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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약자, 그리고 강자 (5)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보니 나도 모르게 허탈함이 밀려왔다.
여덟 명의 생존자 중 이제 남은 것은 나와 철우, 김성욱, 이렇게 셋뿐이다.
그 와중에 철우는 붉은 눈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분명히 감염된 상태다. 철우가 언제까지 제정신을 유지한 채 우리의 아군으로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김성욱은…….
“바, 박 병장님,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더 나쁜 것은 완전히 발이 묶여 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직 사관의 차가 3교육대로 향하는 대로를 막아선 채 멈춰 있고, 취사장은 이미 좀비들이 완전히 점거해 버렸다. 2교육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단 살아 있다면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콰쾅!!
순간적으로 귀가 먹먹해지고, 갑작스러운 열기에 놀라 허리를 숙였다.
식당 반대편이다. 불꽃이 치솟고 있었다.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당직 사관의 차뿐이다.
차가 폭발했다.
* * *
“정신 똑바로 차려. 들키면 끝이다.”
“네, 박 뱀.”
당연히 철우에 대해서만큼은 걱정하지 않는다.
“…괘,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괴물들 바로 옆을 지나쳐야…….”
김성욱, 이 자식이 걱정이지.
벌써부터 죽는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3교육대든 연무문이든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지나쳐야 돼. 아니면 넌 여기 남든가. 말리지 않는다.”
“아, 아닙니다.”
주변에 마구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들이 보였다. 취사장 옆쪽 샛길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담배를 피워 댄 모양이다.
행보관이나 연대장이 이 꼴을 봤다면 눈이 뒤집어졌겠군. 뭐, 지금에 와선 별 의미가 없지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긴장을 푸는 데 꽤나 도움이 된다.
지금부터 우리 셋은 3교육대로 향하는 대로변 옆 수풀을 포복으로 통과할 셈이었다.
물론 위험천만한 계획이다. 들키면 곧바로 끝이다.
숨죽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샛길을 천천히 통과해 대로변 쪽을 살폈다.
3교육대로 향하는 길 한가운데에 폭파한 차량이 불타고 있고, 주변에는 좀비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언뜻 보면 생활복을 입은 훈련병들이 애완견들과 모여서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숨을 죽인다.
길옆의 수풀 쪽으로 몸을 바짝 낮추고 숨어들었다.
차가 불타고 있는 길의 옆쪽에 비스듬히 경사진 둔덕이 우리의 몸을 엄폐해 주었다.
포복으로 몸을 낮추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군복과 소총이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잔디들을 건드렸고, 그 소리가 평소보다 배는 크게 느껴졌다.
뒤쪽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좀비들에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하나둘, 하나둘, 하나둘.
무의식적으로 박자를 셌다.
군 생활 내내 약 400여 명의 훈련병들에게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드러누워 통과 등 온갖 포복 자세들을 가르쳐 왔다. 비가 온 뒤, 각개전투의 진흙탕에서 시범을 보이며 구른 적도 있다.
― 높은 포복. 가장 빠른 기동성을 자랑한다. 양손을 이용해라.
― 오른팔을 뻗을 때 왼다리를 앞쪽으로 굽힌다. 왼팔을 뻗을 때 오른다리를 앞쪽으로 굽혀라.
― 상체를 들 수 있다고 해서 멍청하게 빳빳하게 고개를 들지 마라.
내가 가르친 것들을 복기하면서 악착같이 앞으로 기었다.
이만한 전역식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기었을까. 슬슬 땀이 온몸을 적시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아무리 빠른 포복이라 해도 결국 포복은 포복이다. 몇 분을 기었지만, 이동 거리는 고작 수미터에 불과했다.
슬쩍 좌측을 보니, 이미 불타는 차량은 지나쳤지만 여전히 좀비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 들킨다면 답이 없다. 저 많은 좀비들이 한번에 달려들어 나와 김성욱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겠지.
뒤쪽을 힐끗 바라보니, 김성욱이 헉헉대면서 몸을 후들거리고 있었다. 반면, 철우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자세로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사실 철우는 포복할 필요가 없다.
좀비들은 이미 눈이 붉게 변한 다른 감염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똑똑히 보았다, 조리실에서 넘어온 좀비들은 왕혁이나 철우를 향해 달려들지 않는 것을. 철우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철우는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나와 똑같은 어려움을 자처했다.
하나둘, 하나둘…….
