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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외전] 당직 사관 오상만 중사 (1)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하필 이장군, 그 녀석 전역날이 내 당직이구만.

이장군이 좋아서 희희낙락해할 걸 생각하니, 배알이 꼴렸다.

건방진 녀석.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란 말이지. 모든 장교들은 녀석에게 완전히 홀려서 놈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 바람에 나 같은 베테랑 부사관은 허깨비 취급을 당했다.

본래 우리 소대장들이야말로 부대의 핵심이다. 우리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한데 철모르는 어린 중대장들이 그걸 모르고 이장군 같은 놈과 어울리면서 소대장을 다잡으려 들었다.



― 병사들에게 일 좀 떠맡기지 마시죠.

― 그 정도는 소대장님들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중대장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가 늘었다. 그 배후에 이장군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놈은 후임병들의 불만을 알음알음 모아서 중대장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걸로 다른 병사들의 환심을 사는 것 같았다.

교활한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대장들마저 이장군을 좋아했다. 3소대장은 아예 이장군을 동생처럼 생각해서 함께 캠핑까지 갔다나?

다들 놈의 본질을 모르니 그 모양이지.

이장군이 부대를 떠난다니, 그것만큼은 좋지만…….

그 자식이 기뻐 죽을 것 같은 날 밤, 나는 당직을 서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짜증스러웠다.

아니, 잠깐.

…좋은 건가?

물고 있던 담배를 던져 버리고 빠른 걸음으로 행정실에 들어갔다.

그래. 가는 날이니까 이장군, 네놈도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꺼벙한 행정병 이우빈 일병이 앉아 있었다.

“근무표 줘 봐. 수정 좀 하게.”

“이미 중대장님 승인까지 받았는데 말입니까?”

이놈도 나를 무시하나?

내가 군대 짬밥이 중대장의 몇 배인데…….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이 새끼가… 내놓으라면 내놓을 것이지, 뭔 말이 많아?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내놔.”

“…네, 알겠습니다.”

이우빈이 마지못한 듯 근무표를 내놓았다.

어디 보자.

가장 힘든 시간대… 일어나기 제일 짜증 날 시간대가…….

오케이. 새벽 2시.

녀석을 초소 근무에 넣었다.

뭐, 중대장이 또 뭐라고 한 소리 하겠지만, 전역 전날 부대를 위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않겠나. 사실 전역 당일까지 근무를 서고 가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 * *



나의 당직날.

워낙 피곤했기에 당직병을 옆에 둔 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은 아니고…….

똑똑.

…….

“충! 성!”

깜짝 놀라서 황급히 눈을 떴다.

이장군, 이 새끼… 일부러 큰 소리를 낸 건가?

이장군과 8중대 이준혁 상병이 훈련병들을 이끌고 초소 근무 전 보고를 위해 상황실에 들어와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오냐, 오늘이 가는 날이라 이거지?

열심히 놈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

쯧, 그래도 내가 꼼꼼히 볼 거라는 걸 미리 알았나?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이장군을 쳐다보았다.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겠지.

그래, 그동안 더러웠고, 앞으로 전역하고 나면 다시 보지 말자.

그래도 간부답게 몇 마디 해 주었다.

“그래, 이 장군.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알잖냐. 요새 애새끼들은 정신이 빠졌어. 1교육대에서 랜턴도 안 들고 경계 근무를 갔단 말이야. 그거 연대장님한테 들켜서 그날 당직 사관 엿 됐어.”

이장군은 억지웃음을 지을 뿐, 딱히 내게 뭐라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사이, 당직병인 김성욱이 대검과 공포탄이 삽탄된 탄알집을 이장군에게 건넸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와중에 다시 상황실 문이 열렸다.

“충성!”

김기태 상병. 이장군의 끄나풀이다.

하여튼 3소대 녀석들… 소대장부터 분대장들까지 전부 마음에 안 든다니까.

“나가 봐. 근무 잘 서고.”

이장군은 경례한 후, 훈련병들을 이끌고 상황실을 나섰다.

나는 다시금 명상을 위해 눈을 잠시 감았다.

…상황실이 꽤 따뜻하구만.



* * *



뚜루루루!!

전화가 울린다.

뭐지? 당직 사령인가?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

뚜루루루루!!

