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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10배의 차익을 남기다(3)





졸지에 1,200억 원을 입금 받은 승지의 기쁜 마음과는 달리 그룹 내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기획조정실에서 구조조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물론, 계열사별로 그 대상 인원이 확정되어 통보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개발과 해외개발을 GL건설로 통합한다는 발표까지 이어지자, 그룹 내 분위기는 한층 더 어수선해졌다.

이때는 이미 차기 총수로 내정된 고승지의 경영수업 사실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라는 소문과 함께 그에 대한 사원들의 평판은 아주 나빠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놈 하나가 뛰어들더니, 사람 자르는 일부터 한다.’는 악의적인 평과 함께 ‘좋은 시절 다 끝났다.’는 간부들의 푸념까지. 실로 그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를 향해 두려움이 생기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승지는 아파트 설계를 재촉하고 이번에는 GL상사로 출근을 했다.



GL상사로 출근한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GL상사는 그룹 사옥 7층에 있었다.

오전 9시 10분. 수행비서 민영민의 안내로 승지는 곧장 사무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사무실 안을 바라보던 승지는 입이 떡 벌어졌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과 풍경이 그의 귀와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텔렉스의 소음에, 전화기를 붙들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 분을 못 이겨 서류를 집어던지는 사람 등, 누가 보면 싸움이라도 난 줄 알 정도로 분위기는 치열했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지켜보던 승지가 민영민에게 말했다.

“사장실로 갑시다.”

“네, 부실장님!”

사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복도를 걸어 ‘사장실’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는 앞에 섰다.



똑 똑!

민영민은 노크를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무조건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여비서가 상냥하게 그를 응대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획조정실 부실장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사장님 안에 계신가요?”

“네. 용건이라도 밝혀주시면 사장님께 전해드리고 면담여부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가 뭘 모르나 본데, 여기 계신 부실장님은 차기 회장님이 되실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냉대를 받고 돌아간다면 최종욱 사장님이 엄청 좋아하겠습니다그려.”



여비서는 제법 눈치가 빨랐다. 즉시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아,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즉시 사장님께 통보 드리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인터폰을 드는가 싶더니 그녀가 말했다.

“차기 회장님 내방이십니다.”

그 한 마디를 하고는 즉시 전화를 끊는 그녀의 순발력을 지켜보며 승지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사장실 문을 열어주려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사장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오세요, 부실장님!”



번쩍이는 금테안경에, 배가 불룩 나온 오십대 초반의 사내가 승지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향해 승지가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어서 오십시오.”

최 사장이 말과 함께 한 발 옆으로 비켜서자,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을 보여주듯 민영민이 나오지도 않은 배를 불쑥 내밀며 저부터 실내로 들어갔다.



최 사장의 안내로 소파에 자리를 잡은 승지는 사장실의 내부를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쪽 벽면에는 대형 세계 전도가 걸려 있었는데, 곳곳에 푸른색 점들이 찍혀 있었다. 또한 꽤나 많은 시계들도 걸려 있었는데, 각기 다른 시간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짐작하기로는 주요 지사의 위치와 지금의 시간대를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여비서가 들어와서 말했다.

“무슨 차로 준비해 드릴까요?”

“나는 봉지 커피!”

“나도요.”

“내건 알지?”

“네.”

승지의 말에 민영민이 덧붙이고, 최 사장은 즐겨먹는 차를 주문했다.

그녀가 나가자 승지가 최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나라에 현재 상사로 지정받은 곳이 몇 개나 있습니까?”

“현재는 다섯 개입니다. 오성물산, 대영실업, 미래종합상사, 샛별상사와 우리 GL상사 등이죠.”



승지가 말한 상사(商社)는 종합상사(綜合商社)의 줄인 말로서, 일본의 종합상사를 모방해서 만든 제도였다. 1975년에 해외지사 10개, 수출국가 10개, 자본금 10억 원, 연간 수출실적 5,000만 달러 이상인 기업을 국가에서 종합상사로 지정해, 해외무역에 관한 한 특수한 지위를 부여한 법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종합상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쑤시개에서 미사일까지’라는 표현 그대로 해외무역 등을 통해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기업을 말한다.

즉, 수익을 위해서라면 상황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하며 어떤 일이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합상사인 것이다.



승지가 최 사장의 대답을 듣고는 물었다.

“우리가 주로 하는 사업은 우리 그룹의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것 외에도 다른 회사의 제품을 해외에 팔아주거나 수입해서 그 수수료를 먹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수수료는 얼마나 뗍니까?”

“통상 5%를 기준으로 하지만, 요즈음은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3% 마진만 보고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흐흠, 좋은 현상은 아니군요.”

“그래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업을 다각화 할 필요가 있겠군요. 헌데 부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승지의 물음에 최 사장이 즉시 답을 했다.

“영업1부를 시작으로 4부까지, 총 네 개의 부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영업1부는 주로 섬유와 관련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네 부서는 모두 취급 품목이 각기 다릅니다.”