그러고 보니 지금 나와 철우의 복장은 잠잘 때 입는 회색 육군 생활복이다. 전투복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요대 없이 포복을 하자 허리와 옆구리, 허벅지 등이 자갈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그나마 대대 당직병이었던 김성욱만이 무장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그 와중에 불타는 차의 뜨거운 열기가 좌측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좀비들이 수풀을 사이에 두고 가득 늘어서 있었다.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우측 수풀 안쪽에서 갑자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있다.
내가 멈춰 그쪽을 주시하자 김성욱과 철우도 긴장한 표정으로 포복을 중단했다.
수풀이 마구 흔들린다.
온다.
야옹~
젠장.
짬타이거, 이 빌어먹을 고양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소총을 고쳐 잡고 몸을 뒤쪽 둔덕에 기댔다.
순간적인 긴장 탓에 한숨이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철우와 성욱도 잔뜩 경계하며 그쪽을 보던 참이었다.
큰 소리를 내면 죽는다. 당장 둔덕 뒤편에 좀비들이 새까맣게 모여 눈을 번뜩이고 있었으니까.
“바, 박 병장님!”
김성욱의 목소리다.
녀석의 시선은…….
위다!
키아아아아앙!!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붉은 눈. 목이 기괴하게 꺾인 좀비 한 놈이 짬타이거를 들어 올려 고양이의 목 부위에 이빨을 집어넣고 있다. 놈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젠장.
좀비 녀석은 어깨 부분을 물렸는지, 좌측 어깨가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쯧!”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소총으로 녀석의 목 부분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컥!! 커거걱!
목울대를 얻어맞은 녀석은 일시적으로 비틀거리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제대로 힘이 실리기 힘든 자세였다. 목을 쳐서 놈이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크아아악!!
제기랄, 실패다.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들어 올린 고양이를 저만치 던져 버리고 나를 향해 엎어졌다.
그때, 내 바로 뒤에 있던 철우가 빠르게 몸을 일으키면서 놈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돌려 쳤다.
크아아아아아!!
놈이 비틀거리더니, 내 앞에 넘어져 버둥거렸다.
그사이에 철우는 놈의 두개골을 소총으로 내려쳐 박살 냈다.
파각!
소리는 충분히 컸고, 다른 좀비들의 주의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이미 몇몇 좀비들의 붉은 눈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그중 두 놈이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철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수풀 밖으로 뛰어나가 소란을 듣고 다가온 좀비 둘의 머리를 연달아 박살 내 버렸다.
“철우야!”
“앞으로 나가십쇼, 박 병장님.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다른 좀비들은 오히려 철우가 등장하자 이쪽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과연 녀석들은 철우를 살아 있는 먹잇감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좀비들은 수풀 쪽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시 기도비닉(企圖秘匿)을 유지한다면 곧 흥미를 잃을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으, 으아!!”
빌어먹을.
김성욱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지나쳐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마저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김성욱을 보며 황당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크르르…….
크아아아!
불길의 열기에 시선을 두고 있던 좀비들이 다 같이 이쪽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성욱을 향해 마구 달려들었다.
“김성욱, 이 개자식…….”
철우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같은 심정이다.
이미 차의 불꽃에 시선이 끌려 있던 좀비 떼들이 죄다 김성욱에게 몰리면서 대로변에서 수풀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성욱의 뒤쪽으로 좀비들이 새까맣게 몰렸다.
크아아아아!!
퍼걱! 퍽!
철우는 그 와중에도 여전히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내 옆을 막아선 채 근처의 좀비들의 머리를 마구 박살 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옆쪽이 아니라 앞이다.
김성욱의 뒤를 쫓는 좀비들이 내 앞길까지 전부 막아서게 될 것이다.
이제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입술을 깨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우야, 내 옆에 붙어! 정면으로 길을 뚫는다!”
“네, 알겠습니다!”
철우가 내 바로 옆에 붙어 섰다.
하지만 2교육대에서 식당 쪽으로 길을 뚫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좀비들이 몰려 있었다.
소대장의 차가 폭발하면서 몰려든 좀비들이 이제는 전부 나와 김성욱을 노렸다.
게다가 이제 어둠이 걷히면서 우리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좀비들 뒤편의 1교육대 건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급히 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거리가 있지만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몸집이 큰 병사는 김호철. 그리고 그 바로 뒤를 따라붙고 있는 것들은 까까머리 훈련병들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가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5, 7중대는 거의 전멸에 이르렀고, 생존자는 셋뿐이다.
그런데… 6, 8중대 쪽은 저렇게 많이 살아남았다고? 감염자가 감염자를 낳는 이 지옥 속에서?
