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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10배의 차익을 남기다(1)





“문제는, 이곳이 이런 상태인지라 주거지로 형질 변경을 해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겠군요. 그것부터 착수하는 것이 순서겠습니다.”

홍 사장의 말에 승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내가 어떻게든 형질변경은 시켜 놓을 테니까, 우선 20만 평에 34평형이 주가 되는, 9,000세대를 짓는 것으로 설계에 착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김충식의 답변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승지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차 안에서 내가 한 말, 꼭 설계에 반영하도록 하시고요.”

“네, 부실장님!”

“자, 이만 돌아갑시다.”

“네, 부실장님!”



모두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승지가 수행비서 민영민의 소매를 잠시 붙잡았다.

이에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승지가 물었다.

“혹시 로비에 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글쎄요…….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이런 일을 많이 하는 개발부서 쪽에 있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민영민의 말에 승지가 앞서가던 홍성기를 불렀다.

“홍 사장님!”

“네?”

돌아서서 멈춰서는 그에게 승지가 물었다.

“부서 내에 로비에 능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 네. 그쪽도 담당이 있죠.”

“돌아가는 대로 그 사람을 기획조정실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일행은 곧 차에 올라 현장을 떠났다.



* * *



사옥으로 돌아온 승지는 기획조정실장 조민을 데리고 부회장 하준을 만나러 갔다.

“앉으시게.”

“네.”

승지는 부회장 맞은편의 소파에 조민과 나란히 앉았다.

“볼일이라도 있는가?”

“조 실장과도 얘기를 했지만, 개발과 해외개발 부서를 통폐합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흠…….”



생각에 잠기는 부회장을 향해 승지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사무직 인력낭비도 덜할 것이고, 기술자들도 순환 근무가 가능해져 일거리가 많은 곳으로 이동시킬 수가 있어서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부회장이 말했다.

“일리가 있어, 일리가 있는 말이야.”

“사명은 GL건설로 하죠.”

“괜찮은 작명 같군.”



부회장도 동의하는 가운데, 승지는 새삼스럽게 GL그룹으로 그룹의 이름이 작명된 사연이 떠올랐다.

작년부터 회장은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천명하면서 그룹의 이름부터 바꿀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시하게 된 다른 이유에는, 대운(大運)이라는 이전의 그룹명이 천박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내 공모를 통해 채택된 그룹명이 GL이었다. 이는 Good Luck의 줄임말로서, 전과 같이 대운이라는 뜻도 있는데다가 행운, 복, 행운을 빕니다, 성공을 빕니다, 힘내세요 등의 다채로운 뜻이 있어서 1등으로 채택된 것이었다.

아무튼 두 개발사를 ‘GL건설’이라는 하나의 회사로 통합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기획조정실에서 만들기로 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승지는 곧이어 조민과 함께 다시 기획조정실로 내려왔다.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승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지는 그가 건설에서 로비를 담당하는, 시쳇말로 ‘술 상무’임을 직감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고승지라고 합니다.”

“강지유입니다.”

40대 중반의, 반질반질하게 생긴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승지가 물었다.

“직급이……?”

“상무입니다.”



40대 중반에 이사도 아닌 상무라면, 보수적인 경영을 하던 GL그룹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승진이었다. 그래서 승지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직급에 거품이 낀 것 같은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원래는 부장직급 정도를 받아야 하나, 접대 상 그래도 임원이라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자, 그건 그렇고, 지금은 전답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형질 변경해서 주거지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이천 평이 아니라 수십만 평이나 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안 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로비 아니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부실장님!”



승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강지유는 튼튼한 동아줄을 붙잡기 위해 말에 힘을 주었다.

“좋습니다. 일단 40만 평을 형질 변경하려면 얼마의 로비자금이 필요하겠습니까?”

“다다익선이니 최소 10억 원은 가져야…….”

“뭐요? 10억? 근로자 평균 임금이 10만 원이 안 되는데, 10억이면 도대체 봉급쟁이들의 몇 년 치 월급입니까? 월 10만 원만 잡고 120만 원이면 1년 치 월급, 1,200만 원이면 10년, 1억2천이면 100년, 대충 잡아도 800년이 넘는 월급을 한 사람에게 준다고요?”



승지의 말에 강지유가 손까지 흔들어대며 말했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주무부서장인 도시개발 국장의 윗선도 층층이 있고, 부하들도 입에 자물쇠를 채우려면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40만 평 규모라면 이는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주무장관 등 최소 장관라인까지는 로비를 해야 하고, 어쩌면 대통령까지도…….”

“현재 강남으로의 인구 유입을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 대규모 택지를 조성해 인구를 유입시키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도 보조를 맞추는 일 아닙니까. 따라서 대통령 선까지는 안 올라가도 될 거라고 봅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금액을 예상한 것입니다.”



“우리끼리 떠들어봐야 소용없고, 일단 주무국장부터 만나봅시다.”

“제가 약속시간과 장소를 잡아오겠습니다. 하면 그 자리에 부실장님도 참석해주십시오. 그룹의 실세가 참석하면 아무래도 저들에게 신뢰도 주고, 그렇게 되면 로비자금도 당연히 덜 들게 되니…….”

“무슨 얘기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부실장님!”

“내게 감사할 일이 아니죠.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니까요. 어찌됐든 약속이나 잡아오세요.”

“실탄은……?”

“그건 내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네. 그럼 약속이 잡히는 대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회장실로 전화주세요.”

“네.”

회장실이라는 말에 강지유의 고개가 더욱 깊숙이 숙여졌다.



