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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종극



타앙!!

다시 한번 1교육대 쪽에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이장군. 녀석이 쏜 공포탄 소리에 나와 철우를 둘러싼 좀비들 중 일부의 시선이 돌아가면서 포위망이 얇아졌다. 멀리서 본부로 달려가는 이장군 일행이 보인다.

이 와중에도 녀석은 나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한번 공포탄을 발사했다.

감사해야 할까?

“길이… 열렸습니다! 박 뱀, 어서 가야 합니다!”

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이장군 쪽을 보고 있었다.

당장 녀석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이장군의 멱살을 잡고, 녀석에게 외치고 싶었다.



― 너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착한 척하지 말라고!



나와 철우 쪽으로 밀려들던 연병장의 좀비들이 본부로 도망치는 이장군 일행 쪽으로 뒤돌아서서 마구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쪽을 도우려 한 녀석의 오지랖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속으로 마구 외쳤다.



― 제발 네 갈 길이나 가라, 이장군!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박 뱀!”

철우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시선을 돌린다.

다시 시야가 당겨지며 몰려드는 좀비들이 보였다.

철우는 필사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한꺼번에 서넛의 좀비들을 저만치 밀어 버리고 있었다.

철우의 옆에 서서 소총의 개머리판을 미친 듯이 휘두른다. 느려 터진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 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간밤에 나는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길을 택했다.



“7중대에서 중앙으로 모인 인원들만이라도 모아서 당장 1층으로 내려간다.”



좀비들의 역겨운 얼굴 뒤로 2교육대 교전 당시 마주친 좀비견들이 보인다. 놈들이 시뻘건 눈으로 마구 짖어 대면서 떼로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애꾸눈의 피투성이 똥개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놈이 피를 토하며 그대로 땅에 엎어진다.

그때, 옆에서 또 다른 좀비견 한 마리가 내 왼다리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박 뱀!!”

철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내 다리에 매달린 개의 머리를 소총으로 내리찍었다. 놈의 머리가 부서지면서 그대로 널브러졌다.

또 다른 좀비 하나가 좌측에서 나의 어깨를 물어뜯는다.

역시 아는 얼굴이다.

<8―022>.

이름은 모르지만 중앙 현관을 막 나설 때까지 함께 있던 8중대 훈련병.

창백한 표정의 녀석이 나의 피로 범벅이 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박 병장님! 아직, 아직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박현철이 내게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녀석은 그 말을 한 직후 좀비에게 물렸다.

그래, 난 당시 교전에서 8중대를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중앙 계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7중대 훈련병들도 포기했다.

철우가 황급히 박현철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나를 호위했다.

철우의 표정에는 절망이 떠올라 있다.

“바, 박 병장님……!”

…나의 선택은 틀린 걸까?



‘악역은 내가 맡는다.’



…그렇지 않았으면 전부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부상자는 버려! 감염이야!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른팔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좀비 병사 하나의 이빨이 박혔다.



<7―90>



7중대 훈련병.

간밤에 내 뒤를 꽤 오래 따라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더니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녀석은 언제 버려졌을까?

부상을 당하면서 버려진 걸까?

훈련병이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내 오른팔의 살점이 한 움큼 뜯겨 나간다.

이장군과 함께 있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너도 멀쩡히 살아 있을까…….

“박 뱀!! 이런 젠장!!”

철우가 내 오른팔을 물어뜯은 좀비 병사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뇌수를 흩뿌리며 놈의 붉은 눈동자에서 빛이 꺼진다.



“네 살길부터 찾아.”

“누군가 나를 물려고 하면 내 소총으로 박살 낼 뿐이고, 누가 뒤처져도 구하지 않을 거야.”



“박 병장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철우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정작 철우의 눈동자 역시 불타는 것 같은 붉은색이다.

나는… 실패했다.

팔을 늘어뜨리자 나의 등짝과 어깨, 목덜미로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저항하고 싶지 않다.

아니, 저항할 수 없다.

길은 막혔고, 철우는 홀로 분전하고 있지만, 나에게 집중된 공격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박 뱀!!”

타앙!!

공포탄 소리가 들려온다.

이장군… 녀석은 이 와중에 다시 한번 나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 * *



이장군.

녀석과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한다.

왕혁은 분대장 교육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누구보다 교활하고 비인간적이기에 나는 놈의 저급함을 비웃었다.

오히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던 남자, 이장군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으면서도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리더십.

어느 상황에서든 부드럽게 녹아들고, 자신이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배려했다.



‘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이장군이야.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지?’



분대장 교육대에서도 거의 모든 성적에 있어 왕혁에 밀리지 않던 이장군은 체력 시험, 장거리 달리기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면서 3등으로 밀려났다.

그 멍청한 녀석이 낙오된 분대장 교육생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으면서까지 부득불 끌고 온 것이다.

녀석과 나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배려. 아름다운 덕목이지만, 타인에 대한 섣부른 온정은 결국 나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타인을 사로잡는 것은 강한 카리스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나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웠다.

이장군이 부드럽게 포용하며 훈련병들을 아우를 때, 나는 강하게 군림하며 그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았다.

이장군이 김기태 상병과 훌륭한 콤비를 이룰 때, 나는 곽철우 상병과 최고의 콤비를 이루었다.