그때, 1교육대의 다른 문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1교육대 훈련병? 아니면 병사?
일단 간부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박 병장님!”
철우가 내 옆을 엄호하면서 불렀지만, 순간 머리가 멍해진 나는 여전히 1교육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간부에 이어 두 남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6중대의 당직 완장을 차고 있는 김기태.
그리고 그 옆에 선 녀석…….
이장군.
…전부 살아 있었다.
“하, 하하하…….”
“박 병장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철우의 말에 따라 3교육대 쪽으로 길을 잡고 소총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면서 내 주변을 겹겹이 포위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조차 웃음이 비어 나온다.
나는 지금 이장군 일행을 위해 미끼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연대 내 거의 모든 좀비들을 이쪽으로 불러 모은 가운데, 1교육대 중앙문과 우측 문에서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어디론가 이동한다.
이장군 덕분에 살아난 병사들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퍼퍽!
한 놈.
두 놈… 세 놈…….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운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이장군의 존재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이장군 발뒤꿈치에도 못 미쳐! 알아?’
7중대장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감염자를 뿌리쳐야만 생존자가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감염자들의 보호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던 나의 선택을 떠올린다.
나와 함께 길을 뚫다가 목숨을 잃은 녀석들을 떠올린다.
취사장에서 왕혁에게 죽음을 맞이한 김찬과 이율태.
그리고 좀비로 변해 버린 김진과 차지석, 김희운.
전부 잃었다.
하지만 이장군은 그 많은 훈련병과 후임병들을 살려서 데리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미 물려 버린 감염자들은 어떻게 하고?
내 선택에 문제가 있던 건가?
내가 틀린 거라고?
퍼퍽!!
무감각하게 좀비들의 머리를 부순다.
아무리 부수고 부수어도 놈들은 다시 그 자리를 메운다.
그러나 내 귀에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똑바로 서라.’
아버지.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네놈이 내 아들이라는 걸 수치스럽게 만들지 마라.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래, 나는 약하지 않다.
왕혁같이 비열한 겁쟁이가 아니다.
그리고 이장군. 녀석보다… 약할 리 없다. 녀석보다 내가 부족할 리 없다.
그때였다.
타탕!
1교육대 쪽에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부산히 움직이던 소총을 늘어뜨렸다.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보니 나도 모르게 허탈함이 밀려왔다.
여덟 명의 생존자 중 이제 남은 것은 나와 철우, 김성욱, 이렇게 셋뿐이다.
그 와중에 철우는 붉은 눈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분명히 감염된 상태다. 철우가 언제까지 제정신을 유지한 채 우리의 아군으로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김성욱은…….
“바, 박 병장님,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더 나쁜 것은 완전히 발이 묶여 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직 사관의 차가 3교육대로 향하는 대로를 막아선 채 멈춰 있고, 취사장은 이미 좀비들이 완전히 점거해 버렸다. 2교육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단 살아 있다면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콰쾅!!
순간적으로 귀가 먹먹해지고, 갑작스러운 열기에 놀라 허리를 숙였다.
식당 반대편이다. 불꽃이 치솟고 있었다.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당직 사관의 차뿐이다.
차가 폭발했다.
* * *
“정신 똑바로 차려. 들키면 끝이다.”
“네, 박 뱀.”
당연히 철우에 대해서만큼은 걱정하지 않는다.
“…괘,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괴물들 바로 옆을 지나쳐야…….”
김성욱, 이 자식이 걱정이지.
벌써부터 죽는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3교육대든 연무문이든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지나쳐야 돼. 아니면 넌 여기 남든가. 말리지 않는다.”
“아, 아닙니다.”
주변에 마구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들이 보였다. 취사장 옆쪽 샛길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담배를 피워 댄 모양이다.
행보관이나 연대장이 이 꼴을 봤다면 눈이 뒤집어졌겠군. 뭐, 지금에 와선 별 의미가 없지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긴장을 푸는 데 꽤나 도움이 된다.
지금부터 우리 셋은 3교육대로 향하는 대로변 옆 수풀을 포복으로 통과할 셈이었다.
물론 위험천만한 계획이다. 들키면 곧바로 끝이다.
숨죽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샛길을 천천히 통과해 대로변 쪽을 살폈다.
3교육대로 향하는 길 한가운데에 폭파한 차량이 불타고 있고, 주변에는 좀비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언뜻 보면 생활복을 입은 훈련병들이 애완견들과 모여서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숨을 죽인다.
길옆의 수풀 쪽으로 몸을 바짝 낮추고 숨어들었다.