“아직은 우리나라 수출품의 주종이 섬유이니 이해는 됩니다만, 앞으로는 타 회사로부터 마진을 뜯어먹고 사는 것보다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투자해서 마진을 챙기는 쪽으로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든다면 원면의 가격이 오늘은 얼마인데, 한 달 후에는 얼마에 이를 것이니, 이를 미리 예측하고 대량 매입을 했다 판다든가, 반대의 경우는 지금 팔아서 많은 이익을 챙기는 식이죠.”



이때 차가 들어왔기에 승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원면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그 분야는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원자재 분야로 원유, 철, 비철금속, 곡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증권도 한 분야가 되겠지요. 그러자면 이에 대비한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적극적이고 장기적으로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최 사장의 커진 눈을 바라보며 잠시 이야기를 중단했던 승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더불어 훗날 수익성이 악화될 것에 대비해 중간 마진을 먹고사는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원료생산에서부터 최종 제품 생산단계에 이르기까지 관여하되, 우리가 전부 행할 수는 없으니 그 분야의 우수한 기업을 발굴해서 직간접으로 투자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낱 풋내기 대학생으로만 알고 있던 차기 후계자가 말을 하면 할수록 미래비전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며 최종욱은 깜짝 놀랐다.

마음속에 떠오른 놀람을 감추며 최 사장이 물었다.

“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조직개편을 단행할까요?”

승지의 말이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그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일리는 있었고, 차기 후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순발력을 발휘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물은 것인데, 그 본인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답을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당장 내일부터라도 원유, 철, 비철금속, 곡물을 비롯한 농축산물, 증권 등의 다섯 개 분야를 신설해, 각 분야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우선 당장은 그 분야에 전문가가 없을 테니 부(部)보다는 작은 규모인 팀 체제로 조직을 꾸리되,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면 영입도 하고, 사원 중에도 그 분야에 밝은 자들을 뽑아서 배치하는 것이 좋겠지요.”

“알겠습니다. 부실장님의 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명이 아니라 사장님과 협의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취지에 동감해서 행하는 것이니,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호방한 척 웃음을 짓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승지가 물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상사의 운영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으음… 대략 30억 정도 있습니다.”

“겨우 그것밖에 안 됩니까?”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요즘 환율은 얼마나 합니까?”

“484원입니다.”

“30억 원을 달러로 환산한다면 대략 620만 달러인가요?”



620만 달러라는 숫자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떠나, 순식간에 암산으로 이를 계산해 내는 차기 회장의 암산속도에 최 사장은 놀란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게 순간적으로 가능합니까?”

조용히 씩 웃어준 승지가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다섯 개의 부서가 새롭게 출범하면, 자체 예산도 최소 다섯 배 이상의 증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더 많은 돈을 투입해 자신의 부서에 힘을 실어준다는데 싫어할 사장은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최 사장은 기쁨으로 눈이 빛나며 즉시 호응했다.

“동감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수익을 낸다면 그룹 내 우리의 위상도 달라지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죠. 그게 바로 제가 이곳에 먼저 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부실장님!”

새삼스럽게 머리를 조아리는 최 사장을 향해 승지가 말했다.

“부서가 개편되는 대로 다시 오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 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승지는 사장실을 벗어났다. 다시 기획조정실로 돌아온 승지는 여타 일들에 대해 조민 실장과 협의를 했다. 물론 말이 협의지 일방적인 지시나 다름이 없었다.

GL상사에 다섯 팀을 보강하되, 원유팀 같은 경우에는 정유에서 오로지 구매만 담당하던 전문가를 파견해달라는 식의 요청을 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한 승지는 이후로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 * *



그로부터 6일 후.

최종욱 사장으로부터 새로운 팀이 완비되었다는 유선상의 보고를 받은 승지는 다음날 아침에 GL상사로 출근을 했다. 곧장 사장실로 들어간 승지는 이내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다섯 개 팀 모두 출범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원유팀장 좀 불러주시죠?”

“알겠습니다.”



최 사장은 곧바로 인터폰을 들어 비서실에 지시를 내렸다.

“원유팀장 좀 불러줘.”

인터폰을 내려놓은 최 사장을 보며 승지가 말했다.

“사장님부터 새로 출범한 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세요. 그리고 출범한 지도 얼마 안 되었으니, 처음에는 안목을 기르는 셈치고 소액씩 투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세요. 그렇다고 푼돈 질을 하면 안 되고, 상사의 운영자금 30억 원을 다 잃어도 괜찮으니 소신껏 배팅할 수 있도록 하세요.”

“실로 부실장님의 배포에 놀랐습니다. 우리 그룹 대졸사원의 초임이 13만 원이니, 30억 원이라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승지는 그의 아부성 발언보다는 그룹의 대졸신입사원 초임이 13만 원이라는 데에 관심이 꽂혔다.

“13만 원이면 국내 최고 대우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 그룹보다 초임을 많이 주는 그룹이 두 군데나 더 있습니다. 미래그룹과 오영그룹이 그렇습니다.”

“재계서열 1위라면서 최고의 월급을 주지 않다니요.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뽑아야지요. 뭐 이건 최 사장님의 잘못은 아니니 부회장님께 건의해서 그렇게 만들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 사원들의 월급도 덩달아 올려줘야 할 텐데요…….”

“당연히 올려주고, 일도 그만큼 열심히 해주길 바라야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최 사장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