전액 선물거래를 하세요.”



이 대목에서 최 사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부실장님! 너무 과한 투기가 아닐까요? 그러다가 유가라도 떨어지면…….”

“이란의 정정(政情)이 불안한 걸 보면 조만간 제2차 오일쇼크가 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내말대로 투자를 하세요.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집니다. 그래봐야 그 돈 모두는 내 개인 돈이니, 나만 손해 보고 그룹에는 절대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쇼핑하듯 투자하세요. 단, 우리의 합작사만 큰 손실을 끼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가능한 한 모든 메이저사를 상대로 거래를 하세요.”



이 당시에는 뉴욕상품거래소도 출범하지 않은 때인지라, 석유 메이저사들과 직접 선물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어서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어쨌거나 1,200억 원을 현 환율인 484원으로 계산하면 약 2억4천8백만 달러였다. 현재 원유가가 12달러이므로 위의 금액이면 1,375만 배럴을 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선물로는 15%의 증거금만 내면 되기에, 중간에 예치할 증거금으로 10%를 남겨두고 매입한다하더라도, 그 6배인 8,250만 배럴을 선매입 할 수 있었다.



요는 현금을 가지고 현물을 사는 것보다 선물거래를 하면 6배의 물량을 더 살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만약 유가가 현 12달러에서 24달러로 2배만 뛰어주어도 결과적으로 12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기에, 실로 대단한 배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또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1,200억 원의 12배가 되어 돌아올 터이니, 1조4천4백 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금 중의 거금을 거둬들일 꿈에 젖은 사람이라면 대소라도 터트려야 마땅하건만, 승지의 눈은 냉철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한은 3개월입니다. 3개월 내에 1천2백억 원을 모두 소진하도록 하세요. 이는 명령입니다. 알겠습니까?”

승지의 말에 김용준이 신 앞에서 맹세라도 하듯이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부실장님!”



김용준의 대답을 듣고 승지가 갑자기 최 사장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지사는 뉴욕에 있습니까?”

“네. 뉴욕지사에서 북미지역 6개 지소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뉴욕지사장에게 지시하여 ‘석유왕’이라고 불리는 마크 리치(Marc Rich)를 수배하라고 하십시오.”



어디선가 석유왕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는지, 그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최 사장이 다른 질문을 했다.

“그와도 거래를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빠른 시간 내에 그를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고개를 끄덕이던 승지가 갑자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비밀에 붙이고, 강력히 시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자리에 앉은 사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답하는 가운데 승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그 시각.

부회장실에서는 부회장 하준과 이번에 새로 인수한 GL조선의 사장이 된 하영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요즘 그룹 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형님도 알고 계시죠?”

하준이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잘 모르겠는데.”

“풋내기가 출근을 하더니 사원들 잘라낼 궁리부터 하고, 이 불경기에 대단위 아파트공사를 착수하는 등, 그룹을 말아 먹을 자라면서 승지에 대한 평판이 좋지가 않습니다.”

“우리 그룹 창립 이래로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 일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그 바람에 조직에 군살이 많이 붙은 것도 사실이야. 이번 기회에 군살을 제거하기로 했으니, 자네도 더 이상은 그 부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게,”

“남들은 하던 공사도 중단하는 판에, 거꾸로 대단위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건…….”



승지가 말한 2차 오일쇼크에 대해 말할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던 하준이 표정을 굳혔다.

“연말 안에 제2차 오일쇼크가 올 것이라 예견하고 하는 일이니, 너무 걱정 마시게. 그리고 그 예측이 맞지 않는다면 잠시 공사를 보류하면 돼.”

“아파트 지을 용지도 그 애한테서 매입한 거라면서요? 만약 공사를 중지하게 되면, 그 돈은 고스란히 묶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런 면도 있어. 하지만 나는 이참에 그 아이를 시험해 보고 싶네. 그런 줄 알고 자네는 하던 일에나 집중해. 지금 조선소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지?”



“대형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건설이 불가피한 골리앗 크레인 완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제2도크 확장공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면 투자만 하고 있는 겐가?”

“조만간 많은 수주를 따내 적자를 타개할 생각입니다.”

“쉽지 않은 일일 게야. 조선공사라고 해서 적자를 내고 싶어 냈겠어? 그러니 비상한 각오로 열심히 뛰어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한데 정말 올 10월에 효주와 승지를 결혼시킬 생각이십니까?”

“회장님의 간곡한 부탁이니 어쩔 수가 없네.”

“아무리 그래도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를…….”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하영을 향해 하준이 말했다.

“어차피 혼인시킬 것, 조금 앞당긴다 생각하고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 마시게.”

“요즘 형님이 좀 이상해지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선소 운영이나 잘해! 내가 괜히 새벽 6시면 각 공장을 순회하는 줄 알아. 요즈음은 회장님이 부재중이라 그러지 못하지만, 아무튼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어. 그러니 자네도 옥포에 상주하면서 최대한 적자를 줄이고, 빠른 시간 내에 흑자로 전환되도록 경영에나 힘써.”

“알겠습니다, 형님.”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여비서가 들어왔다.

“기획조정실 부실장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 조선소 사장과는 이야기 다 끝났으니.”

“네, 부회장님!”

“그럼 저는 내려가 보겠습니다, 형님.”

“몸조심 하고.”

“네, 형님!”



하영이 나가려는데 승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조선 사장님도 계셨네요?”

승지의 아래 위를 훑어보던 하영은 말없이 그대로 나갔다.

고개를 갸웃하며 승지가 부회장에게 물었다.

“제 인사도 안 받고 왜 저러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전생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가 왜 그러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물은 것이었다.

“내가 조선소 경영에 대해 좀 나무랐더니 저러는구먼.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네, 부회장님!”



승지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계서열 1위라면서도 사원들 대우는 1위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는 인재 제일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뽑을 때부터 최고의 초임을 주고,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뽑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기존 사원들의 월급도 덩달아 올려줘야 하는 부담도 있겠지만, 그 재원은 이번에 실시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남는 돈으로 충당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

잠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하준이 말했다.

“그 문제는 사장단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도록 하지. 일방통행보다는 사장들도 동참시켜서 그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긍지를 심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그런 면은 제가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일은 없고?”

“제가 땅을 판 돈으로 원유선물에 과감히 배팅하기로 했습니다.”

“그 돈을 다?”

“네.”

“자네는 투기성이 너무 강한 것 같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도 있듯, 분산 투자가 낫지 않겠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기회를 잡았을 때 과감히 행동하는 것도 경영자의 필수 덕목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매사 조심하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또 상의할 일이 있으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시게.”

자리에서 일어선 승지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부회장실을 떠났다.



* * *



다음 날.

승지는 처음으로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계열사 사장들과 상견례를 했다.

이어 부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인재 제일주의를 역설해 사장들의 동의를 받아냈다.

이후 승지는 건설사에 들러서, 조기에 설계도면을 완성해 날이 추워지기 전에 터파기에 돌입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 나서 상사에 들른 승지는 최 사장의 요청에 그와 마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