차가 불타고 있는 길의 옆쪽에 비스듬히 경사진 둔덕이 우리의 몸을 엄폐해 주었다.
포복으로 몸을 낮추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군복과 소총이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잔디들을 건드렸고, 그 소리가 평소보다 배는 크게 느껴졌다.
뒤쪽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좀비들에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하나둘, 하나둘, 하나둘.
무의식적으로 박자를 셌다.
군 생활 내내 약 400여 명의 훈련병들에게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드러누워 통과 등 온갖 포복 자세들을 가르쳐 왔다. 비가 온 뒤, 각개전투의 진흙탕에서 시범을 보이며 구른 적도 있다.
― 높은 포복. 가장 빠른 기동성을 자랑한다. 양손을 이용해라.
― 오른팔을 뻗을 때 왼다리를 앞쪽으로 굽힌다. 왼팔을 뻗을 때 오른다리를 앞쪽으로 굽혀라.
― 상체를 들 수 있다고 해서 멍청하게 빳빳하게 고개를 들지 마라.
내가 가르친 것들을 복기하면서 악착같이 앞으로 기었다.
이만한 전역식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기었을까. 슬슬 땀이 온몸을 적시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아무리 빠른 포복이라 해도 결국 포복은 포복이다. 몇 분을 기었지만, 이동 거리는 고작 수미터에 불과했다.
슬쩍 좌측을 보니, 이미 불타는 차량은 지나쳤지만 여전히 좀비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 들킨다면 답이 없다. 저 많은 좀비들이 한번에 달려들어 나와 김성욱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겠지.
뒤쪽을 힐끗 바라보니, 김성욱이 헉헉대면서 몸을 후들거리고 있었다. 반면, 철우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자세로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사실 철우는 포복할 필요가 없다.
좀비들은 이미 눈이 붉게 변한 다른 감염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똑똑히 보았다, 조리실에서 넘어온 좀비들은 왕혁이나 철우를 향해 달려들지 않는 것을. 철우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철우는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나와 똑같은 어려움을 자처했다.
하나둘, 하나둘…….
그러고 보니 지금 나와 철우의 복장은 잠잘 때 입는 회색 육군 생활복이다. 전투복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요대 없이 포복을 하자 허리와 옆구리, 허벅지 등이 자갈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그나마 대대 당직병이었던 김성욱만이 무장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그 와중에 불타는 차의 뜨거운 열기가 좌측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좀비들이 수풀을 사이에 두고 가득 늘어서 있었다.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우측 수풀 안쪽에서 갑자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있다.
내가 멈춰 그쪽을 주시하자 김성욱과 철우도 긴장한 표정으로 포복을 중단했다.
수풀이 마구 흔들린다.
온다.
야옹~
젠장.
짬타이거, 이 빌어먹을 고양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소총을 고쳐 잡고 몸을 뒤쪽 둔덕에 기댔다.
순간적인 긴장 탓에 한숨이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철우와 성욱도 잔뜩 경계하며 그쪽을 보던 참이었다.
큰 소리를 내면 죽는다. 당장 둔덕 뒤편에 좀비들이 새까맣게 모여 눈을 번뜩이고 있었으니까.
“바, 박 병장님!”
김성욱의 목소리다.
녀석의 시선은…….
위다!
키아아아아앙!!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붉은 눈. 목이 기괴하게 꺾인 좀비 한 놈이 짬타이거를 들어 올려 고양이의 목 부위에 이빨을 집어넣고 있다. 놈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젠장.
좀비 녀석은 어깨 부분을 물렸는지, 좌측 어깨가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쯧!”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소총으로 녀석의 목 부분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컥!! 커거걱!
목울대를 얻어맞은 녀석은 일시적으로 비틀거리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제대로 힘이 실리기 힘든 자세였다. 목을 쳐서 놈이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크아아악!!
제기랄, 실패다.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들어 올린 고양이를 저만치 던져 버리고 나를 향해 엎어졌다.
그때, 내 바로 뒤에 있던 철우가 빠르게 몸을 일으키면서 놈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돌려 쳤다.
크아아아아아!!
놈이 비틀거리더니, 내 앞에 넘어져 버둥거렸다.
그사이에 철우는 놈의 두개골을 소총으로 내려쳐 박살 냈다.
파각!
소리는 충분히 컸고, 다른 좀비들의 주의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이미 몇몇 좀비들의 붉은 눈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그중 두 놈이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철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수풀 밖으로 뛰어나가 소란을 듣고 다가온 좀비 둘의 머리를 연달아 박살 내 버렸다.