내 옆의 김성욱 역시 졸고 있었는지 다소 늦게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 어엇?! 추, 충성! 아, 네…….”

왜 이렇게 당황하지? 연대장님이라도 전화하신 건가?

“소대장님! 소대장님! 일어나 보십쇼.”

“뭐, 왜? 누군데?”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물었다.

설마 진짜 연대장님인가?

“그, 그게… 4초소입니다. 이장군 병장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4초소? 이장군, 이 새끼가 돌았나? 초소에서 교육대로 전화를 넣어?! 이리 내놔 봐!”

그래, 잘 걸렸다. 전역을 앞둔 새끼들이 가끔 미친 짓을 하기 마련이거든.

무사히 전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똑똑히 보여 주지.

“야, 이장군. 너 미쳤어?”

[충성!]

“충성 같은 소리 하네. 야, 전역날이라고 지금 시위하냐? 이게 뭔 짓이야?!”

[소대장님, 지금 바깥에 긴급 상황입니다. 근무자들이 죽었고, 정체 모를 짐승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역 전날 추억을 남긴답시고 엽기적인 짓을 하는 놈들을 지금껏 꽤나 보았다.

화장실에 낙서를 남기거나 후임들의 군복이나 군화에 장난질을 쳐 놓는 녀석도 있었지. 밤늦게까지 노래 부르면서 내무반을 누비는 미친놈도 봤다.

하지만… 이장군, 놈은 역시 범상치 않았다.

부대를 습격했다고? 짐승들이?

논산 훈련소에?

어처구니가 없는 놈의 보고에 열이 확 올라왔다.

이 자식이 감히 나를 놀려?

[소대장님, 지금 혹시 교대 병력 투입했습니까? 걔들 막아야 합니다. 바깥에 그냥 나오면 안 됩니다!]

“……야.”

더 들어줄 수가 없군.

이장군, 이 괘씸한 자식. 이런 질 낮은 농담으로 나를 엿 먹이려 하다니.

내가 제 놈 말만 믿고 뭔가 조치를 취해 줄 거라 기대한 건가?

다음 근무병들의 투입을 멈추라고?

이건 명백히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짓거리다.

“하~ 진짜 골고루 하네, 이 새끼가. 어? 나 좆 되게 만들어 보겠다고 기껏 머리 굴려서 짜낸 게 고작 그런 수준 낮은 스토리냐? 뭐가 어쩌고 어째?”

이를 뿌득 갈았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놈이다.

내가 제 놈 근무를 세웠다고 이런 식으로 나를 약 올려?

[소대장님, 진짭니다. 제발…….]

수준급 연기다.

정말 박수라도 쳐줘야겠군.

“닥쳐, 새끼야! 어딜 장난 전화야!”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괘씸한 놈. 이 빌어먹을 자식이…….

“소대장님…….”

당직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침 다음 근무를 나갈 병사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7중대 당직 분대장인 김상헌 병장과 5, 7중대 근무 병사들이다.

“뭘 보고 있어? 빨리 투입해!”

“아, 예. 알겠습니다. 충성!”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김상헌 병장이 경례 후 도망치듯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젠장.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구만.

근무병 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칫 사후 문책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그런 얄팍한 수에 당할 리 없다. 그래도 군대 짬밥이 몇 년인데.

모범적인 분대장인 척, 제 놈이 뭐라도 되는 듯 굴지만, 결국 이런 장난질이나 치는 놈에 불과하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자리에 앉아 분노를 삭이며 눈을 비볐다.

제기랄, 한창 편히 눈 좀 붙이고 있었는데…….

이 개자식이…….

오기만… 해 봐라…….

…….

…….



* * *



똑똑.

“충성!”

“뭐야, 니들? 왜 니들만 와?”

잠결에 당직병 김성욱 일병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24번 훈련병, 김지철! 지금 밖에 개나 멧돼지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분대장님께서 일단 저희라도 빨리 가서 보고하라고…….”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

온몸이 땀에 젖은 훈련병 넷이 서 있었다.

6―124, 6―125, 6―126, 7―90.

녀석들의 방탄모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훈련병 교번이 보인다.

이장군과 함께 투입된 병사들과… 피?

7중대 90번 훈련병의 군복에 피가 묻어 있는 게 보인다.

