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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돈 벼락(3)





승지가 눈물을 참기 위해서 눈에 더욱 힘을 주어 비서실장을 직시하는 가운데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주목! 오늘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들렀소. 다름 아닌 회장님의 독자 고승지 군입니다. 오늘부터 경영수업 차 출근하기 시작했고, 시작은 기획조정실 부실장에 상무이사로 보임되었습니다.”

부회장이 말을 했지만, 시선은 모두 고승지에게 쏠린 가운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회장님은 이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또한 당분간은 필요 없는 조직이 되오.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내가 부실장에게 제의를 해서, 회장실도 사용하고 필요하면 여러분의 조력도 받도록 했소. 하니 여러분들은 이제부터라도 부실장을 회장님 대하듯 잘 모셔서, 우리 그룹이 발전하는 데에 일조하도록 해주시오. 알겠소?”

“네!”



자칫 조직이 사라질 뻔한 위기에서 부실장이 구원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은 큰소리로 대답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자, 그럼 인사들 나누시게.”

부회장이 말을 마치고 한 발 뒤로 빠지자, 승지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소병규 실장의 손을 잡는 것으로 비서실 직원들과의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비서실장 소병규라고 합니다.”

“고승지입니다.”

승지가 답을 하며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자, 소병규가 의아한 듯이 그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승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믿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부 비서실장인 강민재. 이런 식으로 열두 명의 비서실 직원들과 모두 인사를 나눈 후에 승지가 말했다.

“건설부서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승지의 말에 수행비서 직함을 단 삼십대 초반의 사내 민영민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언제든 하명만 하십시오. 모시겠습니다.”

그가 앞장을 서자 부회장이 승지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일보고.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들러주시게.”

“네, 부회장님!”

하준과 작별한 승지는 민영민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2층에서 내린 두 사람은 ‘GL개발’이라는 표찰이 붙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삼십여 명의 직원들이 잡담을 하고 있다가 의아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승지가 물었다.

“사장님 계십니까?”

수행비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가 손님을 모시고 온 것이라고 판단한 한 명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쪽을 바라보니 별도의 사무공간이 조성된 곳에 ‘사장실’이라는 표찰이 붙어있었다. 이에 승지가 민영민과 함께 그 앞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그러자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들어와!”

승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출근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홍성기 사장이 돋보기 너머로 승지를 바라보았다.

“아니, 자네는……?”

놀라는 그를 향해 민영민이 말했다.

“기획조정실의 새로운 부실장이신 고승지 상무입니다. 참고로 회장님의 독자이십니다.”

“아, 그래서 그렇게 건방졌구만…….”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말에 민영민이 경악하는 가운데, 미소를 지은 승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승지라고 합니다.”

얼결에 책상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으며 홍성기가 물었다.

“우리 부서에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앉아서 얘기 좀 나누실까요?”

“그러죠. 이봐!”

“네!”



쪽문이 열리면서 여직원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차 좀 부탁해.”

“네.”

“이쪽으로.”

두 사람을 응접소파로 안내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앉으며 여직원에게 말했다.

“주문 받아야지!”

“네.”

“나는 봉지 커피로 주세요.”

“나도 같은 걸로 부탁합니다.”

승지와 민영민의 주문이 끝나자 홍성기가 말했다.

“내건 잘 알지?”

“네, 사장님!”



이내 그녀가 몸을 돌려 사라지자, 시선을 승지 쪽으로 옮긴 홍성기가 물었다.

“그래, 우리 부서는 무슨 일 때문에 찾으셨습니까?”

“이 시간에 사장부터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인원이 너무 많군요.”

“요즘 불경기로 인해 짓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습니다. 청담동에 연립주택을 몇 채 짓고 있는 것이 전부인데다, 그마저도 마무리 단계라…….”

이 대목에서 슬쩍 눈치를 보는 홍성기를 향해 승지가 말했다.

“그래가지고야 직원들 월급이나 제대로 주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게 큰 걱정입니다. 어디서 큰 공사라도 수주해야 되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고…….”

“국내가 정 여의치 않으면 해외공사라도 수주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엄연히 다른 부서가 있습니다. ‘GL해외개발’이라고, 사업체가 다릅니다.”

“흐흠…….”



나이든 사람 마냥 침음성을 흘리던 승지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두 회사를 합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시너지효과가 날 것도 같은 데요? 중복부서도 없앨 수 있고.”

“그건 제 몫이 아니라 윗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개편이야말로 윗선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찬성하는 사람이 드물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중복되는 부서부터 해고될 텐데, 누가 통폐합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무슨 얘기인지 알겠습니다. 으음… 말을 들어보니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좋은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홍성기의 상체가 자신도 모르게 승지 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여직원이 탁자에 차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곧 그녀가 사라지자 승지가 입을 열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합시다.”

“네? 이 불경기에요?”

“합시다.”

이렇게 운을 뗀 승지가, 곧 국제유가 시장에 큰 변동이 생길 것이며,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투기광풍이 불 것이니 미리 손을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홍성기 사장은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생각보다 보수적이시군요.”