* * *



이날 저녁 7시. 승지는 강 상무와 함께 압구정의 ‘로열살롱’에 왔다.

로열살롱이라고 하니 자동차 이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로열살롱이라는 자동차는 대영그룹에서 80년대 초에 출시하니 아직은 자동차 이름도 아닌 시대였다. 그러니 ‘로열’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룸살롱에 온 것이었다.



접대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접대를 받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서울시 도시개발 국장 장태춘이었다. 단 셋만 있던 밀실 내에는 탁자 안쪽에 장 국장이 자리를 잡았고, 둘은 문 쪽에서 가까운 곳에 그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셋을 안내해온 웨이터가 각자에게 물수건을 돌리자, 강 상무가 자연스럽게 팁이라면서 만 원을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웨이터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가자 곧이어 이곳의 마담이 들어왔다.



최고급 룸살롱답게 마담도 눈에 확 띠는 미인이었다. 30대 초반에,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히 튀어나온 키가 큰 미녀였다.

“유진이라고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깊숙이 허리를 숙인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고는 물었다.

“술은 뭐로 들일까요?”

“국산양주가 최고지. 베리나인으로 가져와.”

참고로 베리나인은 금년에 첫 출시된 국산양주로서,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위스키 원액이 25% 함유된 합성재제주였다.



그런 장 국장의 말을 강 상무가 제지하고 나섰다.

“잠깐만!”

일단 주문을 보류시킨 그가 장 국장을 보며 말했다.

“이 집에는 각하도 아까워서 침대 머리맡에 두고 조금씩 마신다는 로얄 살루트도 있습니다만?”

“그 정도면 너무 비쌀 것 아니오? 뭐 정 그렇다면 시버스 리갈로 가져와요.”

장 국장의 말에 마담이 강 상무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해요.”



마담이 나가자 승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승지라고 합니다.”

이를 받아 강 상무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회장님의 독자로서 머지않아 우리 그룹의 총수가 되실 분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젊은 나이에 부럽습니다. 누군 그 어렵다는 행시를 패스하고도 뼈 빠지게 고생해서 이 나이에 겨우 국장인데…….”

“저는 그 반대로 젊으니 아직은 실컷 놀고 싶으나, 그럴 여가가 없으니 답답합니다.”

“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마련이죠.”



이때, 나갔던 마담이 웨이터와 함께 술과 안주를 가지고 들어왔다. 안주로는 세 접시에 놓인 과일과 최고급 치즈 땅콩 및 과자, 구운 오징어 한 마리 등이었다.

“제가 먼저 한 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마담이 술병을 따며 말하자, 강 상무가 손짓으로 장 국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장님부터 먼저 한 잔 드려.”

“네.”

“잠깐만!”



승지가 이를 제지하자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조금만 있다 따라요. 에어링이라고, 개봉 이후 공기와 접촉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위스키 본래의 향이 살아나니까 말이죠.”

젊어서 이런 분야는 전혀 모를 줄 알았던 청년이 그런 말을 하자, 두 사람은 모두 역시 부잣집 도련님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마시자는 승지의 말에 장 국장이 마담을 음흉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마담 정도의 인물이면 애인이 있겠는데?”

그리고는 덧붙여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펴들며 물었다.

“혹시 이게 차려준 거 아닌가?”

그의 말에 마담은 강하게 부인했다.

“전혀요. 저는 단지 매상의 10%만 로열티로 받고…….”

“그렇다면 다행이고.”

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장 국장의 질문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누가 사실 그대로를 말하겠는가. 우문에 현답이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고 판단한 승지가 마담에게 말했다.

“이젠 따라 드리지.”

“네, 부실장님!”

승지는 그녀가 자신의 직책을 알고 있자 질문을 던지려다가 그만 두었다. 분명 강 상무가 예약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떠들었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마담이 장 국장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라 올리자, 탁자 위로 쏟아진 그녀의 가슴에 전적으로 시선을 주며 한 잔을 받은 장 국장은 이내 언더락(On the rock) 잔으로 받은 술을 유리컵에 다시 부었다.

그리고는 장기전을 꾀하기 위함인지 미리 준비된 얼음을 그곳에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에 승지와 강 상무도 마담으로부터 술을 한 잔씩 받았다. 이에 강 상무도 술을 희석시키기 위해 얼음을 섞었지만, 승지는 언더락 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자, 한 잔 하실까요?”

“그럽시다.”

장 국장이 동의하고 잔을 부딪쳐오자 강 상무도 따라서 잔을 부딪쳤다.

“국장님의 건강과 승진을 위하여, 건배!”

“위하여!”

승지의 선창에 두 사람도 후창을 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단숨에 잔을 비운 승지가 마담을 보고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부르거든 오세요.”

“네, 부실장님!”

그녀가 넙죽 절을 하고 나가자 강 상무가 눈치껏 먼저 입을 뗐다.

“한 장이면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장 국장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한 장이면 얼마를 말하는 것이오?”

“1억!”

장 국장은 순간 발끈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비만 오면 침수되는 저습지를 주거용으로 바꿔주면 그 시세차익이 얼마인데, 겨우 1억이란 말이오? 그거 받고 모가지 잘릴 일 있소? 아이들도 아직 고만고만한데. 그리고 윗선에도 상납을 해야지, 밑의 것들도 입을 틀어막으려면 조금이라도 챙겨줘야지, 그것 가지고는 턱도 없소이다.”

“그럼 5억이면 아래 위 모든 것이 해결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