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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돈 벼락(1)





김윤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자 승지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전생에서도 이맘때쯤 후계자 수업을 한 관계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2차 오일쇼크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연히 전생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지라 경영상 큰 혼란을 겪었었기에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올해 12월 언제쯤인가 분명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해 세계를 큰 혼란에 빠트릴 터였다.

어찌됐든 이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곧 돈을 벌 기회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이에 승지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찍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말이다.



그런 그에게 곧바로 묘안이 떠올랐다.

“야호!”

자신도 모르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두 손을 치켜들며 고함을 지른 승지는 이내 방을 벗어났다.

방을 나온 승지는 곧장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거하는 침실로 향했다. 다행히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하긴 지금은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니 두 분이 취침할 시간은 아니었다.



똑똑!

“승지냐?”

“네, 엄마! 들어가도 돼요?”

“들어오렴.”

승지가 방안에 들어가니, 두 분이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서 TV를 시청하고 계셨다. 당연히 흑백 TV였다. 칼라TV 방송은 전두환이 집권하는 198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현 대통령 박정희는 칼라TV 방송을 계속 불허해 오고 있었다. 국민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치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방안에 들어온 승지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말해봐라.”

“시간이 좀 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회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럼 서재로 가자.”

“네.”

대답을 하고 승지가 앞장을 섰다. 가면서 넌지시 물었다.

“대한조선공사 인수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다.”

“사장은 누가 맡기로 했죠?”

“추진력이 대단한 하씨네 둘째 하영(河永)이가 맡기로 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두 사람은 서재 안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자마자 병윤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저도 이제 경영일선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후계자 수업을 시키려고 했다. 요는, 내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말단사원으로 고생이 심한 곳에 배치해서 혹독한 수련을 시켰을 게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으니… 원하는 곳은 있느냐?”

“우리 그룹을 봤을 때,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건설과 무역업이 타 그룹보다 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건설과 상사(商社) 두 회사를 오가며 집중적으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키우긴 뭘 키워? 우선은 일머리부터 제대로 배워야지.”



고함에 가까운 아버지의 말에 승지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자신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승지는 곧장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제가 미덥지 못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저도 그동안 우리 그룹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건설과 상사에 적을 두고 몇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볼까 합니다. 그 첫 사업으로 저는 제가 사둔 땅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할 생각입니다.”

“뭐? 집안 말아먹으려면 뭔 짓인들 못해. 하필이면 할 짓이 없어서 지금 이 시기에 아파트 사업을 해? 너, 지금 8.8조치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건 아냐?”



병윤이 말한 8.8조치라는 것은 금년 8월 8일에 발표한 부동산 정책으로서, 이의 주된 내용은 토지거래허가제의 도입이었다. 전국에 투기열풍이 휘몰아치자, 이를 해소할 목적으로 토지거래에 앞서 이용계획을 허가받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경기는 급랭했다.

이 조치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 목화APT(삼익주택건설)의 경우에는 최고 45:1의 분양 경쟁률을 기록했고, 바로 이어 분양된 화랑APT는 70:1의 청약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미등기 전매를 행하면 프리미엄으로 최소 5만 원에서 250만 원까지도 벌 수가 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투기 광풍이 불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기껏 몇 백만 원인데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당시 한국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95,157원이었다.

어찌됐든 현시점에서 보면 8.8조치로 인해 병윤의 말이 백 번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승지는 여유만만 했다.



“저는 8월 19일 자 신문 기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군경의 대규모 발포로 인해 477명이 숨졌으며, 이를 계기로 시위대와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날이면 날마다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란의 정세에 주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이는 곧 이란 혁명으로 이어져 호메이니가 집권하는 동시에, 이슬람 공화국이 탄생할 전조입니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든 것만 보고도 봄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듯, 이는 곧 혁명 세력에 의해 대규모 석유 감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제2차 오일쇼크가 일어날 것이고, 또 한 번 전 세계가 높은 석유가격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소설을 써라. 아니면 점집을 차리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병윤도 솔깃한 표정이었다. 내심으로는 대견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어찌됐든 부동산 경기로 보면, 1차 오일쇼크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투기 붐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미 국민들은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로인해 주택이 안전자산으로 각광을 받아 부동산 붐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뉴스가 터져 나오자마자 투기 광풍이 또 한 번 이 땅에 재현될 것입니다.”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병윤이 툭 질문을 던졌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저는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병윤은 아들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승지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은 기껏 전답으로 되어 있는 제 소유의 토지가 형질 변경되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더 진전된다면 터파기 정도나 하고 있겠죠? 그런고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거기서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잠시 멈추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룹으로서는 크게 손해 볼 일이 없겠구나.”