“너희 뭐야? 니들 분대장은 어디 갔어?”

“이장군 분대장님과 김기태 분대장님은 밖에서 짐승들에 포위되었을 때, 저희를 먼저 탈출시키기 위해 뒤에 남았습니다.”

머리 회전이 잠시 멈추었다.

지금 이 자식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짐승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지, 진짜입니다. 짐승들에게 저희 분대장님도 당하시고…….”

“입 닥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이 새끼들, 집단으로 사람을 바보 취급하다니.

“소대장님…….”

김성욱 일병이 옆에서 나를 만류하듯 불렀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

“엎드려뻗쳐!”

훈련병들이 당황한 듯 저희들끼리 마주 본다.

“엎드려뻗쳐, 이 새끼들아!!”

눈치가 빨라 보이는 124번 훈련병이 가장 먼저 손을 땅에 짚었다.

그러자 다른 훈련병들도 엉거주춤 따라서 기합받을 준비를 했다.

“소대장님, 정말입니다! 정말 밖에 괴물들이…….”

가장 먼저 동작을 취한 124번 훈련병이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보자.

“하나에 내려가면서 ‘거짓말을’! 둘에 올라면서 ‘하지 말자’!”

“소대장님!”

“하나!!”

“……!”

훈련병 모두 고집스럽게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 하나 팔을 내리지도, ‘거짓말을’이라고 복창하지도 않는다.

“야, 이 개새끼들아! 니들 이번에도 항명하면 전부 영창이야. 알아? 하나!!”

“…거짓말을.”

훈련병들이 억지로 팔을 접으며 몸을 내린다.

그래, 네 들이… 감히 나를 거슬러? 감히 나를 속여 먹으려고? 이장군, 그놈이 뭔데?

“둘!!”

“…하지 말자!”

“이제 똑바로 말해 봐. 이장군이 시켰냐? 그 새끼는 어디 숨어 있어? 네놈들만 올려보내다니… 이장군, 그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냔 말이야!”

김성욱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이 다시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소대장님…….”

말리려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번 기회에 이 멍청한 훈련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지. 간부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정말 바깥에 난리가… 났습니다!”

“오냐, 그래. 끝가지 가 보자.”

그렇게 10분가량 드잡이를 벌였지만, 훈련병들은 땀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했다.

특히 124번 훈련병, 이 녀석은 계속해서 바깥의 상황에 대해서 이장군과 똑같은 말을 곱씹어 댔다.

훈련병들 중 단 한 명도 아직까지 죄송하다고, 거짓말이었다고 순순히 털어놓지 않았다.

“집단으로 미쳐서는… 이거, 아주 개판이구만!”

그리고 바로 그때, 상황실의 문이 열렸다.

“충성!”

“어! 그래, 너 이 새끼! 이장군, 너 인마!”

이 비겁한 자식.

이제야 그 뻔뻔한 모습을 드러냈다.

“너 돌았어? 이 미친 새끼가… 처 돌아가지고 훈련병만 보냈냐? 초소에서 상황실에 직접 전화를 하더니, 이제는……!!”

“얘들한테 보고 못 받으신 겁니까?”

이장군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조금의 장난기도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아직도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개소리하고 있네. 뭐, 인마! 밖에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서 지들만 간신히 도망쳤다는, 그 미친 소리? 네가 시켰지, 이 새끼야? 전역날 왜 지랄이야! 조용히 나가면 그만이지, 대체 왜 그래?”

“소대장님, 지금 바깥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훈련병들부터…….”

“너 각오해, 이장군. 네가 전역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래. 더 이상은 못 참아 주겠다.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직접 상대할 필요 없다. 이런 놈은 직접 연대에 보고해서 당장 내일 아침에 연대장님 앞에서 보고하고 확실히 조져 놔야지.

그런데…….

신호만 갈 뿐, 누구도 받지 않는다.

“이 새끼들은 또 왜 안 받아?!”

그때, 이장군이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인식표다. 그것도 피가 묻은 인식표.

그제야 보인다.

이장군의 군복에 붉은 물이 들어 있고, 소총에 끼워진 단검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다.

“너, 너……!”

“밖에 나간 근무자들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전부 당했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 입에서 탄식 비슷한 것이 나왔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 황당한 말들이 전부 진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