“철우야!”
“앞으로 나가십쇼, 박 병장님.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다른 좀비들은 오히려 철우가 등장하자 이쪽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과연 녀석들은 철우를 살아 있는 먹잇감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좀비들은 수풀 쪽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시 기도비닉(企圖秘匿)을 유지한다면 곧 흥미를 잃을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으, 으아!!”
빌어먹을.
김성욱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지나쳐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마저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김성욱을 보며 황당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크르르…….
크아아아!
불길의 열기에 시선을 두고 있던 좀비들이 다 같이 이쪽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성욱을 향해 마구 달려들었다.
“김성욱, 이 개자식…….”
철우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같은 심정이다.
이미 차의 불꽃에 시선이 끌려 있던 좀비 떼들이 죄다 김성욱에게 몰리면서 대로변에서 수풀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성욱의 뒤쪽으로 좀비들이 새까맣게 몰렸다.
크아아아아!!
퍼걱! 퍽!
철우는 그 와중에도 여전히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내 옆을 막아선 채 근처의 좀비들의 머리를 마구 박살 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옆쪽이 아니라 앞이다.
김성욱의 뒤를 쫓는 좀비들이 내 앞길까지 전부 막아서게 될 것이다.
이제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입술을 깨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우야, 내 옆에 붙어! 정면으로 길을 뚫는다!”
“네, 알겠습니다!”
철우가 내 바로 옆에 붙어 섰다.
하지만 2교육대에서 식당 쪽으로 길을 뚫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좀비들이 몰려 있었다.
소대장의 차가 폭발하면서 몰려든 좀비들이 이제는 전부 나와 김성욱을 노렸다.
게다가 이제 어둠이 걷히면서 우리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좀비들 뒤편의 1교육대 건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급히 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거리가 있지만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몸집이 큰 병사는 김호철. 그리고 그 바로 뒤를 따라붙고 있는 것들은 까까머리 훈련병들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가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5, 7중대는 거의 전멸에 이르렀고, 생존자는 셋뿐이다.
그런데… 6, 8중대 쪽은 저렇게 많이 살아남았다고? 감염자가 감염자를 낳는 이 지옥 속에서?
그때, 1교육대의 다른 문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1교육대 훈련병? 아니면 병사?
일단 간부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박 병장님!”
철우가 내 옆을 엄호하면서 불렀지만, 순간 머리가 멍해진 나는 여전히 1교육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간부에 이어 두 남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6중대의 당직 완장을 차고 있는 김기태.
그리고 그 옆에 선 녀석…….
이장군.
…전부 살아 있었다.
“하, 하하하…….”
“박 병장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철우의 말에 따라 3교육대 쪽으로 길을 잡고 소총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면서 내 주변을 겹겹이 포위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조차 웃음이 비어 나온다.
나는 지금 이장군 일행을 위해 미끼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연대 내 거의 모든 좀비들을 이쪽으로 불러 모은 가운데, 1교육대 중앙문과 우측 문에서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어디론가 이동한다.
이장군 덕분에 살아난 병사들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퍼퍽!
한 놈.
두 놈… 세 놈…….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운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이장군의 존재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이장군 발뒤꿈치에도 못 미쳐! 알아?’
7중대장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감염자를 뿌리쳐야만 생존자가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감염자들의 보호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던 나의 선택을 떠올린다.
나와 함께 길을 뚫다가 목숨을 잃은 녀석들을 떠올린다.
취사장에서 왕혁에게 죽음을 맞이한 김찬과 이율태.
그리고 좀비로 변해 버린 김진과 차지석, 김희운.
전부 잃었다.
하지만 이장군은 그 많은 훈련병과 후임병들을 살려서 데리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미 물려 버린 감염자들은 어떻게 하고?
내 선택에 문제가 있던 건가?
내가 틀린 거라고?
퍼퍽!!
무감각하게 좀비들의 머리를 부순다.
아무리 부수고 부수어도 놈들은 다시 그 자리를 메운다.
그러나 내 귀에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똑바로 서라.’
아버지.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네놈이 내 아들이라는 걸 수치스럽게 만들지 마라.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래, 나는 약하지 않다.
왕혁같이 비열한 겁쟁이가 아니다.
그리고 이장군. 녀석보다… 약할 리 없다. 녀석보다 내가 부족할 리 없다.
그때였다.
타탕!
1교육대 쪽에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부산히 움직이던 소총을 늘어뜨렸다.