에둘러 그를 질책한 승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건은 회장님의 승인을 받은 사안이니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나와 함께 대치동 현장에 가보시죠. 설계를 담당할 실무자도 데리고요.”

회장을 들먹이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에 홍성기는 이내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부실장님!”



식은 차를 마저 마시고 승지가 일어서자, 잔도 비우지 않은 채 홍성기가 먼저 일어나 사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두 사람이 사장실을 나오자 호출된 한 사람이 승지 앞에 섰다.

“인사드리게. 기획조정실 부실장님으로, 장차 우리 그룹의 회장님이 되실 분이야.”

홍성기의 직설 화법에 사십대 중반의 사내는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설계부장 김충식이라고 합니다.”

“좋아요. 그럼 갑시다.”

승지가 앞장을 서자 세 사람도 부지런히 그의 뒤를 따랐다.

1층으로 내려온 네 사람은 곧 홍 사장의 차에 올라타고 대치동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승지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사실을 인지한 후로 그가 신경 쓴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전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어려서부터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공부야 집안의 신임을 받기위한 방편이었고, 어려서부터 돈을 모은 이유는 전생의 비참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한 건물주는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 속에 그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명절 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을 때, 그 액수가 생각보다 적으면 졸라서라도 더 받아내기까지 했다.

또한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안마를 도맡아 하며, 아버지가 드리던 할머니의 용돈을 거의 다 받아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저금을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모은 돈을 차례로 강남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한강변의 모래땅을 헐값에 사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반포와 압구정 일대의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그렇게 평당 몇 백 원, 몇 천 원에 사들이다보니 고등학교를 마칠 때에는 일대에 40만 평을 가진 땅 부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 전부를 자신 앞으로 해놓은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차명이었으며, 이를 대행해 준 사람은 일정한 직업 없이 누나를 등쳐먹고 살던 외삼촌이었다.

이후 72년이 되자 강남에 아파트 건립 붐이 일었다. 이에 그 땅들을 미래건설 및 여타 건설사에 매도한 승지는 그 돈으로 이번에는 대치동 및 도곡동 일대의 과수원 및 농경지를 사들였다. 그런데 처음의 배가 넘는 80만 평을 사고도 돈이 남았다.

그래서 남은 돈으로는 평당 5천 원을 하던 개포동 일대의 땅 40만 평을 추가로 매입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승지가 조수석에 앉은 설계부장 김충식을 보며 말했다.

“설계에 몇 가지 반영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설계에 반영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요즘 유행하고 있는 중앙 집중난방을 채택해주시고, 엘리베이터는 한 통로당 두 개를 채택해 주세요. 몇 십 년 후에도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속도가 가장 빠른 놈으로 채택해야 합니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가용을 보유하는 세대가 많아질 것이니, 최소한 1가구당 한 대의 주차면적을 확보하세요. 더하여 놀이시설이나 녹지 등을 타 아파트보다 많이 조성하여 명품 아파트를 만드세요. 단, 상가는 보다 높고 크게 조성하여 일정 손실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승지의 말에 사장 홍성기가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중앙난방은 그렇다 쳐도, 1가구당 1대의 주차면적은 너무 앞서가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 또한 통로당 1대밖에 설치하지 않는데, 2대를 설치하라는 것은 모두가 분양가에 반영될 것이고, 그러면 분양가가 너무 올라가 분양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단위 아파트사업은 처음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우리는 최소 30년 앞을 내다보는 명품 아파트를 지향하는 겁니다. 차별화 전략이죠.”

잠시 홍 사장을 바라보다가 승지는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파트 브랜드도 만드세요. 그래서 우리 그룹이 짓는 아파트는 모두 똑같은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해서 우리 브랜드 명만 듣고도 믿고 청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흐흠…….”

생각에 잠긴 홍 사장을 무시하고 승지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당장의 이익에만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먼 미래를 보고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줄 때, 우리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것은 물론, 미래 또한 보장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내 말대로 따라주세요.”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으시군요.”

홍성기는 자신의 감정을 느낀 그대로 솔직히 전하며 승지의 말에 따를 것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잠시 실내에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차는 어느덧 한강을 넘어서고 있었다.



* * *



“허허, 아직도 이곳은 초가집에 슬레이트집, 주로 논과 밭 아니면 과수원이군요. 다 같은 강남이라도 이렇게 발전이 더딘 곳이 있었다니…….”

승지가 사놓은 땅을 둘러보며 내뱉은 홍 사장의 소감에 모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물었다.

“부실장님, 요즘 이곳 시세는 어떻게 됩니까?”

“평당 5만 원 전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와우! 그렇게 쌉니까? 고속버스터미널이 건설되고 있는 반포동 일대가 평당 70만 원선에 거래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헐값이군요.”

“이곳도 개발이 되면 훗날에는 그에 버금가는 시세가 형성되겠지요.”

“하하하……. 우리에게 지시하는 내용이며, 미래를 내다보고 이곳에 대단위 땅을 사들인 것 하며, 부실장님은 생각하면 할수록 경영수업을 받을 분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지도자 같습니다.”

홍성기의 칭찬에 단지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 답한 승지가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