따뜻한 불꽃 같은 이장군의 온기는 많은 하급자들을 끌어모았고, 차가운 얼음 같은 나의 냉철함은 상급자들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나는 상병 때까지 이장군과 유별나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각자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유지했다. 간부들은 우리 둘 모두를 신뢰하면서 교육대의 두 개 축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5개월 전, 7중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나와 이장군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다.

7중대의 모든 분대장들을 움켜쥐고 있던 나의 카리스마를 젊은 중대장은 경계하고 시기했다.

중대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내게 경고했다.



“너는 병사에 불과하다. 간부들이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한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 알았나?”



그 와중에 7중대장은 6중대 분대장임에도 이장군을 진심으로 아꼈으며, 그와 각별한 관계를 이어 갔다.

분대장과 훈련병들을 부드럽게 아우르는 이장군을 교육대 최고의 분대장이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나에게는 제대로 된 신뢰를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나를 배제한 채 직접 후임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나의 통제권을 조금씩 빼앗기 시작했다.



― 중대장님이 따로 시키신 일이라서…….

― 중대장님께서 직접 보고하라 하셔서…….

― 박 병장님께서는 그냥 쉬어도 괜찮다고…….



나는 중대장에게 복종하면서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하는 후임들에게 더욱 냉정해졌다.

후임들을 다잡기 위해 간밤에 집합도 몇 차례 시켰고,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상병 놈은 날을 잡아 말 그대로 철저히 밟아 놓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중대장은 길길이 날뛰면서 나에게 폭언을 쏟아 냈다.



‘너는 이장군 발뒤꿈치에도 못 미쳐! 알아?’



나를 평소 좋아하던 교육대장과 행보관님이 간신히 말려서 징계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중대의 일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었다.

그나마 철우만이 중대 일들을 철저히 보고하면서 나의 명령에 따랐다.

7중대장과 나의 이야기는 교육대에 빠르게 퍼졌다.

타 중대 간부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냉철함’은 ‘인정머리 없음’으로 인식되었고, 언제 사고칠지 모를 위험한 녀석으로 찍혀 버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6중대 이장군은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면서 교육대의 유일무이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간부님들이 오해하셔서 그런 거야. 네 능력은 내가 잘 알아. 걱정 마라.”



이장군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장군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자발적으로 일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고, 부적응 훈련병들을 관리하는 일처럼 중대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그렇게 전역날이 다가왔다.

이제껏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장군의 방식으로는 제대로 사람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장군은 지금 저 많은 훈련병들을 구해서 나오고 있다. 대체… 어떻게?



* * *



“우아아아아!!”

철우는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채 주변의 모든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 내고 있었다.

녀석의 단 한 방으로 좀비들의 머리는 속절없이 터져 나갔다.

인간의 힘이라고 볼 수 없었다.

철우는 그렇게 경이로운 힘으로 나의 주변을 엄호했지만, 빈틈을 파고든 녀석들은 어떻게든 나의 살점을 뜯으려 했다.

몸 곳곳이 뜯겨 피가 흐르는 가운데, 나는… 점차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일까.

크…으…으…….

그때, 익숙한 목소리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당직 사관.

혼자 차를 몰아 도망치려 한 녀석.

간밤에 5, 7중대를 사지로 몰아넣은 녀석.

녀석의 무능함이 교육대의 수많은 분대장과 훈련병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녀석으로 인해… 나는 무언가 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크와…….

당직 사관은 얼굴과 몸 절반이 화상으로 뭉개져 있었다.

몸을 질질 끌면서 내 쪽으로 다가온다.

흉측하게 변해 버린 당직 사관의 몸 곳곳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이놈이 문제였다.

이장군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녀석은 운 좋게 좀비를 처음 목격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보고를 받은 당직 사관으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사태는…….

“너 때문이다, 이 개새끼야!!”

나는 나를 물고 있는 좀비들을 떨쳐 낸 뒤, 그대로 소총을 들어 올렸다.

퍼퍽!!

온 힘을 다해 당직 사관, 6중대 1소대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불에 탄 당직 사관의 얼굴이 그대로 바스라지며 소총이 깊숙이 박혔다.

검붉은 피가 튀면서 나의 소총은 당직 사관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다시 소총을 들어 올렸다.

당직 사관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전부… 전부 너 때문이야!!”

기울어지는 당직 사관의 얼굴을 옆으로 후려쳤다.

뻐걱!

당직 사관의 목이 돌아가면서 검붉은 피가 다시 한번 곳곳에 튄다.

웬 좀비 하나가 기어와서 내 허벅지를 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정도 통증은 이제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대신 나는 그대로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당직 사관의 머리와 어깨, 두툼한 배까지 소총으로 마구 두들겨 댔다.

억울하다.

당직 사관, 이 녀석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장군보다 더 많은 이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어쩌면 애당초 좀비 놈들 따위 모조리 해치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장군보다 모자란 놈이 아니다.

그걸 입증할 기회를 내 눈앞의 돼지 새끼가… 날려 버렸다.

철우는 이제 아무 말 없이 나의 옆에 몰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소대장의 얼굴이 잘게 부수어지고 몸도 다져진다.

그러나 동시에 내 팔에서도 힘이 빠져나갔고,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너무 많이 물려 버렸다.

이제… 나도 내 주변의 괴물들처럼 변하는 길밖에 없다…….

소총을 떨어뜨렸다.

무릎을 꿇는다.

…의식이 흐려진다.



[05: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