“지불한 토지대금 정도는 묶이겠죠.”

“뭐? 그럼 네 땅을 그룹에 팔 작정이란 말이냐?”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 땅은 엄연히 제가 이십 년 이상을 애써 모은 돈으로 사놓은 제 사유지인데, 그룹에 공짜로 제공할 일은 없죠. 그룹의 돈과 제 개인돈은 별개인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독한 놈!”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감추려 해도 억지로 베어 나오는 웃음만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고생 모르고 자란 아들인지라 헤프게 돈을 낭비하거나 마구잡이로 사업을 벌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이 항상 있었다.

그런데 오늘 하는 양을 보니, 맞던 틀리던 미리 세계정세를 예측도 하고, 제 돈은 확실히 챙기는 모습을 보고는 아들이 마냥 철부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하듯 병윤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회사 출근용으로, 올 10월 출시 예정인 최고급 승용차인 그라나다를 너에게 선물로 주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왜?”

“젊은 놈이 겉멋만 들었다는 말도 듣기 싫고, 제가 타고 다니는 포니만 해도 아직은 잘 굴러가니까요.”

“허허, 그래?”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을 보며 승지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 * *



이제 경영일선에 발을 들인다고 하니 설레면서도, 승지는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이라도 출근하고 싶은데, 졸업장은 따야하니 중간고사까지는 학교에 다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져, 어떻게 하면 학교에 나가지 않고도 무난히 졸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다음날 학교에 간 승지는, 곧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3교시에 첫 수업이라 조금 늦게 갔더니 벌써 학교는 데모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최루탄 발포와 보도블록을 뜯어 대항하다 보니 학내가 온통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날만 그랬다면 여전히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어도 억지춘향으로 학교에 다녀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대규모 데모에 당국은 결국 학교를 폐쇄하고 말았다. 그 결과 중간고사는 졸업논문으로 대체한다는 공고가 났고, 승지는 다음날부터 그룹 본사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서울역 앞에 있는 GL그룹 본사는 지하2층, 지상 18층의 건물이었다. 이 당시로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높은 건물이었다.

지상의 임원전용 주차장에 주차한 승지는 곧 1층 현관으로 향했다.

가면서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50분. 회전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안은 예상외로 한가했다. 이로 보아 9시까지 출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출근한 듯했다.

승지는 곧장 임원전용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이때였다. 큰소리가 들려온 것은.



“여보세요! 어딜 가는 겁니까? 허락도 없이. 잡상인은 일절 출입금지인 거 몰라요?”

제복을 입은 수위가 다가와서 을러대는 모습에 승지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참고 목소리를 깔았다.

“출근합니다.”

“출근이라뇨? 하면 사원증이라도 패용을 해야지, 아무 것도 없질 않습니까?”

“아, 그렇기는 하네요. 첫 출근이다 보니, 아직 아무 것도…….”

“아무래도 수상하니 수위실까지 가시죠? 신분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지금은 입사 철도 아닌데 어디서…….”



오해할 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승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위력을 앞세우기로 했다.

“부회장님 계시면 전화 좀 연결시켜주시죠.”

“혹시 부회장님 일가친척……?”

“그건 아니고, 아, 그러네요.”

승지가 횡설수설을 하니 더욱 수상하게 본 듯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실까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승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로 했다.



“나 회장님의 유일한 아들인 고승지입니다.”

“네?”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제법 나이든 수위를 바라보며 승지가 앞질러 말했다.

“부회장님과 통화하면 금방 확인될 일이니, 전화기 있는 곳으로 갑시다.”

“그러시죠.”

급 공손해진 그를 따라 승지는 로비 한쪽 구석에 위치한 수위실로 갔다.

경비는 이내 부회장실로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몇 마디 통화를 하더니 전화기를 승지에게 넘겨주었다.



“부회장님, 저 승지입니다.”

[아, 그래. 오늘 새벽에 회장님으로부터 출근한다는 소식은 들었네. 18층으로 곧장 올라오시게.]

“네. 그럼 경비 분을 바꿔드릴게요.”

승지는 경비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그러자 경비는 상대방이 보이지도 않는데 구십 도에 가까운 절을 하며 네, 네 하더니 전화를 끊고 승지에게 급히 사과를 했다.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어서 저를 따라 오시죠.”

“뭐 그러실 수도 있죠.”

곧이어 경비는 앞장서서 문을 열고 나가는가 싶더니, 임원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한 것도 모자라 층수까지 눌러주었다. 그러고도 내리지를 않았다.



“왜 안 내리세요?”

“18층까지 안내해 드리려고…….”

“됐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아, 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으니 어서 내리세요.”

“네.”

경비가 내리자마자 승지는 클로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문이 닫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문이 강제로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